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짭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山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 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山을 넘어 동백冬柏나무 푸르른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冬柏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女人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柏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넷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南行詩抄)
갓 나는 '갓冠'이 나는 . 통영은 갓으로 유명한 지방이다.
고당 고장.
갓갓기도 하다 갓 같기도 하다. 백석 시에서 '같다'는 '같다'와 '갓다' 두 가지로 표기된다.
전북 '전복'의 방언(평북, 경남,강원).
아개미 아가미. '아가미젓'은 대구나 명태 등의 아가미로 만든 젓갈을 말한다.
호루기 살오징어의 어린 것.
황화장사 황아장수. 집집을 찾아다니며 자질구레한 일용잡화를 파는 사람.
돌각담 돌을 모아놓은 큰 돌무더기.
명정明井골 통영의 명정明井골에는 '일정日井' 과 '월정月井'이라는 두 개의 샘이 있는데, 이 둘을 합쳐 '명정明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구작작 여럿이 한곳에 모여 떠드는 모양.
넷 장수 모신 낡은 사당 이순신 장군의 위폐를 모신 명정골의 충렬사忠烈祠를 말한다.
녕 '지붕'의 평북 방언.
손방아 '디딜방아'의 방언.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24.엮은이 고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