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오후,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엄마~” 하고 부르며 작은아이가 씩씩하게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유치원이 끝나고 이모 댁으로 가라고 했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중간에 내렸다는 아이가 얼마나 예쁘든지요.
제가 하는 일이 있어 작은아이는 이모 손에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특히 다섯 살 난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갖은 애교를 부려가며 “나도 엄마 따라가면 안돼?” 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갈 수 없더군요.
“그래! 대신 비 오고 바람도 많이 부니까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엄마가 힘들어서 유경이 다시는 데리고 다니지 않을 거야.”
아이에게 다짐을 받은 뒤 오랜만에 아이와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은행에 들러 대기 번호표를 뽑자 아이는 자판기 앞에서 겅중거리며 “엄마, 목말라요” 합니다. 사 준 음료수를 마시자마자 곧바로 칭얼댔습니다. “엄마! 나 화장실….” 번호는 다가오는데 참지 못하겠다고 몸을 꼬는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미 내 번호는 지나갔지 뭐예요.
가까스로 은행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마트에서 이것저것 샀습니다. 한 손에는 가방과 우산, 다른 한 손엔 비닐봉투 여러 개를 든 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유경아, 엄마 잘 따라와!”
그러자 개구리 우산을 들고 쫄래쫄래 따라오며 마냥 즐거운 듯 깔깔대던 아이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습니다.
“엄마, 나 다리 아파. 안아줘~~~”
철없는 아이를 달래봐야 소용없어 우산을 접어들고 아이를 안았지요. 누가 그랬던가요.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니 벌써 기진맥진. 유경이는 커다란 우산을 받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섯 살 아이가 들고 있는 우산 속에 키 큰 내가 비를 피하려면 어떤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아세요? 허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빗방울에 내 옷이 다 젖는데도 아이는 머리만 받쳐 준 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고스란히 비와 바람을 맞아야 했지만 버스 기다리는 20분 동안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엄마를 위해 우산을 받쳐준 마음이 귀엽고 고마웠지요.
“유경아, 유경이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지?” 하니 “응, 아빠 닮아서 과자를 좋아해” 하고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우산 속에서 모처럼 작은아이와 작은 행복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김영임 / 전북 군산시 미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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