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본격적 여름 휴가철이다.
'길이 막히네, 차가 밀리네' 투덜대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대다수 직장인에게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황금 같은 휴가니까….
고맙게도 교회 성지는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다.
딴 세상에 온 듯한 평화로운 성지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휴가지로 가는 길에 들렀다가 쉬어갈 만한 성지들을 관구(서울ㆍ대구ㆍ광주)별로 소개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성지를 중심으로 했다. 이번 호는 서울관구 편이다.
▨절두산(서울 마포구 합정동 96-1)
병인박해(1866년) 당시 무수한 순교자들이 처절한 죽음을 맞은 곳이다.
절두산과 한강변이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국순교자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옛 초가집 지붕을 연상시키는 추녀, 갓 모양의 성당, 순교자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상징하는 벽 등
건물을 구성하는 하나하나가 순례객들에게 옛 정취를 불러일으키며 포근한 정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박물관은 또 당대 성미술 거장들의 역량이 집결된 '교회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과 성당을 돌아보고 성지 광장으로 내려오면 한가운데 우뚝 선 김대건 성인 동상이 순례객을 반긴다.
광장 앞으로 툭 트인 한강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다 시원하다. 일반인들에게 천주교 성지가 아닌 편안한 쉼터로
소개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문의 : 02-3142-4434 www.jeoldusan.or.kr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16)
서울에서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마재로 향하는 길은 산수(山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마재는 정약용의 고향일 뿐 아니라 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아들ㆍ딸인 성 정하상
바오로ㆍ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이 태어난 성지.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재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앞에, 야트막한 동산을 뒤에 둔 명당자리에 있다.
정씨 일가의 숨결이 배있는 성지는 이들 생가와 다산 묘소, 다산 동상과 기념관 등으로 꾸며졌다.
아름드리나무 곁에 있는 커다란 기와집인 생가는 옛집 그대로가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뒷동산에 있는 다산의 묘소 앞에 서면 평화로운 마을과 바다 같이 넓은 한강이 펼쳐진다.
문의 : 031-576-5412
▨천진암(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500번지)
한국교회 창립 선조 다섯 분(이벽ㆍ권일신ㆍ권철신ㆍ이승훈ㆍ정약종)이 1779년부터 5년간 강학회를
열어 한국교회 출발을 잉태한 곳, 그 다섯 분이 묻힌 곳, 한국교회를 빛낸 평신도 지도자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묘지가 있는 곳, 100년 계획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을 짓고 있는 곳…. 천진암이다.
십자가 동산에 있는 대성당 터를 지나 창립 선조 5위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은 정겨운 오솔길이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맑고, 부스럭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정취를 더한다.
어떤 아름다움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비길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대성당 터 왼편에 있는 성모경당은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다섯 선조와 관련된 자료와 유품들을 두루 볼 수 있다.
문의 : 031-764-5994 www.chonjinam.or.kr
▨남양성모성지(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1704)
한국교회에서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모성지다.
성지의 얼굴은 성지 한가운데에 있는 로사리오 광장과 왼편에 있는 20단 묵주기도 길.
빼어난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묵주기도 길에서 순례객은 화강암으로 만든
지름 0.7m 크기의 묵주알을 한알 한알 짚어가며 묵주기도 20단을 바칠 수 있다.
묵주기도가 길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이곳에 오면 생각이 달라진다.
철따라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갖가지 예쁜 꽃과 나무들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계절이나 밤낮, 날씨에 상관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께 매달리는 신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가 주는 평화와 기쁨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문의 : 031-356-5880 www. namyangmaria.org
▨배론(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2리 644-1)
하나만으로도 성지가 되기에 충분한 신앙 유산을 셋씩이나 갖춘 성지 중에 성지다.
한 울타리에 우리나라 첫 신학교 성요셉신학교와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 그리고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묘소를 둔 신앙의 요람이다.
배론성지는 잘 가꾼 공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풍경이 멋지다.
성지를 가로 지르는 개울 오른편이 아기자기한 맛을 준다면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과 너른 잔디밭이
있는 왼편은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최양업 신부를 기리고자 건립한 성당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배론을 조형화한 것이다.
이 성당에 김대건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의 : 043-651-4527 www.baeron.or.kr
▨공세리성당(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194)
삽교호ㆍ아산만 방조제가 교차하는 들녘 야트막한 언덕에 서 있는 동화 속 삽화 같은 성당, 대전교구
첫 번째 성당인 공세리성당은 신앙의 텃밭이기도 하거니와 아름다운 성당으로 소문났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고스트 맘마'와 드라마 '모래시계' '사랑과 야망' '천국보다 낯선' '불새' 등이
공세리성당을 배경으로 했다. 또 숱한 가수들이 성당에서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순례와 피정, 캠프가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문화 복음화 복합단지'로 떠오른 곳이다.
비탈진 언덕을 오르면 예수 마음 피정의 집과 순교자 현양탑, 박물관, 고딕풍 붉은 벽돌성당, 성모상,
지하 성체조배실, 십자가의 길이 차례로 나타난다. 300년 이상된 고목만 일곱 그루나 되는 숲에서 들려
오는 새 소리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하다. 평화 그 자체다.
문의 : 041-533-8181 gongseri. yesumam.org
▨죽림동성당(강원도 춘천시 죽림동 38)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이 '성지'라고 하면 의아해 할 사람도 적지 않을 듯싶다.
강원도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들이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게
피살당해 묻힌 곳이 바로 죽림동성당이다. 또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도 성당 구내를 한 바퀴 돌아보면
아름답다는 탄성을 몇 번은 지르게 되는 아름다운 성당이기도 하다.
죽림동성당이 대대적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1998년 9월이다.
당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내로라하는 예술가 20여 명이 성당 구석구석에 교회미술의 혼을 불어넣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성직자들의 묘는 성당 뒤편에 있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가면
죽림동성당을 꼭 한 번 들러보자. 춘천 명물 닭갈비 골목도 성당과 가깝다.
문의 : 033-254-2631 juklim.dioc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