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72)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51) – 베드로전서 의역본(2)
(지난주 2장 12절-15절까지의 세상 권세에 대한 권면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 13장 1절-7절까지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 권세를 인정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세 아래에 위치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것이 옳으냐 와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정권과 충돌하지 말라는 것이다. 충돌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의역본(2) – 베드로전서 2:16-3:6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길을 가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따라 가게 되는데,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제시하고 있다. 클레로노모스들은 나의 유불리에 매어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2:16 그대들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들이나 그 자유를 악을 덮는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노예로서 사십시오
☞ 성서에서의 자유란 내가 원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자유를 말한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유다. 따라서 하나님의 노예로서의 삶은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다.
2:17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중하십시오
☞ 클레로스 밖에서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인권 존중을 이야기하지만 정상적인 인간 관계는 서로를 이용하거나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 외에는 없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자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존중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클레로노모스들은 사람들을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미운 짓을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왕은 백성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절대 권력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왕을 존중할 수가 없다. 그러나 클레로노모스들은 먼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눈 앞의 이익에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왕과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틀에서 상황을 인식하기 때문에 왕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2:18 하인 신분인 사람들은 모든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온화한 주인에게만이 아니라 심술궂은 주인에게도 순종하십시오
2:19 왜냐하면 억울하게 고난을 겪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서러움을 참아내면 그것은 은혜(카리스)지만
2:20 죄를 지어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그에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다만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겪고 참아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억울하게 고난을 겪더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2:21 이를 위하여 그대들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그대들로 하여금 그 발자취를 따르게 하려고 본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인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내 인생이 드려진 사람들은 눈 앞에 유불리 때문에 일히일비하지 않는다. 억울하게 고난을 겪더라도 견뎌낼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걸어가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고 우리는 그 길,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안에서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고난을 겪고, 밖에서는 좋은 진주를 위해서 고난을 겪는 것이다. 그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현재와 미래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고난을 겪은 것이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발자취를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2:22 그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었고 그 입에서는 거짓을 찾을 수 없었으며
2:23 욕을 먹었으나 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고 오직 의롭게 판단하시는 분에게 맡기셨습니다
2:24 그는 그 나무 위에서 당신의 몸으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향해서 죽고 의를 향해서 살아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그대들이 나음을 얻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핍박하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견뎌내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를 아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천당에 입주하게 하시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이며 우리를 의인으로 재창조하시는 것이다.
2:25 왜냐하면 전에는 그대들이 길 잃은 양들과 같았으나 이제는 그대들의 생명(프쉬케)의 목자이며 감독이신 분에게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 현실에서 진짜 주인이라는 것이다.
3:1 이처럼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써 말씀을 불신하는 남편을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고 그대의 품행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동사 케르다이노)
☞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을 가진 아내들에 대한 권면이다.
아내의 품행으로 남편이 충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행복한 아내의 모습을 볼 때 남편은 충격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말씀으로는 전도가 안 된다. 우리의 존재와 관계의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편을 클레로노모스의 구성원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그때 부부가 진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3:2 남편들은 자기 아내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순결한 품행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3:3 그대들은 머리를 땋거나 금 장신구와 값비싼 옷 등으로 겉모습을 단장하지 말고
3:4 오직 온유하고 안정된 영(프뉴마, spirit)으로 사람의 내면의 마음을 단장하십시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귀한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이때 남편들이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3:5 왜냐하면 지난 날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졌던 거룩한 부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한 것과 같이 그대들도 사라의 딸들이 되었으므로 선행을 하고 어떤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3:7 이처럼 남편 된 그대들도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아내와 함께 살아갈 것이니 연약한 존재인 아내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아내는 생명의 은혜의 공동상속자(슁클레로노모스)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대들의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 아내는 그대들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3:8 결론적으로 그대들 모두는 한 마음을 가지며, 함께 공감하며, 서로 사랑하며, 자비롭고, 겸손하며,
3:9 악을 악으로 또는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비는 사람들로서 이 사람들은 복을 상속받기(클레로노메오)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3: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악한 말을 하는 혀를 그치며 계교를 말 하는 입술을 다물고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여 그것을 좇으라
3:12 주의 눈은 의인들을 바라보시고 주의 귀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나 주의 얼굴은 악을 행 하는 자들을 향하신다“ (시34)
3:13 그대들이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그대들에게 해를 가하겠습니까 ☞ 여기서 선은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선이다. 세상 사람들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다.
3:14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그대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극을 받지 않습니다 ☞ 이것은 하나가 되는 푯대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3:15 그대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어 거룩하게 하고 그대들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한 이유(로고스, 말씀)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 온유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 두려운 마음이란 잘못 전달하면 저 사람에게 기회가 미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3:16 선한 신념을 가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대들의 선한 품행으로 인하여 그대들이 악을 행한다며 비난하던 자들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 부끄러워할 수 있도록 선한 품행으로 다가 가라는 것이다. 그들을 자극하게 되면 사명을 감당하는 데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3:17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기뻐한다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게 되고 깊은 회개와 간구를 하게 되어서 귀한 일이라는 것이다.
3:18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한 차례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의로운 분이 불의한 자들을 위해 당하신 것으로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음으로써 그대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그럼으로써 우리도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3:19 그리고 그분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영으로 가셔서 전파하셨습니다
3:20 그 영들은 옛날 노아의 때에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께서 끝없는 열정(마크로뒤미아) 으로 기다리실 때에 불신했던 자들로서 당시에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은 겨우 여덟 목숨(프쉬케) 뿐이었습니다
3:21 그 물은 지금 우리들을 구원하는 세례의 모형입니다 세례는 육체(싸르크스)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선한 신념(쉬네이데시스)의 간구이며 이는
3:22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천사(앙겔로스)들과 권세(엑수시아)들과 능력 (뒤나미스)들이 그 아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입니다
☞ 노아 홍수의 물이 노아 가족은 살렸고 다른 사람들은 죽였다.
이 물이 지금은 우리 옛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세례는 옛 사람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옛 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노아 홍수 때 그들이 죽은 것처럼,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다 죽은 것처럼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4: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신(싸르크스)에 고난을 받으셨으므로 그대들도 같은 생각 (엔노이아, 엔+누스)으로 무장하십시오 왜냐하면 육신에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떠나 (육신에 고난을 받은 자 =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
4:2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은 기간 동안 더 이상 인간의 욕망(에피뒤미아)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델레마)을 따라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만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니고 우리 옛 사람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난 자들이 그리스도의 증인들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4:3 그대들이 방탕과 욕망과 폭음과 환락과 연회 그리고 불법한 우상 숭배 속에서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산 것은 지난 날로 족합니다
☞ 지금 유대인들도 포함된다. 나사렛 지파는 제외된다.
4:4 이에 따라 그들은 그대들이 자기들과 함께 넘치는 방탕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것을 이상 하게 여기면서 그대들을 비방하지만
☞ 사람들이 클레로노모스들을 보고 분노하는 이유는 자기들 같은 삶, 즉 각자 자기를 위해 충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4:5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되어 있는 분에게 이 모든 사실을 진술하게 될 것입니다 ☞ 그 날이 오면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그들의 행위들을 하나님 앞에서 진술하게 된다는 것이다.
4:6 그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으니 이는 그들이 육신(싸르크스)으로는 모든 사람을 따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 모든 인간에게 최후 심판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허남회 전도사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