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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종려주일/고난주간)
히 9:11-28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이번 주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친히 고난을 당해주신 사실에 감사하며 기념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를 죽기까지도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자’(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구원 받을 자)들의 죄를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는 구원의 기회를 은혜로 거저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을 믿고, 사랑과 진리를 깨달아
자신의 모든 죄를 후회하면서 회개한 후 마음과 행위를 온전히 돌이켜 순종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즉 ‘살아있는 믿음’으로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이 엄청난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진심으로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찬양하며,
고난도 예수님과 함께 받고, 영광도 함께 받게 될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되어
언제 갑자기 와주실지 모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의 22절을 보면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와주시기 이전인 구약시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선
죄로 인한 자신의 죽음을 대신하여 당할 제물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공의를 사랑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에 따라)
죄의 온전한 대가는 죽음뿐이며,
죽음 없이는 죄 사함이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된다.’는 말씀엔
피흘림 없이도 정결하게 할 수 있는 예외적인 방법들이 있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가난하여 동물을 소유하지 못한 자가
곡물을 속죄제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례입니다(레 5:11-13).
가난한 자도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은 이 부분에서도 발견됩니다.
‘어? 그럼 굳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약시대 때처럼 동물이나 곡물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속죄제를 올리면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 구약시대의 속죄제물은 앞으로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상징으로서
지금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사역을 마치신 이후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선 동물을 제물로 한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만약 예수님께서 죄의 대속제물로 이 땅에 와주시지 않으셨다면
그 이전인 구약의 동물제사도 효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는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요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처럼 신약성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도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기에
성경전체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구약성경 곳곳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따라서 구약성경을 묵상할 때에도 예수님에 대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사 53:3-7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 19절에서 모세가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라고 말한 것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앞으로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언약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됩니다.
요 1: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빌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유일신이신 성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나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 동일한 삼위가 단일한 신격으로 계십니다.
[성삼위일체, 신(GOD)에 대한 개념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뇌로
온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부분이며, 성경적/신학적으로 증명은 되지만
지금 수준의 과학/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일한 위격의 삼위 중 말씀(로고스)이시며,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성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늘의 보좌와 영광을 다 버리시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이 땅에 와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다 당해주신 후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신 채 죽어주신 것입니다.
요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피흘림 없이 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줄 자도 없으며,
또한 그럴 자격이 있는 죄 없는 순결한 자도 없기에
인류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주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와주셨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매일, 영원토록 이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영원히 존재함이 마땅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는 도저히 갚을 수가 없는 엄청난 혜택임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한 모습으로 그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건 이미 다 끝난 얘기고) 이제는 저에게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라.“며
예수님께 자꾸만 뭘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진 않은지,
육신적이고도 세상적인 것들을 마음속의 소망으로 품어
그것을 얻어내려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곰곰이 자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 부분이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히 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야.’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오늘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서 어떤 죄도 범하지 않는 완벽한 자는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회개하여 돌이킬 것들이 수시로 발견되고,
이미 전부 다 내다버린 줄 알았던 욕심과 음욕과 증오와 분노와
원망과 불평과 염려가 어느새 다시 고개를 들기에
갈수록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죄송해지며, 겸손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앞으로 구원을 받게 될)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죄를 또 범하고, 후회하며 다시 회개하고, 알면서도 다시금 육신적인 것들과 욕심이 드러나
알량한 자존심과 기분과 순간적 감정에 이끌려 당연하다는 듯 불순종과 죄를 범하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해주심을 얻을 자들입니다.
눅 18:11-14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늘 겸손히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인정하며,
회개하여 돌이켜 점점 성장하면서 고난 중에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가 가고 있는 좁은 문과 협착한 십자가의 길이라지만
그런 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 무엇을 더 내놓으시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염치가 없고, 양심에 화인을 맞아 자신의 죄를 죄로도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물에 빠져 죽어가던 것을 구해줬더니 이제는 보따리를 내놓으라.’하는 꼴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과 내장이 흘러나오고,
금속이 달린 채찍으로 온몸에 채찍질을 받아 피부가 찢어져 너덜거려서
근육과 뼈가 다 드러나 피투성이가 되어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 위에서 힘겹게 옅은 숨을 몰아쉬고 계신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 고생을 하셨다는 건 인정하고요. 저 맛있는 음식 좀 사먹게 돈 좀 주시죠. 지금요.”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 끝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그만 괴롭혀야 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들도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기복주의 설교를 이제 그만 멈추고 회개한 후
이제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우리가 예수님께 뭘 해드릴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일지 함께 고민하자며
먼저 겸손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28절을 다시 함께 보겠습니다.
히 9:28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말씀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죄를 대속해주시려 스스로 제물이 되어주신 일의 수혜자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어로 봐도 마찬가지로서 번역오류가 아닙니다.)
즉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는 자들, 다시 말해
‘내게 주신 자들’(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요 6:39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시기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말한 자들 중에 누가 결국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고난의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걸어
끝내 구원을 받게 될지를 태초부터 이미 다 알고 계신 분으로서
그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친히 택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게 주신 자’들로서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그들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겁니다.
(운명론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설교를 참고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리시는 임계점, https://cafe.daum.net/holysp1/O9UC/642)
그러므로 예수님과 관계있는 자가 되기 위해선,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사건이
바로 자신에게 적용되는 죄 사함으로 해당되기 위해선
하나님의 택하심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예수님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가장 사랑하는
기복주의와 우상숭배의 패역한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이제는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에 말씀에 겸손히 복종하는 모습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이제는 죄와 싸워서 이기며,
고난 중에도 예수님을 따라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구원의 길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무작위, 혹은 하나님 마음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경외와 복종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
선물로, 은혜로 주어지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전체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면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만나주셨고,
바로 그들이 택함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지키며 순종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았고,
순간의 실수나 욕망 때문에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즉시 인정하며 회개하여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겼지만
처음엔 하나님께 속한 자, 택함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인 듯 싶었으나
결국 교만과 불순종을 비롯한 온갖 악한 죄들을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모습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처참한 최후로
결국 구원을 잃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이미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와 미래에 품게 될 각 사람의 마음가짐,
성향과 앞으로 행할 일들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야곱의 경우처럼) 태중에서 선택하여 종으로 삼으셔도
그것은 선하며, 완전히 옳다는 중요한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신이신 하나님에 대해 피조물인 우리가 이해할 순 없지만 하나님은 선하심 그 자체이시며,
정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미래가 전혀 정해져있지 않았기에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신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행위로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시는 것에는 늘 변함이 없다는 영적원리입니다.
모든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했다고,
목회 십 수 년 경력의 목사라고, 교회의 중직을 맡은 직분자라고해서
자신은 온전히 예수님과 관계있는 자라고, 자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장담하여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자,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
예수님을 바라는 자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지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아니하며, 기복주의에 물들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죽어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 20:28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선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와주신 것이지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당신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이 사실을 확실히 인지해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인 그리스도인들이 각성하여 위기감을 품고,
순종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설교를 읽고 있는 자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어떤 일에도 온전히 순종하기를 애쓰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았기에
예수님의 피 흘려 죽어주심이 그에게 적용되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것들과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모습,
매사에 불순종하는 모습, 예수님과 함께하는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의
십자가 고난을 지극히 싫어하고 불평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천국과 지옥의 중간은 없듯이
방금 설명 드린 이 두 가지 위치 외의 중간은 없습니다.
마 10:38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13:23-24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그 날에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자의 수는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극소수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 자신의 소유, 자기 자신까지도 부인하여 마음에서부터 내려놓아
작아진 몸으로(겸손한 심령으로)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협착한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극소수의 참 그리스도인들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관계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 내용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내용에 반대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회개한 후 성경말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합니다.
골 1:21-22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는 모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다시 화목해질 수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구원은 지금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 모두는 반드시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엡 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종려주일, 고난주간의 시작 앞에서
‘과연 나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십시다.
과연 오늘의 나는 예수님과 관계있는 자가 맞는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어주신 것이 확실하다는 택하심의 확증을 갖고 있는지,
만약 오늘 내가 갑자기 죽게 된다 해도 후회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지,
아니면 ‘헛된 꿈을 품은 호산나’를 외치던 어리석은 자들처럼
오로지 육신적인 것에만 큰 관심이 있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패역한 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인지, 잘 모르겠는 자인지 솔직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십시다.
현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죽어주신 것이 아님에도
자신은 교회를 오래 다녔고, 헌금도 하고 있으며, 혹은 목사안수, 장로안수를 받았다며,
자신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크게 착각하면서
죄로 얼룩져 있는 어리석은 자가 바로 자신은 아닌지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이 끝났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석고대죄를 해서라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자신에게는 헛된 것으로 만드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롬 5: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화평한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우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 중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순종하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그 날은 반드시, 예고 없이 갑자기 올 것이며,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순종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주실 것입니다.
살전 5:10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오늘 고난주간의 시작이자 종려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오늘 바로 삶에 적용함으로서
예수님의 그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고,
우리 각 사람에게 남은 시간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기로 굳게 다짐하며,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감사하면서 기쁘게 내놓을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사랑으로
고난 중에도 기뻐하면서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써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시는 그 날,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3:24-26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3.24. 종려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42장 영화로신 주 예수의
1. 영화로신 주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세상 부귀 모든 영화 분토에도 못 비기리
2. 구주께서 죽으실 때 성전 휘장 찢어지어 구원의 길 여시고서 천국 기쁨 주셨도다
3. 구주 예수 갈보리에 흘린피와 그 물로써 나의 몸과 영혼까지 구속하여 주셨도다
4. 구주 예수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으니 그 사랑에 감격하여 이몸 주께 드립니다
[후렴]
오 갈보리 오 갈보리 주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보배로우신 나의 주
첫댓글 아멘! 하나님앞에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다가 우리 예수님 두번째 나타나시는
그 날, 기쁨과 환희 가운데 주를 영접하길 간절히 소망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답게,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자 답게
언제든 배은망덕한 모습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고,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모습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머지 않아 예수님을 공중에서 영접하는 최고의 인생을 완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