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가문의 계보 탐색
碧草/ 朴魯鶴
우리 조선조의 당파구도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시작해서 동인
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어 이른바 4색당파라고 하는
것이 생기게 된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대충은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필자가 간략하게 당파에 대해 도움 설명하고자 한다.
가. 동서분당(동인, 서인)
선조 대 김효원이 전랑에 추천되었다. 이때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조참의 심의겸
이 거부하여 효원이 정랑이 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효원은 젊은 선비들의 환
심을 크게 얻고 있었는데, 이에 선비들이 의겸을 공박하였다. 의겸도 일찍이 권력
을 잡은 간사한 자를 물리치고 선비들을 보호한 공이 있었다. 이리하여 늙고 벼슬
이 높은 사람들이 의겸을 옹호하였다. 처음은 하찮은 일에서 점차 커지게 된 것이
다. 효원의 집이 동쪽에 있었으므로 동인이라 하고, 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었으므
로 서인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
김효원이 알성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조 전랑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가
윤원형의 문객이었다고 하여 심의겸이 반대하였다. 이때 양편 친지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우면서 서로 배척하여 동인, 서인의 말이 여기서 비롯하였다. 효
원의 집이 동쪽 건천동에 있고 의겸의 집이 서쪽 정동에 있기 때문이었다. 동인의
생각은 결코 외척을 등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서인의 생각은 의겸의 공로가
많을 뿐더러 선비인데 어찌 앞길을 막느냐는 것이었다.
나. 동인의 분당
선조 때 서인파의 영수였던 정철을 계략을 써서 파직, 유배시키면서 처벌에
대해 동인은 또 둘로 나누어 지게 되는데 남인은 정철을 죽일 필요까지야 있겠는냐
는 온건파로 이황(퇴계)의 제자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이들을 남인이라 하며 우리 함양 박문은 퇴계의 의견에 따른 남인의 길을 걷게 되
는 것이지요.
한편 북인은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들로 아주 강직하게 정철을 죽여야 한다고 주
장했는데 이를 북인이라 합니다.
이 북인은 후일 광해군을 지지하는 이이첨, 정인홍 등의 대북파이고 영창대군을
지지한 유경영 같은 소북파로 분당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다. 서인의 붕당
광해군을 폐출시킨 인조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정책의 수립과 상대 붕당
의 탄압 과정에서 노장 세력과 신진 세력 간에 갈등이 깊어지면서 노론과 소론으
나뉘지게 되는데 정권을 잡은 서인들중에서는 남인세력에 대한 강경탄압론자들이
고 대표적인 사람은 노론의 거두 송시열입니다. 이에 반해 윤증은 남인에 대해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젊은 세력이라 볼 수 있는데 이를 소론이라 부릅니다.
대충 설명드렸습니다.
아 참 훈구파란 무엇일까요?
단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조를 도와 단종을 죽이고 권력을 움켜진 세력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들의 세력은 대했지요. 훈구파와 왕의 외척인 척신파들이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답니다.
후일 ㅡ성종 때 이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자를 끌어드들입니다. 바로 김
종직의 제자들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필자는 이들을 사람파라고 부르지요.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필자가 남인 명가의 가계를 탐색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간혹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라도 히는 밤이면 선조들의 자취를 더듬기 위해 족보를
탐독하면서 선조들의 배위 성씨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당시의 선조들의 혼인관계를
맺은 성씨를 찾아보면 남인인 우리 가문과의 타 성씨와의 조선조 당적관계도 파악
되지 않을까 하고 탐색을 시작한 것인데 작자 미상의 오보(午譜)라는 책이 있는데
남쪽 방향에 있다고하여 오보(午譜)라고 하며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남보(南譜)
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양을 기준으로 보면 남족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인(南人) 명가(名家)의 주요 가계를 수록한 일종의 통합보(統合譜)이다.
이 책 남보에는 원(元)·형(亨)·이(利)·정(貞)의 4책(冊)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筆寫本)이다. 편년(編年)은 대원군(大院君)이 집정하던 1870년대로 추정되
는데, 당시 대원군은 서원훼철 등 일련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며 인재선발에 있어서
도 사색등용(四色登用)의 기치를 내 건 바 있었다. 따라서 이 남보는 인재등용을 위
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북인가계의 통합보인
「북보(北譜)」역시도 편찬 동기는 남보와 같으며, 체제도 동일하다. 다만 수록된
성씨와 본관의 수에 있어 남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정치적
성쇠에 관련이 깊다.
남인은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부터 이른바 야당으로 존재해 왔고, 경신환국(庚
申換局)·갑술환국(甲戌換局)을 거치면서 정치적 쇠퇴를 거듭한 것은 분명하지만 서
인·노론의 견제세력으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분명하고, 남인을 구성하는 세
력범위 또한 광범위하여 인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남보가 4책 분량으로 꾸
며진 것에서도 남인집단의 잠재성을 간파할 수 있다.
남보는 성씨별(姓氏別)·본관별(本貫別)로 편차(編次)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
은 편차된 성씨의 선후 문제인데, 물론 형태적으로는 각 성씨에 딸린 본관수가 많
은 성씨부터 수록해 나간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순서는 곧 남인 내부에서의 정치적
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제 각 책별로 체제와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권 : 원(元) :
이씨(李氏)가 한 책분으로 묶여져 있다. 이를 본관별로 열거하면
전주(全州)·연안(延安)·한산(韓山)·광주(廣州)·경주(慶州)·여주(驪州)·함평(咸平)·평
창(平昌)·진보(眞寶)·전의(全義)·재녕(載寧)·고성(固城)·성주(星州)·신평(新平)·광양
(光陽)·영천(永川)·우계(羽溪)·예안(禮安)·양성(陽城)·흥양(興陽)·원주(原州) 등
모두 21관이다.
▼2권 : 형(亨) :
김씨(金氏)*** 안동(安東)·경주(慶州)·선산(善山)·원주(原州)·강릉(江陵)·의성
(義城) ·풍산(豊山)·광주(光州)·예안(禮安)·김해(金海)·고령(高靈)
서흥(瑞興)·순천(順天)·청도(淸道)·해평(海平)·함창(咸昌),
정씨(鄭氏)*** 동래(東萊)·초계(草溪)·청주(淸州)·진주(晉州)·경주(慶州)·해주(海州)
· 하동(河東)·온양(溫陽)·철성(鐵城),
최씨(崔氏)*** 전주(全州)·삭녕(朔寧)·강릉(江陵)·강화(江華)·영천(永川)·화순(和順),
안씨(安氏)*** 순흥(順興)·광주(廣州),
박씨(朴氏)*** 밀양(密陽)·함양(咸陽)·무안(務安)·순천(順天)·죽산(竹山),
유씨(柳氏)*** 진주(晉州)·문화(文化)·전주(全州)·풍산(豊山),
신씨(申氏)*** 평산(平山)·고령(高靈)등
7개 성씨에 44개 본관에 이른다.
▼3권 : 이(利) :
윤씨(尹氏)*** 파평(坡平)·남원(南原)·해평(海平)·해남(海南),
권씨(權氏)*** 안동(安東),
한씨(韓氏)*** 청주(淸州),
조씨(趙氏)*** 한양(漢陽)·양주(楊州)·풍양(豊壤)·순창(淳昌)·평양(平壤),
홍씨(洪氏)*** 남양(南陽)·당성(唐城)·풍산(豊山),
황씨(黃氏)*** 창원(昌原)·상주(尙州)·장수(長水) 등
6개 성씨에 17개 본관이 수록되어 있다.
▼4권 : 정(貞) :
송씨(宋氏)*** 진천(鎭川)·여산(礪山)·은진(恩津),
심씨(沈氏)*** 청송(靑松),
허씨(許氏)*** 양천(陽川),
남씨(南氏)*** 의령(宜寧)·영양(英陽)·고성(固城),
성씨(成氏)*** 창녕(昌寧),
강씨(姜氏)*** 진주(晉州),
오씨(吳氏)*** 동복(同福),
정씨(丁氏)*** 나주(羅州),
채씨(蔡氏)*** 평강(平康),
목씨(睦氏)*** 사천(泗川),
유씨(兪氏)*** 기계(杞溪),
민씨(閔氏)*** 여흥(驪興),
우씨(禹氏)*** 단양(丹陽),
조씨(曺氏)*** 창녕(昌寧)·옥천(玉川),
장씨(張氏)*** 인동(仁同),
노씨(盧氏)*** 광주(光州)·교하(交河),
신씨(愼氏)*** 거창(居昌),
서씨(徐氏)*** 부여(扶餘),
나씨(羅氏)*** 나주(羅州)·안정(安定),
전씨(全氏)*** 옥천(玉川)·평강(平康),
도씨(都氏)*** 팔거(八莒),
하씨(河氏)*** 진주(晉州),
손씨(孫氏)*** 경주(慶州)·일직(一直),
배씨(裵氏)*** 성주(星州),
금씨(琴氏)*** 봉화(奉化),
강씨(康氏)*** 재녕(載寧),
변씨(邊氏)*** 원주(原州),
여씨(呂氏)*** 성주(星州),
고씨(高氏)*** 개성(開城),
구씨(具氏)*** 능주(綾州),
문씨(文氏)*** 남평(南平),
남궁씨(南宮氏) 함열(咸悅) 등
32개 성씨에 41개 본관이 수록되어 있다.
필자가 일일이 족보상의 배위별 성씨 수를 통계표로 나타낼 수는 없으나 일부
정랑공 선조 지하 선조 배위조사 결과와 다른 것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성씨간의 혼사에도 같은 남인 계열에 속한 성씨와 혼인하였고 노론이나
소론에 속한 성씨와는 거의 통혼한 사실이 없음도 발견하게 되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다음 기회에 좀 더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기로 한다.
2011년 9월 18일
碧草/ 朴魯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