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멀리는 백우산과 매봉(오른쪽), 중간 오른쪽은 삼족산
고원의 고갯길은 완급을 거듭하며 끝없이 이어졌다. 마루마다 쏘롱라로 인도하는 흰 깃발이
서 있었다. 깃발 하나를 넘어설 때마다 몸이 두 배씩 무거워졌다. 숨이 목 밑에서 턱턱 걸렸
다. 지구를 등에 지고 걷는 기분이었다. 발은 모래구덩이에 빠지는 느낌이었고, 뙤약볕은 독
수리 부리처럼 눈을 쪼았다. 칼바람이 체온을 앗아갔다. 등은 땀으로 축축한데 손발은 아리
고 시렸다. 대관절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자는 어떤 부류의 인간일까. 범상하고 천박한 인
간이 나는 ‘사고’ 비슷한 것도 하지 못했다.
―― 정유정,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8월 19일(토), 구름 많음
▶ 참석인원 : 14명
▶ 산행거리 : 도상 12.8km
▶ 산행시간 : 8시간 8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7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25 -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후동5교, 산행시작
08 : 46 - 능선마루
09 : 00 - △558.1m봉, 첫 휴식
09 : 42 - 732.7m봉
10 : 00 - 825.2m봉
10 : 48 - 삼족산(三足山, 940.4m)
11 : 30 ~ 12 : 05 - 달음재, 점심
12 : 50 - 918.2m봉
13 : 00 - 임도
13 : 25 - 소뿔산 주릉, △1,074.9m봉
14 : 15 - 소뿔산 정상(1,107.8m)
14 : 42 - 1,077.7m봉, ┣자 능선 분기
15 : 25 - 임도
16 : 15 - 블루마운틴 컨트리클럽 골프장 진입
16 : 33 - 클럽하우스, 산행종료
17 : 11 ~ 19 : 00 - 홍천, 목욕, 저녁
21 : 0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
2. 소뿔산 정상에서
3. 보기 좋은 적송 숲길
3-1. 기생초(妓生草, Coreopsis tinctoria Nutt), 국화과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4. 블루마운틴 컨트리클럽 하우스 앞에서 산행 마치고
▶ 삼족산(三足山, 940.4m)
야장몽다(夜長夢多). 밤이 길면 꿈이 많기 마련이다. 산행 들머리로 가는 시간이 기니 나누
는 얘기도 많다. 버스의 에어컨이 너무 빵빵하게 틀어서인가 얘기 진행방향이 엉뚱한 데로
흘렀다. 한겨울 혹한 산행 때 신가이버 님이 반팔차림 하는 것은 ‘뜨거운 남자’이기 때문이라
하고, 내가 어쩌다 반팔차림 하는 것은 치매기가 도져서라나. 찬 것과 뜨거운 것을 잘 구분하
지 못하는.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건망증이라는 말로 희석한다. 집에서 냉장고 문을 열었으나 무엇을 하
려고 그랬는지 모를 때가 종종 있더라고. 버들 님 부군의 경우가 바로 내 일이거니와 크게 웃
었다. 친구 분에게서 전화가 왔더란다. 얼른 스마트 폰을 꺼내 받고서 반사적으로 스마트 폰
을 넣는 호주머니를 만졌는데 스마트 폰이 없더란다. 친구 분에게 “내가 전화기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겠다. 잠깐만 기다려다오”라고 하자, 통화 중의 친구 분이 “너 지금 내 전화를
받고 있지 않느냐?” 하기에 자기 스마트 폰의 소재를 알았단다.
동홍천IC를 빠져나와 화양강휴게소를 들른다. 강 건너 곤봉, 청벽산, 송곡대산 산마루 휘감
는 운무의 유희를 잠시 감상하고서 바삐 들머리를 향한다. 평천(坪川) 거슬러 후동(後洞)5
교 앞이다. 도로 옆에 ‘송백’이라 새긴 커다란 자연석의 표지석이 있기에 무슨 기념관이나 전
시관이 아닐까 하고 그 정체를 찾았더니 갈비탕 음식점 이름이다. 그래도 송백(松柏)의 연유
가 있을 것.
우선 잣나무(柏) 숲 잡목을 간벌한 가파른 생사면을 오른다. 미처 워밍업 할 틈이 없이 박차
고 오르려니 허벅지가 놀란 듯 뻑적지근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풀숲은 축축하게 젖었다. 사
방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나뭇가지를 잘못 밟아 여지없이 미끄러지고 엎어진다. 긴다. 금세
땀난다. 앞 사람이 낸 발자국계단으로 오른다.
20분 걸려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 능선마루다. 허리 편다. △558.1m봉. 삼각점은 흙 속에
묻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 분음은 의식이다. 오른쪽 골 건너는 고
석산(高石山, △832.7m) 연릉이고 그 너머는 용소계곡 건너 백우산(白羽山, △894.1m) 연
릉이다. 가깝게는 재작년 봄날에 다녀갔다. 오늘은 봉봉마다 안개에 가렸다.
짧게 내리고 길게 오르기를 반복하며 고도를 높인다. 732.7m봉, 825.2m봉, 888.6m봉. 울창
하고 키 큰 잡목 숲과 풀숲에 쉴 새 없이 자맥질해야 하는 등로이지만 주변의 쭉쭉 뻗어 오른
적송 숲이 볼만하다. 앞서 가던 한계령 님이 벌집을 건드렸는지 벌에 쏘였다는 다급한 전달
을 받아 줄줄이 사면으로 돌아 오른다.
산중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다수 일행이 발청향을 찾아 풀숲을 누비고, 그에 관심 없는 신가
이버 님을 선두로 한계령 님, 구당 님, 내가 그 뒤를 쫓아 나아간다. Y자 갈림길. 지도를 얼핏
이라도 들여다보았더라면 달음재는 왼쪽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는데 오른
쪽에 더 높은 산봉우리가 보이기에 당연히 저기를 넘어야 할 것이라 예단하고 내쳐갔다.
삼족산 정상이다. SEOUL MOUNTAIN 산악회와 대구 김문암 씨가 표지판을 만들어 나뭇가
지에 달아놓았다. 여기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자 하며 성가시게 달려드는 파리와 모기떼를
쫓고 있던 중 무심코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방향착오다. 잘못 왔다. 어째 일행들이 여태 오지
않더라니. 서둘러 뒤돌아간다.
5. 왼쪽은 청벽산, 홍천 화양강 휴게소에서
6. 청벽산, 홍천 화양강 휴게소에서
7. 송곡대산, 홍천 화양강 휴게소에서
8. 설악초, 후동5교 들머리에서
9. 산행시작, 가파른 잣나무 간벌지대를 오른다
10. 등로, 풀숲은 간밤에 내린 비로 흠뻑 젖었다
11. 보기 좋은 적송 군락지를 지나고
12. 삼족산 정상에서 바라본 소뿔산 연릉, 왼쪽이 소뿔산이고, 맨 오른쪽은 가마봉이다
Y자 갈림길에서 달음재를 향하여 줄달음하는 중에도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풀린 등산화
끈을 조이는 그 짧은 틈에 세 사람은 보이지 않게 가버렸다. 가까스로 세 사람 일행 뒤에 따
라붙고 한계령 님이 나더러 구당 님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함께 가지 않았느냐고 되묻
고, 구당 님이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음에 틀림없다. 다행히 멀리 가지는 않았다. 소리쳐 불
러 뒤돌아오게 하였다.
더덕을 찾아 풀숲을 누비던 일행은 달음재 소공원 파고라 아래에서 라면 끓여 점심밥 먹고
있다. 합세한다. 밥 몇 술 뜨고 정신이 좀 들자 일행들을 살피게 되고, 그런데 이런 일이! 진
작 도착한 줄 알았던 신가이버 님이 보이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어련히 찾아올까.
엄숙히 표정관리하고 라면 발 식히려 후후 불며 짐짓 걱정해준다. 신가이버 님은 점심 마칠
즈음에야 왔다. 왼쪽 지능선을 타고 신흥동으로 잘못 내려갔었다.
▶ 소뿔산(1,107.8m)
달음재에 대한 홍천군 지명유래의 설명이다. 다름-재 [다음재, 다음동(多陰洞), 월림동(月
林洞), 월음동(月陰洞), 월림골] : 괘석 서쪽에 있는 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려 있음. 어쩌면
월음(月陰)에서 ‘달음’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고갯마루에 세운 소뿔산 등산 안내도는 실
제 지도를 확대하였다. 소뿔산 정상까지 이정표 거리는 4.8km다. 그러나 도상거리는 3.6km
이다.
이정표 방향표시 따라 몇 장 산행표지기가 보이고 가파른 절개지를 오른다. 잡목 숲 애써 뚫
었더니 헤쳐 나아가기 여간 고약스럽지 않은 간벌지대가 나온다. 한 피치 된통 식겁하고 나
서 잘난 등로와 만난다. 등로를 잘 다듬었다. 가파를만하면 목재계단을 설치하거나 굵은 밧
줄을 매달았다. 암벽 암릉을 두 차례 돌아 넘는다. 외길이다.
이번에는 중간쯤에 가던 모닥불 님이 벌에 쏘였다는 전달이다. 팔뚝에 예닐곱 군데나. 해마
님이 위험구간이라 교통정리하여 지난다. 이 다음에는 누가 걸릴까 아슬아슬한 산행이다.
918.2m봉 넘고 임도에 올라선다. 등로는 높은 절개지 왼쪽 가장자리 사면에 계단을 놓았다.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여름은 아직 진행형이다. 특히 오르막에서는.
산죽지대가 시작된다. 앞사람이 물구덩이인 산죽 숲 물기를 털어내서 지나기가 수월하다.
주릉 △1,074.9m봉.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어론 24, 1989 재설. 발돋움하면 북쪽으로
전망이 트인다. 먼 데 산은 안개에 가려 분명하지 않다. 이 다음 슬랩 오른 첨봉이 소뿔산 주
릉 최고의 경점이다. 지나온 삼족산, 그 너머 백우산, 매봉이 가깝다.
13. 달음재, 고갯마루에 소공원을 조성하였다
14. 달맞이꽃(月見草, Oenothera odorata Jacquin), 바늘꽃과 두해살이풀
15. 개망초(Erigeron annuus), 국화과 두해살이풀
16. 칡꽃(葛花, Pueraria lobata), 콩과 덩굴식물
17. 백우산과 매봉(오른쪽)
19. 앞쪽 아래는 속새메기, 오른쪽 멀리는 응봉산(887m), 그 너머에 갑둔고개가 있다
20. 앞 왼쪽은 소뿔산
되게 가파른 내리막이다. 뒤로 돌아 가랑이 사이로 밧줄 잡고 겁나게 떨어진다. 소뿔산을 만
들어 오르려나 보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오른쪽은 범의터(凡義-)로 간
다. 직진하는 오르막길은 울창한 산죽지대다. 팍팍한 걸음을 달래느라 좌우 사면을 눈으로
훑어보지만 빈 눈이다. 십여 년 전에는 이 등로 주변에서 대물 더덕만 골라 캤었다.
등로 옆 큰 바위 테라스가 경점이다. 교대로 들려 산첩첩 조망하며 숨 돌린다. 약간 내렸다가
길게 한 피치 오르면 소뿔산 정상이다. 아무 조망 없는 하늘 가린 숲속이다. 이제 내려갈 일
만 남았으니 오래 휴식한다. 영춘기맥 272km 중 행치에서 거니고개까지의 26km 구간이 하
이라이트가 아닐까 한다. 1,000m 넘는 고봉이 수두룩하다. 명자 붙은 산만해도 소뿔산, 가마
봉, 백암산이 있다.
이정표의 범의터를 향한다. 쭈욱 내렸다가 살짝 오른 1,077.7m봉에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직진하는 영춘기맥 길 버리고 오른쪽 희미한 길로 내린다. 산죽 숲의 연속이다. 이대로 가면
하산이 너무 이를 것 같아 아예 배낭 벗어놓고 산죽 숲 헤집는 해찰도 부려본다. 임도가 지나
는 안부에 내려서고 일기예보에 없던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런다고 움츠러들 우리가 아니다.
한계령 님은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탈출을 고려하였으나 좌우의 임도보다 능선을 가는 것이
마을에 가깝다. 과꽃, 기생초, 패랭이 심은 절개지를 오른다. 야산의 냄새가 난다. 독도하는
재미를 빼면 싱거운 산길이다. 덤불 숲 헤치고, 가시철조망 넘고, 뒤돌아오고. 가시철조망을
하도 여러 번 넘다보니 철조망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철조망 밖으로 나간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산행시간은 어느덧 파장 분위기다. 그만 블루마운틴 컨트리클럽 골프장 구내로 들어 산행을
마치기로 한다. 클럽하우스에 가면 두메 님 버스를 부를 수 있다. 개울 건너 임도에 올라서니
‘병력승차지점’이라는 팻말로 보아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위수지역의 군사도로다. 이 도로
는 이내 끊기고 목책 치고 전기울타리 친 골프장 임도가 이어진다.
목책 넘고 ‘감전위험’이라는 경고판 붙인 전기울타리도 넘는다. 골프장 경비원과 맞닥뜨리면
어찌할까? 지난날 경험에 의하면 수 명의 경비원의 완력에 의해 쫓겨나기 십상이다. 한계령
님이 무릎이 심하게 아파서 부득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끼리
호칭할 때는 ‘아무개 프로’라고 하자. 우리를 잠재적 고객으로 여겨 막 대하지는 않을 것.
한산한 골프장이다. 그린 홀컵을 수리하는 캐디(?)에게 클럽하우스 가는 길을 물어 간다. 클
럽하우스는 산중턱에 자리 잡았다. 산을 다시 오른다. LIFE's a Journey, not a Race. 골프장
숲속 그림에서 어여쁜 아가씨가 건네는 말이다. 좁게는 우리 산행도 그러하다.
21. 앞 골프장은 블루마운틴컨트리클럽, 우리는 부득이 저기로 내려야 했다
22. 백우산과 매봉(오른쪽), 소뿔산 정상 가기 전 큰 바위 테라스에서
24. 소뿔산 주변 등로는 산죽지대다
25. 블루마운틴컨트리클럽 골프장 가기 전 임도 고갯마루
26. 기생초, 꽃 모양이 기녀들이 바깥나들이용으로 쓰는 ‘전모(氈帽)’를 닮았다고 한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27. 블루마운틴컨트리클럽 골프장(부분)
28. 클럽하우스 마당 앞에서 산행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