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ONT color=#0000ff>이생진 시인 시 모음 37편<BR><BR>☆★☆★☆★☆★☆★☆★☆★☆★☆★☆★☆★☆★<BR>바닷가 민박집 <BR><BR>이생진<BR><BR>바닷가 민박집<BR>여기다 배낭을 내려놓고 <BR>라면 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는다<BR>그리고 커피 한잔 옆에 놨다<BR>오른 쪽 창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BR>‘바다가 보이면 됐어’<BR>이건 거창하게도 <BR>내 인생 철학이다<BR>철학이 없어도 되는데<BR>80이 넘도록 철학도 없이 산다고 할까 봐<BR>체면상 내건 현수막이다<BR><BR>‘바다가 보이면 됐어’<BR>인사동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BR>낙원호프집에서 부르는 구호도 이거다<BR>그런데 이 민박집에서는 진짜 바다가 보인다<BR>그래서 나는 호프집보다 이 민박집이 좋다<BR><BR>바다는 누가 보든 말든 제 열정에 취해 여기까지 뛰어든다<BR>그 모습이 나만 보고 달려오는 것 같아 반갑다<BR>다시 돌아갈 때는 모든 이별을 한꺼번에 당하는 것 같지만<BR>그래도 그 바다가 창 밖에 있으니 <BR>보호자 옆에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BR>☆★☆★☆★☆★☆★☆★☆★☆★☆★☆★☆★☆★<BR>가출기(家出記) <BR><BR>이생진 <BR><BR>배낭 하나 메고 나왔다는 거 <BR>그리고 낯선 타향이라는 거 <BR>여관방에 머물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궁색을 떨지만 <BR>그래도 그것이 내겐 값비싼 자유라는 거 <BR>피 흘려 얻은 것은 아니지만 <BR>자유는 소중하다 <BR>아껴 써야 한다 <BR>자유도 소모품이니까 <BR>밤늦게 창문을 열어 <BR>바다의 비밀을 볼 수 있고 <BR>나간다는 말 없이 나갈 수 있고 <BR>라면을 끓이든 누룽지를 끓이든 상관없고 <BR>어디로 가든 간섭이 없는 자유 <BR>세수를 하든 면도를 하든 <BR>세수를 않든 면도를 않든 <BR>거지같이 싸매고 다녀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BR>그런 값진 자유를 배낭 하나로 얻었다는 거 <BR>노숙 직전이지만 <BR>그것도 쟁취다 <BR>☆★☆★☆★☆★☆★☆★☆★☆★☆★☆★☆★☆★<BR>가파도 아줌마 <BR><BR>이생진<BR><BR><BR>가파도 민박집 아줌마가 먼저 말했다<BR>"하나도 늙지 않았네요<BR>10년 전 그대로..."<BR><BR>나도 따라 말했다<BR>"아줌마도 10년 전 그대로네<BR>미역국도 그대로고 콩장도 <BR>그때 그 맛 그대로네"<BR><BR>그럼 그 사이 그 10년은<BR>어디서 뭘 했단 말인가<BR>참 이상하네 <BR>☆★☆★☆★☆★☆★☆★☆★☆★☆★☆★☆★☆★<BR>갈매기가 일제히 <BR><BR>이생진 <BR><BR>갈매기가 모두<BR>'모두'라는 말보다<BR>'일제히'라는 말이 어울리네<BR><BR>일제히 같은 방향으로<BR>일제히 침묵을 입에 물고<BR>일제히 날아갈 태세로<BR>너무나 일제히<BR><BR>그것 때문에 얼마나 피곤한가<BR>나는 자유 때문에 쓸쓸한 놈<BR>나는 혼자서 갈매기를 보고<BR>갈매기는 일제히 나를 의심하네<BR>☆★☆★☆★☆★☆★☆★☆★☆★☆★☆★☆★☆★<BR>고독과 고독 사이 <BR><BR>이생진<BR><BR>태종대 <BR>아찔한 이마 위에서<BR>마주보이는 섬 <BR><BR>생도*<BR><BR>말 없는 고독<BR>과<BR>고독 사이<BR><BR>잠시 후 <BR>문자가 <BR>‘여기서도 네가 보인다’ 고 <BR>콕콕 찌른다 <BR>☆★☆★☆★☆★☆★☆★☆★☆★☆★☆★☆★☆★<BR>구인사 <BR><BR>이생진<BR><BR>- 꿀벌<BR><BR><BR>구인사(구인사) 깊은 계곡<BR>불전 앞 자판기 두 대<BR>커피에 맛들인 꿀벌들<BR>가을엔 코스모스 들국화도 많은데<BR>종이컵을 따라다니며 구걸하는 꿀벌들<BR>수려한 산중에서 꽃에 핀 꿀을 따지 않고<BR>종이컵에 묻은 설탕을 핥는 벌<BR>꽃이 싫어진 것일까<BR>아니면 타락한 것일까<BR>웬지 내가 부끄러워지네<BR>☆★☆★☆★☆★☆★☆★☆★☆★☆★☆★☆★☆★<BR>그리운 바다 성산포 1 <BR><BR>이생진<BR><BR>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BR>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필거야 <BR><BR>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 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BR>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BR>나와서 해를 보라~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BR><BR>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BR>성산포에서는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BR><BR>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사투리로 말한다<BR>그러다가도 해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BR>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BR><BR>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BR>나는 내말만 하고 바다는 제말만 하며 <BR>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BR>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약하다 <BR><BR>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BR>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BR>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BR>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BR>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BR>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BR><BR>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BR>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BR>눈을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BR>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BR>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BR>☆★☆★☆★☆★☆★☆★☆★☆★☆★☆★☆★☆★<BR>그리운 바다 성산포 2 <BR><BR>이생진 <BR><BR>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생각 없이 해를 본다 <BR>해도그렇게 나를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BR>일출봉에서 해를 보고나니 달이 오른다<BR>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BR>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밤이된다<BR>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어서 밤이 되어 버린다 <BR><BR>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BR>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퍽퍽 넘어지며 운다 <BR>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 불러오듯 <BR>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버린다<BR>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BR>넓은 바다도 물속으로 물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BR><BR>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BR>바다 한가운데에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BR>한 모금 물을 건질 순 없다<BR>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BR><BR>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도 좋은 곳<BR>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치 않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BR><BR>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BR>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BR>지금은 시새워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BR>사슴이여 살아있는 사슴이여 <BR>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사슴이여 <BR>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BR>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BR>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에 넋 <BR>파도는 살아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BR>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BR>☆★☆★☆★☆★☆★☆★☆★☆★☆★☆★☆★☆★<BR>그리운 바다 성산포 3 <BR><BR>이생진<BR><BR>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 <BR>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BR>갈매기가 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BR>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도 빠져나와 <BR>한 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BR>이제 다시 돌아갈 곳도 없는 자리 <BR>그대로 천년만년 길어서 싫다 <BR><BR>꽃이 사람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BR>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도 물에 살고 싶다면 <BR>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들겠지 <BR>그런데 태어난 대로 태어난 자리에서<BR>산신에 빌다가 세월에 가고<BR>수신께 빌다가 세월에 간다 <BR><BR>성산포에서는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BR>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BR>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BR>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BR><BR>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BR>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BR>☆★☆★☆★☆★☆★☆★☆★☆★☆★☆★☆★☆★<BR>그리운 바다 성산포 4 <BR><BR>이생진 <BR><BR>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BR>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BR><BR>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BR>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BR>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BR><BR>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BR><BR>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BR>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BR><BR>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BR>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BR><BR>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BR>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BR><BR>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BR>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BR>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BR>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를 보고있는 고립 <BR>성산포에서는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 이외의 주인을 모르겠다 <BR><BR>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BR>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BR>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아았다 <BR>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게 탄 버스엔 <BR>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BR><BR>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BR>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BR>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BR>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BR><BR>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BR>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BR>☆★☆★☆★☆★☆★☆★☆★☆★☆★☆★☆★☆★<BR>그리운 바다 성산포 5 <BR><BR>이생진 <BR><BR>일어설 듯 일어설 듯 쓰러지는 너의 패배 발목이 시긴 하지만 <BR>평면을 깨뜨리지 않는 승리 그래서 네 속은 하늘이 들어앉아도 차지 않는다 <BR>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아니면 일제히 패배하라 <BR>그러면 잔잔하리라 그 넓은 아우성으로 눈물을 닦는 기쁨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BR>성산포에는 살림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BR>성산포에서는 바다의 횡포를 막는 일 그것으로 독이 닳는다 <BR><BR>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BR>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BR>오늘 아침 하늘은 기지갤 펴고 바다는 거울을 닦는다 <BR>오늘 낮 하늘은 낮잠을 자고 바다는 손뼉을 친다 <BR>오늘 저녁 하늘은 불을 켜고 바다는 이불을 편다 <BR>바다가 산허리에 몸을 굽힌다 산은 푸른 치마를 걷어올리며 발을 뻗는다 <BR>일체에 따듯한 햇살 사람들이 없어서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BR>욕정에 젖어서 서로 몸을 부빈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칼이다 <BR>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양이다 <BR>그릇 밖에서 출렁이는 서글픈 아우성<BR>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갈증이다 <BR>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짐승이 짐승보다 산이 산보다 바다가 <BR>더 높은 데서 더 깊은 데서 더 여유 있게 산다 <BR><BR>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BR>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BR>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BR>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BR>하늘이여 바다 앞에서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용서하라<BR>하늘이여 바다는 살았다고 하고 너는 죽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라 <BR>너의 패배한 얼굴은 바다 속에서 더 아름답게 건져내는 것을 용서하라<BR>그 오만한 바다가 널 뜯어먹지 않고 그대로 살려준 것을 보면 <BR>너도 바다의 승리를 기뻐하리라..<BR>하늘이여 내가 너를 바다 속에서 너를 보는 것을 용서하라. <BR>☆★☆★☆★☆★☆★☆★☆★☆★☆★☆★☆★☆★<BR>그만 살아야지 <BR><BR>이생진<BR><BR>이젠 그만 살아야지 하다가도<BR>시가 바람을 일으키면<BR>벌떡 일어나 시를 쓴다<BR>그것 때문에 그럭저럭 <BR>80을 넘겼다<BR>내가 생각해도 그리 미운 짓은 아니다<BR>오늘은 아예 옛날처럼<BR>배낭을 메고<BR>멀리 섬으로 간다고 나섰다 <BR>목포 앞바다<BR>여객선터미널에서<BR>뱃시간을 챙기는 나<BR>그것 이상의 것이 없다<BR><BR>☆★☆★☆★☆★☆★☆★☆★☆★☆★☆★☆★☆★<BR>까치와 까마귀가 <BR><BR>이생진<BR><BR>먼저 까치가 짖더니 뒤 이어 까마귀가 짖는다<BR>여러 마리가 연달아 짖는다 <BR>백와 흑의 파로워(follower)들이다 <BR>그 소리를 검색해보니<BR>공갈과 협박 <BR>내가 떠돌며 쓴 시가 모두 가짜란다 <BR>가짜라는 뜻이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BR>오늘은 이상하게 까치와 까마귀에게 당하는 기분이다<BR><BR>걸어온 길이 겨우 1km가 채 안 되는 짙은 안개 속<BR>은행나무는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털어버리고<BR>겨울에 덮을 나뭇잎 하나 가진 것이 없다<BR>9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BR>저렇게 빈손으로 서 있는데<BR>까치와 까마귀가 나를 향해 거침 없이 짖는 소리는<BR>떠돌며 쓴 시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BR>오늘은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다<BR><BR>그들이 뒤따라오며 <BR>내 행동을 지켜본 듯이 나를 파헤친다<BR>까치는 찢어발기는 소리이고<BR>까마귀는 둔기로 내리치는 소리다 <BR>그래서 나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BR>“이놈들아 시에 진짜가 어디 있니 입이나 다물어라” <BR>그러고는 얼른 ‘건방진 것들’ 하고 웃었다 <BR>오늘은 이상하게 까치와 까마귀가 <BR>나를 물고 늘어지는 기분이다 <BR>☆★☆★☆★☆★☆★☆★☆★☆★☆★☆★☆★☆★<BR>바다의 오후 <BR><BR><BR>이생진<BR>바다는<BR>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BR>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BR>아이들이 손을 놓고<BR>돌아간 뒤<BR>바다는 멍하니<BR>마을 보고 있었다<BR>마을엔 빨래가 마르고<BR>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BR>밀감나무엔<BR>게으른 윤기가 흐르고<BR>저기 여인과 함께 탄<BR>버스엔<BR>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BR>☆★☆★☆★☆★☆★☆★☆★☆★☆★☆★☆★☆★<BR>꿈 <BR><BR>이생진<BR><BR>이 세상에 없는 여자를 <BR>꿈에서 안아 보고 기뻐했다 <BR>꿈이 시키는 대로 간음하다가 <BR>사람에게 들키고는 <BR>밤새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었는데 <BR>날이 새어 꿈임을 알고 안심했으나 <BR>그녀가 없는 세상임을 알고는 <BR>다시 실망했다<BR>☆★☆★☆★☆★☆★☆★☆★☆★☆★☆★☆★☆★<BR>나만 남았다 <BR><BR>이생진 <BR><BR>다시 나만 남았다<BR>영혼을 쫓아다니느라 땀이 흘렀다<BR>영혼을 쫓아다니는데 옷이 찢겼다<BR>자꾸 외로워지는 산길<BR>염소쯤이야 하고 쫓아갔는데<BR>염소가 간 길은 없어지고 나만 남았다 <BR><BR>곳곳에 나만 남았다<BR>허수아비가 된 나도 있었고<BR>돌무덤이 된 나도 있었고<BR>나무뿌리로 박힌 나도 있었다<BR>그때마다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BR>내가 많아도 나는 외로웠다 <BR>☆★☆★☆★☆★☆★☆★☆★☆★☆★☆★☆★☆★<BR>낙엽 <BR><BR>이생진 <BR><BR>한 장의 지폐보다<BR>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BR>그때가 좋은 때다<BR>그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BR>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BR>울고 있기 때문이다<BR>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BR>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BR>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BR>쓰고 있기 때문이다<BR>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BR>사랑을 간직하는 사람<BR>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BR>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BR>☆★☆★☆★☆★☆★☆★☆★☆★☆★☆★☆★☆★<BR>낚시꾼과 시인 <BR><BR>이생진<BR><BR>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보았다고 한다<BR>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BR>그 말만 되풀이했다.<BR>날보고 재미 봤냐고 묻기에<BR>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더니<BR>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BR>등대 쪽이라고 했더니<BR>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BR>☆★☆★☆★☆★☆★☆★☆★☆★☆★☆★☆★☆★<BR>내가 백석이 되어<BR><BR>이생진<BR><BR>나는 갔다<BR><BR>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BR>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BR>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BR>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BR><BR>성북동 언덕길을 지나<BR>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BR>젋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BR>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BR>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BR>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BR>눈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BR><BR>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BR>느티나무 밑은 대낯인데<BR>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BR><BR>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BR>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BR>한참 울다보니<BR>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BR>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놓고 울었다<BR><BR>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BR>울었다<BR><BR>나는 말을 못했다<BR>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BR>말을 못했다<BR>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BR>☆★☆★☆★☆★☆★☆★☆★☆★☆★☆★☆★☆★<BR>내일은 비 <BR><BR>- 청개구리 <BR><BR>이생진 <BR><BR><BR><내일은 비> <BR>오랜 가뭄 끝에 <BR>청개구리가 뽕나무를 올라간다 <BR>가장 믿음직한 소리로 <BR><내일은 비> <BR>스무 개의 알덩어리를 <BR>나무 밑에 묻어 놓고 근심하던 끝에 <BR>비 올 거라며 터뜨리는 울음소리 <BR>그 슬픈 소리가 이상하게도 <BR>믿음직하다 <BR><BR><BR><BR><내일은 비> <BR>우산을 준비해야지 <BR>밤 아홉시 뉴스 시간에도 TV는 <BR>기상도를 그려가며 내일은 비라고 했지만 <BR>청개구리가 울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BR>나는 TV보다 청개구리를 믿는다 <BR><BR>청개구리는 그 한 마디를 위해 살고 있는 <BR>착한 시인 <BR><내일은 비><BR>☆★☆★☆★☆★☆★☆★☆★☆★☆★☆★☆★☆★<BR>너무 많은 행복 <BR><BR>이생진 <BR><BR><BR>행복이 너무 많아서 겁이 난다 <BR>사랑하는 동안 <BR>행복이 폭설처럼 쏟아져서 겁이 난다<BR><BR>강둑이 무너지고 <BR>물길이 하늘 끝닿은 홍수 속에서도 <BR>우리만 햇빛을 얻어 겁이 난다 <BR><BR>겉으로 보아서는 <BR>아무 것도 없는 너와 난데 <BR>사랑하는 동안에는 <BR>행복이 너무 많아 겁이 난다 <BR>☆★☆★☆★☆★☆★☆★☆★☆★☆★☆★☆★☆★<BR>달 보는 시인 <BR><BR>이생진 <BR><BR><BR>-만제도 79 <BR><BR>수근거린다 <BR>"그 사람은 시인이라 하던데" <BR>하루는 장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 <BR>국도(菊島) 저 너머 수평선을 보고 <BR>하루는 물생산 꼭대기에 올라가 <BR>염소랑 바다를 보는데 염소 같더라구 <BR>하루는 풀숲을 헤치고 등대에 올라가 <BR>등대 밑에서 바다를 보는데 등대 같더라구 <BR>밤엔 선착장에 나와 땅바닥에 누워 별을 보는데 <BR>별 같더라구 <BR>혹시 사별한 사람 아닌가 <BR>혹시 짤린 사람 아닌가 <BR>혹시 자살 기도하는 사람 아닌가 하고 <BR>마을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BR>목사님께 물어 봤대나 <BR>그랬더니 목사님 말이 <BR>"시인이란 시래기 같은 사람이지만 <BR>눈 하나는 수정같이 맑다"고 <BR>다음 날 마을 여자들은 시인의 눈을 보려고 <BR>물 길러 가서 마주친 시인의 눈을 보다가 <BR>물을 엎질렀대나 <BR>☆★☆★☆★☆★☆★☆★☆★☆★☆★☆★☆★☆★<BR>무명도 <BR><BR>이생진<BR><BR>저 섬에서 <BR>한 달만 살자 <BR><BR>저 섬에서 <BR>한 달만 <BR>뜬눈으로 살자 <BR><BR>저 섬에서 <BR>한 달만 <BR>그리운 것이 <BR>없어질 때까지 <BR>뜬 눈으로 살자 <BR>☆★☆★☆★☆★☆★☆★☆★☆★☆★☆★☆★☆★<BR>바다를 본다 <BR><BR>이생진<BR><BR>성산포에서는 <BR>교장도 바다를 보고 <BR>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BR>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BR>아내랑 나갔는데 <BR>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BR>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BR>찾다가도 <BR>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BR><BR>성산포에서는 <BR>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BR>바다를 본다 <BR>한 마리의 들쥐가 <BR>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BR>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BR>잠깐 바다를 본다 <BR>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BR>성산포에서는 <BR>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BR>☆★☆★☆★☆★☆★☆★☆★☆★☆★☆★☆★☆★<BR>바다의 오후 <BR><BR><BR>이생진<BR>바다는<BR>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BR>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BR>아이들이 손을 놓고<BR>돌아간 뒤<BR>바다는 멍하니<BR>마을 보고 있었다<BR>마을엔 빨래가 마르고<BR>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BR>밀감나무엔<BR>게으른 윤기가 흐르고<BR>저기 여인과 함께 탄<BR>버스엔<BR>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BR>☆★☆★☆★☆★☆★☆★☆★☆★☆★☆★☆★☆★<BR>벌레 먹은 나무잎 <BR><BR>이생진<BR><BR>나뭇잎이<BR>벌레 먹어서 예쁘다.<BR>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BR>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BR>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BR>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BR>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BR>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BR>별처럼 아름답다 <BR>☆★☆★☆★☆★☆★☆★☆★☆★☆★☆★☆★☆★<BR>복사꽃 <BR><BR>이생진 <BR><BR>나는 가끔 오래된 혼백과 이야기하는 수가 있다 <BR>북한산 유일한 복사꽃 나무 밑에서처럼 <BR><BR><BR>"매월당 김시습이 다녀갔을까" <BR>"다녀갔겠지 언제고 나보다 한 걸음 먼저 <BR>왔다 가는 사람이니까 다녀갔겠지" <BR><BR>복사꽃이 기절한다 <BR>이걸 못보고 봄이 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BR>매월당 김시습이 세 살 때부터 좋아하던 꽃 <BR>죽어서도 사월엔 복사꽃을 찾겠지 <BR>☆★☆★☆★☆★☆★☆★☆★☆★☆★☆★☆★☆★<BR>설교하는 바다 <BR><BR>이생진<BR><BR>성산포에서는 <BR>설교를 바다가 하고 <BR>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BR>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BR>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BR>성산포에서는 <BR>사람보다 바다가 더 <BR>잘 산다 <BR>☆★☆★☆★☆★☆★☆★☆★☆★☆★☆★☆★☆★<BR>섬으로 가는 자유인 <BR><BR>이생진<BR><BR>배 위에서 구두끈을 매는 여인은 아름답다 <BR>내가 배를 타고 떠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BR>배 위에서 배낭을 메고 <BR>귀로 파도소리 들으며 <BR>눈으로 먼 섬을 가리키는 여인은 아름답다 <BR>그런 낭만은 어디서 배웠을까 <BR>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줬다고 하면 그건 명교사다 <BR>빈집 문은 어떻게 잠그고 왔을까 <BR>요즘 도둑이 심하다든데 <BR>파도소리에 맞춰 <BR>콧노래 부르며 먼 섬으로 가고 있는 여인은 아름답다 <BR>여자여서 그럴까 아니 남자라도 <BR>그런 남자는 세상을 살 줄 아는 남자다 <BR>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BR>살 줄 몰라서 방황하는 것인데 <BR>저렇게 떠돌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BR>정말 자유를 누릴 만한 사람이다 <BR>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할까 <BR>우리만의 애국가를 부르고 싶다 <BR>☆★☆★☆★☆★☆★☆★☆★☆★☆★☆★☆★☆★<BR>세상이란 것 <BR><BR>이생진<BR><BR>가만히 앉았는데 <BR>세상이란 것이 떠오른다 <BR>지구의로 보면 둥글고 <BR>정치로 보면 쑥밭이고 <BR>역사로 보면 불쌍하고 <BR>나를 보면 벌레 먹은 잎새 같다 <BR>나를 왜 평가절하하느냐 <BR>조금 동정받는 것이 사랑받는 듯해서 <BR>어떤 땐 사랑에 굶주린 늑대 같아서<BR>☆★☆★☆★☆★☆★☆★☆★☆★☆★☆★☆★☆★<BR>어떤 여자와 나 <BR><BR>이생진<BR><BR>어떤 여자는 나이 들면서 하고 싶은 일이<BR>문경새재 넘어가기 전 <BR>언덕에 암자를 짓고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라고<BR>나는 깊은 섬에 들어가 바닷가를 돌며 시를 낭송하는 것이고<BR>그녀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다<BR>그리고 나는 이 섬 저 섬 옮겨 다니며<BR>뻥뻥 헛소리만 치는데<BR>암자로 들어간 여자는 <BR>꼭 금강경에서 나오는 소리만 토한다<BR>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이지만<BR>나를 만나고 간 어느 젊은이가 문경새재 소식을 <BR>봄소식처럼 전하고 갔다<BR>이 젊은이가 내 소식을 문경새재에 전했는지 모르겠다<BR>어떤 여자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BR>☆★☆★☆★☆★☆★☆★☆★☆★☆★☆★☆★☆★<BR>우정 <BR><BR>이생진 <BR><BR>도시 한복판에서 <BR>혼자 사는 어부를 생각하는 것은 <BR>생각부터가 쓸쓸하다 <BR>홍어잡이 배에서 젊은 팔을 잃은 윤씨<BR>이번엔 팔이 되어준 아내를 잃었으니<BR>뭐라고 말해야 위로가 될지 <BR>그래도 나보고 만재도*에 오라한다 <BR>한 손으로 마늘을 깔 수 있으니 김치를 담글 수 있고<BR>통발을 바다에 던졌으니 우럭은 들어있을 거고 <BR>당신이 좋아한느 별은 밤새 봐도 닳지 않으니<BR>만재도에 오라 한다 <BR><BR>인사동 커다란 유리에 비친 윤씨의 얼굴<BR>내가 가면 그의 아내처럼 커피잔을 들고 나오겠지 <BR>통발을 끌어올려 우럭을 꺼내던 손<BR>배에서 내리자 마자 그 손이 나를 끌어안는다<BR><BR>그의 손과 나의 손<BR>손끼리 통하는 말<BR>그건 언어가 아니라 끈끈한 점액이다 <BR>☆★☆★☆★☆★☆★☆★☆★☆★☆★☆★☆★☆★<BR>우체국 아가씨 <BR><BR>이생진<BR><BR>우체국 가면서 생각했다<BR>꼭 연인네 가는 것 같다고<BR>가다가 개울을 건너 자판기에서<BR>따뜻한 커피를 꺼내 마시며 생각했다<BR>꼭 연인네 집 앞에 온 것 같다고<BR>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BR>난롯가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서서<BR>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냐고 묻지도 않고<BR>일부인을 꽝꽝 내리친다<BR>봉투가 으스러져 속살이 멍드는 줄도 모르고<BR>꽉꽉 내리칠 때<BR>내 손가락이 바르르 떨었다<BR>☆★☆★☆★☆★☆★☆★☆★☆★☆★☆★☆★☆★<BR>지팡이와 할머니 <BR><BR>이생진 <BR><BR>- 소모도에서 <BR><BR>소모도 언덕길을 올라가는 검은 지팡이와 하얀 할머니<BR><BR>지팡이는 할머니를 만난 지 3년 됐고<BR>할머니는 지팡이 없이 80년을 지내다가<BR>지팡이를 만난 후부터는<BR>지팡이 없이 하루도 지내지 못한다<BR><BR>할머니는 나를 보느라 지팡이를 세워놨는데<BR>지팡이는 나를 보지 않는다<BR>할머니는 나를 보겠다고 허리를 펴는데<BR>지팡이만큼 펴지지 않는다<BR>지팡이는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BR>할머니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BR>지팡이는 할머니 없이 걷지 못하고<BR>할머니는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고<BR>이렇게 못하는 것끼리 만나<BR>못하는 일 없이 사는구나<BR>☆★☆★☆★☆★☆★☆★☆★☆★☆★☆★☆★☆★<BR>추억 <BR><BR>이생진 <BR><BR>한여름 땀을 씻으며 <BR>일출봉에 올라가 <BR>풀 위에 누웠는데 <BR>햇빛이 벌떼처럼 쏟아지더군 <BR>여기서 누굴 만날까 <BR>장미같은 여인인가 <BR>가시 찔린 여인인가 <BR>그런 것 다 코웃음 치다가 <BR>내려오는데 <BR>신혼여행으로 온 한 쌍의 부부 <BR>셔터를 눌러달라고 하더군 <BR>그 사람들 지금쯤 <BR>일남일녀 두었을 거다 <BR>그 사진은 사진첩에 묻어두고 <BR>이혼할 때쯤 되었을거다 <BR>이혼하거든 여기서 <BR>바다랑 살지 <BR>이혼하거든 여기서 <BR>돌이랑 살지 <BR>이혼하거든 여기서 <BR>추억이랑 살지 <BR>☆★☆★☆★☆★☆★☆★☆★☆★☆★☆★☆★☆★<BR>추포도 소금꽃 <BR><BR>이생진<BR><BR>염전에서 소금물 받아먹고 사는<BR>함초鹹草<BR>짜다고 찌푸리는 일이 없다<BR>심해숙沈海淑씨도 함초 같다<BR>이름 석자가 모두 삼수변이라며 <BR>바다와의 인연을 자랑하는 여자 <BR>육지에서 시집와 얻은 벼슬 <BR>부지런한 여리장女里長<BR>깊은 바다 맑은 물 심해숙深海淑<BR>추포염전 김대식씨 부인<BR>사내는 고무래를 밀고<BR>여자는 소금차를 밀고<BR>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목포의 눈물*’은 <BR>그래서 짜다 <BR>염도 2도의 바닷물을 폭염에 구워<BR>25도의 해수에서 피는 하얀 소금꽃<BR>소금꽃이 필 때마다 김씨 부부는 <BR>얼굴이 환하다<BR>암태도에서 또 작은 섬 추포도로 들어와<BR>천일염 만들기 30여 년<BR>아내를 강원도 삼척에서 추포도까지 데려오는데<BR>김씨는 섬이라는 말을 숨겼다는 소문<BR>그래서 속은 것 같다는 뒷이야기<BR>속아 사는 여자가 어디 한둘인가<BR>오늘도 저문 하루 백설 같은 소금을 거둬<BR>창고에 밀어 넣는 ‘목포의 눈물’<BR>그래서 눈물은 짜다 <BR><BR>*이난영이 부른 노래<BR>☆★☆★☆★☆★☆★☆★☆★☆★☆★☆★☆★☆★<BR>편지 쓰는 일 <BR><BR>이생진<BR><BR><BR>시보다 더 곱게 써야 하는 편지 <BR>시계바늘이 자정을 넘어서면서 <BR>네 살에 파고드는 글 <BR>정말 한 사람만 위한 글 <BR>귀뚜라미처럼 혼자 울다 펜을 놓는 글 <BR>받는 사람도 그렇게 혼자 읽다 날이 새는 글 <BR>그것 때문에 시는 덩달아 씌어진다 <BR>☆★☆★☆★☆★☆★☆★☆★☆★☆★☆★☆★☆★</FONT><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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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닷가 민박집
여기다 베낭을 내려놓고
라면 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짐을 풀고 풍경 바라보는
주인공이 눈앞에 선합니다
좋은글 읽다보니
미소가 지어지네요
시간을 내어
또다시 읽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