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良心]
김광한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하느님이 천사를 불러 지상에 내려가 가장 아름답고 값진 것을 한개 가져오라고 했다. 명령을 받은 천사는 곧 지상에 내려갔다. 천사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곧 나타났는데 그것은 깊은 산에 홀로 피어있는 꽃이었다. 고고하게 홀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한떨기 꽃송이, 천사는 그 꽃송이를 줘어 하느님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천사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어느 마을에 도달하자 천사 는 젊은 어머니가 안고 있는 어린애를 보았다. 어린아이는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렇 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천사는 이 아이의 웃음이야말로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여겨 웃음을 손바닥 에 담아 하느님에게 갔다. 이번엔 잘했다고 칭찬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 데 하느님은 지난번과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 "어린아이의 웃음은 나중에 변할 수가 있는 법이야"
다시 지상에 내려간 천사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보기가 좋다고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천사는 여러날에 걸쳐 지상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지만 선뜻 이것이 아름답다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실망 끝에 천사는 우연히 어느 시골 변두리의 성당에 들어갔 다. 가난한 교인들이 다니는 성당이었는지 벽이 갈라지고 장궤 틀 역시 낡고 찌들어 있었다. 그런데 제대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한 늙은 농 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농부는 기도 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 었다. 감사와 회개 , 그리고 용서의 눈물이었다. 천사는 바로 이 것이로구나 싶어 노인의 눈물을 두손으로 받아 하느님께로 갔 다. 하느님은 천사가 받아온 농부의 눈물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 이면서 "바로 이것이야" 하였다. 누가 만든 이야기이거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에 불과하겠 지만 나는 여기서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산다는 것의 고마움과, 살면서 남들에게 입힌 상처의 회개, 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용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시절 훈련병 때의 일이다 사격을 마치고 돌아와 내무반에서 총기를 분해해 총기 손질 을 하는데 방아틀 뭉치에 붙은 방아쇠가 반쯤 부러져나가 있었 다. 분명히 사격을 했을 때는 멀쩡했었는데 누군가 방아틀뭉치 를 바꿔놓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우선 겁이 덜컥났다. 내무반장이 알면 큰일났기 때문이 다. 고문관(바보)이 되는것도 문제였지만 변상문제가 따르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곁의 동료에게 눈짓을 해서 그 친구의 옆에 있 는 훈련병이 한눈을 파는 사이 슬쩍 성한 방아틀뭉치를 내앞으 로 네다바이하게 시켰고, 그는 내 것을 집어 그 자리에 놓은다 음 슬그머니 그의 것을 내 앞자리에 밀어놓았다.
방아틀뭉치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해서 나는 곧 그의 것을 총기에 감쪽 같이 결합시켰다. 내게 부속품을 바꿔치기 당한 윤이병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곧 기도하는 자세로 두손을 모았다. 나는 그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윤이병은 내무반 훈련병 가운데 나이가 한두살 더 많았다. 얼굴에 유난히 수염 이 많아 내무사열 때는 늘 '수염불량'으로 지적을 받기도 했고 사격에는 불합격을 받아 완전군장을 한채 연병장을 몇 바퀴씩 도는 기합을 받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선지 동작이 굼뜨고 하는 행동이 미련스럽게 보 여 '고문관' 으로 불리어겼다. 윤이병은 자기 총의 방아틀 뭉치에 손상이 난걸 알고 순순히 내무반장에게 신고를 했다. 성격이 포악하고 훈련병들을 자기 밥처럼 여기던 내무반장 이 그 말을 듣고 가만 있질 않았다. 그는 윤이병에게 총기를 배상하라며 심한 기합을 주었다. 말이 기합이지 그건 기합이 아니라 무차별 구타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한편 으로 내가 만일 윤이병처럼 신고를 했으면 그와 똑같이 구타를 당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마 음 한쪽 구석에선 양심의 소리가 칼날이 되어 쩔러대 편안치만 은 않았다. 윤이병은 내무반장에게 구타를 당한 것 이외에 내무반장에 게 총기 부품값을 비공식(?)적으로 물어준 다음 무사할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나는 기성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윤이병과 주 특기가 같아서인지 같은 부대로 가게 되었고 또 같은 중대에 배속받게 되었다. 우리는 내무반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졸병으로서 동병상련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함께 보초도 서고 사역에도 같이 나갔다. 나는 윤이병을 볼 때마다 훈련병 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마음이 무척 편치 않았다.
차라리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빌까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뜻대로 되질 않았다. 내 솔직한 마음을 받아 들 이고 용서를 해 줄 것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는 우리 중대의 졸병으로서 고문관 노릇을 했다. 특히 제식훈련을 할 때는 '좌향좌' 구령에 우쪽으로 돌아 포악 한 내무반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중대 대항 사격시합 때 는 그 혼자만 불합격을 해 중대원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단골 사역병이나 고정 초병으로서 내무반에서 얼굴을 볼수가 없는 날이 많았다. 추석이 얼마 안남은 어느 날 이었다. 각 중대에서 계급이 가장 낮은 이등병 한명씩을 특별 휴가를 3일간 보내기로 했다는 공문이 대대에서 내려왔다. 우리 중대의 이등병은 나와 윤이병 둘이었다. 윤이병은 시골에 처자식이 있었고 마땅히 특별 휴가는 윤이병 차지였다. 윤 이병은 휴가소식을 듣고 내게 "김이병 집에 가고 싶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나와 한번도, 외박은 커녕 외출조차 나가지 못한 내게 휴가란 꿈같은 일이었다. "가고 싶지 그런데 그게 어디 맘대로 되는 일인가?" "내 대신 김이병이 다녀오지" 나는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니 그 게 아니었다.
"난 말이야 집에 가봐야 별 재미가 없어. 그러나 김이병은 다르겠지 사귀는 여자도 있는 것같던데" 하며 히죽 웃었다. 그의 누런 이빨이 무척 건강하고 정직해 보였다. "정말인가?" "내가 언제 거짓말 시켰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쩨쩨하고 옹졸한 인간일까? 나는 진작 그에게 나의 잘 못을 용서 받아야 했었다. 그로부터 용서받을 기회를 놓친다면 나는 영원히 구제받지 못할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윤이병에게 훈련병 시절에 있었던 과오를 이야 기 했다. "윤이병에게 고백할 게 있어 사실은·.." 그러자 그는 내 손을 잡으면서 "알고 있었어.총기 부속품 이야기 말이지?" "어떻게 알고 있었어? 왜 알고도 모른체 하고 있었어?" "언젠가는 김이병이 내게 고백하리라 믿었기 때문이야. 그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잊고 용서를 했던거야. 사실 용서란 말이 이상하지 부대에 함께 근무하게된 것이 다행이야, 그렇지 않 았으면 김이병은 평생 그때의 일을 갖고 고민했을 것 아냐?"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얼굴 에 털이 유난히 많이 돋아 지저분한 인상을 주던 윤이병, 그러 나 평소에 보아왔던 그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의 털구멍 하나 하나에 자비와 용서와 관대함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앞에 점점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