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50] 신미식 (申美植) - 자기 부정의 길 7. 축복
당시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성혼식과 세 자녀의 축복이 있은 후에도 나는 나의 축복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 나이가 많은 탓으로 선생님께서는 걱정하시면서 “너는 이번 세 쌍이 먼저 축복받은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이다음에 축복을 할 때는 너를 가장 먼저 축복해 주겠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음 해에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최봉춘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겠지”라는 말씀을 들었다. 소문으로는 간혹 듣고 있었으나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알고 있을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지금 일본에서 전도하고 있는 선교사 말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축복 문제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축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시치미를 떼고 “아 그렇습니까? 그러나 저는 전혀 모릅니다”라고 버티며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재차 “너 자신의 결혼에 대한 일이 아닌가, 어쨌든 최봉춘은 어떤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상대가 눈앞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간단히 결정해 버렸다. 그러고는 즉시 지방 임지로 돌아갔다. 그 후 36쌍 축복이 있었는데, 최봉춘 선생은 일본에서, 나는 한국에서 각각 따로 받았다. 그러고 나서 3년 후에 나는 일본에 가게 되었다. 당시 최봉춘 선생은 일본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숭상 받고 있었다.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되자 일본에서는 그 선생의 부인이 온다고 해서 준비도 상당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와 최봉춘 선생은 뜻 안에서 볼 때 한국에서 함께 일한 적이 없고, 형제자매로서 연결된 적이 거의 없었다. 최봉춘 선생은 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를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혼자서 나에 대해 이상상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