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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전 명언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린다는 것은 그에게 큰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큰일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하늘에 의해 선택된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하늘은 그렇게 귀중한 사람을 지지하고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일까? 뒤따르는 구절들을 보면 하늘은 이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라 더 어려운 시련들을 연달아 내린다. 그의 몸을 힘들게 하고, 그를 가난하게 만들며, 그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마음의 고통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몸도 상하게 만든다. 건강이 망가지면 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설상가상 가난까지 덮친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늘은) 그의 하는 일을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방해한다. 중국 고대의 유학자들이 이해한 하늘은 이렇게까지 심한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맹자의 스승인 공자에게 하늘은 자신의 막중한 사명감의 원천이었고, 맹자 또한 하늘을 역사를 주재하는 존재, 인간의 선한 심성을 지지해주는 존재로 생각했다. 그래서 맹자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그런데 이토록 정의롭고 자애로운 하늘이 돌변하여 이러한 어려움들을 연달아 주는가? 그 답은 첫 구절에 있다. 바로 ‘이 사람’ 이다. 이 사람은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꼭 같이 둘 수는 없다. 큰 임무를 맡을 사람은 어떤 일에도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겪어낸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갖가지 시련들을 견디고 완숙한 경지에 올라야 한다. 맹자는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는 그로 하여금 분발하게 하고 인내심을 키워서 그의 약점을 강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생을 빨리 포기하고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강 때문에, 배신을 당해서,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서... 이런 이유들이다. 그들은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을 원망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다. 맹자의 이 구절은 중국의 유명한 성군(聖君)인 순(舜)임금을 언급한 바로 뒤에 나온다. 문맥상으로 보면 ‘이 사람’은 아마도 ‘순(舜)임금’ 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순임금이 될 수 는 없겠지만 이 구절은 세상을 버겁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주는 울림이 있다. 인생에서 이러한 모든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경우는 그래도 드물지 않은가?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들이 닥친다면 자신이 바로 ‘이 사람’ 인지, 잠시 행복한 착각에 빠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출전: 『맹자(孟子)』「고자 하(告子 下)」
가까이 있는 자들을 기뻐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자들을 오게 한다
가까이 있는 자들을 기뻐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자들을 오게 한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의 길을 결정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무엇일까? 그 손쉬운 기준은 바로 ‘신명’이다. 내가 하는 일이 신명이 나는가?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인은 “신명이 나면 못하는 게 없다.”고 하는데, 유학에서 신명은 보통 ‘즐거움(樂)’이나 ‘기쁨(說)’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자기 욕심만 챙기려는 사람들은 자신도 신명이 날 수가 없으며 주변 사람들도 신명이 날 일이 없다. 이기적인 사람이 자기 욕심을 채우면서 간혹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 물론 그것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생각대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금방 괴로움으로 바뀌고 만다. 나와 남이 함께 즐겁고 함께 신명이 나야 진정한 즐거움이 된다. 그 경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도 쉽게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다. 함께 즐겁고 함께 신명나는 상황을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다.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가까이 있는 이들을 기뻐하게 하며, 멀리 있는 이들을 오게 하는 것이다.”라고 답하신 것이다. 경쟁으로 내몰린 현대인은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주기 쉽다. 가까이 있는 이들이 스트레스 받고 있으니 멀리 있는 이들도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근자열 원자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인은 인맥을 형성하거나 고객을 모으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마케팅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근래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현대인이 인맥 형성과 고객 확보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지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그와 전혀 다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공자는 “정치하기를 덕(德)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모든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이 때 ‘모든 별’은 근자(近者)와 원자(遠者)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든 별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덕(德)으로써 관계를 유지할 때 가능한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즐거운 일인가 아니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인가? 가까운 사람들은 나로 인해 즐거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로 인해 열 받고 있는가? 멀리 있는 사람을 억지로 오게 하려도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저절로 오고 있?째?’를 항상 생각하면서 나의 덕(德)을 밝히면 행복도 성공도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자로(子路)」
백성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 동시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함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논어』「안연」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가 말하였다. “풍족한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백성의 국가에 대한 신뢰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어쩔 수 없이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 “군사력을 포기해야 한다.” “나머지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합니까?” “경제력을 포기해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백성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 이 대화에서 공자는 정치의 핵심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국민의 신뢰. 정치를 함에 있어 경제력과 군사력은 국가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고, 외세로부터 국가를 굳건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우선하는 보편적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신뢰’이다.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극단적 가정(假定) 하에서 공자는 서슴없이 국민의 신뢰를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것이다. 국가가 군사력을 잃으면 국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고, 경제력을 잃으면 국민의 비참한 삶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만 이런 극한에서도 국민의 신뢰가 남아있다면, 그런 국가는 시련을 극복할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외적인 여건들은 그 빛이 바래지고 만다. 최첨단 무기도 화려한 경제지표도 국민과는 무관한 허상(虛像)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순간, 막강한 군사력과 풍족한 경제력은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독이 될 뿐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죽느니만 못한 그런 삶을 공자는 ?÷?걱정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10위 안에 드는 막강 군사력을 자랑한다. GNP 3만불 시대를 눈앞에 두고서 선진국 대열을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이다. 양적인 성장만으로 국익(國益)과 국격(國格)을 논하는 건 좀 곤란하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성장은 빈껍데기의 화려함일 뿐이다. 국민의 신뢰가 바탕이 될 때, 국가의 품격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을 향한 위정자의 진정성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국익을 말하지만, 사실상 국민의 신뢰보다 더한 국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출전: 『논어(論語)』「안연(顔淵)」
백성과 같은 경우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일정한 마음이 없다
최근에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은 학생들의 무상 급식을 두고 유래 없는 주민 투표를 실시하였다. 결국 뚜껑도 열어보지 못한 주민투표는 결과적으로 서울시장의 사퇴까지 이끌어 내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 그런데 무상 급식이든 차별적 급식이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들은 복지 수준에 따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국가적 상황에 맞추어 무상 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治퓽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이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급여와 비품을 지급받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듯이 의무교육 하에서 무상 급식은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상 급식 또는 능력에 따른 차별 급식을 시행한다고 하며, 학생들의 급식 문제를 급기야 주민투표까지 붙이면서 이념 논쟁으로 이끄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온다.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을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안되어 생활이 불안정하면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즉, 경제적 문제 해결이 교육이든 정치이든 모든 것의 선행 조건인 것이다. 물론 맹자가 살았던 시대의 경제, 또는 의식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생계(生計)형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의식은 복지의 개념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무상 급식 문제에 있어서 먼저 재정을 확보한 다음 실시하는 시기의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복지 정책 확대의 일환으로서의 무상 급식은 필연적일 것이다. 이미 수출 규모로 세계 7위 수준의 경제력을 지닌 나라에서 한낱 어린이들의 급식을 놓고 투표와 이념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계층간 · 세대간 · 지역간의 공감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관자(管子)』「목민(牧民)」에 보면, “倉實 則知禮節 衣食足 則知榮辱(창고가 가득 차 있으면 사람들이 예절을 알고, 옷과 밥이 넉넉하면 사람들이 영욕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최근 계층간의 소득 격차 확대로 사회의 불신도 깊어가고 있을 때 계층간 · 세대간 · 지역간 위화감을 줄이기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때다. 지금이야말로 복지가 답이다.
#출전: 『맹자(孟子)』「양혜왕 상」
순임금은 어떠한 분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안연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순임금은 어떠한 분인가?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모두 같은 사람인데, 만일 성인의 도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도리는 똑같다. 순임금처럼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인의 도를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안연의 말을 인용하여 한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맹자가 순임금과 같은 성현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인간의 본성에 관해 “그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서 서로 멀어진다.”(『논어』「양화편」)라고 주장하였다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동양철학사에서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맹자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전국시대라는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인간의 본성이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변질되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주장하여 이러??선한 본성을 잘 보존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인성에 관한 규정은 그와 동시대의 고자나 그 후대의 순자, 양웅, 한유 등의 인성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매번 요임금과 순임금을 칭하여 증명하고자 하였다. 맹자는 자신이 강조한 인과 의는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인과 의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훌륭한 성인들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맹자는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훌륭한 성인들은 모든 인간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선한 본성을 사욕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잘 채웠던 모범이라고 생각하였다. 맹자는 우리들이 이러한 성인들을 표준으로 삼아서 그들의 훌륭한 점을 배운다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선한 본성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며, 결국에는 이러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맹자의 성선설에 대한 견해를 볼 수 있다. 맹자의 성선설에는 인간을 따뜻하게 보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되어 있으며, 적어도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점에서 인간을 평등하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공자의 도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지만 공자 이외에도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양주와 묵적의 도가 횡행하는 것을 목도하고 그들의 사상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출전: 『맹자(孟子)』「등문공 상(滕文公 上)」
하늘이 이 문물을 없애려 하지 않으신다면,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공자가 제자들과 여행하면서 광이라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광 지역 사람들이 공자 일행을 포위하고 해치려고 하였다. 광인(匡人)들은 예전에 자신들에게 포악하게 했던 양호(陽虎)와 공자를 착각하고 있었다.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비슷했기 때문에 공자 일행을 포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믿는 것이 있었던 공자는 여유롭게 대처했다. 공자는 문왕(文王) 때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주공에 의해 완성된 주나라의 문물이 자신에게 계승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하늘이 주나라의 문물을 없애고자 한다면 광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고, 만약 하늘이 주나라의 문물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것에 대해 공자만큼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공자의 확신은 무모한 것이었을까? 공자의 예측처럼 공자 일행은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무사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공자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의 자긍심은 평소 생활 속에서 쌓은 학문과 실천에 근거한 것이다. 내면에 쌓인 것이 없었다면 자긍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떠한 위험이나 곤경에 처해서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자긍심을 키우는 방법이다. 공자와 같은 노력과 준비 없이 자긍심을 가지려 하는 것은 자만심일 뿐이다. 근거 없는 자만심은 결코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살면서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연하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순간의 지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혜는 오랜 시간 축적된 산물이지 어느 순간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지혜는 바로 꾸준히 공부하고 축적한 결과였다. 어려움에 처해서 당황하지 말고 평소에 지혜를 키우는 학문이 필요한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자한(子罕)」
살인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통일할 것이다.
임명이든 선거이든 리더가 바뀌는 계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이번에 누가 될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각자가 생각하는 유력한 후보를 말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프로 스포츠의 경우 아예 승리 팀 맞추기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상금을 주기도 한다. 맹자가 살았던 당시에도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는 주왕조의 안정이 깨진 뒤라 춘추오패(春秋五覇)니 전국칠웅(戰國七雄)이니 하는 영웅들을 중심으로 한 동맹체제가 국제 관계를 지탱하는 규칙이었다. 이 규칙은 그다지 강하지 못하여 오늘의 이웃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혼란한 국면을 수습할 만한 통일 군주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이 맹자의 귀에도 들렸다. 질문을 하는 양나라 혜왕은 그 사람이 전국칠웅 중 누구이거나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영웅 한 사람이 있는지 말해달라는 취지로 질문을 한 것이었다. 맹자는 질문을 받고서 의뭉스럽게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현실속의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라 ‘살인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란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와 경쟁에서 사실 누가 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 바뀌어도 살림살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은 이벤트 쇼이지 의미 있는 행사가 되지 못한다. 마음의 후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기준이 절실한 것이다. 따라서 누가 되느냐에 관심을 쏟으며 정보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경연이 끝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누르고 지금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시대정신을 찾고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 맹자의 시대는 ‘싸우는 나라들’이라는 이름처럼 전쟁이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다른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는 사람’을 마음의 기준으로 세웠던 것이다. 살인이란 게 꼭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고통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 출전: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상」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
증자가 말씀하셨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은가.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신의를 지키지 않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는가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세 가지, 즉 충(忠)과 신(信)과 전습(傳習)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생각해 보았고,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仁)을 설명하면서 인은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충(忠)과 서(恕)를 제시하고 있다. 충이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바를 진심을 다하여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서란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남들도 하기 싫어하므로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서 내 마음을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신(信)은 ‘붕우유신’이라는 말에서처럼 믿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무엇을 통해서 생기는 것인가.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말한 바가 성실히 이행될 때 가능한 것이다. 전(傳)은 스승에게 전수받은 것이요, 습(習)은 전수받은 바를 거듭 복습하여 자기 몸에 익숙하게 함을 말한다. 증자와 같은 현인도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세 가지 가운데 잘못된 바가 있으면 힘써서 고치고, 잘못한 바가 없으면 이를 유지하는 데 더욱 힘써 이후에도 잘못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증자처럼 하루에 세 가지를 살펴보는 일이 쉽?測?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살피는 것이 힘들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허락할 때만이라도 철저한 반성을 통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 것으로써 전습하는 근본으로 삼는다면 어떨까?
#출전: 『논어(論語)』 「학이(學而)」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공자가 말했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를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어짊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어짊만 하겠는가?” 이 말은 공자께서 자로(子路)를 위시한 제자들과 역대 인물들에 대해 논평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자로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으로 환공을 보좌하여 패자(覇者)의 자리에 오르게 했던 관중을 거론하였다. 관중은 비상한 부국강병책을 펼친 유능한 정치가로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또한 친구인 포숙(鮑叔)과 더불어 우정 그 이상의 관계 맺음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했다. 자로는 최고의 문제 인사를 내세워 그때까지 배운 것을 점검하며 스승의 뜻을 확인해 보려 했다. 관중은 공도 컸으나 잘못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위하기 이전인 공자 소백(小白) 시절 관중은 라이벌이었던 공자 규(糾)를 섬겼다. 심지어 활로 환공을 쏘아 죽이려 했다. 숨막히는 경쟁 끝에 승리한 환공은 공자 규가 망명했던 노나라에 압력을 가해 죽이게 했다. 그리고 그의 측근인 소홀과 관중을 즉각 압송할 것을 요구했다. 소홀은 주군에 대한 충성과 의리, 그리고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이유로 자결했다. 하지만 관중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죄인을 호송하는데 사용했던 함거(檻車)를 타고 갔다. 스스로 죄수임을 표하면서 관대한 용서를 바랬던 것 같다. 위급한 상황에서 환공의 측근이었던 포숙의 간절한 구원에 힘입어 살아났다. 나아가 재상까지 출세했다. 이런 관중의 모습을 놓고 숱한 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평가가 오갔을 것이다. 자로는 당연히 나쁜 쪽에 섰을 것이며 확인을 위해 스승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공자는 뜻밖에도, 자로는 물론 후대의 유학자까지 의구심을 들게 했을 ‘관중이 어질다’는 평을 내렸다. 그것도 두 번 반복했다. 어떻게 관중에게 최상의 평가가 가능한지 궁금할 뿐이다. 그 근거로 무력을 쓰지 않았음을 들었다. 관중은 제나라를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인 수단, 즉 설득과 위세 등으로 제후들을 규합했다. 강한 군대를 거느렸으나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가로서 정말 힘든 결정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춘추시대는 말할 나?㏊?없고 오늘날에도 어려울 것이다. 평화를 통해 얻은 안정은 힘없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고 여겼다. 대선이나 총선 등으로 지도자들을 뽑아야 하는 우리에게도 공자의 평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난감한 평가에 대해 정자나 주자 같은 위대한 학자들도 고뇌에 찬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정치인상은 과연 무엇인가?
# 출전: 『논어(論語)』 「헌문(憲問)」
유익한 세 벗이 있고, 해로운 세 벗이 있다.
살아가면서 친구관계의 소중함은 두 말할 나위없다. 간혹 “친구에게 배우는 것이 진짜 배우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꿈틀하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흥미롭게 추구하거나 편안하게 여기는 방향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고, 생각의 차이가 나거나 행동이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경우 그러한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장단점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좋아해서 유익하거나 해로운 경우에도 이를 초월하고 서로의 말이 난초같이 향기롭게만 들리기 마련이다. 『논어』에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유익한 세 벗이 있고, 해로운 세 벗이 있다. 친구가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학식이 많으면 유익하고, 친구가 편벽되고 아첨을 잘하며 말만 잘하면 해롭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여 경고해 주는 정직한 친구와 자신도 진실해질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와 자신도 현명해질 수 있는 학식이 많은 친구는 좋은 유형의 친구이다. 그러나 행실이 경박하여 남에게 아부를 잘하거나 오만하고 분별없이 행동하거나 불량한 짓을 유혹하는 친구는 나쁜 유형의 친구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다 보면, 자기 계발에 있어서 어떤 친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자아실현이 훌륭하게 발현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현상으로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장래 바람직한 지성인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겸손해 하고 좋은 친구의 언행은 적극적으로 본받으며, 나쁜 친구의 도리에 어긋난 지나친 언행은 경계하겠다는 자세로 전환하여 자기의 인격을 도야할 수 있도록 나날이 새롭게 변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출전 : 『논어(論語)』 「계씨(季氏)」
외형과 내면이 잘 조화된 후에야 군자이다.
연예인이 청소년에게 선망 받는 직업이 된 지도 오래된 일이다. 최근 방송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디션프로그램 열풍도 이런 대중들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고 2000년대 이후면 하나의 사회현상처럼 부풀려지고 있다. 이미 전설이 된 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대중음악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 큰 사건이었다. 랩과 댄스, 힙합을 우리 사회에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했던 것도 그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하였던 서태지라는 인물에게 청소년들의 열광이 바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즐겼고 사랑하였다. 오래된 사건을 지금 다시 꺼낸 이유는 내게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독특한 감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표한 노래 중에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이 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노래는 하나 된 조국을 염원하는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 노래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도 그 노래와 연관해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찍어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일련의 현상을 목격하면서 나는 놀라움과 함께 다소의 열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연예인이 대중에게 끼칠 수 있는 힘에 대해 놀라는 한편, 그에 반해 공부하는 이들의 왜소한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의기소침 했을지 ?霽Ⅴ?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은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만큼 대중에 대한 영향력도 확장일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그들의 자리를 동경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화려한 직업을 동경하고 꿈꾸는 이면에 들어 있는 동기가 무엇일까? 혹 외형적인 효과에 끌려서 그저 그 빛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 앞에 서면 역시 여기에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사회현상이 한 몫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를 거칠게 돌아보면 당장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주류가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라는 것도 돈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가치와 다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회와 한 사람의 기반이 되고 근간이 되는 생각들을 가꾸고 돌보기보다 우선 드러나는 효과나 차림새에 치중하도록 하는 현상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양한 학문이 균형있는 발전을 이루어야 할 대학에서조차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근간 보다는 효과를 살리는 정책이 주류가 되었고, 압구정동 거리에 빽빽이 들어서서 성업 중인 성형외?骸湧?동안외모 신드롬 같은 외모 중시 경향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효과나 현상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근거나 뿌리가 부실한 것은 쉽게 부서지고 상처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스폰지와 같은 흡입력을 지닌 청소년들이 근거가 부실한 행동모형을 배우며 성장하도록 해서 될 일인가? 이런 지점에서 공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는 “바탕이(내면이) 외형보다 뛰어나면 거칠어지고, 반대로 외형이 바탕을 이기면 호화롭게 치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바른 형태가 아니니 외형과 내면이 잘 조화된 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우선 눈에 보이는 몸이 있고 동시에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신이나 마음이 있다. 건강한 정신과 보기 좋은 몸, 아름다운 몸과 아름다운 생각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개가 아니라 연관을 맺고 있는 관계항이다. 거짓으로 아름다움을 가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내실이 중요하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부분을 무시하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겉과 속을 다 같이 챙기자는 공자의 제안은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나의 마음과 정신의 단련을 위해 어떤 움직임을 하고 있는지. 아니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기는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다. 외형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것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아니면 얼마만큼이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리적인 스포트라이트로 화려해 보이는 것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보석을 잘 다듬고 가꿈으로써 울림이 있고, 그리하여 진정으로 빛이 날 수 있는 사람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터이다.
#출전: 『논어(論語)』 「옹야(雍也)」
옛날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배우는 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을 한다
이 말은 공자의 말씀이다. 배움, 즉 학문하는 목적은 자기를 깨우쳐서 자기 터득을 구함에 있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학식을 과시하여 자기 능력을 인정을 받는 데 있지 않음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키는 말씀이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는 공부하여 자기 능력을 남보다 빠르게 배양하여 출세하는 것을 추구한다. 나는 대학에서 30여 년을 가르치고, 65세 고령이 되어서 정년을 맞이한 지도 이제 삼 년 차이다. 생각해보면 아쉬운 것이 참 많다. 누구는 정년하고도 계속 사회활동을 하면서 그 능력이 새롭게 드러나고, 또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능력이 출중하여 각자 자기 일들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유독 나만은 정년하고 보니 마땅히 할 일이 없고 신세가 따분하게 느껴진다. 이런 우울은 아마도 정년 뒤의 고독한 생활에서 연유하는 것이요, 분명 내 인생, 내 인격의 값어치와는 무관할 것이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귀중한 가르침은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의 인?釜볼殆?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밖의 것인 명예, 부귀, 영화 등등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배움으로 자기를 이룸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자기의 사람됨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깊이 반성하고 그것을 가늠하도록 분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옛날 정자(程子)선생님은 “옛날의 배움은 자기를 위했으나 마침내 남을 위하는 데 이르렀고, 지금의 배움은 마침내 자기를 상실하는 데 이르렀다.”고 이 뜻을 풀이하였다. 각자가 모두 배움으로써 자기 인격을 완성해 나간다면 모든 사람이 다 좋은 결과에 도달하지만, 모두 각자가 자기의 인간됨을 고려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모든 사람의 인격이 망가지는 불행한 사태에 도달하고 만다는 말씀이다. 배운다는 것은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고 생활하면서 나 자신을 인격적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느냐를 묻는 자기반성과 자기성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자기 터득과 자기 성찰이 남에게 자기 지식을 과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출전: 『논어(論語)』「헌문(憲問)」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맹자는 수양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욕심의 절제를 주장하고 있다. 시쳇말로 ‘콩 한 쪽도 나눠먹으라’는 말이 있다. 고깟 콩 한쪽 나눠 먹을 게 뭐 있다고 나눠 먹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콩 한쪽으로 인해 이해와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 내에서 위정자와 백성,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이 서로 갈등하든지 아니면 공감하고 연대하는 계기가 된다면, 서로 욕심 부리지 않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게 미덕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쯤은 지성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욕심’에 대해 ‘무엇을 탐내거나 분수에 지나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풀이하고 있다. 즉 분수에 지나치게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는 마음이 바로 욕심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수에 지나치게’라는 말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사람들이 하루 한 끼 먹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사회적 생산력이 낮아 개인의 자아실현보다 사회 전체의 발전이 더 중요시 되던 시절에는 개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이때의 분수에 지나친 욕심은 그야말로 탐욕, 즉 악(惡)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모두 악으로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일단 사회적 조건이 달라졌고, 인간의 모든 행동 유형이 자기이익에 의해서 동기 유발된다는 말을 믿는다면, 심리적으로나 행동상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을 무조건 악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자기 이익이 모든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치열한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좀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적절히 분수에 넘치게 욕심을 가져보는 ??옛말처럼 필연적으로 “욕심이 사람을 죽인다”거나 “욕심이 재앙을 부른다”로 귀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 이익을 적극적으로 챙기려고 하는 심리가 인간의 역사를 진보하게 하고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측면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욕심이 발전에 필요한 ‘긍정적’ 요인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자신의 욕심을 적절하게 절제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충족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고 유교적 도덕사회 건설의 관건이라는 점(『맹자』「양혜왕 상」)을 간파했던 맹자도 욕심을 줄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공자가 “부자와 출세는 사람들이 모두 바라는 목표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그 목표에 이를 수 없다면 그런 곳에 몸을 가까이하지 마라. 가난과 멸시는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일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벗어나려고 하지 마라.”(『논어』「이인」)고 하면서, 욕심에 대한 적절한 절제 없이는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고 보고 욕망(욕심)과 선(자율)이 일치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살기 좋은 사회를 가늠하는 척도가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 그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인간답게 대우하는가를 가장 중요한 척도로 생각한다. 현 정부는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공정사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는 지금 얼마나 공정한가?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투기로 돈을 벌고, 세금을 포탈하고, 또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을 한 사람들이 뻔뻔스럽게 정치판에서 활개를 치거나 공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위정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느끼는 소외감과 불공정의 감정을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도 자기들의 월급은 꾸준히 올리고 여전히 부자 우선 정책을 펴면서도 가난한 국민들에게는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고 고통 분담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가진자들은 맹자가 ‘욕심을 줄이라’고 한 말의 참뜻을 겸허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출전: 『맹자(孟子)』「진심 하(盡心下)」
부모가 계시면 멀리 나가 놀지 않으며,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씁쓸한 얘기를 들었다. 어느 교육자로 정년(停年)을 하신 할머니의 절망적인 경우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남매를 키우는데 모든 것을 쏟으며 평생을 살아온 분이었다. 여느 어버이들이 그렇듯이 자식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의 신앙대상인 자녀들은 소망하던 대로 출세의 가도를 달렸다. 두 자녀는 모두 미국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여 딸은 국내에서 의사교수로 활동하고, 아들은 미국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들 이력의 일부만 비추어도 “당신은 자식농사에 성공했어…… 저 늙은이 복도 많지!” 하고 부러움 섞인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할머니는 긴 한숨으로 응수하곤 한다. “자식이 세상의 영웅이면 뭐해! 이산가족인데…….” 사실 할머니는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산다. 그 공간만큼이나 고독은 깊고 깊다. 설날이나 추석 다음 날, 딸가족이 할머니를 방문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멋적게 할머니를 포옹하고, 역시 의사인 사위는 “어머니 자주 못뵈서 죄송해요”하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다시 고적한 나날이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생기가 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음에 틀림없다. “어머니 저 한국에 왔어요. 학술회의가 있어 급하게 도착했습니다. 스케줄이 빡빡해서 여건이 되면 들르겠습니다.” 아들이 오다니……. 노인은 부산해진다. 그가 예전에 잘 먹던 음식을 떠올리며 장을 보고, 구석구석 집안 청소에, 이부자리 손질에……,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 줄 몰랐다. “아마 이 음식이 싫다면? 저 음식으로? 맵지 않게 해야지? 요리사를 부를까? 차라리 나가서 사 먹일까? 아니야 이 에미의 손맛을 좋아할꺼야!” 그날 밤 아들은 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딸에게 전화를 했다. “얘, 오빠 연락 없었니?” “잘 모르겠는데.” 며칠 후, 저녁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 여기 공항인데요! 바빠서 뵙지도 못하고 갑니다. 건강하시고요! 또 전화드릴께요. 탈칵, 뚜-뚜-뚜” 노인은 긴 구렁텅이로 버려졌다. 혀꼬부라진 소리로 떠듬떠듬 안부를 묻던 미국 손자의 전화를 받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아들이 바빠서 그런데…기대하는 내가 망령이지!”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애를 써 본다. ‘품안에 자식’ ‘병신자식이 효도한다’ 이러한 격언은 만고불변의 진리라 여겨진다. 뭔가 모자라서 시집장가도 못가고, 그저 부모 곁에 빌붙어 사는 자식을 보며 “아이구, 내 팔자야! 저걸 보내야 내가 눈을 감을텐데…….”라고 말은 하지만, 몸져누워 손도 꼼짝하기 싫을 때, 약이라도 사오고 라면이라도 끓여 나눠 먹을 수 있는 피붙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효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촌시대에 부모 주변을 맴돌며 살 수만은 없다. 출장을 가든, 설령 해외지사에 발령을 받아 몇 년씩 부모 곁을 떠난다 해도, 공간적인 거리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머니 저, 영국 런던이예요!” “그래! 어쩜 그렇게 소리가 잘 들리니? 옆집 같구나! 밥은 먹었고? 아픈데는 없니?” “걱정 마세요. 모든 것이 편하고 좋아요. 음식도 잘 맞고요. 오늘은 바이어를 만났는데. 잘 풀릴 것 같?틸? 날씨도 괜찮구요……” “그래 내 아들 장하다. 누구에게나 겸손히 대하고, 나쁜 놈들 조심해라. 강도가 총 들이대면 모두 주어버려라! 이불 잘 덮고 자고……”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안다고 했듯이, 효도는 다분히 경험론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이 나의 마음을 몰라줘서 후회를 거듭하다가 부모를 떠 올리게 될 때, 이미 효도 받을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라”는 상투적인 명제로 여지없이 돌아오게 된다. 때론 장성한 자녀를 아이 다루듯 하는 부모에게 “제가 어린애예요!” 하고 짜증어린 항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의 허튼 훈계에도 긍정적으로 응대하고, 그 마음에 흐뭇한 여운을 드릴 수 있다면, 그런 고민의 여지가 자녀에게 있다면, 공자의 효도지침은 유효할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 「이인(里仁)」
큰 학문의 길은 최고의 선함에 멈추는데 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은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에 이어 『대학』의 세 번째 강령(綱領)이다. 지선이라는 말을 최고선 또는 공동선으로 바꾸어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선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와 ‘멈춤[止]’에 대한 이해이다. 이곳의 ‘지(止)’를 주희는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必至於是而不遷之意]’라고 했는데 잘된 풀이로 평가받는다. 어떤 것이 옳다는 판단에 이르렀어도 이를 실천하거나 지키지 못한다면 거기서 멈춘다고 할 수 없다. 성호 이익은 경전을 경솔히 읽는 것을 경계하면서 옛사람이 말한 본래의 뜻에 따라서 읽어야만 깊은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성호는 그 한 예로 『시경』「소아(小雅)」의 ‘고산앙지(高山仰止) 경행행지(景行行止)’를 들었다. 공자는 이 시를 두고 “시인으로서 인(仁)을 좋아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도(道)를 따라서 행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몸이 늙는 줄을 모르고 날로 힘쓰다가 죽은 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그 긴요한 뜻이 지(止)자에 있다고 본 것이다. 성호는 시(詩)에서의 지(止)자는 이(已)자와 서로 같은 뜻이라고 한다. 높은 산이 앞에 있으면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를 낮게 보려고 해도 소용없다. 큰 길도 마찬가지이다. 큰 길로 가다가 중간에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처음부터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걷어치운다는 뜻은 전혀 없다. 따라서 위의 구절은 “높은 산을 쳐다보는 것처럼 하고 큰 길로 걸어가는 것처럼 한다”의 뜻이 될 것이다. 유학자들이 화엄경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주역』간괘(艮卦)의 핵심개념은 멈춤[止]이다. 멈출 때는 멈추는 것이 멈춤이고, 가야 할 때는 가는 것이 멈춤이라고 하였다. 즉 때에 맞게 멈추고 때에 맞게 가는 것을 모두 ‘멈춤’이라고 했다. 멈춤이 이런 의미라면 최고선 역시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긴장 속에 최고선을 지향하여, 얻으면 잘 지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대한 학문은 바로 이런 것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출전: 『대학(大學)』「경(經) 1장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다.
이 말은 공자의 인품을 잘 드러낸 말이다. 누가 기록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공자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제자가 공자의 평소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온화한 사람은 말씨와 행동이 남과 다르다. 물 흐르듯 잔잔한 언어와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 화를 내는 일도 드물고 남을 비난하는 말도 하지 않?쨈? 항상 작은 미소와 포용하는 행동으로 사람을 대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재미는 없지만 한없이 빠져들어 헤어지기가 싫다. 엄숙한 사람은 주변이 잘 정돈되고 말 수가 적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기도 어렵지만 함부로 대하기는 더 어렵다. 또한 동년배라도 선배나 어른처럼 보이기도 한다. 엄숙한 사람을 만나면 작은 행동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조신하게 보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위엄 있는 모습도 엄숙한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위엄은 신분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서 보이는 엄숙한 기운 같은 것이다. 온화함과 엄숙함은 서로 상반된 것 같은데 공자는 이 둘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가까이하고 싶으면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화를 내지는 않지만 잘못하면 꾸중을 들을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공자다.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 제자에겐 한없이 온화하고 자애로운 스승이지만 게으르고 자만하는 제자에겐 엄숙하고 위엄 있는 스승이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는 제자에게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재여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라고 했다. 재여는 말은 잘 했지만 행실이 조금 미치지 ?幣求?제자였다. 그래서 공자에게 호되게 혼이 난 것이다. 그래도 썩은 나무로 취급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썩은 나무는 아무 데도 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재여는 다른 곳에서는 재아라고 나오는데, 공자의 10대 제자에 포함될 만큼 뛰어난 제자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온화함보다 엄격하고 위엄 있는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엄 있으면 난폭하게 보이거나 사납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난폭한 것은 거칠고 사나운 것을 말하는데, 공자가 거칠게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자의 인품이나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서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공자와 제자가 다른 이유는, 공자는 앎과 실천을 하나로 여겼고, 제자들은 앎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술이(述而)」
군자는 위로 통달한다.
어느 날 공자가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물었다. “왜 선생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배워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인가보다.”(헌문-37) 이 말은 공자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제자에게 한 말이다. 공자는 자신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며’ 또한 ‘낮은 수준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워 올라가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이 상달(上達)이다. 공자는 성숙한 인격의 모범으로 군자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군자와 상대가 되는 소인에 대해 공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공자는 소인을 하달(下達)로 설명하고 있다. 하달이란 배우면 배울수록 낮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배움이란 본래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새로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 자신을 수준 높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소인은 왜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낮은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엇을 추구하고 목표로 삼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군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자신의 이익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와 주변사람들의 공공(公共)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이름을 칭송한다. 이처럼 군자의 인생은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으로 인해 점차 빛이 나게 되고 그에 따라 사회와 국가에 대한 영향력도 점차 커지게 된다. 반면 소인은 매사에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한다. 또한 주변사람들을 그다지 의식하지도 않고, 공동의 목표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무시해 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 그를 비난하고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 소인의 인생은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력도 갖지 못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소인적인 삶의 결말이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는 말은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군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빛이 나게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다. 반면 소인은 개인의 욕심과 편견으로 자신의 인생을 점차 초라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것이 욕심이다. 이러한 사람을 공자는 하달(下達)로 표현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지금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 나의 인생을 빛이 나게 가꾸어 가며 생활하는가? 아니면 끝없는 욕심에 빠져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출전: 『논어(論語)』「헌문(憲問)」
내가 젊었을 때 미천하였기에 보잘 것 없는 일에 다능하다
이 어려서 가난하고 미천했기에 잡다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은 진지한 삶에 대한 공자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과대 포장을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사실이다. 간혹 사람들은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데도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기도 하며, 심지어 없던 경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풍조에 대해 혹자는 ‘스팩(speck)’이라는 신조어로 미화시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공자 스스로, 당시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고백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노예제 사회에서 부끄럽다 여겼던 일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을 만큼 성찰했기 때문이다. 서양은 종교개혁과 청교도 정신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직업은 천직’,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시대의 선각자였던 공자는 이러한 서양의 인식보다 한참 앞서 자기 성찰적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 당당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과거의 비천한 경험이 부끄럽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힘겹던 경험이 당시 공자를 위대한 스승으로 성장시켜 준 밑거름으로 여겼을 것이다. 알려진 바대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함께 학문 연마와 일상생활을 공유하며 살았다. 이러한 방식은 스승으로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적인 성과를 전달하였다는 점 외에도 생활 중에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학문과 생활, 말과 행동,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 사이에서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의 학교가 번성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재다능하다는 점이 성인, 혹은 존경받는 스승의 모든 지표는 되지 못한다. 또한 과거 어려운 성장 과정을 경험했다는 점이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공자에게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성찰하게 한 인격적인 삶의 축이었고, 그를 본받고자 한 제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멋스러움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즈음하여 스스로 인재이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곱씹어볼 단상이 아닐까.
#출전; 『논어(論語)』「자한(子罕)」
삶이 끝남을 신중히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한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효(孝) 분야 전문가라 평가받는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했다. “삶이 끝남을 신중히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한다면 백성들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삶이 끝남을 신중히 함(愼終)’의 의미상 주어는 ‘죽는 사람’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이다. 신종이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처세가 아니라 죽은 부모를 대하는 후손들의 태도, 즉 상례(喪禮)의 엄중함을 말한다. 가족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의 보편적 정서이다. 그러나 유교의 신종은 유별난 데가 있다. 공자는 아버지의 상을 3년 동안 치러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했으며 그 후 삼년상은 유교의 전통이 되었다. ‘먼 조상에 대한 추모’, 즉 제례(祭禮)에 관한 내용 역시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다루지만 유교만의 특색이 두드러진다. 유교 전통에선 일반적으로 4대(代)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사대봉사(四代奉祀)라 한다. 영겁의 윤회를 믿는 불교나 영혼의 불멸을 믿는 기독교와 달리 유교는 죽은 사람의 의의를 살아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정한다. 조상에 대한 정감에는 먼 것과 가까운 것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조부까지가 기억을 더듬고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실적 한계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백성들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라는 그 다음 구절이다. 유교만의 독특한 측면이 있다 해도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고 조상의 귀신을 추모하는 것은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이다. 그런데 유교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가 충만할 때 백성들의 덕, 즉 정치ㆍ사회적 질서가 바로잡힐 것이라 본 점에서 유교의 본질이 드러난다. 유교는 정치ㆍ사회적 질서의 근간을 가족 사이의 정서적 교감, 특히 죽음을 통해 확인하는 질긴 가족애에서 찾는다. 부모가 죽었을 때 뼈에 사무치게 슬퍼하듯 언젠가 자신이 죽을 때에도 자식들이 자신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통곡할 것이다. 나의 죽음은 비록 슬프지만 최소한 4대 동안 만큼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 내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위로 받는다. 이러한 위안이 충만하게 된다면 사회질서 역시 원만하게 유지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질서는 가족애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입장은 개인의 정서와 사회적 정의는 구분해야 된다고 보았던 서구 근대의 사회철학 전통과 대립한다. ‘신종추원’은 유교가 종교라고 말하며 ‘민덕후의(民德歸厚)’는 유교가 사회철학이라 말한다. 이 구절들을 통해 유교가 종교와 사회철학이 결합된 신념체계임을 새삼 확인한다.
#출전 : 『논어(論語)』 「학이(學而)」
소인은 곤궁하면 넘친다.
공자가 도덕정치를 주장하며 천하를 주유(周遊)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공자를 ‘상가집 개’ 혹은 ‘떠돌이 개’로 비유하며 비난했다. 『사기(史記)』에 보면, 공자 스스로도 “외뿔소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저 광야에 홀로 떠돈다.(「공자세가(孔子世家)」)”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공자가 중원(中原)을 돌아다니며 유세했던 시기는 그가 ‘천명을 깨달은(知天命)’은 50세 중반 이후였다.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대혼란기에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14년이란 긴 여행 중에 공자와 제자들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온갖 고난을 겪었다. 예컨대 광(匡) 땅을 지날 때 양호(陽虎)로 오해를 받아 죽을 뻔 했다가 변복을 하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일, 송(宋)나라에서 환퇴(桓魋)라는 폭력단에게 포위되었던 일 등이다. 특히 진(陳)나라 옆을 지날 때에는 많은 제자들과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만 식량이 떨어지고 말았다. ?營?상황을 『논어』에서는 ‘제자들이 병들어 일어날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끼니를 거른 정도가 아니라 병이 날 정도였으니,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 다혈질인 자로가 공자에게 불평하듯 말했다. “선생님 같은 군자도 이렇게 곤궁합니까?” 이 말은 스승에 대한 강한 불신과 원망이 속으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었다. 공자 일행이 진나라로 길을 떠나기 바로 전에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공자에게 전쟁의 진법(陳法)을 물었다. 그 때 공자는 ‘예(禮)에 관해서는 알지만 군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을 거절한 후 이튿날 위나라를 떠났다. 바로 이 점이 자로가 스승을 불평했던 한 가지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자로는 위령공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주고 신임을 얻어 좋은 직책을 받아 정착했더라면 지금의 고난을 피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생각은 달랐다. 공자는 위령공이 무도한 임금이며 모든 관심사가 전쟁에만 집중된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가치도 못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위나라를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공자가 위령공을 피해 진나라로 향할 때,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가 초(楚)나라로 가는 공자 일행을 막기 위해 군사를 보내 포위했다. 그 결과 양식이 끊어진 지 7일이 되어 공자 일행은 병들어 죽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이 때 자로가 불만과 원망이 섞인 말로 공자에게 묻는다. “도덕을 갖춘 군자라면 하늘이 지켜주고 사람들이 도와서 곤란을 겪지 말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곤궁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명(命)에 달려 있고, 부귀영화는 하늘에 달려있다.(안연-5)” 이 말은 곤경에 처해서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군자의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견뎌내는 사람이 군자라면, 눈앞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을 소인’으로 보았다. 공자는 이것을 ‘소인은 곤궁하면 넘친다’라고 표현했다. 살다보면, 평상시에는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여 차마 하지 못할 일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공자의 말을 통해 고난에 대처하는 의연한 군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출전: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가까운 사람들은 기뻐하게 하고 먼 사람들은 살러 오게 한다
이 구절은 초나라의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상대로 표를 달라고 애원한다. 아울러 다른 경쟁자에 비해서 자신이 지역이며 나라를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 스스로 못났다고 ??일이 없으므로 제 잘난 점을 돋보이게 하는 당연할지 모른다. 선거 때 후보자의 말만 들으면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지역이면 지역, 나라면 나라 모두 좋아지리라 생각할 수가 있다. 선거가 끝나고 당락이 결정되고 당선자가 직무를 시작하더라도 이전과 좋아졌다는 이야기보다는 그저 그렇다거나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졌다는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온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선거 앞이나 뒤나 같은 사람인데 왜 처음과 끝이 같지 않고 다른 것일까?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유권자 모두 책임이 있다. 언론은 공약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또 약속대로 진행되는지 의제화시켜야 한다. 정치인은 무조건 당선되고 볼 일이라며 선심성 발언을 내놓을 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권자는 그놈이 그놈이라며 체념할 게 아니라 후보자의 면면을 꼼꼼히 따져서 심판의 권리를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처럼 각자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정치인은 유권자와 언론을 무서워하며 타당한 공약을 내걸고 내건 공약을 지키느라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어느 한쪽이라도 제 역할을 엉터리로 하게 되면 “대충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울러 정치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그 목적(이상)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 학생, 기업 모두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대로 노력한다. 결과가 예상만큼 좋지 않으면 스스로 책임을 느낀다. 정치인도 목적을 세워서 스스로 그것에 다가서도록 노력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언론도 해당 시기의 정치인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를 공론화시켜서 끊임없이 책임의식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도 목표를 정해서 정치인으로 하여금 그것에 실현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근열원래近說遠來”라는 목표를 삼았으면 한다. 쇼와 이벤트로 사람을 불러 모을 게 아니라 진정성과 실효성으로 사람이 모여들게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준과 심판을 분명히 해야겠다.
# 출전: 논어(論語) 「자로(子路)」
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남당 한원진은 “『중용』을 한마디로 결론짓는다면, ‘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남당의 논평은 이 구절이 갖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구절에는 유학(儒??의 진리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으며, 그만큼 그 의미도 심오하고 난해하다. 그러나 그 깊은 의미를 논하지 않더라도, 이 구절을 음미하다보면 보통 사람들도 쉽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향기가 있다. 작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특히 거기에 출연한 박정현은 여러 명곡을 아름답게 불러내며 일약 국민 요정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녀가 부른 곡 중에 조용필 작사‧작곡의 는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큰 히트를 치기도 하였다. 그 곡의 가사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만약 ‘도(道)’를 ‘삶의 참 의미’ 정도로 의역해 본다면, 위 노랫말은 도라는 것이 우리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의 진솔한 마음을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성공에 조급하고, 위대한 일을 이루려는 공명심에 사로잡히기 쉬운 젊은 시절에는 마치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딸 기세로 달려들기가 십상이다. 그런 까닭에 소중한 것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먼 길 떠나기에 혈안이 된다. 앞만 보고 저 멀리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삶과 사람은 사라지고 일과 성공만 앞에서 어른거린다. 삶과 사람을 위한 일과 성공이 아니라, 일과 성공을 위한 삶과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도는 우리 삶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고, 유리(遊離)된 것은 도가 될 수 없다.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자체에 있다. 도는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 남편과 아내와 같은 일용(日用) 인륜(人倫)의 삶,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 삶 속에서 발견되고 이루어진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라는 구절은 이와 같은 지혜를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불혹(不惑)을 지나는 중년의 선배로서 먼 길 떠나려는 후배들에게 “도라는 것은 우리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출전: 『중용(中庸)』제1장(第一章)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추천하지도 않으며, 사람 탓에 좋은 견해까지 버리지도 않는다.
군자는 유학에서 희구되는 바람직한 지도자다. 그는 내 인격을 수양하고 내 주변을 조심스럽게 정돈하여 노심초사 세상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그런 리더십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 같은 지도자상이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필요하며 요즈음의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주목해 볼 때도, 더없이 요구된다는 점에 새삼스럽다. 이 같은 군자의 리더십 가운데, 공자는 사람의 말이 표상하는 것과 그 인격적인 면 두 가지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유의사항을 표명하였다. 얼핏 사람의 말만 가지고 추천하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그가 가진 좋은 아이디어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었다. 바람직한 유교적 지도자로서 군자란, 누가 실속 없이 말 표현이 좋다고 해서 천거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자료를 축적하여 검증한다. 그런 뒤에 채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사람 됨됨이 탓에 좋은 아이디어까지 폐기처분하지도 않는다. 사람을 쓸 때 그의 말만 듣지 않고 역량을 확인해서 한다면 훌륭한 사람을 얻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격적으로 안 좋다면 그를 버려야 할 것이겠지만 그의 좋은 견해는 채택하여 쓰는 지혜가 요구된다. 결국 인간다움의 미덕을 가진 관리와 세상을 이끌 훌륭한 이론을 가진 사람을 놓치지 않는 냉철한 혜안은, 유학 본연의 목표인 제세안민(濟世安民)을 위해 필요하다 할 것이다.
# 출전: 論語 「衛靈公」 22장.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대적할 수 없다. 인간으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도 유구한 천지의 세월에 비하면 짧디 짧은 시간을 살다가 간 것이다. 아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대지도 언젠가는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살아있는 것, 반드시 헤어지며 마침내 소멸한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이치를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이 거스를 수 있으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별리(別離)와 무화(無化)는 이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치 우리가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졸리면 자듯이... 그런데 이렇듯 자연스러운 이별이 언제나 쉽지 않은 데서 고뇌가 생겨난다.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별하고 싶지 않고, 무(無)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때 친했던 이들도, 지금 친한 이들도, 소원한 이도, 가까운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이별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 자신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 친하면 친할수록 좋으면 좋을수록 헤어짐은 큰 고통이다. 어떻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바람 부는 어스름 저녁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과 시냇가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고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고서...’라고 탄식을 내뱉는다. 아마 제자들은 뜬금없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선생님의 입에서 세월의 속절없음에 대한 탄식이라니... 어쩌면 정말 공자는 탄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자들의 해설을 현미경 삼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공자의 이 말씀은 인간사의 이별, 만물의 스러져 감, 더 나아가 천지의 무화(無化)를 자연스레 수용한 자의 언어이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를 자신의 삶의 과정으로 포용하였기에 가능한 발언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적하려 하지 않고 수용하는 데서, 별리의 고통을 초극한 자의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경지를 제자들에게 깨우쳐 주려는 스승의 따스한 가르침의 말씀이기도 하다.
#출전: 『논어(論語)』「자한(子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