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마음을 여는 열쇠
19년간 병수발을 하던 남편에 이어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를 차례로 잃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허무감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해마다 선교왕으로 선발되어 교구 사목교서 연수 때와 레지아 신년봉헌미사 때 등 많은 상을 받고 있는 전주교구 익산 마동본당 로사리아의 모후 꾸리아(단장 이송준 마태오, 지도사제 박병준 필립보) 소속 지혜로운 동정녀 쁘레시디움 회계 이정숙 헬레나 자매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다.
자매는 늦둥이 막내딸로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자라난 모태 신앙인으로 어려서부터 늘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늘 묵주기도하시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환경 때문인지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교 때도 학교 친구들을 종종 성당에 데리고 가서 미사에 함께 참석하곤 하면서 성당에 인도한 적은 있었지만 선교에 대한 그 어떤 사명감이라든지 어떤 의식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자매가 본격적으로 선교를 하기 시작한 동기는 남편과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를 차례로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 허무감을 잊기 위해서였다.
이관영 -전주 레지아 명예기자
종가집 장손인 남편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어려움 없이 살던 자매가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한 것은 군산 수산항만청에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간암으로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982년경부터 아프기 시작해 2001년 돌아가시기까지 19년간의 남편 병수발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시고 살던 친정어머니의 부양 등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친정어머니와 남편 뒷수발 때문에 익산 원광대학병원 입ㆍ퇴원만 무려 39차례나 했다. 이렇게 남편과 친정어머니 뒷수발을 하면서도 가장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기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 과외를 하면서 남편 병수발과 친정어머니 부양, 직업인이라는 삼중고에 매여 살아가야 했다.
2001년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에 가고 6개월 뒤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래서 시어머니보다 10년 연상인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모시고 살겠다고 전부터 약속했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는데, 당시 시어머니는 약간의 치매기가 있었지만 사람은 알아볼 정도였다. 시어머니를 모시러 왔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셨는데 모시고 살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면서부터 치매가 심해져서 5년간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20년 모신 친정어머니보다 5년 모신 시어머니가 훨씬 더 힘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모시던 시어머니도 2006년 하느님 품으로 떠나갔다.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꽁꽁 묶였던 발목, 손목이 한꺼번에 풀린 느낌이 들면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왜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급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생전에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공증은 물론 저당설정까지 했지만, 다 갚았다고 발뺌을 하면서 오히려 고소하는 바람에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재판 진행과정에서 모두 이기고 한 사람에게는 빌려준 돈까지 다 받아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고 지금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시련들을 겪으면서 육체적 피로감과 정신적 고통을 잊으려고 백화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옷이나 집, 가구를 바꿔도 보고,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지만, 또 다시 허무감이 밀려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꼭 정신병자가 되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이런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잊고 하느님께서 좋아하실 일만 찾아서 하자’라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실 일이란 바로 ‘선교뿐’이라는 생각으로 선교에 전념하기 시작한 자매는 본당 사무실에 부탁해 선교 대상자 및 쉬는 교우 대상자 리스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선교와 쉬는 교우 회두권면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선교는 멀리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친척이나 이웃부터 시작해서 멀리 퍼진다는 것, 또 어느 날 뜻밖에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으며, 나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비우고 선교 대상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베풀면 언젠가는 선교 대상자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어디 교회 다니냐?”며 하느님에 대해 묻기 시작한단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 입교시킨 사람과 쉬는 교우 회두자가 모두 53명이나 되며, 올해 부활절 영세자 13명 중에 5명이 자매님이 입교시킨 예비자들이다. 또 6월부터 예비자 교리를 시작할 사람을 3명 확보해 놓고, 예정인원 5명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선교한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작년 성탄 때 세례를 받고 현재 나바위성당에 다니고 계신 송순례 마리아 할머니로 연세는 80세이며 사촌이모 되시는 분이라고 한다. 이분은 40여 년간 ‘남묘호렌게쿄’를 믿어온 분으로 죽을 날이 가까운 나이 80에 무슨 개종이냐며 완강히 거부하던 분이셨다. 또한 한 동네에서 절친한 친구 두 분도 같이 ‘남묘호렌게쿄’를 믿어 세 사람이 자매같이 지내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더더욱 완강히 거절하셨다. 그러나 자매님은 집에서 할머니 집까지 자동차로 왕복 두 시간 거리였지만, 신앙 이야기는 되도록 절제하고 사랑만 베풀기로 마음을 정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집안 청소며, 빨래, 말벗 등으로 4~5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일을 2년간이나 계속했다. 그러면서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할 일이 무엇일까만을 늘 생각하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러던 중 할머니께서 귀가 어두우시다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보청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당장 보청기를 사다 선물하니 너무도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3일 후에 꼭 다시 오라고 당부하셨다. 3일 후 설레는 가슴으로 다시 할머니 집에 찾아가니, 그날이 마침 할아버지의 제삿날 이어서 아들딸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 동안의 일을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아들딸들은 자매님을 너무나 반가이 맞아 주었다. 드디어 제사가 끝난 후 할머니는 아들딸 모두를 불러 앉히고 “친구들과 원수가 되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겠다. 너희들도 모두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자매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할머니를 하느님 품으로 인도하면서 느낀 것은 선교는 내 계획대로, 또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지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고,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도 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요즘은 “다른 사람에게는 다 성당가자고 권하면서 왜 우리에게는 권하지 않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이웃들도 있다고 하니, 선교란 한번 물꼬만 트면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기자의 뇌리를 스쳤다. 지금까지의 선교 노하우로 자매님의 선교활동이 더욱 풍요로운 열매를 맺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