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후기입니다.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형태장 속에서의 나는
아버지를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흔들흔들,
아버지에게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컸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수치심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자살하신 것에 대해
누가 알게 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아버지를 마음껏 좋아할 수도 없었고,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었다.
고1 때, 군인으로 계셨던
아버지가 제대를 하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3년 동안
술을 드시며 사셨다.
원래 술을 좋아하시고
술주정이 심하신 분이셨지만,
그 3년 동안의 아버지는
그냥 폐인이셨다.
눈 떠 계실 때는 술을 드셨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엄마랑 싸우고, 욕하고, 때리고,
집안의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 던지셨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아버지는
술 드시다가 잠들어 계셨고,
집안은 폭탄 맞은 것처럼 밥상이든 뭐든 방과 마루와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술에서 깨어 나시면
또 술 드시고,
술드시면서 사람이 보이면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욕을 하시고
폭력을 휘두르셨다.
밤낮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 상담공부를 하면서
그 당시의 아버지가 심한
우울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그냥 지옥같기만 했다.
처음에는 말리기도 했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체념한 채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그 끝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이 지옥의 끝이 죽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죽음에 이르자,
그냥 죽고 싶었다.
차라리 죽어서 이꼴저꼴 안보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죽는 방법에 대해
궁리도 했다.
마음 둘 곳이 없던 나는,
친구가 다니던 성당에 따라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위치한
성당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전쟁터로 나가기 직전의 병사가
잠시 머물러 심기일전했던 것처럼,
성당에서 나는 전의를 다졌고,
그날 밤의 평안을 빌었다.
이렇게 다녔던 성당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라고 알려줬다.
하루하루 견디기가 너무 어려운데, 죽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면,
내가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이런 생각들만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무척 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 들러 오래오래 있다가
집에 가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했다.
약먹고 죽었다 했다.
이 상황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다지 슬프지도 않았고,
그저 멍하기만 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죽음뿐 아니라 아버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만 아버지 제삿날에
푸념에 가까운 악담을 되풀이했다.
시간이 약인지, 언제부터인지 나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준 좋은 기억들로
그 3년의 기억들을 희석시켰다.
그러면서 괜찮은 점이 참 많은
멋진 아버지의 모습들만 가지려고
애를 썼다.
알코올 중독의 우울증 환자로
우리에게 휘둘렀던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잊고 싶었고,
무엇보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은 절대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버지를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우울해질 때도 아버지 닮아서 그런 것일까 조바심이 났고,
그러다가 아버지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 두렵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는데,
늘 아버지 언저리를 돌고 있었다.
저는 아버지의 딸입니다.
제가 다르게 살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도 다르게 사실 수 없었음에 동의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
이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하고싶은 것 마음껏 하며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 계신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고 또 평안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첫댓글 별로 다르지 않았던 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코 끝의 매운맛...
또르르 소리없이 떨어지는 눈물...
선생님의 진솔한 글에 눈물이 납니다. 우리 집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낸 듯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아버지 딸입니다." 목이 메입니다.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딸입니다.
제가 다르게 살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도 다르게 사실 수 없었음에 동의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
이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 계신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고 또 평안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제게도 가져오고 싶은 말입니다.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