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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박국서를 읽다 보면, 선지자 하박국의 영적 여정이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박국 1장에서, 선지자는 탄식하며, 하나님과 논쟁했습니다. 질문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내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왜 침묵하십니까?”
하박국 2장에서, 그는 자신의 무력함과 이성적 한계를 인정하고, 기도의 파수대인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선언과 함께, 온 세상이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박국 3장에 이르러, 선지자의 질문과 탄식은 경배와 찬양, 그리고, 위대한 기도로 승화됩니다.
하박국 3장은 전체가 한 편의 웅장하고 거룩한 시이자, 기도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기서 “시기오놋”이란, 단조로운 읊조림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격정적인 감정이 담긴 찬양의 곡조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박국의 기도는 개인의 소원을 아뢰는 사사로운 간구를 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 앞에, 마음과 영으로 드리는 거룩한 영적 예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박국 시대 못지않게 혼란스럽고 어둡습니다.
“하나님, 왜 세상에 악인이 득세합니까? 왜 성도들은 시련의 풍랑을 맞이합니까?”
사탄은 ‘빛의 천사’처럼 꾸미고, 온갖 어려운 문제들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나쁜 일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을 쏟아내도록 유혹합니다.
이러한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때,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여기서 “놀랐다”는 말은, 장차 임할 바벨론의 침략이나 환난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장차 임할 고통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외,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경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앞으로 행하실 일에 대한 계획을 말해 주자, 그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전에 계시고, 이 세상이 그의 발 아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놀라움과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을 깨닫고서, “나는 놀랐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과 논쟁하거나 하나님의 행동을 더 이상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방 민족인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취소하도록, 하나님께 호소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손을 붙잡아 주거나, 이스라엘을 용서하라는 요청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은 전적으로 옳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며, 이스라엘은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질문하고 논쟁하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하박국이 그의 시선을 이스라엘이나 바벨론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고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과 갈대아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괴로왔습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과 갈대아인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새로운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갈대아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죄가 많은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용하신다는 점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그런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성전에서, 죄 많은 인간과 함께 계시는 주님과 주님의 지배 하에 있는 우주에 대한 놀라운 일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을 그렇게 보자, 이스라엘과 갈대아인들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이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온 세상은 악한 일만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 밖에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보다 더 악해 보이는 사람을 바라보며, “왜 저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는가?”라고 분개합니다. 하박국도, 처음에는 갈대아 사람들의 죄악에만 몰두하여, 자기 민족의 영적 부패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루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주한 순간, 그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면,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을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수록,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을수록,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판단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욥은 극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재산을 잃었고, 자녀들을 잃었으며, 자신의 몸마저 병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자기들의 지식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 욥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주권을 마주하게 됩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욥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낮춥니다. 욥의 회복은 단순히 모든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옛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나는 놀랐다”는 말 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 나의 의로움이나 세상의 억울함을 먼저 내세우지 마십시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나아갈 때, 기도의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박국은 무엇을 간구했습니까? 그는 자신의 구원과 평안을 구하지도 않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갈대아인들과 전쟁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고, 예루살렘이 약탈당하지 않도록, 간구하지도 않았으며, 성전이 파괴되지 않도록, 간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또,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런 간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갈대아 사람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를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시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그리고, 온 세상 안에서 행하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목적뿐입니다. 그가 구한 유일한 간구는 이것이었습니다. “주여,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일만 염려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하나님께 수년 내에, 하나님의 일이 이스라엘에서 부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부흥하다”라는 말은 본래 “보존하다”, “살려두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크게 두려워한 일은 유다가 멸망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오 하나님이여 유다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부흥하다”는 말에는 “살려두다”, “보존하다”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깨끗케 하고, 교정하다”, “악을 제거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죄와 불순물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박국은 다가오는 심판을 바라보면서, “주님, 우리가 벌을 받고 있을 때라도, 장차 임할 구원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받을 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박국은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단순히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만을 구하는 기도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심판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취소해 달라고 간구하는 대신, 그 엄중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이 살아나고, 드러나기를 구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내 뜻대로 내 삶의 환경을 바꾸어 주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내 영혼이 정금 같이 단련되게 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부흥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 삶에 닥친 고난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영적 생명력을 먼저 염려하며 기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박국의 마지막 호소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짧은 기도에는 하박국의 깊은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공로나 이스라엘의 잘한 점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할 바벨론의 심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와 거룩함에 따른 당연한 결과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노”라는 말은 하나님의 감정적 분풀이가 아니라,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뜻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인간의 자격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긍휼’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바뀌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다가오는 환난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다루시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인정하면서도, 그 진노 가운데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주님의 판단은 옳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나,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택한 자녀를 향한 긍휼의 애타는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완전한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언제나 올바른 판단만 내리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합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지만, 행동으로는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워합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망합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눈앞의 문제 때문에 쉽게 낙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세상과 타협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라고 고백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성읍과 백성의 슬픔을 정직하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폐허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눈앞의 현실이 괜찮다고, 억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긍휼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건강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한 일이,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 앞에 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앞두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말할 때, 반드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합니다.(롬 5:8)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먼저 완전해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의로워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그 긍휼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주님의 긍휼하심 속에서, 평안과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소원만 앞세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기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였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지적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은 깊이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고, 자기 의를 내세우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살피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동 속에,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주옵소서.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상한 심령을 회복시켜 주시며,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지친 자에게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