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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딤전 4:6-9)
요즘처럼 사람들이 건강을 위한 각종 운동이나 각종 보조식품이나 영양제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여유도 있지만 그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욕구를 자극시킵니다. 그 욕구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더 건강하게 더 멋있는 사람으로 탈바꿈시켜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바로 그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건강식품을 먹고 건강에 관한 다양한 운동을 통해 매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8-9절)“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육체를 위하여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잠시잠깐의 유익은 될지언정 내세까지는 영향 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내세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유익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 경건에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인이면 누구나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유익이 되는 경건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쏟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경건한 삶에 관심을 가지려면 먼저 경건이란 무엇이며, 경건한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경건에 이르려면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경건’은 헬라어 “유세베이안”이라는 말로 유(선한) 세베이안(두려움)의 합성어로 ‘선한 두려움’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공경의 태도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경건입니다. 영어성경에서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반응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핵심과제입니다.
경건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거룩한 목표입니다. 경건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면 1)성경에서는 "경건한 자"를 지칭할 때 반복해서 쓰이는 의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경건한 고넬료를 말할 때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2)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말합니다(딛2:1,2). 세속적인 죄나 불의나 더러움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뜻합니다. 3)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을 경건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그러니까 경건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라는 말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랑과 섬김의 삶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경건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를 범함으로 그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구원은 바로 그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경건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은 외적인 것이기보다는 내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같은 심성을 가지면 우리의 삶의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은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항상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반응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핵심과제입니다. 그래서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경건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이주 분명한 어조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목표가 바로 경건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단하라는 말은 연습하라 훈련하라는 의미입니다. 경건은 저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자신을 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경건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저절로 신앙생활이 성숙해져서 경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단히 훈련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훈련은 고되고 힘든 것입니다. 또 훈련은 반복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반복하면 영적으로 성장하고 몸에 베면서 습관이 됩니다. 습관은 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 9:27)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였던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부단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훈련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훈련이 없이 경건한 신앙생활을 기대한다는 것은 망령되고 허탄한 생각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자는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과 삶을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경건의 훈련에 힘을 쏟고 있습니까?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경건 생활을 위한 연습과 노력은 하지 않고 겉으로만 경건한 척 흉내만 내고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왔다갔다 하면 경건생활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아니 자신을 자위하고 이만하면 나는 괜찮은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자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관점은 아주 분명합니다. 중심과 폐부를 살피시는 하나님앞에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딤전 6:11에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려면 경건의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연단하라”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단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망령되고(베벨루스)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거룩한 것의 영역 밖에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거절해야 합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생각을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탄하다는 말은 쓸데없다는 말입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상처 죄악의 짐, 증오, 질투 미움 던져 버려야 합니다. 이런 세상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을 받아야 이것들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으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그럴듯하게 우리를 유혹합니까?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다. 천국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저 세상에 지금 잘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기준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입니다. 자기 생각에 매여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겠습니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그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자라지 않으면 평생을 어린아이 신자입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평생을 어린아이 신자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자라서 어른 신자, 장성한 신자,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엡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경건입니다. 경건은 훈련이라는 필수단계를 필요로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 훈련과 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더 깊어지도록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경건을 연단하라’는 것은 경건을 위해 훈련하라, 단련하라, 숙련하라, 숙달하라는 것입니다. 경건이 습관이 되고 생활화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건이야말로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8절)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체의 단련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나고 주님을 본받아 경건하게 성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쁘듯하고 확신에 차는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범사’라는 말에 이어서 금생과 내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경건은 현실에만 유익을 줄 뿐 아니라, 내세에도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지금의 생에도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건은 현실 생활에 유익을 줍니다. 경건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경건하면 평화와 기쁨을 누립니다. 경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경건한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합니다.
또한 경건은 내생을 위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건은 내세에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을 얻게 합니다. 경건은 천국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경건한 신자는 천국에서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그러기에 이 권면은 디모데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과 저, 우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 한 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9절)“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사도 바울은 단지 현실주의자도 아니고 내세만을 강조하는 종말론자도 아닙니다. 그는 현실과 내세, 금생과 내생이 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살든지 죽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는 것도 중요하고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육체를 가지고 성도들과 함께 있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우리는 경건의 훈련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합니다. 육체의 훈련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유익은 잠깐의 유익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경건해지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경건의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경건의 훈련의 핵심은 말씀묵상과 기도훈련입니다.
6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6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세워지기 위한 경건의 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방법은 바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쓰실 때도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으로 역사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말씀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깁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영혼의 거울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경건에 이르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첫 번째 훈련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가나안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묵상은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리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대로 순종함으로 수많은 전쟁가운데도 승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경건의 훈련의 핵심은 말씀훈련입니다. 우리가 매일하고 있는 큐티는 바로 이 경건훈련의 핵심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지 아니하면 영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위에 굳게 서 있으면 말씀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믿음의 행동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가 경건한 삶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까?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에(요10:30)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기도하실 일이 무엇이 있으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일생은 기도로 시작하셔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하셨으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애쓰고 힘써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피방울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끊임없이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 기도 속에 무엇인가 중요한 비밀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 119: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오늘 우리에게 부르짖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르짖음에 절박함이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은 모두 이와 같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기도 속에 숨어있는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며 기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도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까지 섬길 수 있었겠습니까?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네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도할 때 저를 넘어서 우리를 생각하고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 한분 한분을 생각하며 하나님앞에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없이 경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말씀과 기도생활이 경건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이처럼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세 번째 경건훈련은 예배입니다
경건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 예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를 게을리 하면, 우리의 삶은 결국 경건에서 멀어집니다. 예배에 소홀할수록, 경건의 모양만 남고 경건의 능력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름만 신자이지 껍데기 신자가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의무가 바로 예배이며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예배를 '유세베이아'라고 하는데 이는 '경건하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이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높이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믿음의 열조들의 특징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정성껏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언제든지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므로 축복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당시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갈 때 부모의 품에 안겨 할례받으러 오시는 아기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안나 선지자는 84년 동안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섬기더니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행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바로 예배 중심의 삶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오늘 내가 얼마나 경건한 삶을 위해 네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앞에 훈련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육신은 그저 좀 더 쉬고 좀 더 놀고 좀 더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훈련은 어려운 일입니다. 군부대 입대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올바른 군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저와 여러분도 내 자신이 쳐서 복종시키며 부단히 말씀과 기도로 연단시켜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가 경건훈련의 핵심입니다. 말씀훈련, 기도훈련, 예배훈련 이 세 가지가 바로 경건훈련입니다. 점점 자라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의 모양을 넘어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함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