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7.23.) 말씀/신명기 3:24-25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25). 최근 한국이 2050년에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현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 중 생산 가능 인구(15~64세)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이 30년 내 세계 최고령 국가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뉴욕타임스) 이런 고령화 시대의 원인은 젊은 시대의 결혼기피현상, 저 출산문제 등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촌이나 어촌을 가보면 알지만 실제로 구성원들이 노인들이고,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헬렌 니어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새롭게 열린 공간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삶에는 열고 닫아야 할 문들이 무수히 많다. 만일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제까지 기존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국가 시스템이 세워지고 새로운 세상일 열릴 것입니다.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적응하지 못하면 소멸 될 수 있고, 적극 대처하며 다음 세계로 건너가면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근본 이 땅에 영원히 머물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모양으로 든지 다음 세상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떠날 것을 생각하며 앞으로 올 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최대한 간편하게, 쉽게,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도록 그런 자세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썩고 쇠하고 무너질 틈이 없이 새로운 세계, 궁극적으로는 영원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은 우리 인생은 건너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에 바라밀다 (波羅蜜多)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라’ ‘저 언덕은 [피안]’, ‘밀다’는 ‘건너다’는 뜻으로 풀이하면‘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는 더러운 땅 사바세계에 머물지 않고 저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거짓된 나의 삶에서 참 나를 깨쳐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교에서도 바라밀다라 하여 인간을 계속 앞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성경 역시 우리는 거류자 나그네라고 정의합니다. 영원히 머물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떠나고 건너고, 또 건너고 마침내 근본 주님 나라에 들어가 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 합니다. 신명기 3:24-25절을 보면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 3:25).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요단을 건너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 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그들이 궁극적으로 들어가 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광야 길을 지나면서 이스라엘이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불평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여 믿음으로 검푸른 홍해를 건넜으면서도 잠시 광야 길의 어려움을 참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불평하며 배역하였습니다. 한 달이면 지날 수 있는 광야를 훈련을 받으며 40년 동안 뱅뱅 돌았습니다. 길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불 뱀에 물려 징징거렸습니다. 심지어 부추 수박 야채가 먹고 싶다고 애굽 종 되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도 했습니다. 모세는 무리바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분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약속받은 백성들 다 죽고 요단을 건너갈 자는 오직 여호수아와 과거 시대를 모르는 다음 세대뿐 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며 위기의 시대 상황을 건너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불평해서도 안 되고, 좋다고 광야에 뿌리를 내려서도 안 됩니다. 날마가 기도하며 희망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하루하루를 건너가야 합니다. 한 달 두 달 건너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해 두 해 계속 날마다 건너가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산하고 심지어는 교회도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건너가라는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은 불 뱀과 전갈이 우굴거리는 광야입니다. 지체하지 않고 건너가는 사람만이 삽니다. 지금 구태의연한 너에게서 새 사람의 나에게로 건너가야하고, 나 자신에 머물지 말고 사랑을 들고 이웃으로 건너가야 하고, 내 나라에 국한 하지 말고 이웃 나라로 건너가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건너가라는 메시지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살펴보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건너가라는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첫째, 지시하는 땅으로 건너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이렇게 말슴 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세기 12: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장차 큰 민족을 이루시고 국가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실 때 아브라함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머물러 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현재 머물러 있는 곳은 그 아비 데라가 우상 숭배를 하고있는 죄악된 땅 이었으며, 세상의 온갖 잡다한 관습과 생각과 사고가 전통으로 굳어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습에 묶인 친척들, 믿음 없는 육신의 옛 친구들, 우상 숭배의 공동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바라밀다! 더러운 땅 사바세계를 떠나 정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로 이제까지 75년동안 닦아놓은 기반을 다 헐어야 하고, 정든 인간 관계를 끊어야 하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으로 가야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하고, 모험과 도전이 필요한 일 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부름을 받았을 때 말씀을 좇아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새로운 역사에 쓰임 받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려면 먼저 나를 옭아매는 온갖 율법의 틀과 자기 생각과 고집, 인본주의로 얽인 인간 관계, 부정과 운명의 터전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나보다 더 나은 믿음과 차원 높은 생각과 교류를 하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 속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복음 역사에 쓰임 받기까지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믿고 길을 떠났으며 이삭과 야곱과 더블어 삼대를 걸쳐 장막 생활을 하며 20년 동안 미지의 땅을 건너갔습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 야곱도 민족의 조상이 되고, 더 큰 그릇으로 빚어지기 위해서 정든 집을 떠나 훈련관 라반이 기다리는 밧단 아람으로 건너가야 했습니다. 에서를 피해 개나리 봇짐을 지고 길에서 돌 베개를 하고 처량한 잠을 자고, 라반 밑에서 땀 흘려 처가살이를 하며 20년동안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네 아내와 12자식들과 많은 재물을 얻었을 때에야 그는 다시 약속의 당 벧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야곱에 건너갸야 할 강이 있었습니다. 얍복강 이었습니다. 야곱은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 이었지만 아직 깨어지지 못한 자기가 남아 있는 자였습니다. 그 자기는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게 하였습니다. 그는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의 천사와 싸웠습니다. 이제까지 자기 인생을 인도 해 오신 하나님 아내와 자식들과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였지만 앞으로 장래까지도 책임지시고 축복 해 주시기를 바라며 나를 축복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보내드릴 수 없다고 기도 씨름을 했습니다. 마침내 천사를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변화되어 얍복을 건너 두려움의 대상 형 에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화 되자 형 에서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하나님 얼굴을 뵈옵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내가 변화되는 얍복강을 건너야 합니다. 내 인생을 촉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장래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고, 원수같은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님의 얼굴처럼 달라지게 됩니다. 아멘1 이렇게 해서 껌딱지같이 달라붙어 야곱을 괴롭혔던 형 에서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벧엘로 돌아가면서 방심을 하게 됩니다. 형 에서와 헤어지고 숙곳에 이르렀을 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를 위해서 처소를 짓고 가축들을 위해서 우리를 짓고 그곳 이방 땅에 머물게 됩니다. 계속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할 자가 머물자 마자 바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추장 세겜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통혼을 요구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서는 아주 수치스런 일이었으며 야곱의 아들들 특히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칼을 차고 쳐들어가서 살인 복수극을 벌입니다. 피바람이 불고 야곱은 소수 약자로서 이방인들 가운데 곤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함을 받아 다시 벧엘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야곱의 생애에 가장 큰 오점 이었습니다. 여러분 머물면 안 됩니다. 사람은 머물면 생각이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 게을러 지고 안일해집니다. 생각을 골몰하다 헛생각이나 미련한 생각이 빠지게 됩니다. 생각이 어두워지고 부정적이 됩니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습니다. 야곱뿐 아니라 다윗도 그랬습니다. 태평 성대를 누리고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자 다윗은 할 일이 없었습니다. 대낮에 잠을 자고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데려다가 관계를 하고 임신을 시키고, 그 사건을 숨기고자 충장 우리아를 전쟁터 깊은 곳으로 보내 죽게 하였습니다. ㅇ런 일이 왜 생깁니까? 머물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인생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어디든 걷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고 깨어있지만 멈추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잠 자고 싶어집니다. 기도 줄을 놓으면 기도가 잘 안 되고, 책 읽기를 한번 놓으면 다시 책 잡기가 싶지 않습니다. 돌로미티 트래킹을 위해서 아침 기도 코스를 일부러 승달산 난코스를 잡아 아침 큐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장마철에 계속 비가 내리자 등산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파고들어 오려 합니다. 안일한 생각도 함께 들어옵니다. 비오도 오고, 날도 습하고 땀도 많이 나는데 비오는 날에는 쉬자고 합니다. 한번 머물며 나중에는 아에 하기가 싫어질 수 있는 습성을 알기에 저는 백업 플랜을 세워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핑계 없이 계속 등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돈키호테가 얼마나 용감하고, 도전정신이 강했습니까? 그는 무적이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창을 들고 말을 타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땅을 팔아 책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위해서 좋아하는 사냥을 끊고 친구 관계도 끊었습니다. 그는 멈출 줄 모르고 도전하며 건너가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는 풍차와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고 사자와도 싸워서 이겼습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오히려 그가 정상인 이고, 세상 사람들이 비정상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사람들이 그를 데려다가 집에 머물게 했을 때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돈키호테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은퇴하고 집에 와서 쉬다 보면 얼마 안 되어 죽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몸이 비록 머물더라도 우리 생각은 멈추지 말고 높은 사유의 시선으로 우리는 계속 건너가야 합니다. 그래야 산 자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머물면 고인물이 되어 부패하고 썩게 됩니다. 둘째, 반드시 건너야 할 인생의 홍해 야곱의 열두 아들이 한 집에 살며 오래 머물다 보니 미움 시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미움을 받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 땅에 노예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요셉은 온갖 시련 속에 연단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보디발의 가정 총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고 옥살이를 합니다. 옥 중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한 계기로 흉악한 꿈을 꾼 바로를 만나고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대 흉년 때에 이스라엘 가족들 역시 애굽 땅으로 들어와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 족속들을 애굽으로 건너오게 하시고 소수 민족 야곱의 자녀들 70명이 60만 대군이 될 때까지 애굽에서 키우십니다.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바로는 두려움 마음에 이스라엘 만족을 노옐 삼아 압박을 합니다. 백성들의 곤고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이스라엘 만족의 대 출애굽 역사를 계획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머물러 계속 살 수 는 없는 일 이었습니다. 마침내 한 애굽인을 살해 한 사건으로 모세는 밧단 알마 광야로 쫓겨가서 40년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출애굽 역사를 이룹니다. 그 때 이들이 건너지 않으면 안 될 커다란 장벽은 바로 홍해였습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의 병거들 진퇴 양난 인간의 어떤 힘도 개입될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 앞에서 모세는 두려워 떠는 백성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백성들에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가리킵니다. 거대한 홍해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일을 모두가 목격합니다. 그들은 마른 땅처럼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홍해는 누구나 다 죽음의 땅을 넘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구원의 바다입니다. 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첫째 관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이 건너갈 수 있는 이 체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다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광야를 통과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셋째 광야를 건너야 하는 이유 홍래를 건넜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 목마르고 배고프고 전갈과 불 뱀이 우굴거리는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면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주께 영광! 외치는 더 소리들이 쏙 들어가고 백성들 가운데 불평, 불만, 원망의 소리가 나오고, 심지어는 지도자 한 사람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을 찬미하는 소리끼지 들렸습니다. 홍해를 건너면 다 된 줄 알았는데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속에는 여전히 노예 근성의 자아가 남아 있었습니다. 훈련 되지 않고 변화 되지 않은 본성이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의 감격 속에서 콧물 눈물 흘리며 감사 찬송하며 이제 다 된 줄 알았는데 된 게 아닙니다. 여전히 죄악된 본성이 엣 사람이 얼굴을 밀고 나옵니다. 탐욕으로 미움고 증오로 음욕으로 가득차 본성의 자아를 지닌 채 어찌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로 다 되었다고 세상에 빛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천국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한 달이면 건너갈 수 있는 광야길을 40년동안 빙빌 돌리셨습니다. 매일 일용할 만나 일용할 큐티를 주시면서 노예근성의 체질을 천국 백성의 체질로 바꾸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신명기 8:2-3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심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체질의 백성들로 빚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광야의 길로 힘들다고 주저하면 안 됩니다. 나의 변화 성장을 위해서 멈추지 말고 건너가야 합니다. 불순종의 사람들은 광야길 도중에 죽고, 순종한 여호수아와 신세대 백성들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하는 것은 반드시 인간은 건너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머무르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머무르면 퇴보하고, 늙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에서 생각으로, 책에서 책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끝으로, 나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움직이는 사람만이 성장 발전하게 하게 되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는 기쁨과 환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무는 사람은 번뇌의 광야를 빙빙 돌다 죽게 됩니다. <나를 향해 걷는 열걸음>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짜 인간은.. 한 곳에 멈춰 머무르지 않고 아무 소득이 없어 보여도 애써 어디론가 떠나 건너간다. 건너 갈 그 곳은 익숙한 문법으로는 아직 이해 되지 않아서 무섭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무모한 도전과 용기가 등장한다. 그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있어 왔던 자리에 머무르고, 소수의 사람만이 낯선 곳으로 모험을 하며 건너간다 그 결과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황홀경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우주교회 스케일을 좀 더 크게 해서 대륙을 건너 이태리로 넘어갑니다. 책을 들고 돌로미티 하나님의 천혜 자연 학습장을 걷고, 박해의 현장 콜로세움 로마를 걷고, 바울의 순교터, 카타곰 순교자들의 지하 묘지, 화산으로 사라지진 죄악의 도사 폼페이 등 역사의 뒤안길도 걷고 또 걸으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체험하고 돌아와야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건너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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