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ㅡ월간 《시see》(202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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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이 비어가는 중입니다
달포 전에만 해도 황금빛물결이 일렁이던 들판이 거뭇거뭇해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논둑길 밭둑길로 들어서면 아직 초록 세상이 엎드려 있습니다
억새꽃도 무성하고, 드물게 구절초나 앙증맞은 제비꽃도 섞여 있습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뭇 생명이 움츠리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도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여야가 시끌벅적해졌습ㄴ다
임기 동안 묵었던, 쌓였던 응어리들이 불쑥 불쑥 고개를 치미는 것이 볼썽사납습니다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일갈이 들리는 듯 합니다
인제 150여 일을 남겨둔 22대 국회 구성이 참 걱정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