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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를 지고 / 마태복음 16:21-28
*어느 날, 하늘의 천사 한 분이...세상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 해 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 세상에 내려 왔다고 합니다.
천사는 맨 먼저 어느 귀부인의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 목걸이에 시선이 닿았습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값비싼 금 십자가 목걸이가 그 부인의 고급스런 옷에 잘 어울려 품위를 더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저렇게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을 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닐까! 천사는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천사는 저토록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부인의 집에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타고 가는 고급승용차 뒤 좌석에 조용히 앉았는데...그 고급승용차 안에도 금으로 만든 아름다운 십자가가 백미러에 걸려있었습니다.
부인은 운전대에 앉자마자 그 금 십자가에 입맞춤을 한 후에 운전을 하였습니다.
천사는 참으로 감격하였습니다.
저토록 주님을 사랑하다니..! 그래서 그 귀부인의 집에까지 쫓아가 보았습니다.
그녀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천사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그 귀부인의 집안일을 돌보는 가정부의 목에 걸려 있는 빛바랜 작은 나무십자가였습니다.
그 가정부는 날마다 그 부자 집에 들여온 과일상자와 고깃덩어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병든 자기 남편과 굶주리는 자식들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삼키곤 하였습니다. 천사는 그 가정부의 눈물을 통해 그녀에게 지워진 마음의 십자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지고 온 인생의 고난의 십자가가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고 닳고 낡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일과 고기가 그렇게 남아서 버려도 그 귀부인은 단 한번도 가정부에게 남은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천사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서 그 사실을 하나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천사에게 미래를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죽은 후에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귀부인은 다이아몬드로 꾸민 값비싼 십자가를 목에 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가정부는 크고 무거운 인생의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힘겹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국 입구에 다다르자... 거기에는 못이 박혀있고,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한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가 거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천국 문을 지키던 천사장이 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세상에서 지고 온 십자가를 내려놓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와 가장 닮은 십자가부터 천국 문으로 들여보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서 받는 대접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닮은 순서에 따라 대우가 결정 될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불교나 미신종교의 ‘부적’ 같은 십자가가 아닐까요?
금 십자가를 아름답게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행운이 찾아오고...자동차 백미러에 달고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고...십자가를 거실이나 침상위에 걸어두면 가정에 우환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그렇게 십자가를 다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사순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이 절기에...성도들은 ‘자기의 십자가’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 십자가’ 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는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십자가 이해
21-22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면서...“주님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죽으시면 안 됩니다..” 고 항의 하듯이 예수님께 말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뭐라고 했나요?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도다..” 23절
베드로를 보고 사탄이라고 하셨어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사사로운 동정심이나, 사람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탄의 짓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특히 ‘자기 십자가’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아까 제가 설교서두에 말씀 드린 이야기에 나오는...귀부인의 목에 건 다이아몬드로 꾸민 금 십자가 목걸이처럼...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기들의 유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믿고,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목걸이 차고 다니고, 거실이나, 침대 머리위에 십자가를 걸면...행복이 찾아오고, 사고가 나지 아니하고, 우환이 없어지고...모두가 자기의 행복과 보호를 위하는 수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것을 만류한 것과 꼭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것이고...그것은 사탄이 하라고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구원의 십자가라고 하면....그 귀부인의 목에 걸려있는 그 값비싼 다이아몬드 십자가 금목걸이...여러분의 목에도 걸려있는 금 십자가 목걸이는...팔아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그들의 생명을 살리고, 부요케 하는 일에 벌써 쓰여 지고...여러분의 목에는 십자가 금목걸이가 이미 없어야...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믿는 ‘십자가 믿음’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용하여, 자기 이익, 자기 축복, 자기구원 이미 다 챙기고...악세사리용으로 금과 다이아몬드로 십자가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파괴한 것이 됩니다.
이미 베드로 속에 든 사탄의 정신이 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 것이 됩니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신앙인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이것을 알아야 ‘십자가의 믿음’을 바로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24-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여러분! 본문의 구조를 조심스럽게 보세요,
십자가 지고 인류를 위해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의 길을...인간의 사사로운 동정심과 자기이익을 내세워 십자가 지는 것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신 후에...곧 이어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세 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①자기를 부인하는 것, ②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③예수님을 따르는 것 입니다.
이것은 ‘신앙’이라는 한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믿음의 3가지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그 믿음 안에는 이 3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한국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문제가 있는 것은...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안에...이 3가지 단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에서 왜 불미스럽고, 세상의 지탄 받을 만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 한국교회를 어렵게 만듭니까?
교회가 큰 무리들이 모이는 대중적인 대형교회가 되다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이 3단계의 신앙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예수님은 대중기피증을 가지고 계십니다.
큰 무리가 자기에게 나오면...반드시 돌려보내시든지...자신이 피하시든지...그렇게 하셨지...예수님은 그런 것을 ‘교회부흥’ 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대형교회를 목회 하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12명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목회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한꺼번에 큰 대중을 제자훈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교회를 해서는 교인들이 제자까지 자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성도의 친교가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충성스런 교회봉사자들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고...말씀을 전도하는 제자들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 다니는 교인들의 성향을 분석한 인터넷 글이 있는데 읽어보면...대형교회 다니는 교인들의 절대다수는 그저 교회 봉사부담감 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재미있는 영화나 연극 보듯이 그렇게 재미있는 예배를 선호하고, 헌금 부담 없이 예수 믿으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대형교회 다니는 교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대형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신앙이 어딘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고 그 글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가 되는 길 3단계를 말씀하실 때...기독교인의 바른 신앙요소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단계가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누릴 자기이익 다 챙기면...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 믿는 목적이 축복 받아서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에 가치관을 두면...그 사람은 참 성도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세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교인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고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적어도 순천 새사랑 교회 교인들 만은..!
성도들은 세상적인 자기의 욕심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자기적인 것을 부인하고...세상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성도를...‘심령이 가난한 자‘ 라고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 8복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교인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고 위기를 당해있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건이 그렇고...감리교감독사건이 그렇고...대형교회문제들이 그래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부인’은...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선한 일을 위해서 오락이나 쾌락을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자기부인의 일부분이지만...예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부인은...삶의 순간순간에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자기를 인생의 주인의 자리, 왕좌의 자리에서 내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버리고...하나님을 생활의 지배원칙이요, 그 이상의 가치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부인의 삶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긍정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과 같이 낮아지고...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계속하여 자기를 아들의 자리에 낮추시고...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고 공경하고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2단계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희생적인 봉사의 삶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욕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들이 지고 따라야 될 ‘자기 십자가’는 사명使命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성도들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면...성도들은 마땅히 그 은혜에 대한 보답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 보상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은혜 갚는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은혜 갚는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갚으려고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를 하였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생명과 피와 물 한 방울까지도 다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신 예수님 십자가 앞에 서서...우리는 그 분에게 축복을 더 달라고 떼를 쓴 적은 없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하시는 음성...“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주건만, 너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이 사순절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서.. 우리가 져야 할 ‘자기의 십자가’ 가 무엇인지를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