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식 사랑1
두 번째는 ‘때문에’ 식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됨됨이나 소유 혹은 그의 행위로 인해 받는 사랑이 ‘때문에’ 식 사랑입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어떤 우수한 특성이나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느 사람과 달리 인기 있고, 돈 많고, 유명하고, …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좋은 자동차가 있어서 나를 멋진 장소에 데려다줄 수 있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웃어넘길지도 모르지만, 우리 자신도 때로는 상대방에서 사랑할 만한 장점이 있거나 상대방이 사랑받을 만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이 사랑이 ‘만약에’ 식 사랑보다는 더 바람직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식 사랑을 얻어 내는 데는 큰 부담이 따르지만, 자신의 됨됨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어떤 모습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그렇게 힘겹게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참사랑은 그 어디에』
‘때문에’식 사랑2
그러나 머지않아, 이런 식으로 사랑받는 경우도 ‘만약에’ 식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전혀 낫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됨됨이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우리를 추종하는 세력을 더 얻고자 끝없이 노력하게 됩니다. 도 우리보다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얻으려는 끝없는 노력과 경쟁이 시작됩니다. 젖먹이 아기는 동생이 생기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또 인기 있는 소녀는 마을에 새로 온 예쁜 소녀를 못마땅해합니다. 젊은 청년은 자기보다 더 멋진 차를 가진 친구를 못마땅해하고, 아내는 매력적으로 유능한 비서를 질투합니다. 대체 이런 식의 사랑이 그 어디에 안정감이 있습니까?
성경은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도 참된 사랑일 수는 없습니다.
이 ‘ 때문에’ 식 사랑에 안정감이 없는 데는 경쟁에 대한 두려움 말고도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사실 상대방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 모두의 인격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면이 있는가 하면, 오직 자기만 아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실망하고 싫어할까 봐 두려워, 우리는 이 두 번째 면을 숨기려고 늘 경계합니다.
『참사랑은 그 어디에』
‘때문에’ 식 사랑3
이런 사랑이 불안을 주는 두 번째 이유는, 언젠가는 우리가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외모가 뛰어난 한 여성이 세탁물 처리 회사에서 일하던 중, 보일러가 폭발해 얼굴, 가슴, 손등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녀의 용모는 너무나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병원에서는 얼굴에 항상 붕대를 감고 있었고, 의사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약혼한 청년과도 파혼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 몇 개월간, 같은 시에 사는 부모조차도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누리던 사랑을 하룻밤 만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는 그녀가 받은 사랑이 미모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미모가 사라지자 사랑도 사라진 것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랑에서는 영원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랑은 무엇입니까?
『참사랑은 그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