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다. 창밖에 있는 것들은 형체를 잃고 침묵에 든다. 자정이 지나자 잦아들었던 바람이 다시 일어난다. 손에 든 책은 같은 페이지에 머물고,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자꾸만 밖을 내다본다. 세찬 바람에 지상으로 내려앉지 못한 눈이 먼 허공을 부유한다. 눈의 풍장같다.
오늘같이 눈 내리는 밤이면 그가 생각난다. 그런 날이면 또 한사코 베란다를 서성이며 바깥에서 내리는 눈을 안쪽에서 맞는다. 그날 그가 지나간 생과 사의 경계는 어디쯤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속엣것을 꺼내 보이지도 못했다. 그의 딸로 사십 년 넘게 살았어도 서로에게 다가서는 법을 몰랐다.
아침이 되자 하늘이 말갛다. 경비원들이 치워 놓은 눈이 곳곳에 둔덕을 이루었다. 베란다 문을 연다. 유리창 위쪽에 뭔가 허연 것이 붙어 있다. 가까이 다가서다 흠칫 놀란다. 새의 깃털이다. 날아가던 새가 유리창에 부딪힌 게 틀림없다. 거무스름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고, 회색의 깃털들이 유리에 짓이겨져 있다. 어젯밤 내린 폭설에 길을 잃고 변을 당했을까. 콩 소리가 나고 외마디 비명이 들렸을 텐데, 어느 누가 깨어 있어 그 순간을 애도해 주었을까. 한 생명이 사라지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떠나던 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우리 집 창문 밑에서 멈춘다. 화단의 겨울나무들이 눈 속에 시린 발을 묻고 서 있다. 새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파헤치면 새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죽은 새를 마주칠까 두렵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유리창에 붙은 깃털을 보고 있으려니 새의 울음과 아버지의 울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우리 형제들의 살림살이는 하필 왜 그때 약속이라도 한 듯 힘들어졌을까. 생애 처음 분양받은 아파트에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제야 장남 노릇을 하게 됐다고 말하는 오빠의 어깨가 얼마나 당당했던가.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파트 담보대출로 차렸던 고깃집은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그즈음 나도 오래 해오던 학원을 접었다. 무리하게 학원을 확장했다가 그동안 일구었던 기반마저 잃고 말았다. 부모님께 매달 드리던 생활비를 드리지 못했다. 동생들도 힘들어했다. 바깥에서는 꽃이 피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데, 우리가 있는 곳만 눈보라 치는 겨울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섯 살 때 고아가 되어 친척 집을 떠돌며 자란 탓인지 무뚝뚝하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다.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도 희생을 감내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자 어머니는 참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잔소리가 심해졌다.
아버지를 벼랑 끝에 서게 만든 것은 오빠의 식당이 파산으로 치닫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어머니도 오빠도 기울어 가는 식당을 살리느라 아버지를 신경 쓰지 못했다. 돈을 빌려다가 식당에 밀어 넣어도 숨통이 트이는 건 잠시뿐이었다. 월급을 주지 못해 직원들을 내보냈고, 주방의 빈자리는 어머니 차지였다. 아버지는 집에 남겨졌다. 수술했던 허리가 회복되지 않은 데다가 일흔 노인이 식당에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어머니와 오빠는 눈만 뜨면 식당에 나갔다가 한밤중이 되어야 돌아왔다. TV 소리만이 적막하게 들리는 빈집에서 아버지의 시간은 어떻게 흘렀을까. 밥솥의 밥과 반찬들은 먹는 양보다 상해서 버리는 게 더 많았다. 어머니가 화를 내도 소주병들이 베란다 구석에 쌓여갔다. 바깥출입도 뜸해졌다. 아파트가 경매에 들어가고 식당이 마지막 영업을 하던 날에도 종일 술을 마셨다. 그날 밤, 아버지는 베란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일흔여섯 해를 뒤로 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가족 모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짊어졌다. 장례식은 끝났으나 누구도 아버지를 보내지 못했다. 밤에 자려고 무면 입관하던 순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작은 체구에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로 삼베에 쌓여있었다. 얼굴에는 후회도 미련도 없어 보였다. 살아생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얼굴을 죽은 후에야 만져보았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아는 아버지는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으나 돈을 모으고 가족을 돌보는 데에는 서툰 사람이었다. 그게 다였을까. 문득 내가 아버지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나를 낳아준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보다 더 슬펐다.
아버지가 떠나고 곧 겨울이 왔다. 그해 겨울은 폭설이 잦았다. 폭설과 폭설 사이, 기상청이 쾌청한 날이라고 예보하는 날에도 마음속에 내리는 폭설은 멈추지 않았다.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겨울을 났다. 돌아보니 그 폭설은 아버지가 죽기 한참 전부터 우리 가족에게 모질게 퍼붓고 있었다. 좁은 지역에 많은 눈이 퍼붓는 국지성 폭설처럼.
새가 충돌한 지 두 해가 지났다. 그 사이 비바람이 자주 불었지만, 유리창에 새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흐릿해졌을 뿐 깃털까지 그대로 붙어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충돌한 유리창이 가족이었다는 자책감에 얼어붙고는 한다.
바람이 분다. 유리 바깥쪽에서 깃털 끝이 파르르 떨린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새의 깃털에 손바닥을 가만히 대어본다. 그날 밤 아버지는 새가 되어 어디로 날아가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