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반경환 사상의 꽃들에서
푸른 말
박 분 필
푸른 들판을 종일 떠돌던 하얀 말 한 마리 뜨거운
방황의 숨결이 내게로 손을 뻗는다
하얀 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푸른 말이
좋아 푸른 말을 그려 거절당했다는 고갱의 그림에서
탈출한 푸른 말일까
무명베에 푸른 풀물이 배어들 듯 하얀 말이
푸른 말로 변해가는 저 한 폭의 명화
슬픔을 지닌 슬픔
슬픔을 삭여낸 슬픔
가지고 있던 많은 조건들을 다 버리고 떠나온 그 길과
저 길을 잠시 더듬어 보는 듯, 그는 마치 눈만 커다랗게
살아있는 것처럼, 뻣뻣하고 긴 속눈썹을 꿈틀거린다
해질녘 으슴푸레한 빛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찬 기운을 견디며 넓은 초원의
풍경을 굶주린 듯 응시하는 저 갈망은 아마도 증오나
욕망이 아닌 새롭고도 강렬한 호기심일 것이다
말은 인간과 아주 가까운 동물이며, 아름다운 머리와 갈기와 그 건강하고 튼튼한 두 다리는 하룻밤에도 천리를 달린다. 옛이야기와 신화 속에서의 말은 날개가 달렸고, 그 천마를 탄 인간은 천하무적의 영웅으로 만인들의 존경과 찬양의 대상이 된다. 비록, 옛이야기와 신화 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백마를 탄 기사는 우리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줄 영웅이며, 모든 연애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검은 말이나 갈색의 말보다 하얀 말이 더 우월하고 우수한 종일는지는 모르지만, 하얀 말은 순수함과 정결함의 상징이며, 모든 고귀하고 위대한 영웅들이 좋아했던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박분필 시인의 「푸른 말」이란 어떤 말이란 말인가? 실제로 폴 고갱이 푸른 말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말은 젊고 건강하고 영원한 청춘의 말이며, 푸르고 푸른 초원의 야성을 지닌 말이라고 생각된다. “푸른 들판을 종일 떠돌던 하얀 말 한 마리 뜨거운/ 방황의 숨결이 내게로 손을” 뻗고, “하얀 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푸른 말이/ 좋아 푸른 말을 그려 거절당했다는 고갱의 그림에서/ 탈출한 푸른 말”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러나 “무명베에 푸른 풀물이 배어들 듯 하얀 말이/ 푸른 말로 변해가는 저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은 상상 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슬픔을 지닌 슬픔/ 슬픔을 삭여낸 슬픔”으로 박분필 시인은 이 「푸른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쨌든, 하얀 말로서의 미모와 건강과 영광과 찬사, 즉, 수많은 조건들을 다 버리고 떠나온 푸른 말, 그가 떠나온 길을 잠시 더듬어 보는 것처럼 큰눈의 긴 속눈썹을 꿈틀거리는 푸른 말―, 박분필 시인은 그 푸른 말을 바라보면서 “해질녘 으슴푸레한 빛”과 함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인간과 짐승의 생애는 단 한 순간이며, 그 짧은 순간임을 깨달았을 때는 깊고 깊은 회한이 남는다. 아차, 하고 잘못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삶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매우 어리석고 우매하게 살았다는 자기 책망과 질책이 하얀 말의 삶을 버리고 푸른 말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물 스물 기어오르는 찬 기운을 견디며”가 그것을 말해주고, “넓은 초원의/ 풍경을 굶주린 듯 응시하는 저 갈망은 아마도 증오나/ 욕망이 아닌 새롭고도 강렬한 호기심일 것이다”가 그것을 말해준다.
강렬한 호기심은 「푸른 말」의 꿈의 원동력이고, 그 꿈이 해질녘의 으슴푸레한 빛으로 타오르며, 내일의 아침을 약속한다. 「푸른 말」의 기사는 꿈이 큰 자이며, 꿈이 큰 자는 그 어떤 고통도 다 받아들여 그의 충신으로 삼는다. “슬픔을 지닌 슬픔”을 “슬픔을 삭여낸 슬픔”으로 발효시키고,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땅과 하늘을 천마 페가수스처럼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나 자신의 주연배우이고, ‘나’의 행복의 연주자이다. 우리 시인들은 모두가 다같이 짧고 슬픈 인생을 영원하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모시키기 위하여 고통을 충신(호위무사)으로 거느리며,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시바이고 마호메트이며, 나는 부처이고 예수이고, 나는 호머이고 셰익스피어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을 타고, 넓고 넓은 초원과 이 우주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가정 속의 존재이고, 사회 속의 존재이다. 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의 존재이고, 국가 속의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한 폭의 명화’처럼 푸른 말을 타고 가야하지만, 그 모든 점에서 솔선수범하고 사회 속의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유한하고 인간은 영원하다. 시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고, 우리는 아름다운 삶과 행복한 죽음을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