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을 훔치다*
정철용
먹구름 몰려드는 생의 벌판 위 버려진 날들의 초가집이 있어
인적 없는 하늘마당 입술 바짝 마른 누렁우물 녹슨 도르래 두레박에는 한 시절 모은 이슬비 는개 다 새어나가고
집 나간 번개를 잡으러 들판으로 나간 아이들이 그물로 펼쳐놓은 가오리연들엔 막 쏟아지기 시작한 굵은 소나기만 걸리네
저러다 벼락 맞을라 화들짝 놀라 사립문 열고 나선 할머니 얘들아 그만하고 어여 들어와
뒤돌아본 아이들 눈에 번쩍, 할머니를 먼저 마중하는 번개 우르르 쾅, 천둥은 뒤이어 들리고 그날 밤 사립문엔 조등(弔燈)이 걸리네
그날 이후 아주 연(鳶)을 놓아버린 아이는 산 너머 먹구름 속 희미한 천둥소리에도 벼락 맞은 것처럼 놀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때마다 실 끊어진 가오리연들은 강변에 늘어선 미루나무들 우듬지에서 함께 작당해서 펄럭거리며 천둥을 훔치고 또 훔쳐보지만
천둥을 훔쳐도 한사코 다시 짖어대는 눈 깜짝 번쩍 저 번개를 잡지 못하면 천둥을 훔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번개는 천둥보다 언제나 한두 발쯤 재빨라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번개는 잡지 못한 채 사내는 쓸데없는 천둥만 훔치고 있네
다시 먹구름 몰려드는 생의 벼랑 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꿈들의 성채가 있어
* 천둥을 훔치다(steal someone’s thunder) ;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세상에 알리다, 혹은 남의 특기나 명성을 가로채다는 뜻으로 쓰이는 영어 속어.
ㅡ계간 《웹진시산맥》(2026, 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