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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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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 시 판 스크랩 호주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100년전 한국
소쩍새 추천 0 조회 45 09.03.02 20: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처 mylove6247님의 블로그 | 하얀구름
원문 http://blog.naver.com/mylove6247/40007785264

조지 로스씨가 촬영한 이 사진들은 일반적인 2D 사진이 아니라 3D(3차원 입체 사진)였다고 합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원판 그대로의 사진은 아니고 전시를 위해 확대한 사진이었으며 원판 사진은 위 사진 스캔 이미지처럼 2장을 나란히 놓고 특수안경으로 보면 3D영상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옆 사진이 특수 안경입니다. 그는 맨위 사진과 같은 엽서를 만들어 전세계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울 근처의 작은 마을. 예스러운 흥취를 지닌 작은 마을이 그림처럼 자리한다.

키 큰 소나무가 마을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이 아름다운 사진에는 양반들이 기거했음직한 기와집도 보인다.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황소가 땔감을 싣고 간다. 이 사진에서는 흰색의 긴 두루마기, 바지, 버선, 짚신 등 한국남성의 복장을 자세하게 살필 수 있다. 사진 속 남성들 모두 갓이 떨어지지 않도록 갓끈을 잘 매고 있다.

"6137 view from city wall, Seoul Korea. Following the wall with one"s eyes it may be traced to the main gate and beyond right up to the mountains."

This dramatic view looks west from above south Gate, which is visible in the upper right of the photo. Look along the wall until you find it. Left from the gate one can see where the main thoroughfare cuts between the shops that line both sides of the road.

This picture gas a surprise. On the face of the stones below us, a man is climbing the sheer 12-metre wall, risking his life to avoid walking around to the gate. A watches above him. In the upper left centre is a large Western style house with a conservatory and a small round tower, built by the early American missionary, Horace G. Underwood, which was just completed in mid 1904. Although it has multiple storeys like a Western house, it has some Korean architectural features, such as the Korean-style roof. But even this looks stiff and out of place among the beautiful curves of the thatched roofs on either side of the wall.

Looking down, Rose notes hat most of these "boomerang-shaped" houses of Koreans are thatched, but some houses have tile roofs.

"Amidst that clump of trees to the right are the King"s palace and the temple of the high Priest,"says Rose. He seems to be stretching the truth here, or perhaps has misinformation, At the extreme right stood Deoksu Palace and Deahan-mun (called Dae-an-mun in the period before the Korean Empire), but in Seoul there"s no such thing as a high priest"s temple. Above South Gate and to the left is the Russian Legation. "The streak over the mountains to the extreme left is the road which goes northward to Peking,"says Rose. Just below it is Independence Gate. In the bottom left corner of the photo, someone is running a small open-air restaurant.

서울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남대문이 나오고 그 뒤로 산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성벽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사진 오른쪽으로 보이는 성벽을 쭉 따라가면 남대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 왼쪽으로 통로가 나있는데, 이 통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상점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 가는 것이 귀찮고 싫었는지, 한 남성이 생명을 담보로 12m 높이의 성벽을 오르고 있다. 친구인 듯한 사람이 위쪽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다.

왼쪽 윗부분을 보면 온실과 작은 원탑이 있는 서양식의 주택이 등장하는데,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G.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지어 1904년 완공한 건물이다. 복층으로 된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지붕 등에서 한국적인 특징을 도입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성벽 양쪽에 자리한 초가지붕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속에서 이 집은 왠지 뻣뻣해 보이고 적당하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아래쪽을 보면 로스가 "부메랑 모양" 이라고 말했던 한국 전통집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이 초가지붕이지만 몇몇 집은 기와지붕을 얹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숲 한가운데에 왕궁과 고위 사제가 머무는 절이 자리잡고 있다" 고 로스는 말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사실을 과장한 것이거나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를 그대로 기록한 것 같다. 오른쪽 맨 끝에 덕수궁과 대한문(대한제국시기전에는 대안문이라고 했다)이 있었으나, 로스가 말한 사찰은 없었다. 남문 위쪽, 왼편에 있는 건물은 러시아 공사관이다

"산을 지나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면 베이징이 나온다"고 로스는 말했다. 그 바로 아래쪽에는 독립문이 자리한다. 사진 왼쪽 아래에 먹을 거리를 파는 노점이 보인다.

조선말기 또는 일제시대 때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 남대문(숭례문) 일원의 모습입니다. 이미 나라를 잃었거나 잃기 직전이겠지만 서울을 감싸안은 북한산과 초가 - 기와집 그리고 성벽 또 아이들의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로와 보입니다.

남대문 주위 성벽이 별 훼손 없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리포터는 남대문 주변 성벽이 이렇게 원형대로 남아 있는 사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진은 남산 쯤에서 촬영된 것 같습니다. 사진에는 지게를 지고 성벽 쪽으로 올라 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벽위에 올라 가 놀고 있는 개구장이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사진 아래쪽을 자세히 보면 성벽 위에 사람이 서 있는 듯하고 그 아래 누군가가 성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저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142 Main entrance, city of Seoul, Korea. Seoul has numerous gates, each having a pagoda varying in architecture according to its import!ance."

This is an unusual view of South Gates. Rather than framing it straight-on, Rose deliberately photographed along the wall to capture a 3-D effect, dramatically evident when seen through a stereo viewer. We can"t see 3-D in this enlargement, but we do see men lounging on the steps at both sides of the gate.

At the left, between the roofs, one glimpses the traffic on the main thoroughfare going to and from the gate. We also see open shops, and at the far left a less common two-storey Korean-style building.

In the foreground is a cluster of tile-roofed houses that may belong to other shopkeepers like the houses across the street. In the shadows at the bottom of the photo a vendor is selling his wares to passers-by.

Rose notes how the city gates used to be closed at dusk, but nowadays, he says, "The gates are ever open, and a modern electric tram, at popular fares, shoots through the gateway. The wall now is in a partial state of decay, but originally it was a solid circuit of masonry with battlements and loop-holes for the old-time archers…its heavy wooden doors were sheathed and clamped with iron."

(Keystone-Mast Collection of the UCR/California Museum of Photography )

서울의 주요 관문. 서울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는데 중요도에 따라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의 탑이 세워져 있다

남대문을 독특하게 찍은 사진이다. 로스는 입체적인 3-D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정면을 똑바로 찍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성벽을 길게 따라가는 앵글로 촬영을 했는데, 특수 장치를 통해 보면 그 효과가 극적으로 강조된다.

이 사진으로는 3-D효과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문의 양쪽 옆으로 나있는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왼쪽을 보면 지붕 사이의 통행로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좀처럼 보기 힘든 2층짜리 한옥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앞쪽으로는 상점 주인들이 사는 기와집이 보인다. 길 건너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집들도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사진 아래쪽 그늘 진 곳에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무렵이면 서울의 주요 대문을 닫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당시 그런 원칙이 점차 변했던 것 같다. 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에는 이 문이 계속 열려있고 그리 비싸지 않은 운임을 내면 탈 수 있는 현대식 전차가 이 문을 통해 운행되고 있다. 원래 전투를 하는 군사들을 위해 총안(銃眼)을 낸 튼튼한 성벽이었지만 이제는 부분 부분 허물어졌다. 육중한 나무문에는 무쇠 장식을 했고 역시 무쇠로 만든 죔쇠를 달았다."

첫 번째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바짝 줌인해 찍은 듯한 사진입니다. 노인들이 남대문에 올라가 담소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길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성벽위에는 긴 나무 기둥 같은 것이 서 있습니다. 전봇대는 아닌 듯 합니다. 전기공사가 시작돼 전봇대부터 세워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6162 Early morning market, Seoul, Korea. He Korean takes life leisurely, being quite content to sit and smoke his pipe while waiting for customers."

Vendors have carried vegetables from outside the city to just inside South Gate, which we see in the background, They have lots of cabbage, and also mu-Korean radished. The street us lined with open shops, including some on the left that sell clothing. If you look carefully you can see Korea soldiers or policemen and a toffee pedlar.

Rose is intrigued with how the vendors" jigae carrying frames also serve to display their vegetables to shoppers, but says this market is not as those in Japan or China. "The market is being conducted in the main street, which is of wonderful width," Rose said. "To the left may be seen the electric tram line, on which passengers are carried at about the rate of one farthing per mile."

In the lower part of the picture several men have big straw hats called bang-gat, won when mourning the death of a parent.

1. original Rose Stereograph Company Catalogue number

2. original George Rose Caption

(keystone-Mast Collection of the UCS/California Museum of Photography)

서울의 이른 아침 시장 풍경. 여유를 중시하는 한국의 상인들은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곤 한다.

시장 상인들은 도시 근교에서 채소를 구해 남대문 안쪽으로 들여와 판다. 사진 뒤쪽에서 남대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상인들은 주로 배추와 무를 팔았다. 거리에 늘어선 노점 중 몇 곳에서는 옷가지를 팔고 있다. 자세히 관찰한다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군인 혹은 경찰과 엿장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는 시장 상인의 지게가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것뿐 아니라 물건 사러 나온 사람들을 위한 진열대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듯하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일본이나 중국의 시장처럼 활기찬 편은 아니라고 적었다.

"꽤 넓은 도로에 시장이 들어선 모습이다. 왼쪽으로는 전차 선로가 보이는데 전차는 마일당 1파딩 정도의 운임을 받고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쓰는 커다란 밀짚모자인 "방갓"을 쓴 남성을 아래쪽에서 볼 수 있다.

남대문 안쪽의 모습입니다. 장이라도 섰는지 많은 사람들이 배추 같은 채소 지게를 내려 놓고 있습니다. 전봇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 이 사진은 일제시대 또는 해방후 6·25전의 남대문 사진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상투를 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 모두들 흰옷을 입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연대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라고 지적하는 독자들도 가끔 있었습니다.

"6174 East Gate and wall of the city, Seoul, Korea. The wall of the city are in a very dilapidated state, and would offer no obstruction to modern guns."

This photograph was taken from the city wall, which continues southward in the background. We"re looking at the outside of the gate and the semicircular wall that curves around the opening , making it harder for enemies to attack. Emerging from the gate are tramcar tracks coming from the city gates. This continued to be the case until about 1907 when part of the wall was removed beside the gates. The smoke rising behind the gate is from the generating plant that powers the trams. The Western-style building visible at the right behind the gate is part of the tramway compound housing the generator and the tramcar maintenance shops.

Studying this scene, rose says, " one must not overlook the interesting group of young Koreans on the wall, the mushroom-roofed houses below, and those evidences of a newer civilization, the telegraph wires, the electric tram line, and the smoke from power house."

Someone"s laundry is blowing in the breeze at the bottom right of the picture.

동대문과 성벽. 성벽은 이미 허물어 내려 근대적인 총기류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이 사진은 성벽 위에서 찍은 것인데, 뒤쪽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시내에서 성벽 밖을 향해 찍었기 때문에 적들이 문을 공격하기 어렵도록 성벽이 반원 모양을 그리며 이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내 중심부에서 이어진 전차 선로가 동대문을 지나가고 있다. 전차는 1899년 이후 5년간 운행을 해 왔지만 성 안팎을 오가려면 여전히 시내의 중요한 문들을 통과해야 했다. 1907년, 문 사이의 벽을 부분적으로 허물어 낼 때까지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운행했다.

문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전차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 오른쪽 뒤편으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전차 회사의 부속 건물과 전차 운영을 위한 사무소로 보인다. 이 장면에 대해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벽 위에 서 있는 젊은이들의 재미난 모습, 아래쪽으로 보이는 버섯 모양의 지붕을 얹은 주택들, 전화선과 전차 전선, 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 등 새로운 문명의 증거를 놓치지 말고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동대문입니다. 역시 아이들이 성벽위에 올라와 있군요. 서 있는 아이는 맨발입니까. 전봇대와 전기줄도 보입니다. 아무래도 일제시대 사진 같습니다. 성문 앞에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역시 성곽은 뚜렷하게 남아 있군요.

그러나 수원에 거주 한다는 독자 "삼식이"님은 사진에 나오는 곳이 "동대문이 아니고 수원성 서문하고 너무 똑같이 생겼으며 멀리 보이는 산은 수원의 광교산 같다"고 말했습니다.

"6052 View from city gate, Seoul. Korea urchins are very inquisitive, but are divided between their inquisitiveness and fear of the camera."

Two things that mage the children even more wary, Rose said, were his Caucasian appearance and the fact that his stereoscopic camera had "two eyes", or dual lenses.

Tho photographer is perched on East Gate, looking east, away from the city. The tram track turns here after coming through the gate and around gate"s curved, protective outer wall. Just beyond the tram car, signs say ji-ok, advertising a paper shop, and other shop line the street as well. Ponies are loaded with firewood and other cargo. The house we see are outside the city wall. The wall originally protected the city from invasion, said Rose, "The natural increase of population at 220,000 of whom 75,000 or a third of the people, lived outside the wall.

The homes are mostly straw-thatched although some have tile roofs, showing that the family is better off. "It is interesting to follow with the eye the line of white-robed Koreans who appear along road at intervals to the end of the winding street." In the distance at the far right we can see Dong-Myo, a shrine to the Chinese General Gwan-u, which still stands there today.

At the bottom of photograph we have a surprise. "Immediately below us", say Rose, "are three Japanese policemen, who are escorting Korean law-breaker to the lock-up." The packhorse also is being led away.

(Keystone-Mast Collection of the UCR/California Museum of Photography)

도시의 문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 모습. 한국의 소년들은 호기심이 매우 강하다. 호기심과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

이 소년들을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외국인 사진가의 낯선 외모와 입체사진을 찍는 카메라에 이중 렌즈 즉, "눈이 두 개" 달렸다는 사실이었다고 로스는 적었다.

로스는 동대문에 올라 서울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을 바라보며 촬영을 했다. 전차 선로는 구부러진 성벽을 따라 이어지다가 동대문을 통과한 다음 이곳에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전차 뒤쪽으로 종이를 파는 가게라는 의미의 "지옥(紙屋)"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길을 따라 다른 상점이 늘어서 있다. 조랑말에 땔감과 다른 짐을 싣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은 사대문과 성벽 밖에 자리한 집들을 찍은 것이다. 외부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서울 중심부에 성벽을 쌓았지만 "인구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면서 성벽 밖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고 성벽은 곳곳이 무너져 이제는 역사적인 경계표로 남게 되었다"고 로스는 기록했다. 또한 그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22만 명에 이르며 그 중 7만5천 명, 즉 도시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성벽 밖에 살고 있다"고 적었다.

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집들은 초가지붕이었지만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은 기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길 끝까지 이어지는 흰 옷을 입은 한국인의 행렬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로스는 덧붙였다. 오른쪽 멀리 중국의 장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 동묘가 나타나는데, 오늘날까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아래쪽으로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로스는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아래쪽으로 일본인 경찰들이 한국인 범법자를 호송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 옆으로 짐을 실은 말도 따라가고 있다.

동대문 성벽에서 성문 밖을 찍은 듯한 풍경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전기줄도 보이고 전차도 보입니다. 일제 시대 같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본 관원으로 보이는 검은 옷 입은 두사람이 흰옷입은 사람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체포한 장면일까요.

슬픈 장면이지만 그래도 길 양편으로 늘어선 초가집과 멀리 보이는 산, 멋진 소나무,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장날 풍경. 서울의 장날은 온통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별다른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다른 사진과 달리 이 사진에는 활력이 넘쳐 흐른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보고 싶다면 장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어떤 사람은 팔 물건을 들고 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돈을 들고 온다.” 로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사진은 노천 시장을 찍은 것인데, 온갖 종류의 상점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에도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워낙 복잡한 풍경을 찍은 사진이어서 하나하나 주의 깊게 세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왼쪽에 자리한 상점에는 대나무로 만든 우산이 걸려 있고 오른쪽 뒤편에는 모자를 쌓아 두고 파는 상인이 눈에 띈다. 그 뒤를 보면 벽에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모자 장수 왼쪽에는 바구니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서 있다.

등에 지게를 진 남자들도 보인다. 아홉 명이나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방금 산 삼베를 들고 있다. 앞쪽을 보면 한 소년이 무언가를(아마도 떡인 듯하다) 먹고 있다. 오른쪽에는 등 뒤쪽으로 담뱃대를 찔러 넣은 남자가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검은색 모자를 썼고 또 어떤 사람들은 흰색 모자를 썼는데,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사진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보면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삼베 두건을 쓴 남자가 보인다. 꽤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모자를 쓰는 대신 머리수건을 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로스는 이렇게 적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주 열리는 장날만큼은 예외다. 이때에는 여성들도 관습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를 찾는다. 그러나 지체 높은 여성은 이런 날에도 역시 집에 있어야 한다. 이 사진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평민 계층이었을 것이다.”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온통 정신 쏠려서 낯선 외국인 사진가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의 일본인 거리. 이상한 차림을 한 앞쪽 두 사람은 한국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일본인이다.

특이한 차림을 한 두 명의 한국 여성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사진가의 눈에 아주 낯설어 보였을 것이다. 이들은 남자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장옷‘을 쓰고 있다. 그 뒤쪽으로 기모노를 입고 우산을 든 두 명의 여성을 비롯해 몇 명의 일본인들이 보인다. 흰 옷을 입은 한국 남자들이 길 저 편에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왼쪽으로 서양식 양복에 모자를 쓰고 나비넥타이를 맨 일본 남성이 보인다.

이 일대는 상업지구로 오른쪽에는 일본인 혼다 센키치가 운영하는 침술소 간판이 보인다. ‘안마‘는 치료를 위한 마사지를 뜻하는 말이므로 ‘electrical anma‘하는 간판은 진동기를 이용해 마사지를 해준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 다음 가게는 일본 약방으로 감기약과 해열제 광고가 붙어 있다. 그 다음 집은 서양식 옷을 파는 상점이다. 지게를 진 한국인 일꾼이 그늘에 서서 손님이 찾기를 기다리며 서 있다. 길 위쪽으로 다른 여러 가게들이 문을 연 모습인 보인다. 회현동이나 명동 근처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로스 George Rose (1861-1942)

로드니 홀 Rodney Hall

사진가로서의 조지 로스는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였다. 유리판에 각각의 사진을 담아야 하는, 크기도 클 뿐더러 사용하기에도 성가신 카메라를 활용해 평생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는 거침없이 무거운 장비를 지고 산을 올랐고 복잡한 도시를 누볐으며 세상 곳곳을 여행했다. 고향인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와서도 차를 한 대 구해 윗부분을 개조한 후 카메라를 싣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이렇게 찍은 자신의 사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세운 사진 회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조지 로스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했는지 알 수 있다.

조지 로스는 1861년 12월 10일, 빅토리아 주의 자그마한 금광 마을인 클룬스(Clunes)에서 태어났다. 빅토리아 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남동쪽에 자리하는데, 주도(州都)라 할 수 있는 멜버른이 근처 밸러랫(Ballarat)과 벤디고(Bendigo)의 금광 덕분에 당시 활기 넘치는 도시로 번창해 가고 있었다. 조지 로스의 아버지인 윌리엄은 영국 콘웰 지방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왔는데, 40세에 본업인 선장 일을 그만 두고 신발 가게를 열었다.

학교를 마친 조지는 몇 년 동안 아버지의 신발 가게에서 일했다. 하지만 상상력 풍부하고 모험심 넘치는 젊은 조지는 신발 파는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천문학과 자연과학에 빠져들었고 또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지 로스를 사로잡은 것은 사진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진에 소질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결국 사진사가 되어 입체사진을 찍기에 이르렀다.

1백여 년 전 입체사진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낱장으로, 혹은 몇 장을 묶은 세트로 많은 입체사진이 팔려 나갔다. 입체사진은 당시 중산층 가정에서 오늘날의 텔레비전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 사람이 특별한 안경을 쓰고 3-D 입체사진을 보는 동안 다른 사람은 사진 설명을 적어 놓은 책을 읽곤 했다. 이런 책 대부분은 집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여행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지도는 물론 촬영 대상과 카메라 위치, 촬영 앵글을 보여 주는 도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입체사진 세트(일반적으로 한 상자당 사진 40장이 들어간다)를 촬영해 판매하는 사진가들은 낯선 장소를 발굴하는 일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조지 로스 역시 그러했다. 그는 런던과 뉴질랜드의 웰링턴(Wellington)에 사진을 판매 영업소를 열었다. 그가 찍은 사진 중 상당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골과 그가 방문한 외국 여러 나라의 풍경을 담는 것들이다.

로스는 늘 모험심에 가득 찬 선택을 했다. 한창 전쟁의 격전지였던 한국을 방문했던 데에서도 잘 알수 있다. "은자들의 왕국"이라고 불리던 이 작은 나라는 대망을 품고 국호를 새로이 대한제국(1897-1910)이라 선언했지만 러시아 공격을 목표로 하는 일본인들은 한국 침략을 본격화했다.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가 채결되었고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로스는 한국 이외에도 중국, 일본, 싱가포르, 미얀마. 인디아. 이집트. 알제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영국, 웨일스,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등을 방문했다. 물론 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었다. 로스는 자신이 방문한 곳의 재미난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온 세계를 돌아다녔다. 조지 로스가 세운 회사에서 발행한 카탈로그에는 이런 방식으로 그가 직접 촬영한 9천여 점의 사진이 등장한다.

조지 로스가 찍은 사진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물론 사진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스가 한국에서 찍은 사진과 고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찍은 사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찍은 사진이 전형적이고 조금 딱딱한 느낌(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을 주는 데 비해 한국에서 찍은 사진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활기차고 일상적이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은 아마도 로스가 낯선 풍경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눈과 호기심에 찬 마음, 그리고 모험을 즐기는 영혼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이런 사진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시킬 수 있는 곳에서라면 상황을 설정하고 모델에게 동작을 지시하면서 사진을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외국에서 촬영을 할 때는 언어 문제 때문에 이런 구상과 연출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일본인 조수를 데리고 다녔지만, 자세한 설명이나 지시를 내리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에 그저 사람과 장소를 있는 그대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덕에 조지 로스의 사진은 특별한 것이 되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 바로 그 순간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생명력 넘치는 사진. 이런 사진에는 진실이 주는 활기와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다.

조지 로스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에게서 아들 둘을 얻었는데 둘째아들인 월터(Wlater)가 후에 아버지가 세운 "로스 스테레오그래프 컴퍼니"를 이어받았다.

이 책을 공동 출판하는 교보문고와 함께 호한재단은 조지로스의 뛰어난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또 자료를 제공한 론 블럼(Ron Blum) 씨께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로스의 사진을 소개하기 위한 일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고 서문과 사진 설명을 써 준 노먼 소프(Norman Thorpe)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904년 한국의 풍경을 담은 이 사진들을 다시 발견해 복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사람들이 기쁘게 생각한다. 이 사진들이 고향인 한국을 찾아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선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로드니 홀은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호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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