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문제가 쌓여 있다 소위 밥그릇 건드리니 터진게 이번 파업 사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가 문제인지 잘 정리가 안되실 겁니다. 아래 글은 이런 파업에 작은 원인 중 하나를 언급하는 내용 및 지방 공공의료 확립을 위해 굳이 의사글 밥그릇 건드리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들도 고민해 달라은 글이라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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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주의. 원래 제가 좀 주절주절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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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마산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환자를 보는 소위 바이탈과의 의사입니다. 한 달에 한 명 정도는 사망 진단서를 쓰게되니, 일단 생명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하는 병원은 하동, 함안, 창녕, 고성 등등 서부 경남의 환자분들이 창원권에서 진료를 보고자 할 때 찾는 관문 같은 곳입니다. 소위 지금 정부에서 육성하고자하는 의료취약지의 기피과 의사 중 한 사람입니다.
이미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여러번 강변해주셨지만, 사실 4000명의 의사가 배출된들 취약지의 기피과 의사로 커리어를 지속할 사람은 많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취약지의 기피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문제에 대해 여러 진단과 처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단이 단순히 의사 수가 모자라서, 그리고 그 치료가 의사 수를 늘리면 된다라는 의견에 대다수의 의사들은 잘못된 진단과 치료라고 판단하고 있기에(그리고 이면의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게된 것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겠지만, 그 중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기피과 의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수련받은 모교 병원은 중환자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내과와 외과 등 메이저과들이 강했고, 자연히 해당과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내과 의사를 꿈꾸며 모교에서 수련을 결정하였고, 잠깐 흉부외과를 고민하였던 적은 있지만(!) 다행히(?) 무사히 내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수련은 정말 힘들었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소위 바이탈 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환자. 당장 몇번이나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혹은 숨이 넘어갔던 사람들이 의료진이 열성으로 치료를 하면서 살아나기도 합니다. 의식을 잃고 초주검이 되었던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일반병실에서 퇴원해서 집으로 걸어갈 때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들은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길 정말 잘했어. 그런 경험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중독이 됩니다. 멀리 이국종 교수님을 찾지 않더라도, 제가 아는 선에서도 많은 훌륭한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중환자를 돌보는 젊은 의사 선생님이 몇일씩 퇴근을 못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갔는데, 아기가 자꾸 놀아달라고 보채니까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은 독한 술에 곁들이는 흔한 술안주 입니다.
이런 바이탈 뽕에서 깨어날 때가 있는데 크게는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환자가 나쁜 코스로 빠져들거나 결국 사망하였을 경우 소송을 당하거나 폭력을 경험할 때입니다. 저 역시도 전공의 시절 의료인의 과실과 무관하게 나쁜 경과를 밟은 환자의 보호자에게서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하였으며, 보호자들에게서 상시 노끈을 들고 다니고 있으며 자기 앞에 관련된 의료진이 걸어다니는걸 보게 되면 목을 졸라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한달 이상 받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저는 아직 중환자 진료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직 중환자 진료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들은 지금의 병원에서 겪었던 몇 번의 긍정적 경험들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정형외과 수술 후 회복을 못하고, 의식 저하와 신부전이 겹쳤던 80 언저리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제가 전과를 받아 중환자실에서 모시면서 부신피질기능저하로 진단을 하였고, 이후에도 몇차례 복잡한 코스를 밟았지만 건강하게 퇴원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후 제 외래에서 계속 뵈었는데, 어느 날 얹힌 것 같다며 가슴이 답답하고 잘 못먹는다고 응급실로 밤에 방문하셨습니다. 응급실 선생님께서 우선 진료를 하시고, 신장 기능이 조금 나빠졌는데 잘 못드셔서 그런 것 같으니 입원진료를 권하셨고 제 담당으로 다시 입원을 하였습니다. 응급실에서 촬영하였던 가슴 X-ray를 확인해보니 이전 사진과 대동맥의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혈압이나 심박수 등이 안정적이었고 이미 밤이 깊어 주변 흉부외과 선생님들에게 연락하여 자문을 구한 뒤, 다시 입원 취소하고 전원하는 것 보다 내일 아침에 다시 사진을 찍어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회진을 하고, 상태가 심각할 수 있다고 평소 외래에 할머니를 모시고 오던 딸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인근 상급병원에 문의를 드렸더니 흉부 CT를 우선 촬영하고 전원 여부를 상의하자고 하여 CT를 촬영하고 병실에 올라왔는데, 영상이 전산망에 올라오기도 전에 이내 환자는 사망하였습니다. 참으로 황망한 상황이지만, 저보다 더 당혹스러울 딸에게 침착하게 경과를 설명하고, 대동맥의 파열 상황에서 심폐 소생술은 의미가 없고 하늘이 부르셨다고 설명하고 사망선고를 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신체와 정신 모두가 고갈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냥 어제 밤이라도 환자를 전원했다면 어땠을까. 오늘 아침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조치가 상황을 바꿀 순 없었을까 복기를 하면서 우울과 좌절을 다시 경험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보호자들의 원망이나 법적 문제 제기 소지에 대해서도 염려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환자의 유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장례가 끝나는 날 음료를 사서 제 외래로 찾아왔습니다. 살아계신동안 할머니를 잘 모셔주어서 고맙다고... 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이 몇차례 더 있었고, 그런 경험들이 이 지역을 제가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만성 콩팥병과 심부전으로 제 진료를 보다가 심부전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는데, 당시에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따님이 이후에 제 외래로 찾아왔습니다. 알고보니 따님도 사구체신염이 있어 타 지역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었는데, 이제 여기서 진료를 보고 싶다고. 예전에 병실에서 담당 의사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같이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잠시간 서로 뭉클했었습니다.
김영준 작가님의 ‘멀티팩터’라는 책에서 어떤 사업을 할 때 ‘운’, ‘확률’이라는 요인을 간과하지 말라는 내용이 핵심 메시지로 나옵니다. 평균 이상의 사업가라도, 여러가지 여건이 다 잘 갖추어져있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세상 만사가 그렇고,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같이 평균적인 의사에게도 환자의 경과는 어느정도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보다 훨씬 훌륭한 의사를 만나시더라도, 저희 병원보다 좀 더 나은 여건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더라도 성공적인 경과 쪽으로 중앙값이야 올라가겠지만 환자의 경과는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립니다. 어떤 과실이 없어도 환자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운’, ‘확률’, 어쩌면 ‘운명’의 이유로. 하지만 이런 이유로 처벌을 받거나, 비난을 받게 될 경우 이런 리스크를 피하는 쪽으로 사람은 움직이게 됩니다. 저도 저에게 가해질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두렵고, 송사에 휘말릴 때의 스트레스 역시 상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것을 수차례 경험한 의료진은, 대개 생명과 관련된 진료를 더 이상 할 수 없게됩니다.
통상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는 나라에서 비용을 통제합니다. 소위 Low return의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생명과 연관된 일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환자의 경과 악화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risk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비슷한 소송이 몇차례 있었습니다. 호흡곤란으로 기도삽관이 필요한 환자에서 대학병원의 숙련된 의료진들이 여러사람 달려들어 기도를 확보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기도는 다 다르게 생겼고, 정말 숙련된 의사라도 숨구멍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역시 확률의 문제입니다. 다만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환자의 기도 확보에 게으르게 움직인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우리는 다 겪어보았으니까요. 그런 경우들을 의사의 과실로 처벌하는 상황이 되면 응급 환자에 대해 오히려 회피를 하게 됩니다.
High risk, low return의 일에 종사하길 원하는 사람은 정상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없습니다. 정말 ‘바이탈 뽕’이라는 사명감에 취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부디 의료계의 높은 분들과 정부 관계자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수가를 높이는 일이 재원이 많이 소요되어 어렵다면, 부디 high risk에서 risk를 줄여주십시오.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전 의원께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재원 보상을 국가에서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하였다가, 결국 좌초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족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에 대해 해당 의료진을 광장으로 끌어내 목을 치기보다는, 나라에서 보험으로 의료진과 유족들을 보호해주십시오. 전투에서 진 장수들마다 목을 치면, 어느순간 다음 전투에 나설 장수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기피과에 종사할 의사를 만드는 대학과 병원을 설립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중환자를 모시고 병마와 싸울 사명감 넘치는 의사들을 많이 양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수들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디 도와주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의료보험제도 자체가 매우 훌륭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한쪽 일방의 희생을 어느정도는 강요?하는 부분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정부든 의사집단이든 서로가 윈윈하는 좋은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