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마차에 갔더니, 홍날라리 형님이 형수님에게 야단 맞고 있었다.
김장 할 때 도와주지 않고 빤질거리면서 도망갔다는 것 같았다.
홍날라리 형은 79 살이다. 아직 뼈대를 보면 형수님 일을 도와주워도 충분한 체격이다.
아내를 도와주지 않고 빤질거리는 것은 나와 비슷한 것 같다.
홍날라리 형은 얼굴은 미남형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납게 생겼다.
젊을 때 잘 나갔을 것 같다. 나도 비슷하다.
용궁마차 주인 여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내 추측이 정확했다.
사람의 얼굴에는 과거가 스며 들어있다. 그것은 마치 포토샵의 그레이드처럼 층층히 겹쳐져 현재의 화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형님이 다시 용궁마차로 들어서자 나는 직접 홍날라리 형에게 물어보았다.
“형님은 뭐 해서 건물 짓고 돈 벌었어요”
“술 도매상 했지”
나는 형의 그 한마디로 단번에 알아차렸다.
과거 발한 삼거리 묵호항 앞 상가, 그리고 묵호 시외버스 터미널은 엄청난 술집과 음식점으로 가득 찼었고, 전국의 어느 도시 보다 돈이 미쳐서 날 뛰었다.
그 때 술 도매상을 했으니 돈을 아마도 마대 자루로 걷어 들였을 것이다.
“내가 26 살에 결혼 했는데, 경월소주 사장 최돈웅이가 축의금으로 5 만원을 줬지”
역시 내 추측은 정확했다.
경월소주 하던 최돈웅이가 5 만원 축의금을 냈다면 경월소주를 얼마나 팔아 주었길래, 그 당시 집 한 채 값을 줬을까.
경월 소주는 최돈웅이 아버지 최준집이 창업했고, 최준집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놈 측량기사 보조를 했고, 해방 되면서 강릉시내 눈 먼 땅들을 거의다 자신의 앞으로 빼돌렸다.
최준집의 아들 최돈웅은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아 영동지방 술집 음식점에 술을 팔아서 아버지가 번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민정당 국회의원을 거쳐 20 년간 보수당 국회의원을 지내다다, 2000년 대 초, 현금을 트럭에 실어 나르다가 걸려서 정치에서 물러났다.
그후, 경월소주를 진로에 넘겼다. 점점 줄어드는 매출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국회의원의 권력으로 회사를 제대로 된 값으로 팔아 먹은 것이다.
최돈웅이 그만 두고 보궐선거로 지금 국회의원인 권성동이 해 먹고 있다.
권성동은 최돈웅과 친척간이다.
권성동은 나와 동갑으로 잘 아는 친구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후로는 만나지 않았다.
한심한 놈이 아니었는데 국회의원이 된 후로 나쁜 짓만 하는 것 같아서다.
권성동이 속해 있는 보수당의 환경이 나쁜 짓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홍날라리 형은 술 도매상을 해서 돈을 벌다가, 사업을 하나 더 늘렸다.
묵호에서 제일 큰 다방을 했다. 아가씨가 50 명이었다. 물론 티켓 다방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앞 건물을 짓고 옥계에 많은 땅을 샀다.
지금은 경기가 워낙 안좋아 건물을 내 놓았는데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부인에게 잔소리나 듣고 야단 맞는 처지가 되었다.
홍날라리 형은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오늘 내가 형의 과거를 물었더니, 입에 게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했다.
용궁마차를 나오자 찬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묵호의 거리에 겨울이 왔다.
원룸에 들어서면서 내가 가꾼 상추를 둘러보았다.
보라색 상추는 추운 겨울 바람에도 기 죽지 않고 싱싱했다.
첫댓글 79년 3월 24일 운전면허증 취득 강릉에서 북평으로 귀향 송정에있는 주류회사 대광상사에 취업 술얘기라면 며칠해도 모자람니다
여기다 써서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