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타고 스쳐지나가듯 본적이 있는데 사진으로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진도 잘 찎었구요,
벨후라워14.11.25. 23:52
호린님 안녕하세요 그곳을 다녀가신적이 있으시다고요 저도 어려서 소풍을 가보고 이번이 첨입니다 그때는 이리 아름다운 곳인지모르고 원족으로 선생님을 따라 다리가 아프도록 걸었던 기억만 ~~
14.11.24. 16:17
달이 머물다 간다는 월유봉. 요즘은 맑아지고 정화 됐겠죠? 오래전에 그 이름만 듣고 갔었는데, 그렇지를 못해서 실망하고 돌아온적이 있었죠. 위치와 산세는 정말 좋았습니다.
┗ 나.14.11.25. 23:56
아~그랬었나요? 이곳은 청정 1급수만 흐르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급속한 발전으로 오염되었니보죠? 전 어려서 이 강가에서 자랐어요
14.11.24. 19:27
멋지십다..고향 다녀 오셨나요?↖(^o^)↗
┗ 나.14.11.25. 23:59
예 고향 선산에 부모님 성묘갔다가 이곳에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미국에서부터 작정을 하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좋은 포지션을 잘몰라 꼭 다시 찾아가야할곳으로 다시 남아있습니다.
대전진달래14.11.25. 03:57
멋 진 월유봉 사진 고맙습니다.
┗ 나.14.11.26. 00:01
대전진달래님 이방에 유명인사지요 이렇게 인사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대전엔 맏형님을 비롯 많은 집안분들이 살고 게시죠 살다보면 만나 인사드릴 날도 있겠지요
14.11.25. 22:48
월류봉 정말 멋집니다,,
┗ 나.14.11.26. 00:05
제가 어려 자랄때는 지금처럼 월류봉이라고 하지 않고 월리봉 했지요 지금 이포지션 말고도 조금 하류로 1km쯤내려오면(지금은 댐을 막아 그모래사장이 사라졌음)우리가 놀던 멋진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강건너 편엔 멋스런 노송과 기암절벽으로 참 아름다웠던 곳입니다.
수신제가14.11.27. 11:25
월유봉은, 경부고속도로 황간 IC 에서 5 km, 월유봉에서 8 km 백화산 반야사.... 월유봉에서 3.5km 에 학이 바람을 타고 떠 다닌다는 가학루가 있고, 월유봉에서 7km.. 역사의 현장 노근리 쌍굴다리도 있구, 그리고 물한계곡으로 유명한 민주지산을 가려 해도 월유봉이 있는 황간을 거쳐야 하니 아예 황간 마니아가 되었답니다~
┗ 나.14.11.27. 10:46
정말 황간의 마니아시네요 아버지와 큰형님은 일정시대때 황간초등학교(보통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지요 저희는 해방후 행정개편으로 가까운곳에 학교가 생겨 그 고생을 면했지만 고향이 이곳인데 사진에 관심이 없던시절 월류봉이 이리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다가 알게는 되었지만 또 미국에 살다보니 이제야 사진을 찍어 보게 되었습니다.
14.11.28. 18:02
저도 다녀왔는데 .. 여름에 삼겹살준비해 가면 좋은곳 ~~
┗ 나.14.11.28. 23:11
ㅎㅎㅎ 재미나겠네요
사랑하나14.11.28. 18:39
이곳이월유봉이군요 울아버지 산소가 황간 안화리에 있어서 그쪽으로 자주갔엇는데 지나가면서 아름다운곳이구나 생각만햇네요 사진으로 보니 더~~아름답네요 머나먼 미국에서 항상 건강챙기시고 즐거운시간되세요 예전에는 황간에 황간중학교 뿐이고 멀리 임산중학교가 잇었는데 모두몇십리씩걸어서 학교에 다녔지요 눈도 많이오고 예전에는 눈이 무릎을 덮을정도로 많이 왔었어요 그래서 다니다 학교를 그만둔사람들이 많앗어요
┗ 나.14.11.28. 23:12
그래요~! 오랜만에 임산이란 말 들어 보내요 상촌을 임산이라 부르고 그곳에 예로부터 금광이 있어 부촌이었지요 그래서 상촌에 와서 돈자랑 하지마라라는 말이 날정도로 부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도 우리고향을 잘아시는 분들이 많이 게십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랑하나14.11.29. 10:23
와 ..상촌을 아시는구나 울 작은외갓집이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집져놓고 식구들 놀러오고싶은 사람들 그곳에서 놀다가는데... 지금은 물한계곡이라서 여름엔사람들이 온답니다
┗ 나. 14.11.30. 03:05
알다마다요 행정구역상으로 상촌면 그러나 나이 많으신 분들이나 옛어른들은 임산장에 가신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물이 많다하여 물한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옛어른들은 무라니골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동네에서 시집오면 무라니댁이라고 댁호가 붙어 평생 대명사가 되곤 했습니다.
매곡이라는 단어만 봐도 큰추억이 떠올라 이렇게 또 답글을 답니다. 매곡은 상촌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나오는 동네지요 그 길가에 매곡초등학교가 있고요 그학교 교장이 우리형제들을 미국으로 보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분의 전임학교 교장으로 있던 학교 면소재지 장터에 우리집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때는 그 교장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장터에 두부하나 사려고 양재기를 들로 내려오다가 마침 내가 아침 양치질을 하며 치솔을 입에문채 변소쪽으로가는 나에게 그처녀가 인사를 꾸벅 합니다. 나는 그 인사가 나에게 하는지 몰라 받지않고 그냥 변소로 들어 갔습니다
┗ 나.14.12.01. 14:09
그처녀는 그때 영동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하지않고 집에 있을 당시 나에게는 위로 두형님이 있었는데 바로위에 형님이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방학때 그처녀의 친구(우리일가 처녀)의 소개로 우리형과 아무도 모르게 연애를 하고 있있나봅니다. 그렇게 사랑을 방학때면 쌓아가던 그때 그만 그처녀가 실수를 햇습니다. 우리 삼형제가 얼마나 똑같이 닮았는지 이웃 사람들은 전혀 분간 못할정도입니다. 그런 우리형제들의 상태를 확실히 모르는 그처녀는 그만 나를 우리형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그날 아침 장터내려오다가 동생인 나에게 인사를 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도둑이 언제나 발이 먼져 절이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
┗ 나.14.12.01. 14:45
갔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그 일가처녀(초등학교 2년후배)가 나에게 와서 숙희(큰형님의 딸)삼촌 있다가 저녁먹구 우리집에 놀러와~ 학열이 아버지 학렬로 높아서 아줌마라고 부르며 지넸는데 어머니가 놀러오라는 말을 듣고 왜오라냐? 글세요 모르겠는데요~ 궁금해서 밥먹자마자 그 아줌씨방에 노크를 하니 삼촌어서와 문열어주며 반겨준다. 왜 오라고 했어요? 아따 급하기도 하지~ 이리 앉아봐~ 삼촌 큰일났어 저위에 영자(교장딸)있지 갸가 오늘낮에 우리집에 와서 울며불며 숙희 작은삼촌 입조심좀 시켜달라고 애걸복걸 했다네요 자기 아버지 아는날엔 죽은 목숨이니~ 어저면 좋으냐고 상의를 했단다.
┗ 나.14.12.01. 14:47
아니 갸가 무슨 부탁을 나한테 애걸복걸 한데~ 아니 숙희작은 삼촌은 영자하고 숙희 큰삼촌하고 연애 하는것 몰랐는가? 앵~? 둘이 연애를~!!!!! 난 전혀 몰랐는데~ 그리고 우리집에선 아무도 모르는데~ 아이고 영자 이거 혼자 호들갑 떠는 바람에 장터에 다 소문나겠다. 흥~ 내입 막아달라고~ 모르면 모를가 알았으니 그리는 못하겠는걸 적어도 짜장면으로 입을 막아보던가~ 그렇게 그 두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은 싹튀어 갔고 세월은 흘러 그 교장은 매곡교장으로 전근가게되었다. 어느해 그 교장을 찾아가 인사하며 결혼을 하겠다고 허가 해달라고 청혼을 했답니다 그 교장의 입에서 거절하면서 미국유학을 하고 오면 결혼시켜주마 했다네요
┗ 나. 14.12.01. 23:32
가슴아픈 이야기는 더 이어가지만~~~ 그래서 우리형이 미국에 유학하게되고 그처녀와 평생을 그리워하는 몸이되었고 그처녀는 단명하여 죽고 형은 평생 가슴아파하는 처지입니다. 그덕에 나도 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나14.12.01. 21:59
슬퍼요~~!! 슬퍼도 너무 슬픈 영화같은 이야기네요 첫사랑에 성공하는 사람은 별로없다는데 그래도 너무 사랑해서 미국까지..... 또 그 처녀는 단명하고 왜 이런운명이... 그 교장선생님도 후회를 많이 했겠지요 이곳은 오늘 첫눈이 왔어요 즐거운시간되시고 건강하세요
첫댓글*말하지 않은 것과의 대화* 잘 찍힌 사진 한 장에 담겨있는 이야기, 숨어있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흥미진진, 안타깝게 이어졌군요. 달콤, 쌉쌀, 안쓰럽고, 맘 쓰라린이야기들을 읽으며 먼 듯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먼 곳을, 아득한 곳으로,늘 아득한 곳으로,,,,,걸어가게도 합니다. 이곳에 옮기시느라 애쓰셨군요~! 노인천국이 있어 재미지겠습니다. 감사해요.
@김임자임자씨가 짐작~ 상상하신것 처럼 형의 끝이 아름다웠으면 좋았을것을~ 영자가 먼저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형도 작은아버지의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그리고 미국에와서 잘살고 있을때 영자가 딸하나를 낳고 죽었다는~ 그 딸이 미국에 가니 뵈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갸가 어떻게 형의 주소를 알고 편지를 했는지 전 궁금한 이야깁니다 갸가 형네집에 왔다는 전화가 왔지만 전 가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을 나무랐어요 뭣하러 만나보냐 서로 가슴아픈데 그리고 갸가 어머니(영자)의 맘을 얄랴 또 형의 맘을 알랴~ 지금 형수에게 고통만 안겨 줄것인데~ 그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냅니다.
@김기홍또 재밋는 이야기~ 우리작은 형수와의 인연은 형보다는 내가 먼제 형수를 점을 찍었습니다. 때는 인천교육대학을 입학하고 인천에서 공부를 할때 촌놈이 서울구경을 가야하는데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또 지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서울 구경이 가고 싶었습니다. 같이 자취를 하던 조규옥과 안성에 김영식과 같이 서울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덕수궁과 경복궁 그리고 남산~ 촌놈들이 서울을 첨으로 구경을 햇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작은 아버님이 서울 육사근처 모교회에 목사로 게시면서 생계는 종로4가에 양복점을 운영하고 게셨습니다 이번엔 나혼자 서울 종4가에 작은 아버님 양복점을 찿아가기로 하고 재물포역에서
@김기홍서울에 갔습니다. 양복점에 들어가니 4촌 동생도 내가 온다고 양복점에 나왔었습니다. 오늘 밤은 작은 아버님 댁에 가서 자려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는데 어느 예쁜 처녀가 들어옵니다 눈이 날리는 11월 카키색 코트를 입고 코가 빨게가지고 들어오는데 정말 예뻤습니다 우리교대에서는 볼수없는 미모였어요 그래서 속으로 내가 저처녀와 잘해봐야 겠다. 막연한 그런 생각을 갖게 할정도로 내가 첫눈에 빠졌어요 나는 암말도 없어 의자에 앉아있고 사촌과 작은 아버지는 이런저런 몇마디 이야길 하고 집에 같다면 가버렸다. 작은 아버지가 잠시 안보이는 틈을 타서 고등학교 다니는 사촌동생에게 야 기찬아 저처녀 나에게 소개해줘라 많이 이쁘
@김기홍동생은 형 그렇게 이뻐? 잘해봐 내가 도와줄게~ 하고 약속했다. 양복점문을 닫고 작은 아버님댁에 가려고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육사근처(먹골) 가는데 정말 말도 못하는 만원버스를 타고 어느곳에서 내려 코가 금방 얼것같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을 건너 도착하고 보니 작은 아버님은 아까 그처녀의 사랑체를 전세로 들어와 어렵게 살고 게셨습니다. 작은 방에 피아노까지 들여놓아 잘 여유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인천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작은 어머님은 그런나를 눈치채시고 맘편히 재워 보내려고 애를 쓰셨다. 저녁을 먹고 나니 작은 아버지는 교회에 가신다며 나가셨고 4촌동생은 피아노의자에 올라앉아 형을위해
@김기홍소녀의 기도를 연주해주어 첨으로 듣는 아름다운 피아노 생연주를 들었다. 조금 있으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주니 밖엔 두처녀가 서있다. 한처녀는 아까본 그처녀이고 또 한처녀는 그처녀의 둘째 여동생이란다 그 동생은 사촌과 같이 고등학교 다닌단다. 그런데 두처녀가 들어오니 분위기는 훨씬 즐거워진다 그리고 동생이라는 처녀가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피아노에 올라앉드니 피아노연주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재밋는 놀이도 하고 다같이 노래도 부르고~그렇게 해서 청춘의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나는 인천으로 돌아가 열심히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공부도 해야하고 바쁜세월을 보내야했다.
@김기홍그런데 작은 형(대구대학 약대 재학) 형한테서 편지가 왔다. 목사작은 아버님의 소개로 그집 큰처녀와 결혼을 하기로 해서 맞선도 보았다고~~ 그래서 나는 모든걸 접고 그래도 형과 결혼을 하게된것을 큰 다행이라고 스스로 맘을 달랬다 남과 결혼 인연이 끊어지는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 그리고 얼마가 지나 또 작은 형한테서 또 편지가 왔다. 이번엔 결혼날자를 언제로 할지 잡아 연락하니 그집에 가서 언제로 하는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형이나 집안 어른들이 할일을 내가 인천에서 학교 다닌는 이유하나로 또 어른들 대신 나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서울로 갔다 그리고 사장 어른될분
@김기홍내외 앞에서 큰절을 하면서 이런절런 일로 실랑될사람의 동생이 왔습니다. 하고 절을 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형수될사람에게 인사하고 또 큰처남될 사람에게도 인사를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영화구경가자고 버스를 타려고 걸어나가는데 형수될사람은 한발 뒤에 따라오고 처남될사람과 나하고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이야길 들을 때마다 듣기 거북한 단어가 들려온다 나보고 매형 어쩌고 저쩌고~ 형수될 사람이 나보다 2살적고 그바로 밑에 남동생이니 나하고 5살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은 매형될 사람의 동생에게도 호칭이 마땅한것이 없으니 자기보다는 나이가 많으니 그냥 매형이라고
@김기홍부르나보다 고 여겼다. 그런데 계속 매형소리가 나와서 한번 물어봐야 겠다. 서울사람들의 예의는 매형될사람의 동생에게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같이 매형하고 부르냐? 하고 물었다. 그러니 그 처남될사람이 기절하게 놀라고 뒤따르든 형수도 놀라는 것입니다. 물론 맛선볼때 신랑감 얼굴을 보았겠지만 어찌 똑바로 봤겠습니까~ 그리고 처남될사람도 아직 얼굴을 잘모르는 그런 시간적 역사가 짧아 일어난 실수였습니다. 내가 분명 동생이 무슨일로 이번에 찾아왔다고 어른들에게 일렀거늘 어찌 그 당사자가 실랑으로 착각하느냐고~ 길가에서 셋이서 땅을 치고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쩌면 닮아도 그렇게 똑같이 닮았느냐고~
@김기홍지금도 형수님과 이야기 할때면 그런옛이야길합니다 형님의 장모님이 며달전에 돌아가셨고 49제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오는길 이라며 형수가 우리가게에 오셨다 그이야기속에 우리 어머님은 우리집양반보다는 작은아빠를 더 좋아하셨고 사위처럼 생각하셨다고 그리고 우리집 사람을 딸 처럼 여기며 살다 돌아가셨다고 회고 하는 이야길 들려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두여인(영자와 형수)이 같이 똑 같이 생긴 동생 때문에 한번씩 골탕을 먹었습니다. ㅎㅎㅎㅎ
@김기홍*얘기란 무엇인가,단순 명쾌~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었다는 것,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것, 문제는 그런 것을 어떻게 묶는가에 있을 수밖에,,,,,,,,,, '마음 졸이게 함' 그 다음은? 또 그다음은?,,,,,의 연속성, 서스펜스!!! *갸는 왜 뱅기를 타고 형을 뵈오려 와야만 했는가. *임자의 마음대로 상상소설쓰기, **그녀는 그의 핏줄? ***어머니의 피맷힌 사연을 품고? 전달의무 수행,,,,,,,상상은 상상일 뿐,,,,끝. 제2탄; 또 재밋는 이야기~속으로 출발!
김명진님을 기억하십니까? 2011 '솜다리를 찾아서' 에 기홍님 글(안 읽어도 되는 이야기)을 싣기 위하여 메일을 기홍님과 주고 받은 아가씨 입니다. 그때 솜다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기홍님 글을 '솜다리를 찾아서'에 싣기로 결정하게 된 또다른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리동정회(313)(2009.05.19)에 올려진 "고향가는 길이 왜 이리도 힘이드는지"이지요. 부엌에 청국장 부글부를 냄새로 오늘 여기가지만~~~
아~! 예 그분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에대해 좋은 느낌은 없을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것을 요구하셔서 예의 바른 태도로 대하지 못했거든요 face to face 였다면 대화가 부드러웠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부분 아쉬워요 대변좀 해주세요 절대 안그런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를 끝가지 안내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같이 전해주세요
@김기홍좋은 느낌? 그렇지 않은 느낌? 그건 다 각자의 느낌아닐까요? 명진이는 야무지고 착하고 예쁘지요(임자느낌) 암튼 명진이나 저는 기홍씨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협조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고 받은 메일은 곧바로 저에게 전달해주어 저도 상황파악???하고 있었습니다.ㅎㅎ
청국장 냄새가 코에 전해 옵니다 저도 청국장 메니아입니다. 집사람이 청국장을 너무 잘띠웁니다 느침이 줄줄흐르도록 냄새는 지독하지만 맛은 일등 청국장에는 꼭 두부가 들어가야 합니다.각자의 식성이 다르긴 하지만 전 며르치를 넣지 않습니다. 비린내가 나서요 한국엔 청량고추가 매운맛을 대신하죠 이곳엔 하르피뇨 라는 고추를 엷게 썰어 떠먹어도 매운맛이 다 국물에 울어나 마구 퍼먹어도 잘못먹어 매워혼나는 일 없도록 배려합니다. 그렇게 청국장이 얼큰한듯하면서 고유의 청국장 와~! 일미죠 그런데 청국장도 계절이 있습니다. 콩타작을 해서 생산되는 초가을 부터 늦어도 2월까지만 먹습니다. 그이후엔 오히려 된장찌게가 낫습니
@김기홍청국장 메니아스러운 글! 정말로 멸치에선 약간의 비린맛이 입맛에 영 아니올시다인 분들이 있지요. 또한 멸치가 믈어가야 구수한 맛이 난다는 분도 계시지요. 저는 멸치의 비린맛이 나지않도록,,,,,청국장을 끓일 국물을 먼저(멸치,다시마,무) 냅니다, 그러다가 김이오르고 끓기 시작할 때 냄새를 느끼며 뚜껑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내고, 그리고 청국장을 넣어 끓이면 비린 맛은 날라가 버리던데요(두부는 필수.때때로 남은 안동소주 찔끔, 도는 당귀 에끼스 조금, 혹은 오가피 에끼스 조금,,,)그때 그때 달라요. ㅋㅋㅋ 참!참!참!
@김임자경복궁에서 찍힌 두 총각님은 누구신지??? 저는 월요일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에 출근?합니다. 덕수궁앞을 지나갑니다. 시청앞을 지나갑니다,,,어지러워요,,, 광화문을 지나가지요. 경복궁 담도 지나가지요. 관광객들이 늘 붐비지요 60년대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김기홍오늘(12일)아침신문 동아일보에 [엘범 속의 방]ㅡ 허혜정(1966~) 실린 시가 재미있어 옮겨 봅니다.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있는 빛바랜 사진들. 하나의 방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이 기억의 영사기에 비춰오듯 흐릿하다. 딱히 언제사진인지 집아낼 순 없어도 앨범속에 죽어있던 풍경이 스며드는 방.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욌지만 사진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다. 푸르게 젖어가는 옥양목 마당 너머에는 바라볼 수록 여백이 넓어지는 하늘. 늦가을 바람에 창살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녹이 먹어버린 문고리와 발바닥에 닳아 얇게 패인 문턱들.
@김임자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으로 그들은 바람처럼 돌아와 바스럭댄다. 슬픈 아이가 잠결에 따스한 체온을 느끼듯이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세대의 눈빛 안에 고여있는 나의 눈이 어떤 슬픔을 꺼내 놓을지 모르지먄 그들이 비워낸 시공간을 옮겨 적는 것. 잊었던 말들이 밀려온다. 스쳐가는 그림자의 방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갈무리한 기홍씨가 놀랍습니다. 찰칵찰칵 잡아낸 사진들~사진으로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삶이 살아 볼 만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또한 인생은 저마다 기록해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랍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말들이 오늘따라 새로워 컴앞에 나를 붙들어 매었답니다.
@김기홍지금은 소중한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자체가 값어치가 생겨 더욱 소중하게 해줍니다. 친구 김진국이가 말도 못하는 정보를 매일같이 이멜일로 보내오는데~. 그중에 그래도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읽고 보관한것이 지금 약 4천개의 매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떤글을 쓰려고 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해보면 진국이가 보낸 메일이 생각나 김진국 메일을 검색해보면 검색하는 시간만도 몇분걸려 나오는데 거의 4천개가 검색되어 나오데요 김진국의 메일뿐이 아닙니다 임자씨 공문식 메일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지요 ㅎㅎㅎ
첫댓글 *말하지 않은 것과의 대화*
잘 찍힌 사진 한 장에 담겨있는 이야기, 숨어있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흥미진진, 안타깝게 이어졌군요.
달콤, 쌉쌀, 안쓰럽고, 맘 쓰라린이야기들을 읽으며 먼 듯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먼 곳을, 아득한 곳으로,늘 아득한 곳으로,,,,,걸어가게도 합니다.
이곳에 옮기시느라 애쓰셨군요~! 노인천국이 있어 재미지겠습니다. 감사해요.
그곳에서 중심역할을 하면서 다른카페에 알려져 스카웃되어 여러카페에 운영자로 일을 많이 했어요
그죄로 그곳에서 강퇴는 면했지만 강등되었다가 다시 원상복귀됐습니다. ㅎㅎㅎ
@김기홍 컴쟁이의 닦고 닦은 실력이군요.
컴맹인 저는 어리둥절 여기까지 왔는데,,,,,,여엉~ 쉽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카페지기님의 배려심으로 간신히 버팅기고 있는 형편이지요.
@김임자 형님의 이야기가 가슴이 쨍!!!합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지요~
"충분한 아픔과 상처를 딛고서야 어른이 된다고"
형님의 쓸쓸하고 외로웠을 수많은 밤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열매로 주렁주렁 달렸으리라
@김임자 임자씨가 짐작~ 상상하신것 처럼 형의 끝이 아름다웠으면 좋았을것을~
영자가 먼저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 형도 작은아버지의 중매로 결혼을 했습니다.그리고 미국에와서 잘살고 있을때 영자가 딸하나를 낳고 죽었다는~ 그 딸이 미국에 가니
뵈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갸가 어떻게 형의 주소를 알고 편지를 했는지 전 궁금한 이야깁니다
갸가 형네집에 왔다는 전화가 왔지만 전 가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을 나무랐어요 뭣하러 만나보냐 서로 가슴아픈데 그리고 갸가 어머니(영자)의 맘을 얄랴 또 형의 맘을 알랴~
지금 형수에게 고통만 안겨 줄것인데~ 그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냅니다.
@김기홍 또 재밋는 이야기~
우리작은 형수와의 인연은 형보다는 내가 먼제 형수를 점을 찍었습니다.
때는 인천교육대학을 입학하고 인천에서 공부를 할때 촌놈이 서울구경을 가야하는데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또 지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서울 구경이 가고 싶었습니다.
같이 자취를 하던 조규옥과 안성에 김영식과 같이 서울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덕수궁과 경복궁 그리고 남산~ 촌놈들이 서울을 첨으로 구경을 햇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작은 아버님이 서울 육사근처 모교회에 목사로 게시면서 생계는 종로4가에 양복점을 운영하고 게셨습니다
이번엔 나혼자 서울 종4가에 작은 아버님 양복점을 찿아가기로 하고 재물포역에서
@김기홍 서울에 갔습니다. 양복점에 들어가니 4촌 동생도 내가 온다고 양복점에 나왔었습니다.
오늘 밤은 작은 아버님 댁에 가서 자려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는데 어느 예쁜 처녀가 들어옵니다
눈이 날리는 11월 카키색 코트를 입고 코가 빨게가지고 들어오는데 정말 예뻤습니다 우리교대에서는 볼수없는 미모였어요 그래서 속으로 내가 저처녀와 잘해봐야 겠다. 막연한 그런 생각을 갖게 할정도로 내가 첫눈에 빠졌어요 나는 암말도 없어 의자에 앉아있고 사촌과 작은 아버지는 이런저런 몇마디 이야길 하고 집에 같다면 가버렸다.
작은 아버지가 잠시 안보이는 틈을 타서 고등학교 다니는 사촌동생에게 야 기찬아 저처녀 나에게 소개해줘라 많이 이쁘
@김기홍 동생은 형 그렇게 이뻐? 잘해봐 내가 도와줄게~ 하고 약속했다.
양복점문을 닫고 작은 아버님댁에 가려고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육사근처(먹골) 가는데 정말 말도 못하는 만원버스를 타고 어느곳에서 내려 코가 금방 얼것같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을 건너 도착하고 보니 작은 아버님은 아까 그처녀의 사랑체를 전세로 들어와 어렵게 살고 게셨습니다.
작은 방에 피아노까지 들여놓아 잘 여유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인천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작은 어머님은 그런나를 눈치채시고 맘편히 재워 보내려고 애를 쓰셨다. 저녁을 먹고 나니 작은 아버지는 교회에 가신다며 나가셨고 4촌동생은 피아노의자에 올라앉아 형을위해
@김기홍 소녀의 기도를 연주해주어 첨으로 듣는 아름다운 피아노 생연주를 들었다.
조금 있으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주니 밖엔 두처녀가 서있다. 한처녀는 아까본 그처녀이고 또 한처녀는 그처녀의 둘째 여동생이란다
그 동생은 사촌과 같이 고등학교 다닌단다.
그런데 두처녀가 들어오니 분위기는 훨씬 즐거워진다 그리고 동생이라는 처녀가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피아노에 올라앉드니 피아노연주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재밋는 놀이도 하고 다같이 노래도 부르고~그렇게 해서 청춘의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나는 인천으로 돌아가 열심히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공부도 해야하고 바쁜세월을 보내야했다.
@김기홍 그런데 작은 형(대구대학 약대 재학) 형한테서 편지가 왔다.
목사작은 아버님의 소개로 그집 큰처녀와 결혼을 하기로 해서 맞선도 보았다고~~ 그래서 나는 모든걸 접고 그래도 형과 결혼을 하게된것을 큰 다행이라고
스스로 맘을 달랬다
남과 결혼 인연이 끊어지는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
그리고 얼마가 지나 또 작은 형한테서 또 편지가 왔다. 이번엔 결혼날자를 언제로 할지 잡아 연락하니 그집에 가서 언제로 하는것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형이나 집안 어른들이 할일을 내가 인천에서 학교 다닌는 이유하나로 또 어른들 대신 나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서울로 갔다 그리고 사장 어른될분
@김기홍 내외 앞에서 큰절을 하면서 이런절런 일로 실랑될사람의 동생이 왔습니다.
하고 절을 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형수될사람에게 인사하고 또 큰처남될 사람에게도 인사를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영화구경가자고 버스를 타려고 걸어나가는데
형수될사람은 한발 뒤에 따라오고 처남될사람과 나하고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이야길 들을 때마다 듣기 거북한 단어가 들려온다
나보고 매형 어쩌고 저쩌고~ 형수될 사람이 나보다 2살적고 그바로 밑에 남동생이니 나하고 5살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은 매형될 사람의 동생에게도 호칭이 마땅한것이 없으니 자기보다는 나이가 많으니 그냥 매형이라고
@김기홍 부르나보다 고 여겼다. 그런데 계속 매형소리가 나와서 한번 물어봐야 겠다. 서울사람들의 예의는 매형될사람의 동생에게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같이 매형하고 부르냐? 하고 물었다. 그러니 그 처남될사람이 기절하게 놀라고 뒤따르든 형수도 놀라는 것입니다.
물론 맛선볼때 신랑감 얼굴을 보았겠지만 어찌 똑바로 봤겠습니까~ 그리고 처남될사람도 아직 얼굴을 잘모르는 그런 시간적 역사가 짧아 일어난 실수였습니다.
내가 분명 동생이 무슨일로 이번에 찾아왔다고 어른들에게 일렀거늘 어찌 그 당사자가 실랑으로 착각하느냐고~ 길가에서 셋이서 땅을 치고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쩌면 닮아도 그렇게 똑같이 닮았느냐고~
@김기홍 지금도 형수님과 이야기 할때면 그런옛이야길합니다
형님의 장모님이 며달전에 돌아가셨고 49제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오는길 이라며 형수가 우리가게에 오셨다
그이야기속에 우리 어머님은 우리집양반보다는 작은아빠를 더 좋아하셨고 사위처럼 생각하셨다고 그리고 우리집 사람을 딸 처럼 여기며 살다 돌아가셨다고
회고 하는 이야길 들려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두여인(영자와 형수)이 같이 똑 같이 생긴 동생 때문에 한번씩 골탕을 먹었습니다. ㅎㅎㅎㅎ
@김기홍 *얘기란 무엇인가,단순 명쾌~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사랑하고 죽었다는 것,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것,
문제는 그런 것을 어떻게 묶는가에 있을 수밖에,,,,,,,,,,
'마음 졸이게 함' 그 다음은? 또 그다음은?,,,,,의 연속성, 서스펜스!!!
*갸는 왜 뱅기를 타고 형을 뵈오려 와야만 했는가.
*임자의 마음대로 상상소설쓰기,
**그녀는 그의 핏줄?
***어머니의 피맷힌 사연을 품고? 전달의무 수행,,,,,,,상상은 상상일 뿐,,,,끝.
제2탄; 또 재밋는 이야기~속으로 출발!
@김임자 기홍씨는 무궁무진 얘기꾼~인가봅니다. 숨도 쉬지않고 이야기를 쏟아 부어요~ 그래서 이리저리 컴 스카웃?
기홍님댁의 안방마님 대단한 분입니다. 든든하시겠습니다. 행운 중에 행운을~!
쌍둥형제님 땜시 골탕?먹은 얘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김장 조금 몇십년만에 담그고 그만 입술이 부르터 웃는데 좀 불편했지만,,,ㅎㅎㅎ
김명진님을 기억하십니까?
2011 '솜다리를 찾아서' 에 기홍님 글(안 읽어도 되는 이야기)을 싣기 위하여 메일을 기홍님과 주고 받은 아가씨 입니다.
그때 솜다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기홍님 글을 '솜다리를 찾아서'에 싣기로 결정하게 된 또다른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리동정회(313)(2009.05.19)에 올려진 "고향가는 길이 왜 이리도 힘이드는지"이지요.
부엌에 청국장 부글부를 냄새로 오늘 여기가지만~~~
아~! 예 그분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에대해 좋은 느낌은 없을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것을 요구하셔서 예의 바른 태도로 대하지 못했거든요
face to face 였다면 대화가 부드러웠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부분 아쉬워요
대변좀 해주세요 절대 안그런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를 끝가지 안내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같이 전해주세요
@김기홍 좋은 느낌? 그렇지 않은 느낌?
그건 다 각자의 느낌아닐까요?
명진이는 야무지고 착하고 예쁘지요(임자느낌)
암튼
명진이나 저는 기홍씨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협조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고 받은 메일은 곧바로 저에게 전달해주어 저도 상황파악???하고 있었습니다.ㅎㅎ
청국장 냄새가 코에 전해 옵니다
저도 청국장 메니아입니다.
집사람이 청국장을 너무 잘띠웁니다 느침이 줄줄흐르도록 냄새는 지독하지만 맛은 일등 청국장에는 꼭 두부가 들어가야 합니다.각자의 식성이 다르긴 하지만
전 며르치를 넣지 않습니다. 비린내가 나서요 한국엔 청량고추가 매운맛을 대신하죠 이곳엔 하르피뇨 라는 고추를 엷게 썰어 떠먹어도 매운맛이 다 국물에 울어나
마구 퍼먹어도 잘못먹어 매워혼나는 일 없도록 배려합니다. 그렇게 청국장이 얼큰한듯하면서 고유의 청국장 와~! 일미죠 그런데 청국장도 계절이 있습니다.
콩타작을 해서 생산되는 초가을 부터 늦어도 2월까지만 먹습니다. 그이후엔 오히려 된장찌게가 낫습니
@김기홍 청국장 메니아스러운 글!
정말로 멸치에선 약간의 비린맛이 입맛에 영 아니올시다인 분들이 있지요. 또한 멸치가 믈어가야 구수한 맛이 난다는 분도 계시지요.
저는 멸치의 비린맛이 나지않도록,,,,,청국장을 끓일 국물을 먼저(멸치,다시마,무) 냅니다, 그러다가 김이오르고 끓기 시작할 때 냄새를 느끼며 뚜껑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내고, 그리고 청국장을 넣어 끓이면 비린 맛은 날라가 버리던데요(두부는 필수.때때로 남은 안동소주 찔끔, 도는 당귀 에끼스 조금, 혹은 오가피 에끼스 조금,,,)그때 그때 달라요. ㅋㅋㅋ 참!참!참!
@김임자 경복궁에서 찍힌 두 총각님은 누구신지???
저는 월요일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에 출근?합니다.
덕수궁앞을 지나갑니다. 시청앞을 지나갑니다,,,어지러워요,,,
광화문을 지나가지요.
경복궁 담도 지나가지요. 관광객들이 늘 붐비지요
60년대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김임자 저와 안성에 김영식입니다.
조규옥이가 찍은사진 카메라는 제것입니다.
전 그때도 카메라가 있었어요
촌놈들이 서울구경 첨가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말고도 여러장 있지요
@김기홍 속전속결~
임금님 계시던 기와집도 반듯, 단정하고,
그아래 두분 팻션도 반듯, 단정하군요.
조규옥님, 좋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친구들과 그분의 초청으로 그분이 교장으로 재직하던 학교를 방문한적이 있지요.
그때는 전강희도 함께였었는데,,,.
@김기홍 오늘(12일)아침신문 동아일보에 [엘범 속의 방]ㅡ 허혜정(1966~) 실린 시가 재미있어 옮겨 봅니다.
검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갈피마다 하얀 습자지로 덮여있는 빛바랜 사진들.
하나의 방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모여든 얼굴들이 기억의 영사기에 비춰오듯 흐릿하다.
딱히 언제사진인지 집아낼 순 없어도 앨범속에 죽어있던 풍경이 스며드는 방.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소는 다르다고 믿어욌지만 사진속의 일몰은 나의 창에 물들고 있다.
푸르게 젖어가는 옥양목 마당 너머에는 바라볼 수록 여백이 넓어지는 하늘.
늦가을 바람에 창살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녹이 먹어버린 문고리와 발바닥에 닳아 얇게 패인 문턱들.
@김임자 몇 세대가 머물다 간 낡은 집으로 그들은 바람처럼 돌아와 바스럭댄다.
슬픈 아이가 잠결에 따스한 체온을 느끼듯이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세대의 눈빛 안에 고여있는 나의 눈이 어떤 슬픔을 꺼내 놓을지 모르지먄 그들이 비워낸 시공간을 옮겨 적는 것.
잊었던 말들이 밀려온다. 스쳐가는 그림자의 방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갈무리한 기홍씨가 놀랍습니다.
찰칵찰칵 잡아낸 사진들~사진으로 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삶이 살아 볼 만하다고 생각한답니다.
또한 인생은 저마다 기록해 남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랍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말들이 오늘따라 새로워 컴앞에 나를 붙들어 매었답니다.
임자씨는 늘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 사진들이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 미국까지 들고 왔지만 "엘범속에 방"이란 글을 소개해주므로 해서 나의 생각도 그때 그시절의 의미가 더욱 소중해짐을 느끼게 해줍니다.
@김기홍 지금은 소중한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자체가 값어치가 생겨 더욱 소중하게 해줍니다.
친구 김진국이가 말도 못하는 정보를 매일같이 이멜일로 보내오는데~. 그중에 그래도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읽고 보관한것이 지금 약 4천개의 매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떤글을 쓰려고 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해보면 진국이가 보낸 메일이 생각나 김진국 메일을 검색해보면 검색하는 시간만도 몇분걸려 나오는데 거의 4천개가 검색되어 나오데요
김진국의 메일뿐이 아닙니다 임자씨 공문식 메일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지요 ㅎㅎㅎ
@김기홍 어머니나~
발빠르게 다녀가셨군요. 산문스런 시 "앨범 속의 방"을 좀 읽기 쉽게 정리하러 들어왔더니,,,
이곳저곳 들락날락 멘트글 남기시느라 손가락도 빠르고,,,
*나의 공문식 메일은 전달사항이 확실,정확하지요.ㅎ
*주임교사(부장교사)거치는 동안 전달사항 회람돌려 싸인 받아챙겨 "나 못 들었어요!'하고 발뱀하려는 교사에게 제시하던 버릇? 입니다.
@김임자 좋은 친구 진국씨는 정말 한결같은 맘이군요. 기홍씨의 행운!!!
부엌에서 밥(보리,검은 콩,쌀)냄새가 나를 불러요.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