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 [고선경]
서울에 늪이나 어둠이 있을까?
늪과 어둠은 어떻게 서로를 식별하는지
자면서도 나에게 말한다 정신 차려
아 정신 차려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점심은 가볍게 먹자
그렇게 말하는 네가 좋다
너는 서늘한 방 한구석에 웅크린 어둠
일으켜 세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단단한 무릎을 가질 수 있어?
나는 무릎을 늪 속에 묻어 두었다
거짓말
서울에 살지만 서울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남산 케이블카에도 서울이 있고
서촌과 북촌 사이에도 서울이 있지만
서울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나 떠날 때 네가 말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를 떠나왔더라?
가방에 든 짐이 점심 메뉴처럼 가벼웠는데
발걸음
사뿐사뿐
나는 늪이라는 말보다는 높이라는 말이 좋아
너는 이 문장을 반대로 읽어도 좋아
창문이라는 창문은 활짝
열어 두었으니까
무릎 속에 묻어 둔 늪을
새들이 들쑤시고
너는 개운해진다
우리 점심은 가볍게 먹자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열림원, 2025
* 내가 어릴 때의 서울은 31층 건물이 제일 높았다.
이름하여 삼일빌딩이다.
시골사람들은 서울 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코베어간다는 말이 있었다.
조금 발전하면서 63층 건물이 생겼다.
이름하여 육삼빌딩이다.
배추밭이었던 강남이 비까번쩍 발전하고 보통의 서울사람은 강북에
부자는강남에 살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이 인구의 오분지 일이 모여살지만 복잡해도 다들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느덧 육삼빌딩보다 두배는 높은 빌딩이 생겨 서울의 트레이드 마크를 찍었다.
123층, 이름하여 롯데월드 타워이다.
123층에 올라가면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점심은 가볍게 먹자.
첫댓글 좋은 시네요!
훌륭한 답댓글입니다.^^*
123층은 밖에서만 쳐다보았습니다.
직접 가서 점심을 먹어보겠습니다^^
무서운 점심일까요? 짜릿한 점심일까요?
고소공포증 때문에 123층은 오르지 못하겠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