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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을 누리고 즐길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역시 예술은 삶의
희망과 감동을 건네줍니다. ‘장애인 문화 향수 지원’ 사업은 시각,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국영화 한글 자막 및 화면 해설 상영, 점자, 녹음 도서, 수화 책자 개발 및 보급, 학습
사이트 개설 및 운영 등 장애인들에게 편의시설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죠. 장애인들은 문화예술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삶을 발견
하게 됩니다. 자신들이갈고 닦은 기량으로 ‘세계 장애인문화축제’에 참가하여 마음껏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때로는 일반인들을 위한 공연을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기도 합니다.
영수는 조금은 긴장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별로 걱정이되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영수는
오늘보다 두세 배는 더 긴장하는 것같았지만, 훌륭히 시험을 치렀고 자랑스럽게 합격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영수와 엄마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오늘 시험이 그 만큼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4년제 대학 음악대학에 편입 시험을보는 날입니다. 이번 시험이 영수에게는 또 한 번의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영수와 엄마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영수야.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아픈 데 없어요. 영수 잘 할 거예요.”
엄마는 영수의 손을 꼭 쥐어 주었습니다.
“넌 잘 할 거야. 천 번을 넘게 불어 봤잖아? 그것도 재미있어 하면서….”
“영수 천 번… 이천 번 불었어요. 재미있어요. 조금 어려워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양손 모두 손가락을 두 개씩 펼치며 영수가 살짝 웃었습니다. 그런 영수를 보며 엄마도 같이 웃어
주었죠. 문득 콧날이 시큰해진 엄마는 영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눈물이라도 보이면 영수가 더 긴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참아야만 했습니다. 대신 엄마는 그냥
맘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영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세요. 계속 플루트를 불 수 있게 해주세요…. 꼭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입술을 달싹이며 이어지는 엄마의 기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수는 플루트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시험장으로 입실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영수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엄마의
눈앞에 지난 21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영수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눈을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엄마는 영수가 발달
장애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되었습니다. 말문이 트이기는커녕 사람과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자기가
하던 일만 반복해서 되풀이하곤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자폐성향이라는 사실을, 엄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것은 영수보다 다섯 살 많은 형, 성수가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이 보여준 특별한 행동들이 발달장애라는 병으로부터 생기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또 그 병이 평생을 안고 살아야하는 치료가 불가능한 십자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병명을 확인한 시점도 늦었지만, 증세도 심한 편이었던 형은
쉽게 대응하기 어렵기만 했습니다. 어떤교육을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죠.
게다가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엄마는 5년 동안의 싸움이
버겁기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귀하게 얻은 둘째마저 같은 증세를 보였을 때 엄마는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행히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두 형제가 다 큰 병을
앓게 되었지만, 같은 병이라 그 만큼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 그것 역시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또 둘째 영수에게는 확실히 큰 도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다 일찍증상을 파악할 수 있어서
치료를 앞당겨 시작할 수 있었고, 많은 정보와 다양한 대응 방법이 준비된 상태에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영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음악을 통한 새로운 탄생의
단초까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엄마의 긍정적인 마음 자세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엄마가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면서 영수에게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좋은 일들이 계속 생겨
났습니다. 발달장애인 두 아들과 아내마저 나 몰라라 방치했던 아빠 때문에 모든 생계를 책임
져야 했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했죠. 엄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영수만이라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교육 정책
때문에 사실 민간 보육 시설에서는 영수를 받아줄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처럼 한 선교원에서 영수를 받아주었습니다. 영수는 7세부터 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특수학교 입학 후에는 12세까지 방과 후에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이 작은 행운이 사실
영수의 일생을 바꾼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영수는 이 시기에 비장애 아동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선생님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죠. 사회성과 자립심도
키울 수 있었으며 밝고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통합교육의 전도사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행운은 영수가 다니게 된 특수학교의 동아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엄마는 악기를
통해 영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수가 다니던 정진학교에 음악을 전공하신 선생님(심미영 교사)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젊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음악을 가르쳐 주고 싶었죠. 단지 음악을
통해 자극을 받고 소통을 시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게 되면 더욱 다양한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젊은 선생님은 학교에 제안을 하고 부모님들을 설득해서 관현악부를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이때까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악기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 그저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 하나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죠.
아이들에게 악기를 배정해 주면서 선생님은 영수에게 말했습니다.
“넌 부는 걸 해보자”
바이올린, 첼로가 더욱 그럴 듯해 보였지만, 선생님의 이 한 마디 때문에 영수와 친구 민호(가명)는
플루트를 배정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적을 일군 두 번째 단추가 되었습니다. 처음 소리를
내기는 만만치 않지만, 손가락 놀림(운지)에 따라 정해진 음이 나오는 악기였기에 영수는 쉽게
악기와 친해질 수 있었고 음악에 매료될 수 있었던 것이죠. 영수와 민호는 그야말로 놀랄만한
발전을 보였습니다. 하루에 음계를 하나씩 익혀 가더니, 금방 짧은 동요를 연주할 수 있었고,
나중에 영수와 민호는 나란히 하트윈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 한 음악 선생님의
열정이 둘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죠.
영수가 플루트로 동요를 연주하게 되던 날, 엄마는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든 영수를 돕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다 덜컥 중고 피아노를 구입했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조금 배운 적이 있었기에 악보를 읽고 먼저 연주를 해서 알려 주거나 반주라도 해 주면
영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 되어 엄마는 생각 만큼 잘 칠 수 없었던 것이죠. 머쓱해진 엄마가 기왕 산 거 영수에게 피아노
라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고 바이엘 교본을 영수에게 권했습니다. 영수는 플루트 외의 다른 악기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몇 번 쳐 보게 했지만, 영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외엔
절대마음을 열지 않는 발달장애아였죠. 엄마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망한 엄마는 좁은 집에 괜히 피아노부터 사 들여놨다는 생각에 속이 상해 가끔 피아노 앞에 멍하니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장난삼아 한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눌렀습니다.
“파”
순간 엄마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영수가 정확히 음을 맞춘 것이었죠. 엄마는 게임을 하듯 건반을
두드리면서 영수에게 음계를 맞춰보게 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모두 맞춰버리는 게 아닌가?
엄마는 설레는 마음에 두 음을 동시에 눌러보았다. 영수는 이것도 모두 맞췄습니다.
“아, 이 애가 절대 음감이 있구나.”
엄마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음악으로 영수가 세상에당당히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처음으로 가슴에 품은 날이었죠.
건반을 눌러주고 음을 맞추는 청음 훈련을 영수는 무척 재미있어 했습니다. 영수에게 그건 일종의
게임이었죠. 나중엔 아예 컴퓨터에서 코드를 듣고 그것을 고스란히 피아노 건반으로 똑같이 연주
하기도 했습니다. 교본을 앞에 두고 가르치려고 할 때는 건반을 두드리지 않던 영수가 스스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이죠.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처럼 하루에 몇 시간씩 코드 듣고 치는
놀이(?)를 하던 영수는 어느 날부터는 피아노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독학으로, 아니 컴퓨터와 코드를 따라 치는 게임으로 영수는 피아노를 배운 것이죠.
잘못된 계산으로 덜컥 저지르고 만 엄마의 실수가 기적을 낳은 세 번째 단추가 되었습니다.
그때 피아노를 샀기 때문에 영수가 가진 절대 음감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영수와 놀이를 하듯
훈련한 청음 실력은 영수의 플루트 실력을 눈부시게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죠.
이때 습득한 코드 실력은 고스란히 몸에 배어, 영수는 대학에 가서도 화성학만은 늘 A+이었습니다.
영수의 기적을 완성하게 한 네 번째 단추는 하트-하트윈드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만난 건 2006년이었다. 그때 영수는 플루트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루 대여섯
시간씩 끼고 살다시피 했던 영수였는데 플루트를 잡는 시간이 자꾸 줄어들기만 했던 것이죠.
엄마는 걱정스러웠습니다.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죠. 엄마는 일단 심미영 선생님과
상담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성취 동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성취 동기란 단어가 엄마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습니다. 목적이 없으면 발전이
없는 것이 당연했죠. 영수는 4년 정도 플루트와 살다 보니 이미 정진학교 관현악부 수준이 아니
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던 영수는 연습을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죠. 관현악부와 더불어 하는 곡들은 너무 쉬웠습니다. 영수는 심한 음악적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어떻게 동기를 심어 주나요?”
선생님은 전단을 하나 보여 주었습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죠.
그렇게 해서 2006년 7월, 영수와 민호는 나란히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오디션에 합격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영수는 다시 플루트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25명의 발달장애 청소년과 5명의 전문 연주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는 정진학교의 관현악부와는 질이 달랐기 때문에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었습니다.
영수의 실력은 다시 쑥쑥 성장하기 시작했죠.
하트윈드 오케스트라를 주관하는 하트-하트재단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재단에서는
단원들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제공했고, 발달장애 극복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무엇보다 공연을 하는 무대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영수는 공연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할 땐 알아서 더욱 열심히 몰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행운은 영수의 능력을 높이 산 김준미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때 영수는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2007년 7월에 국제문화예술교육회 주최 전국 학생
음악 콩쿨에서 비장애인과 경쟁하여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6년 3월에는 워드 3급 자격증
을 획득할 정도로 학습 능력의 가능성도 보여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지만,
음대로의 진학은 엄두도 못내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김준미 선생님은 대학 입학을 추진
하였습니다.
대학의 의미를 모르는 영수에게 엄마는 다양한 친구들과 사귈수 있고, 플루트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하였고, 특수학교와의 차이를 이해한 영수는 수험생답게 열심히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때 KBS 미디어가 설립한 ‘KBS 미디어 콘서바토리’라는 학점인정 학교에 합격하여 가능성을
보였는데 그만 학교가 문을 닫게되는 바람에 다시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백석대학
음악학부 수시 모집에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되었죠.
영수는 대학에 빠르게 적응했다. 발달장애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긴장을
견디지도 못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져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과제를 답안으로 만드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과정이죠. 하지만 영수는 정말 잘 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계속 플루트를
배우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싶어서였죠. 그 일념 하나만으로 영수는 열심히
공부했고 또 연습했습니다.
영수의 이런 노력은 온 학교가 영수를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이나
담당 교수님뿐 아니라 학장님까지도 영수를 학교의 보물로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전체가 변하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의 지원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죠.
이제 영수가 만든 기적의 릴레이는 학교로, 더 큰 울타리로 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수와 엄마도 자연스럽게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4년제 음대에 영수를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영수도 원하는 것이었죠.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본격적인 레슨에 따른 비용이었습니다. 음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몇 억을 써야 한다는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기본으로 써야 하는 레슨비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편입을
준비하다 보니 엄청난 돈이 레슨비로 들어가는 것이었죠. 반주비까지 합산해 보니 편입을 준비한
지 두 달 만에 300만 원이 넘는 돈이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영수의 음악으로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게 하는 길을
결코 포기할 순 없었던 것이죠.
“입실 시작합니다.”
시험 진행 조교가 나와 입실 시간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영수를 다시 쓰다듬었습니다. 영수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처럼요. 하지만, 영수의 눈빛에서 엄마는 분명 즐거운 설렘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꿈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죠.
“잘 할 수 있지?”
“잘 할 수 있어요.”
“이제 들어 가.”
엄마는 영수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엄마도 들어가요?”
“아니, 엄마는 안에 못 들어가잖아.”
“엄마는 못 들어가요. 시험 보니까.”
“그래, 천 번도 넘게 불어 봤으니까 혼자서 잘 할 수 있어.”
“영수 천 번… 이천 번 불었어요. 재미있어요. 조금 어려워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영수가 또 웃었습니다. 엄마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너무
대견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기 때문이었죠.
영수는 플루트를 소중히 안고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뒷모습이 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좀처럼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영수는 이천 번이나 연습을 했으니까 분명 시험을 잘 볼
것입니다. 하지만 잘 못 본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당당히 혼자 설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곁에
없다고 해도 음악이 늘 영수를 지켜줄테니까요.
글 : 심경희/ 사진 : 김성수 외
출처 : <희망꽃이 피었습니다> 中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 '희망대한민국프로젝트'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첫댓글 영수님~화이팅~ 저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영수님의 삶이 향기롭고 은혜롭습니다~그리고 어머니 사랑하고 축복합니다~~저도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 싶어요~
어머나!!! 동희님,,어디서 이글을 보셨어요?? 인터뷰한지 꽤되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궁금했었는데.....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바쁘신 동희님 시간 빼앗길까봐 통화 대신 이렇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영수님도 대단하지만 어머님이 더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정말![대한민국](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3.gif)
어머님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