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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의 실생활 적용법 (사순절5)
창 39:1-23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믿음의 선배, 요셉은 오늘 본문 말씀의 시점에서
힘겨운 고난을 겪으며, 점점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요셉의 생애를 끝까지 다 알고 있기에
그가 겪은 힘든 시간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께서 베푸신(혹은 허용하신) 고난을 통한 성숙의 시기’이며,
더불어 야곱의 가족들이 앞으로 있을 긴 흉년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책으로서
요셉이 먼저 애굽으로 보냄을 받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창 45:5-8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의 형들은 죄를 따라 악행을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도 이렇게 선한 목적을 이루셨다는 말로
요셉이 품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절대적 신뢰를 고백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기에 마음속에 늘 하나님을 최우선하던 요셉에게는
형들의 악행마저도 저주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복으로 바꿔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은
극심한 흉년 중에도 먹을 것과 거처를 보장받아 육신적인 배부름과 안전함을 얻는 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의 본질이라는 뜻이 아니라
먼저 애굽으로 보냄을 받아 총리가 된 요셉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계약의 성취과정),
그리고 누구라도 하나님 안에서 인내하며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죄와 싸우는 모습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예표적인 메시지가 담긴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눅 21:19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신 것처럼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요셉은 질투심에 불타던 형들에 의해 팔려 노예가 되었고,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보디발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그 집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간음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에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단호히 거절했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마귀가 던져주는 더러운 욕망에 스스로 이끌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다시 요셉에게 접근하여 동침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요셉은 그 즉시 자리를 피함으로써 죄로부터 도망쳤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죄와 싸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죄를 범할만한 상황으로부터 빠르게 떠나는 것입니다.)
신속히 도망치는 과정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강하게 붙잡고 있는 자신의 옷을 벗어버렸기에
요셉은 증거를 잡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요구가 거절된 것에 분노하여 요셉을 강간미수범으로 몰아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악에서 시작된 잘못된 사랑(욕정)은
다윗의 아들, ‘근친강간범 암논’이 품은 ‘이복여동생 다말’을 향한
‘욕정에서 시작된 증오’와 같이 그 결말이 처참합니다.
(여동생을 강간 후 증오하며 내쫓은 사건 2년 후
암논은 다말의 오빠이자 자신의 이복남동생인 압살롬으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도 나중에 분명히 이 일에 대하여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심판받았을 것입니다.
삼하 13:15-19, 28-29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
(28)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29)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성범죄자로 몰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당면한 그 억울한 일마저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 포함시켜주셨고,
따라서 그 모든 일들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수순이 되었으며,
더불어 고난을 통한 요셉의 성장과정, 귀한 훈련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스스로 욕정과 증오에 사로잡혀
거짓증언으로 악을 행하여 스스로를 죄 구덩이로 빠뜨렸지만
요셉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도 선한 목적을 이루어주신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를 조장하신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마침내 장성한 요셉은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모두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성장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을 닮은 자비와 사랑을 보여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 것입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만을 경외했고,
또한 ‘악을 행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란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처럼 죄의 유혹 앞에서
영적인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내용에 오늘 우리가 집중하십시다.
만약 요셉이 ‘어차피 나는 형들로부터 가차 없이 버림을 받았고,
이렇게 노예 신세가 된 것을 보아하니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호해주시지 않는 것 같네.
이제 대충 막 살아야겠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까지 노예로 살다가 끝날 막장 인생이고,
앞으로 여자를 안아보지도 못할 것 같은데 이 기회에 보디발의 부인이랑 해버리자.
나는 용모도 뛰어난데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도 억울한 일이야.
그리고 저 여자는 높은 분의 아내라서 그런지 아름답기도 해. 걸리지만 않으면 되지 뭐.
강제도 아니고 합의하에 몰래하는 건데 뭐 어때? 아주 그냥 짜릿하겠네.‘하며
그대로 보디발의 아내와 함께 죄의 구덩이로 들어가 버렸다면
요셉은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거나
고난 중에 하나님을 져버리고 배신하여 타락한 자의 표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사순절 셋째 주일에 주셨던 말씀,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은
단순히 자기 의를 세워 스스로를 거룩하게 여겨 ‘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의로운 자야.’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만 집중하여 ‘죄를 짓고 싶지만 꾹 참는 낮은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말처럼 ‘내가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는 점을 늘 잊지 않는 것,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최우선하는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우리도 삶속에서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구원 받을 자들만 걸을 수 있는
이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 원리를 알고, 삶속에서 실천해야만 합니다.
계 19:7-8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는 ‘세상과 구별된 삶’,
‘죄를 상대로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제는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는 삶’,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격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즉 옳은 행실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 특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스스로에게 금지하고,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며 경외하기에 육신적인 유혹 앞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주변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도 괜찮겠지?’ 하는 어리석은 군중심리에서도 벗어나고,
심지어 누명을 쓰게 될 것이 뻔한 상황이라도 끝까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게 됩니다.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 없이
마음은 더러우면서 외적인 행위만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거나
보고 계시든, 안 보고 계시든 상관없이 패역한 자, 곧 선한 양심이 굳어 아예 없어진 자들은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특히 고난 중에 쉽게
스스로를 죄의 유혹과 나태함에 내버려두는 모습,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따라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는 모습으로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고전 6:18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아, 씨~ 오늘 짜증나는데 해버려야겠다. 하나님? 아 몰라.’하며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르거나 음란한 곳에 가서 성매수를 하거나 음란물을 보는 등
죄를 범해버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후회를 하면 아직 양심이 조금이나마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설마 그리스도인들이 성적으로 그럴 리가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해도 극소수겠지.”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그런 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그런 모습을 가진 목사, 장로, 집사 등 많지만
그들은 교회에서 아무 티도 내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믿음 좋은 자, 거룩한 자, 성실한 자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회개 운동을 통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음란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어떤 것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의 죄,
혈기와 증오, 불법과 악행, 신앙의 나태함 등 모든 종류의 죄가 다 해당됩니다.
삼상 12:23 상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의 유혹을 물리치며 싸워서 이기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거부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을 따라 좁은 문을 통과하고, 협착한 길을 걷는 삶을 자신이 살고 있다면서
공로의식을 가지며, 자신이 하나님께 뭔가 해드리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 모든 것들은 사실 자기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통해 뭔가를 얻어내시는 것이 조금도 없으며,
사실은 우리를 필요(必要)로 하는 분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한마디면 지금의 인류를 싹 없애신 후
완벽하게 순종하는 존재를 말씀 한마디로 다시 만드실 수도 있지만(천사분들처럼)
하나님께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죄 없는 독생자를
우리 대신 잔인한 십자가의 죄의 대속물로 삼으신 분입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위대한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주시며,
심지어 구속사의 동역자로까지 삼아주셨고,
급기야 영원한 가족으로 맞아주시려고 지금도 인도해주고 계시며,
우리가 죄를 또 범했을 때에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다시 깨끗하게 씻어주시면서 기회를 주고 계신 분입니다.
삼상 12:24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과 ‘목적 있는 인내’를 마음 중심에 품은 채
고난을 잘 통과하여 한 걸음 더 성장하고,
죄와 치열하게 싸워 이기며,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늘 가장 좋은 복된 길을 알려주시며,
항상 그 길로 인도해주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면
신앙의 출발이 잘못된 것이므로 성경말씀을 통해 반드시 재정립을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뇌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의 언어로도 형용할 수가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시 146:8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렘 31:3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믿음의 선배, 요셉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죄에 대한 예민함을 기쁨이자 특권으로 여기며,
선한 양심을 삶의 행복으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야 각자의 삶속에서 올바르게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삼상 12:25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지난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에 대한 말씀을 다시 기억해보십시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온 갖은 고난들, 또한 지금 겪고 있는 일들, 앞으로 겪게 될 힘든 일들도
역시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를 위한 것들이 맞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말입니다.
우리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께서
전부 우리를 위한 것으로 바꿔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아주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칭찬과 상급일 뿐
하나님께선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없으시기에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실 수 있는 ‘유일한 신’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 없이 인지하면 이 부분이 더욱 확실하게 인정됩니다.
오늘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다.
현재 나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계시는 건 알지만 어디 멀리 계셔서 나를 못보고 계신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기에
반복적으로 죄를 쉽게 범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보고 계신다는 걸 알면서도 패역하게 자기 기분과 상황과 처해진 환경에 따라
특히 고난 중에는 육신적으로 돌변하여 마음이 요동치게 내버려두며,
죄에 대한 예민함을 버리고, 양심이 굳어져 여러 가지 죄들을 쉽게 자신에게 허용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과 단절된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어떤 극심한 고난이 올지라도 늘 변함없이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분을 바라며 의지하면서 죄를 상대로 싸우며(혹은 빠르게 도망치며),
아직도 버리지 못한, 부인하지 못한 자신의 옛 자아, 육신적인 탐심,
그리고 여러 가지 세상적인 모습들과 치열하게 싸우며 꾸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감사한 마음으로 짊어지면서
단 한 걸음이라도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지,
믿음의 선배, 요셉처럼 악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거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인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각 사람의 모든 것을 솔직히 인정하여 고백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며, 돌이킬 것은 돌이키십시다.
회개할 것이 없는 자는 단 한 명도 없고, 돌이킬 것이 없는 자도 전혀 없기에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설교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이미 다 해결해주셨기에
우리는 언제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곧 찾아올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입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자에겐 모든 은혜의 기회가 다 지나간 것이기에
죽은 이후에는 더 이상 회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살에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우리 각 사람은 언제 자신이 죽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죄와 육신적인 세상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스스로 버리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생활 속에서
아무런 경각심도 없이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후
영원한 지옥에서 후회하게 될 위험천만한 인생을 살아갈지,
아니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기 때문에
항상 그 분을 가장 사랑하며 경외하던 요셉처럼
감히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단호히 행하고,
현재 고난 중에 있든지, 어느 때든지 늘 그 분의 가족이 되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진짜 인생을 시작할지
감사하게도 우리는 각자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겐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은혜 중의 하나인 자유의지를
부디 한 점의 후회 없이 바르게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각자의 삶에 반영함으로서
죄에 대한 예민함과 선한 양심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심하는 거룩한 근심을 품고,
과연 나는 하나님만을 존경하면서 두려워하고(경외하고) 있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내 마음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는 자가 맞는지,
아니면 고난이 찾아왔을 때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쉽게 죄를 범하는 자인지 등을
스스로 솔직하게 되돌아봄으로서 신앙을 겸손히 점검하여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깨끗한 예복을 잘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수 24:15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삼상 12:20-21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3.17.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21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2.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3.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아멘
첫댓글 아멘! 미련하게 죄의 자리에서 고민하느니
즉시 죄의 자리를 피하는 요셉의 지혜를
배웁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흉내내지 않고 그 곁에도
가지않기를 바랍니다.
유일한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기에
믿음의 선배 요셉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곧 다시 와주실 예수님을 맞이할 깨끗한 예복을 잘 준비하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