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 [윤지양]
내가 아는 은미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제주에서 다녔다. 은미는 제
주도를 떠나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은미네 집엔 여행객들이 머물다 가곤 했
다.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
지만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들이 고향과
낯선 땅에 대해 이야기해도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있는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끔씩 친구와 애인과 가족과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은미는 제주도를 떠나고 싶지 않았
다. 떠나도 금세 돌아올 생각이었다.
한라산 혈망봉이 구름에 가려진 오후였다. 은미는 내
옆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졸고 있다. 나는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은미는 가끔 검은 모래와 구멍이 뚫린 돌들을 밟았다.
가까이에서 본 바다는 투명하고 멀리서 보면 새파랬다. 발
가락 사이로 모래가 들어왔다. 은미는 제주도를 떠나고 싶
지 않았다.
고향이 다른 애인과 울면서 헤어졌을 때 은미는 제주도
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도덕선생님이 뺨을
때렸을 때 중학생 절친과 절교했을 때 가끔씩 팔다리
에 멍이 들어 오는 짝꿍이 간절히 떠나고 싶다고 말할 때
은미는 제주도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은미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잠에서 깬 은미가 버
스의 버저를 눌렀다.
떠나도 꼭 돌아올 생각이었다.
- 기대 없는 토요일, 민음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