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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림의 소리 스크랩 우리나라 최고봉의 사찰 지리산 법계사(法界寺)
현림 추천 0 조회 1,375 17.12.10 21: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나라 최고봉의 사찰 지리산 법계사(法界寺)

설악에서 남도의 땅끝마을까지 이름난 사찰은 나름대로 거의 다 다녀보았다 자부하면서도

미련이 남았던 사찰이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목에 있다는 법계사다.

사실 전국이 당일권이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지리산까지는 산행도 어렵지만 당일코스로 잡기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설악의 봉정암 보다도 200m가 더 높은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이 있는 사천군까지의

그 먼 거리의 이번 여정은 망설어지면서도 십여년 전 반야봉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했던

그 아쉬워 했던 미련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체력이 왕성할 때에는 시간과 경제적인 것이 문제가 되고

시간과 경제가 어느 정도 여유가 되면 이제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이제는 세월의 무게감을 지탱하기는 몸의 한계성을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나이라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마침 현충일 이틀간의 연휴라는 사실과 중산리에서 셔틀버스가 있어

법계사까지 거리와 시간이 어느 정도 단축된다는 소식에 희망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토요일 늦은 시간에 함평에서 일박한 후 이른 아침 중산리셔틀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제 내린 비 탓인가 땅거미가 채 가시지 않은 어스름한 길 위.

저 멀리 지리산의 하늘은 구름으로 그림같은 경관을 자아냈다.














중산리 셔틀버스 정류장 옆 법계사 가는 등산로이다


법계사 오르는 등산로 입구다. 여기까지 셔틀버스로  10여분 걸렸다.

여기서부터 법계사까지는 2.8km다.






로터리휴계소, 우측 길에 법계사 오르는 길이 있다.






(새로단장한 법계사 일주문)


지리산 법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높이 1,400m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서

544년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6·25 때 불탄 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이 준공되어 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삼층석탑이 있으며,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한라산과 금강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이리 불리는 지리산 천왕봉(1915m)에는

삼국시대로 부처 천왕성모 또는 성모할미라고 불리는

여산신(山神)이 성모사(聖母祠)라는 사당에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은 옛부터 우리나라 원시 무속신앙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영산(靈山)이다.

그 지리산 천왕봉에는 모신 성모(聖母)할미는 8명의 딸을 낳아 8도의 곳곳에 보내

무당의 주인노릇을 하게 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 성모할미를 무당의 시조할머니로 여기고 있다.

지리산의 유명한 계곡중의 하나인 백무동(百巫洞)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법계사에서 진행중인 천왕성모의 복원을 위한 조감도다.

민속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신이 고대로부터 여신이었고,

소수의 몇몇 산신만이 남자였다고 말한다. 여산신(女山神)은 산각시, 산마수라, 산신할머니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300여 년간 만들어진 산신의 회화, 입상, 조각 등을 보면, 고령(高齡)의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사원이나 박물관에 소장 전시된 작품 중 97%가 할아버지 이미지를 풍기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조선 500년을 지배한 유교와 권위주의 문화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신중탱



범종각








범종각 쪽에서 바라 본 사찰전경



범종각 쪽에서 올려다 본 삼층석탑






3층 석탑 우측 전각은 극락보전이다.


산신각이다. 적멸보궁에서 만난 비구니스님이

산신각의 벽화를 보면 법계사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고 꼭 둘러 보라고 하여 둘러 보왔다.



















산신각에는 천왕성모를 중앙에 모시고 좌측에 용왕, 우측에 남산신을 모셨다.

전설로는 천왕성모의 낭군은 반야봉을 지키는 산신이라고 한다.


법계사의 산신각에 모신 여산신은 천왕성모라 일컫는 형상과 다소 차이가 있고

지리산 천왕성모의 대표적불화로 일컬어지는 쌍계사 삼성각의 형상과도 차이가 있다.

 천왕봉에 모셔졌던 석상인 천왕성모는 현재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쌍계사 삼성각의 지리산 천왕성모(마고할미)

위사진은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는 천왕성모(마고할미)다.


참고로 이곳에 모셔진 경위를 설명한 경남남도 민속자료 제14호를 약술한다. 

지리산성모는 천왕(天王천왕할매·마고(麻姑)할매·마야부인(摩耶夫人) 등의 속칭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수호여신이다.  

원래 이 신상은 1970년대초까지 천왕봉에 있었으나,

그 뒤 행방불명되었던 것을 천왕사 주지 혜범(慧凡)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1978년 꿈의 계시(啓示)로 찾아다가 절에 봉안하고,

음력 37일과 103일에 신도들과 함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법계사 산신각의 남 산신) 

옥석(玉石)으로 만든 성모좌상의 크기는 높이 74cm, 얼굴높이 37cm, 얼굴너비 29cm,

앉은자리에서 목까지의 높이 38cm, 어깨너비 46cm, 몸너비 43cm이다.

형태는 귀와 손가락 끝은 없고 코는 옥석으로 만들어 붙였다.

천왕봉에 있을 때는 코를 시멘트로 만들어 붙였었다.

 

성모의 귀는, 고려 말에 왜구 아지발도가 떼어가다가 토혈 즉사했다는 속설이 지금까지도 전한다.

조소(造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에 관한 내력이 무조전설(巫祖傳說)에도 나오지만 현존문헌에도 남아 전한다.  

동문선 東文選68 박전지(朴全之)의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의하면,

 “……옛적에 개국조사(開國祖師) 도선(道詵)이 지리산 주인 성모천왕에게 은밀히 부탁하기를……이라는 대목이 있다.

 

또 조선 초기 김종직(金宗直)점필재집 佔畢齋集2 유두류록 遊頭流錄(1472)에 보면

천왕봉 상에 있는 성왕묘(聖王廟)에 들어가 성모상께 날씨가 개이기를 비는 고사를 지내고,

성모상 앞에서 유숙하며 성모상 목의 상처가 고려 말 왜적이 칼로 쳤기 때문임을 확인하고 있다.

 

또 성모를 마야부인이니, 고려태조의 비()라고 함은 망설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토속적인 지리산 여신 성모가 옳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김일손(金馹孫)탁영집 濯纓集5 두류기행록(1489)에도

천왕봉 돌담 안에 1칸 판자집이 있고, 그 안에 석부인 상이 있으니 이른바 천왕이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본다면, 이 성모상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적어도 조선 초기 이전에는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위키백과>




@법계사삼층석탑(法界寺三層石塔)

높이 2.5m. 보물 제473. 거대한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고 그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웠다.

석탑의 구조는 기단부로 이용된 자연암석에 상면 중앙에 탑신을 받치기 위하여 2단의 굄을 마련하였고,

그 위에다 별석으로 3층탑신을 얹었다.


    

각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새긴 외에는 다른 장식이 없다.

옥개석(屋蓋石)은 하면에 3단의 받침을 새기고 상면에는 옥신을 받치기 위한 굄이 1단 새겼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다.

 옥개석의 전각(轉角)은 약간 반전(反轉)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중후한 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현재 포탄모양의 석재가 얹혀 있기는 하나 이는 뒤에 보수하면서 얹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규모도 크지 않고 조탑양식에서도 약식화된 점이 있고,

조형미에도 투박한 감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 신라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극락전




ㅇ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과 지장, 또는 대세지 보살을 모시는 것이 상례인데

법계사의 극락전은 좌우에 수인만 다른 두분의 관음불을 협시로 모신 것 같다(?)


신중탱




아미타내영도

극락내영도 또는 극락접인도 (阿彌陀來迎圖)라고도 불리는 아미타내영도로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하여 구름을 타고

극락에 왕생할 자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아래 그림은 용선에 왕생할 망자를 태우고 극락으로 가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이런 이 내영도는 불단(佛壇)에 걸지 않고 망자(亡者 : 죽은 사람)를 극락으로 왕생시키기 위해서

설단(設壇)한 영단(靈壇)에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창대바위











법계사에 전시된 천왕봉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본인들이 박은 쇠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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