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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서양 ‘개’인삼
가지과의 식물인 맨드레이크(mandrake)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했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예전부터 알려진 식물이다. 뿌리의 생김새가 인간의 하반신 비슷하게 갈라지는 데다 바로 그 갈라지는 부분에 생식기 비슷한 게 달려 있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언급되어 있는 바대로라면 맨드레이크는 “뽑으면 사납게 울부짖는다. 이렇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미쳐 버린다.” 그래서 맨드레이크를 뽑을 때는 사람 대신 검둥개를 썼다고 한다. 맨드레이크 주변의 흙을 뿌리가 보일 정도로 파고 뿌리 주위에 줄을 묶어서 끝을 개의 목에 연결한 뒤에 개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맨드레이크를 뽑게 한다는 것이다. 개 대신 사람을 쓰기도 했던 모양이다. 뽑다가 미쳐버리든 말든.
맨드레이크는 발이 있어 도망을 가기도 한다. 도망 가는 걸 막으려면 여성의 소변이나 생리혈을 뿌려야 했다.
또한 맨드레이크는 교수대 아래에 자라는 식물이기도 하다. 뿌리에 사형수의 영혼이 숨어 있다고 하는데 고대 아랍에서는 ‘만드라고라’라는 작은 남자의 악령이 이 식물에 산다고 믿었다.
실제로 맨드레이크는 환각 증상을 유발하는 유독한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에 포함된 복잡한 염기화합물로 대개는 무해하지만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종류도 있다. 노란색 열매에는 마취나 최면, 환각 성분이 있고 뿌리는 최음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왔다. 중세의 마술사들이 비밀스러운 의식에 사용한 것은 당연하다. 우울증·불안·불면증 등의 치료나 수술용 마취제로도 쓰였다.
맨드레이크 차(茶)를 마시고 하늘을 나는 환상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늘을 나는 환상은 산타클로스 전설과 연결되기도 한다. 에스키모 주술사들의 환각 체험도 같은 맥락이다.
맨드레이크는 생김새나 환상적인(?) 효과에서 우리나라의 인삼과 흡사하다. 인삼의 학명은 파낙스 진생(Panax ginseng)인데 희랍어 Pan(all·모든)과 Axos(cureㆍ치료)가 복합돼 ‘만병통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맨드레이크로서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경지인 것이다. 그러니 맨드레이크의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원래의 것보다 좀 못한 것을 뜻하는 접두사 ‘개’를 붙여서 ‘개서양인삼’이라고 하면 어떨까. 뽑을 때 검둥개를 썼다고 하니 ‘개서양개인삼’은?
▲ 그림·권오택
나도 만병통치
한반도 남쪽에 있는 어느 온천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 온천은 예부터 만인의 병을 낫게 한다는 전설이 있는 신령한 약수터 자리에 만들어졌다. 만인의 병, 줄여서 만병을 낫게 하던 약수의 후손인 온천수는 게르마늄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를 두고 서구와 일본의 학자들이 ‘21세기 기적의 물’ ‘불가사의한 신비의 약수’로 부른다고 한다. 어떻든 홈페이지에서 공식적으로 온천수의 특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증강시켜 온갖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기실 대부분의 동네 목욕탕 물로도 어느 정도 이런 효과는 본다. 탁월하냐 보통이냐의 차이일 뿐.)
▶항암과 암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 체내에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인터페론을 증가시키므로 암에 특효가 있다는 부연 설명이 붙어 있다.
▶혈액 중 노폐물과 콜레스테롤을 배출시켜 피를 깨끗하게 하므로 피로 회복과 스트레스 해소, 정력 증진에 효험이 있다.(이건 웬만한 목욕탕 벽에도 다 붙어 있는 내용이다.)
▶신경통 및 류머티즘(관절염) 치료에 효험이 있다.(동네 목욕탕에서도 이하 동문.)
▶게르마늄은 습진, 피부병, 냉증, 부인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마찬가지다.)
▶게르마늄은 피부 노화 방지 및 갱년기 장애에 효험이 있다.(일러 무삼하리오.)
▶게르마늄은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험이 있다.(이런 문구는 동네 목욕탕에서는 함부로 붙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효한 약수의 후예인 것이다.)
▶게르마늄은 협심증과 위장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역시 근거 없이는 주장할 수 없는 내용이다. 동네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다.)
온천수 하나 가지고 과장을 하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 이야기는 딴 ‘동네’에 비하면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인터넷을 치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구운 마늘’ 동네를 살펴보자.
▶각기, 간경변증, 간장병, 간질, 감기, 강심제에는 구운 마늘 15~20개를 1회분 기준으로 1일 2~3회씩 10일 이상 복용하는 식의 용법으로 효과를 본다. 건선, 건위, 고혈압, 광견병, 구충, 근육류머티즘에도 효과가 있다.
▶기계총(두부백선)에는 생마늘을 짓이겨 4~5회 바르면 낫는다.
▶기침은 기본이고 당뇨, 더위증, 독창, 독충해독, 동상, 두통, 류머티즘, 무좀, 발한, 버짐, 변비, 불면증, 비출혈(코피), 독사에 물린 데, 상완신경통(上腕神經痛), 설사, 습담(濕痰), 심장병, 옻 오른 데, 완선(頑癬), 요통, 위경련도 마늘이면 끝.
▶위암, 식체, 음종(남자의 생식기에 열이 있고 늘 발기한 상태인 병), 이뇨, 정력 증진이 모두 구운 마늘 15~20개를 1회분 기준으로 1일 2~3회씩, 길게는 10일쯤 먹으면 된다. 아예 넉넉잡고 한 달쯤 먹으면 만병은 몰라도 백(百)병쯤은 거뜬하게 나을 것 같다.
▶조갈증, 종독(腫毒), 중이염, 진정, 진통, 출혈, 충치, 치은염, 치질, 토사곽란, 토혈과 각혈에 풍습(風濕), 해소에도 효험이 있다.
▶지엽말단인 티눈에서 피로회복까지 모두 마늘이 다스리신다.
진짜 만병통치
이 약(비방)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이완해줌으로써 심장마비 같은 돌연사를 예방한다. 온천수처럼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하고도 ‘감마’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고 세포의 증식에 도움을 준다. 이 비방으로 인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endorphine)은 내재성(endogenous)과 모르핀(morphin)의 합성어로 자가발전, 천연, 공짜인 모르핀인데 외부에서 투여하는 일반 모르핀의 수백 배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약을 경험한 사람의 피를 뽑아 분석하면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세포가 생성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혈압을 떨어뜨리며 혈액 순환을 개선시킨다.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에서 암, 성인병까지 예방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화학적인 효과 외에 운동 효과도 뛰어나다. 한번 동작에 5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효과가 난다. 사람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한꺼번에 움직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세밀하게는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약에는 돈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의에게 가서 처방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이 만병통치약의 이름은 웃음이다. 누구나 다 알고는 있겠지만. -- 주간조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