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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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1:7, 목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 20231008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잘 모릅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첫 인상과는 달리 만나면 만날수록 진국인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랜 만남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막상 겪어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에게서도 발견될 수가 있습니다. 전혀 요리도 하지 않던 사람이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요리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여러분이 목회자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그냥 세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요 목회자인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이 뜻이고,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된 것이라고까지 밝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누구든지 이런 강력한 확신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확신 속에서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디모데 목사에게 이런 확신을 재인식시켜 주고 있습니다.
첫째, 목사에게 (하나님의)능력을 주셨습니다.
젊은 디모데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에, 사도 바울이 직접 디모데에게 안수했습니다. 디모데 목사가 젊지만, 그가 안수를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은사가 불일 듯 임했습니다. 그건 모든 목사에게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사가 식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종 된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통해서 젊은 디모데 목사에게 이런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목사에게 어떤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리고 목사들은 이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생각해 내야 합니까?
목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는 첫째,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목회를 하다 보면,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델리아)은 ‘두려움이 없이 위험이나 고통에 직면할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이 부족한 특성’(비겁)입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비겁한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장난입니다. 디모데서신서는 목회서신이라고 말합니다. 목회자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디모데서를 읽고 또 읽습니다. 성도들은 디모데서를 읽으면서, 목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목사에게 주신 ‘능력’(두나미스)은 ‘대개 초자연적으로 실체에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입니다. 목사에게 무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사람들은 목사를 무능력한 사람 취급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둘째, 목사에게 ‘사랑의 영’(마음)을 주셨습니다.
때론 일부 사람들은 목사들에게 일방적인 헌신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성도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목사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또 설교를 하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해서 일부 성도들이 목사에게 희생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양들을 위해서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막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들은 양들, 곧 주님의 양들을 위해서 죽어야 될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때론 이리나 곰이나 양들을 잡아먹고, 훔치는 짐승들과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양들을 위해서 죽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도피입니다. 삯꾼은 도망치지만, 목자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요 10:12–13,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하나님은 목사들에게 ‘사랑(아가페)의 영’(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사가 비겁한 사람이 될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목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종, 목사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히 당신의 종 된 목사를 사랑합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학연, 지연, 혈연이면 더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목사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시겠습니까? 목사가 겁쟁이가 되려할 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목사는 다시 힘이 생깁니다. 쓰려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의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목사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셋째, 목사에게 ‘절제하는 영’를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목사에게 ‘절제하는 영’을 주셨습니다. ‘절제’(소프로니스모스)는 자제, 절제, 수양으로, ‘누군가를 현명하게 만드는 원인으로써 지혜롭게 만들기’입니다. 하나님은 목사에게 지혜롭게 만드는 영을 주셨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는 영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이렇게 목사들에게 능력도 주시고, 사랑도 주시고, 절제하는 지혜도 주셨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는데, 사도가 감옥에 갇히는 일 따위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말고‘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람들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떠들지 몰라도, 사도는 부끄러워하지 말고‘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요점은 지금 복음이, 말씀이, 설교가 고난을 당합니다. 사도도 목사도 말씀을 전하면서, 그 말씀이 고난을 받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감옥에 갇히는 일이나 죽음과 같은 고난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으로 목사가 된 주의 종들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