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9,1-20; 요한 6,52-59
+ 찬미 예수님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그간 집단적인 회심 장면이 보도되었는데, 어제부터 개인적인 회심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바오로 사도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합니다. 여기서 ‘살기를 내뿜으며’라는 표현은 자신이 체포하는 결과로 이들이 죽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Bock, 354)
사울은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하는데요, 이는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로서 예루살렘에서 216km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밖에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보도된 첫 번째 도시입니다. 복음은 북쪽 사마리아와 남서쪽 해안으로 퍼졌고 이제 동쪽 시리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울이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춥니다. 사울은 땅에 엎어졌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울이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사울아, 왜 나를 믿는 사람을 박해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곧 당신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믿는 사람과 당신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올 부활부터 새로 시작한 기도문 이전의 대전교구 공동체 기도문을 보면 “교회는 주님께서 머리이시고 저희는 지체이오니”라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이는 바오로 사도의 신학에 근거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1코린 12,26-27)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고백의 근거가 된 것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자신이 들은 말씀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후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사울은 하나니아스를 만나 세례를 받았고,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러 가던 다마스쿠스에 가서, 정작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오늘 독서에서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그는 이제는 자신을 향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를 떠나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당신을 믿는 사람과 당신 자신이 하나가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시는데요, 첫째 약속은 이렇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지금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는 보증을 얻습니다. 이 선물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지금 당장 효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도 효력을 발휘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레오 교황님은 지난해 말 첫 해외 순방으로 레바논을 방문하셨을 때 당신에 대한 환영 문구를 들고 서 있던 레바논 무슬림 어린이의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니신다고 합니다. 그 어린이가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우리는 무고한 이들이 죽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계실 뿐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이들 안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이란과 레바논의 어린이들 안에서 외치고 계십니다. “너희가 왜 나를 공격하느냐? 왜 내가 죽도록 버려 두느냐?”
https://youtu.be/vTiMOsMsv2I?si=EnxYm42EmMHemlyf
쉬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까라바지오, 바오로의 회심, 1600-1601년
출처: 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Caravaggio (c.1600-1) - 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