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튀니지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첫 민주선거가 치러졌다. 23년간 독재 정치를 펴오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튀니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90%의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올 한해를 뒤흔든 중동의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튀니지의 선거 소식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 중동 지역에 들불처럼 번지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경기 침체에 분노한 청년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세계 경제의 핵심이자 위기의 근원이었던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도 시위가 시작돼 다시 전 세계의 동조시위로 번졌다. 전 세계의 시위대가 현 상황에 대한 분노와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이들 시위를 각각 별개로 놓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작가 레베카 솔니트는 18일 미국의 정치평론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서 2011년을 휩쓴 시위 열풍에 처음 방아쇠를 당겼던 튀니지의 한 청년의 죽음에 주목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대학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 올해 초 세상을 떠났고 튀니지 국민들의 분노를 일거에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부아지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솔니트는 현재 중동과 유럽, 미국, 심지어 학생들의 공교육 개혁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칠레에 이르기까지 '99%'를 대변하는 일반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촉발시킨 것은 결국 그의 죽음부터였다고 전했다.
솔니트는 사자(死者)가 된 부아지지에게 시위대가 무엇에 분노하고 있고 또 시위가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 전하면서 이 시위가 어떤 미래를 맞을지는 불명확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볼 수 없었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고 위로했다.
나는 당신에게 이 놀라운 1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절망의 힘에 대해, 희망의 크기에 대해, 그리고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해.
당신의 삶은 짧았지만 죽음의 의미는 거대했고 '아랍의 봄'을 통해 많은 독재자들이 몰락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미국의 몰락'을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민 사회가 갑자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당신이 가난과 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온몸에 불을 살랐을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기 정확히 9개월 전인 2010년 12월 17일은 당신이 분신을 한 날입니다.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 2주 후부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힘없고 희망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몸에 불을 붙인 당신이지만, 하나의 작은 희망을 놓고 떠났습니다. 넉넉한 수입을 올리거나 경찰에게 공정한 대우를 받을 힘은 없었지만 당신은 저항할 힘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희망은 많은 이들의 꿈이었으며 99%의 꿈이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튀니지인들이 들고 일어나 정권을 전복시켰고 이집트, 바레인, 시리아, 예멘, 리비아로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가 없는 중동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지금 그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로 말 그대로 크게 요동쳤고, 자신들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 역시 흔들리고 있고, 중산층과 배고픈 이들의 불만이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인도의 미래는 누가 알겠습니까. 깜짝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들에게 소소한 권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은 군대가 무서워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부의 긴축 정책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빼놨나요? 거기선 경제적 고통에 항의하는 엄청난 시위가 올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거대한 시위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2008년 경제를 망친 은행을 구제하는 문제를 두고 계속 싸우고 있고 정치인들에게 달걀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전직 총리는 아마도 글로벌금융 붕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음으로 법적인 단죄를 받는 국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5월 15일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처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봉기에서 시위대는 어떤 정당이나 하나의 입장만을 얘기하지 않고 보다 더 나은 세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중, 실질적인 민주주의,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자신들의 경제적인 기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기업들과 1%의 이익에 자신들의 미래를 저당 잡힌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라고 부르며 지난 여름을 광장에서 보냈습니다. 이집트 혁명의 성지 타르히르(해방) 광장 점령 시위와 같은 '마드리드를 점령하라' 시위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앞서 벌어진 것들입니다.
높은 교육비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 분노하고 있는 칠레의 학생들은 5월부터 시위를 벌여오고 있고, 참여 인원은 15만 명 이상입니다. 콜롬비아에서도 지난주 4만 명의 학생들이 '교육 개혁'을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습니다. 영국에서는 8월 런던에 살고 있는 흑인 청년 마크 더간이 경찰의 발포로 숨진데 대한 항의의 뜻으로 젊은이들이 런던, 버밍햄 등의 거리로 나와 소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지난 겨울 학자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좌파 시인 하비에르 시실리아가 갱단에 의해 자신의 아들을 잃고 정부의 마약정책에 반대하는, 아름다운 비폭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도 지난 겨울 시민들이 공무원들의 단체교섭권을 지키기 위해 주 의회 청사를 몇 주간 점거했었습니다. 이집트인들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피자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들의 연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점령 운동은 월스트리트에서 다른 곳으로 번져 갔습니다. 북미 각지에서 수백 건의 점령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 월스트리트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우리가 99%다
'우리가 99%다'는 점령 운동의 구호입니다. 지난 여름 '우리가 바로 99%'라고 써 있는 전단이 배포되어 8월 9일 오후 7시 30분 뉴욕 맨해튼의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에서 총회(general assembly)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9월 17일 시작된 월스트리트 시위를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은 1840년대 기근으로 숨진 100만 명의 아일랜드 소작농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식량 수출국이었는데 특권층들이 수익을 모두 독차지했습니다. 따라서 그 기념관은 소수 특권층의 착취, 우리의 조상들을 이민으로 내모는 힘,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을 농지와 집과 조국에서 몰아내는 힘을 상징합니다.
1840년대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식량 절대량의 부족이 아닌 분배의 문제에서 발생한 근대의 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미국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며 천연자원이나 간호사, 의사, 대학, 교사, 주택, 식량 등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따라서 미국 역시 분배의 위기입니다. 부유한 이들은 충분히 부유합니다만, '충분하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럽습니다. 그들은 지난 30년간 우리 나머지들의 생존과 존엄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약탈해 갔습니다. 따라서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은 월스트리트 시위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대기근 시절 굶주림으로 죽어갔던 99%는, 그리고 금융 위기로 생계와 집을 잃은 99%는 부시 행정부와 그 정부가 만든 극단적인 민영화의 시대를 통해 떠받들어진 1%의 사람들에게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상위 1%는 지난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미국 전체의 소득 성장의 65%를 가져갔고, 2010년에는 미국 전체 인구의 6.7%인 2050만 명이 4인 가족 당 1만1157달러(약 1268만 원) 이하의 돈으로 1년을 살았습니다.
8월 말 뉴욕에 사는 28세의 한 활동가가 '우리는 99%'라는 웹사이트를 열었고, 거기에는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전해지고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해 결국 자신들을 빚더미에 앉게 한 교육을 받았고 또한 성실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처하게 된 심각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트는 부의 재분배를 약간만 개선해도 해결될 수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한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호사스런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19세기 물방아 기계 작업자들처럼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 뿐이고, 그들이 만약 병에 걸린다고 해도 모든 게 끝장나는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존중을 받고 생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당신의 가슴을 찢을 것입니다.
26세의 나이에 저세상으로 간 부아지지 당신에게 최근 그 사이트에 올라온 글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26살이다. 현재 13만4000달러(1억5229만1000원)의 빚이 있다. 14살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는 풀타임으로 일했다. IT 업계에서 일하다가 지난 7월 해고됐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곧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임금은 삭감됐다. 방금 우리 아버지가 지난 주 해고됐다는 걸 알았다. 한 직장에 18년간 계셨다. 나는 강박신경증이란 병을 가지고 있는데, 치료를 받기 위해 오랜 시간 근무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주택 대출금(모기지)을 갚을 수 없고, 휴가를 내면 새롭게 잡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99%다."
'우리는 99%'라고 말하는 이중 일부는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젊은 IT 노동자의 편지는 매우 길어서 자신의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난이 그렇게 만듭니다. 가난은 또 재능과 가능성, 교유의 목소리를 흐릿하게 하며 더 심해지면 당신을 굶주림과 비참함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가난은 험난했던 2011년 전 세계 사람들이 저항했던 시스템의 산물입니다. 결국 '아랍의 봄'은 경제적 저항이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독재와 전제정치 역시 지배자와 다국적 기업 등 '1%'를 위한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
스페인 '분노하라' 시위에서는 "우리는 정치가와 은행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라는 슬로건이 등장했습니다. 부아지지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젊은 세대들이 일어나 미국에 있는 우리들까지 함께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 확성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초기 비평가들은 시위대가 실질적인 요구사항을 제안해야 하는 로비 그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월스트리트 시위대들이 학자금 대출 면제와 같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시위대들이 품은 거대한 꿈을 작은 틀에 담으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들은 이 운동이 속도를 내 지도부를 선출하고 누군가를 타깃으로 비판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시민사회와 대중에 의해 촉발된 자발적 운동이고 구체적인 정책 요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운동은 시위를 조직하고 진행하는데 총회라는 방식을 씁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권위자를 보려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민주주의의 부재 현상를 조롱하는 것보다 작은 틀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위대들의 총회는 모든 결정이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뉴욕 경찰이 확성기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에 총회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논의되는 내용을 전달합니다. '인간 확성기'인 셈이죠. 많지 않은 어휘는 손짓으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방식들은 대규모 회의임에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한편으로 이 총회 방식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평등한 발언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시민사회에 참가하는 순간 직접 민주주의를 체감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시위대들은 뭔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지만 그 총회는 어떤 기술도 확성기도 없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문자메시지, 이메일, 그리고 <점령당한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신문과 온라인 사이트들은 이 소식을 전 세계로 퍼트립니다.
시위 참자가들은 제한 없이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거의 우리 모두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과로에 시달리며 학자금을 갚아 나갈 운명의 대학생, 돈이 없어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청년, 더욱 열심히 일하지만 소득은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 직업도 없고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없는 많은 이들, 은행의 농간으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 의료보험 재정 악화로 영향 받게 될 모든 이들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시위가 4주가 넘게 지속되고 있고, 지난 15일 전 세계 1000여 개의 도시로 퍼져나갔다는 점입니다. 그 시위는 '99%'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위는 "두 번째로 조국을 위해 싸웠다. 적이 누구인지 안 게 처음이다"라는 한 전직 미 해병의 슬로건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는 기후변화 운동도 등장했습니다. 기후변화 운동을 막는 건 다른 모든 문제를 막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가로막으려는 이들은 이 운동이 기업의 이윤을 떨어트릴 것이라면서 '분기 이익이 위험한 것도 아닌데 먼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시애틀에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반세계화 운동이 성공적으로 벌어진 이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전 이미 다른 세상이 왔다고 봤기에 이 말을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노인이 "우리는 모두가 중요하게 취급받는 사회를 위해 싸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한 마디인가요! 어떤 요구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현 경제 시스템에서 사람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AP=연합뉴스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함께 점령하라(Occupy together). 뉴올리언스, 포틀랜드, 스톡턴, 보스턴, 라스크루케스, 미니애폴리스를 점령하라. 점령하라. 이 말은 선언이고 공식 견해이며, 입장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 그들의 직업은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직장을 잃었을 때, 그들은 단지 실업자가 아니라 무의미한 존재가 됩니다. 점령하라 운동은 그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제공합니다. 임금을 주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일자리(job)를 잃었고, 직업(occupation)을 찾았다"라는 시위대의 재치 있는 문구도 있습니다.(*occupation은 '점령'이라는 뜻과 '직업'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편집자)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다"라는 표현처럼 점령이란 단어에는 암울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 방송조차도 주식시장의 등락이 오래전부터 '99%'의 삶의 질과 무관하지 않아왔다는 듯이 다우존스 주가 소식을 하루에 몇 번이나 보도합니다. 월스트리트는 마치 미국에 소속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오랫동안 점령해 왔습니다. 이제 월스트리트는 미국이 외국을 점령하듯 그 일부분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이 아닙니다. 아마 적국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점령당했습니다. 미국 원주민(인디언)들이 4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알카트라즈 섬을 18개월 동안 점령하고 원주민 운동을 일으켰던 방식으로요. 당신이 서 있을 곳을 정하고, 그곳에 있을 때 당신은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써 또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5월 오하이오에서는 로빈 후드를 자처하는 이들이 체이스은행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등장했습니다. 이 40명의 로빈 후드들은 또 지난주 시카고에서 열린 국영 모기지은행 회의에도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압류 위기에 처한 주택들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압류는 물론 사람들을 집이 없는 상태로 만듭니다.
역사적인 이 순간에서 점령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것입니다.
혁명의 시작과 미래
당신의 절망이 희망을 낳았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모릅니다. 10개월 전 분신했을 당시 당신도 확실히 알지 못했고, 현재 우리 누구도 모릅니다. '미국의 가을'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랍의 봄'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지를요. 이 운동은 갓난아기의 상태로 세상에 도달했습니다. 그 아이의 운명,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아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처럼 억압될지 모릅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같이 분노에 찬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시민사회가 전체주의로부터 나라를 해방시켰던 체코슬로바키아나 헝가리, 통일 독일에서처럼 광채를 빛내며 태어나 환영을 받다가 결국 둔감한 중산층 시민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르코스 일가의 도둑정치(kleptocracy)를 축출한 1986년 혁명 이후의 필리핀처럼 격동 속에서 성장할지 모릅니다. '1%'를 대신해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지원한 군사 쿠데타로 사라진 1953년 이란의 모하메드 모사데크 수상과 1954년 야코보 아르벤즈 과테말라 대통령,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처럼 초기에 암살당할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아이이건 역사의 아이이건, 우리는 이 아이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직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무엇과 닮아 보이나요? 물론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동조 시위가 올해 전 세계에 걸쳐 태동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떤 점에서는 1950년대 시민운동과도 비슷합니다.
187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 자발적인 전국적 봉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877년 벌어진 철도 파업은 폭력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점령하라' 시위는 비폭력 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 때도 많은 극단주의 운동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엔 가족과 같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2003년 2월 15일 이라크 침공에 임박했을 때 전쟁에 반대해 7개 대륙(맞습니다, 남극 대륙을 포함해서요)에서 벌인 행진과 시위는 분명히 닮았습니다. 반 세계화 시위는 대모(代母)격입니다. 그리고 10살 더 먹은 형제도 있습니다.
9.11 테러에서 싹튼 공동체 정신
주코티 공원은 월스트리트에서 단 두 블록 떨어져 있습니다. 또 9.11 테러가 벌어진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한 블록 떨어져 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는 9.11 테러 당시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곳입니다.
올해 9월 21일 제 친구 마리나 시트린은 주코티 공원에서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부터 이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나이도 천차만별이야. 특히, 9.11 추모비를 지키는 보안 요원들 중 몇 명은 건설 노동자들처럼 점심을 먹으려 이곳에 들러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어."
9.11 테러 이후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리스트고 지하드 전사이며 자살폭탄범이라는 공포에 찬 환상을 갖고 있던 서방 국가들에게 10년 뒤 '아랍의 봄'이 그러한 환상을 깨는 비폭력 혁명으로서 9.11 테러의 대척점에 섰다면, 9.11 테러 10주년을 맞은 지 6일이 지나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0년 전 그날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것은 모든 이들이 차분하고 아름답게 대처했다는 점입니다. 뉴욕 시민들은 서로 도우며 쌍둥이빌딩의 계단 수십 개를 내려와 재앙을 벗어났습니다. 또 다른 시민들은 헌혈을 위해 줄을 섰고,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으며, 당시 뉴욕에서 새롭게 생겨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첼시 피어(뉴욕의 종합 스포츠 센터)에는 무료 급식과 의료지원,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장비를 제공하는 커다란 식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식당은 또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 숙소를 찾는 것도 도와줬습니다. 공식적인 구호 활동도 아니었지만 현재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보다 더 자발적이었고 활동을 이끄는 주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공식 지원 기구가 세워지면서 강제로 해체되었습니다. 당시 이 활동에 동참한 이들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경험했고,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깊은 사회적 교감을 나눴습니다.
제가 몇 해 전 도시 재해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사례를 계속해서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피해가 끔찍한 수준일 때에도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고 모였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지옥에서 세워진 천국>라는 책을 쓴 이후 계속해서 경제 위기라는 재앙이 비슷한 종류의 공동체를 만들어낼지 자문했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를 겪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뉴욕의 거리와 많은 다른 도시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이제 때가 됐다"라고 적힌 피켓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희망은 우리 안에 있다.
이 운동은 태동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01년 정부가 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기 전부터 있었던 경제적 불만과 디폴트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반면 미국 경제는 3년 전에 붕괴됐고, 당시에도 몇몇 분노한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반응은 미뤄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유인되었습니다.
당시 분노는 사실 우리를 위해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운동이었고, 희망에 가득 찬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자신들의 후보를 백악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버렸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운동은 기업과 싸워 기후변화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동은 한 명의 선출 공직자가 1000만 명의 시민, 또는 시민 사회 자체와 동등하다는 듯이 스스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그 운동은 나이와 인종을 초월했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정치가와 선거에 대한 환멸을 느낀 다음 망가져 버린 제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정확히 이 운동이 무엇을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닯았다고 꼭 그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기대하지 않았던 운동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고 그 앞에 우리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당신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김봉규 기자(번역)
"월가 시위, 1968년 봉기 이후 최대 사변"
[월러스틴의 '논평'] "환상적인 성공…오랫동안 영향 남길 것"
기사입력 2011-10-16 오후 2:15:11
이매뉴얼 월러스틴 美예일대 석좌교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환상적인 성공
지금까지는 하나의 운동인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베트남 전쟁 반대와 프랑스 68 혁명의 영향으로 일어났던] 1968년 봉기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며, 68년 봉기에서 직접 유래했거나 혹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 시위가 왜 미국에서 시작됐는지 우리는 앞으로도 확실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매우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점점 늘어가는 워킹푸어들('중산층'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에게도 경제적 고통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었다. 미국의 최고 부유층 1%('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착취와 탐욕은 엄청나게 커졌다. 세계 곳곳에서 분노한 이들의 시위 사례가 있었다.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 시위, 칠레의 학생 시위, 위스콘신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수호] 시위 등 매우 많은 사례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분노의 불길을 당겼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것은 시작됐다.
월가 점령 시위의 첫 단계는 초기 며칠간이었다. 대부분 젊은이들로 이뤄진 대담한 사람들 몇몇이 시위를 시작했다. 언론은 철저히 외면했다. 일부 멍청한 경찰간부들은 강하게 진압하면 시위가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찰들의 무자비한 행동이 포착됐고,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이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시위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갔다. 언론은 더 이상 그 시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론은 시위대를 깎아내리려고 했다. 이 멍청하고 무식한 젊은이들(그리고 일부 나이든 여자들)이 경제에 대해 뭘 아나? 그들이 어떤 적극적인 프로그램이라도 가지고 있나? 시위대들은 '규율이 있는'(disciplined) 사람들인가? 이러면서 언론은 시위가 곧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과 권력자들은 시위대들이 외치는 구호가 널리 공감을 받고 있으며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들은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점령' 시위와 비슷한 시위가 시작됐다. 쉰 살 먹은 무직자가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명사들도 힘을 모았다. 미국의 최대 노동 단체인 산업노조총연맹(AFL-CIO)의 대표를 포함해 노동조합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아닌] 해외 언론들이 시위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들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정의'를 원한다고 답했다. 이 답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들리기 시작한 듯하다.
이로써 시위는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정당성을 획득하는 단계다. 명망 있는 학자들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시위대의] 공격은 정당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중도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뉴욕타임스>가 8일 사설을 썼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대가 "분명한 메시지와 특정한 정책적 처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운동은 "젊은이들의 봉기를 뛰어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신문은 "극단적인 불평등은 망가진 경제의 특징이다. 그 경제는 금융 부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생산적인 투자 보다는 투기, 부당한 가격 인상, 정부의 비호에 경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치고는 꽤 강한 표현이었다. 그러자 민주당 하원 선거대책위원회(DCCC)는 "나는 월가 점령 시위를 지지한다"라고 선언하는 청원서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 뉴욕의 중심 타임스퀘어에서도 15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운동이 존경을 받게 되면서 네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시위가 커지면 대개 두 가지 커다란 위협에 직면한다. 첫째, 우파 조직의 맞불 시위가 일어난다. 공화당 하원 원내 대표인 강경파(그리고 매우 약삭빠른) 에릭 캔터가 이미 맞불 시위를 요구했다. 그 시위는 매우 격렬할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그 상황을 대비해야 하며, 맞불 시위를 어떻게 다룰지 혹은 어떻게 봉쇄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위협은 운동이 성공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오는 것으로 맞불 시위보다 더 큰 위협이다. 지지자들이 늘어나면 적극적인 시위 참가자들의 관점이 점점 더 다양해진다. 시위가 너무 좁은 시각만을 반영함으로 인해 결국 패배하고 마는 상황, 그리고 반대로 너무 광범위한 시각을 수용함으로써 정치적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양 극단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 어려운 문제다.
앞으로 이 운동은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재구조화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현실, 다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커다란 지정학적 변동의 현실에 대한 다수 미국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월가 점령 시위는 시위대들의 피로가 쌓이고 당국이 탄압하면서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위는 이미 성공했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 유산을 남길 것이다. 1968년 봉기가 그러했듯이. 미국은 언젠가 바뀔 것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새롭고 보다 나은 세계 체제, 새롭고 보다 나은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은 분명 가능하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월가 점령 시위는 다른 세상, 매우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월 15일 논평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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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 1000만 원이 넘어가는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한국 대학생들이 잇단 집회를 벌이고 있다. 경쟁에 찌들어 정치에 무관심하다 여겨졌던 20대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비단 등록금 문제뿐 아니라 졸업장을 받고 나서 마주칠 척박한 고용환경이 이들의 삶을 옭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올해 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한 청년들의 시위가 유럽으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도 이들도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강력한 지도력 대신 민주적인 사고와 소셜 네트워크 기기로 무장한 이들은 공권력과 큰 충돌을 빚지 않으면서도 점차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자 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지난 7일자 르포 기사에서 이집트와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년들의 시위를 둘러봤다. 체제에 순응하던 과거를 벗어나 분노하고 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촛불을 든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을 번역해 싣는다. <편집자>
유럽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파리에서 일어나는 어떤 혁명에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은 빠지지 않는다. 200명의 젊은 시위대가 지난 2일 저녁 바스티유 광장의 나무 그늘에 앉아 어떻게 혁명을 시작할지 궁리하는 이유다.
5일이 되기 전까지 시위대의 수는 2000명 이상으로 늘었고, 바스티유 오페라 공연장 입구까지 점거했다. 최루탄을 소지한 경찰이 도착했고, 이후 이 상징적인 장소를 철통같이 감시했다.
시위대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포르투갈 리스본 시위에 필적하는 운동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그들은 진짜 민주주의(démocratie réelle)를 요구하며 파리의 거리를 행진할 수만 명의 청년들을 원한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20%가 넘는 청년실업률과 불안정 노동, 끊임없는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기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행동'(Actions)라 불리는 단체에 소속된 22세의 물리학도 줄리앙(Julien)은 "지금까지 우리의 문제는 항상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당해 왔다"며 "당신이 직업을 찾지 못하면 본인의 잘못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이 체제에 맞선 범유럽적 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행동에 뛰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근본적 변화
유럽 곳곳에서 모여드는 청년들은 그들이 부모 세대만큼 풍요롭게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 한다.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자란 '위기의 아이들' 세대는 몇 년 동안 끓어온 불만에 영향을 받았지만 누구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리에서 싸우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3월 12일 20만 명의 군중이 리스본 '해방로'를 행진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당시 '잃어버린 세대'의 행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집트 카이로의 혁명은 코임브라(Coimbra) 대학의 알렉산드레 데 수자 카르발류(Alexandre de Sousa Carvalho)와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쓰레기 세대'(Geração à rasca)에게 시위에 함께하자고 청했다. 그들은 페이스북에 "무직에, 저임금에 인턴인 우리들은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잘 교육받은 세대"라며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빨리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고 있다"라고 썼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25세의 카르발류는 수염을 기르고 허리에 가죽 완장을 두른 예의바른 청년이다. 그는 평소엔 잘 참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로 석사학위를 땄음에도 제한된 고용 계약만 맺을 수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만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혜택 받지 못한 이들
포르투갈은 유로존에서 4번째로 가난한 국가다. 심지어 그리스의 1인당 GDP가 더 높다. 실업률은 지난 6년간 2배가 뛴 12.6%고 25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27%에 달한다. 일자리가 있어도 절반 이상이 임시직이다. 많은 이들이 유사 자영업자(사업주가 세금 등을 회피하기 위해 자영업자로 위장한 노동자)인데 소득은 적지만 50%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카르발류는 밴드 '둘린다'(Deolinda)의 노래가 그들이 저항하는데 영감을 줬다고 말한다. 이 밴드의 노랫말은 삶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난 돈을 벌지 않는 세대야. 그게 신경 쓰이진 않아. 얼마까지 난 멍청해질 수 있지?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인턴 자리라도 건지면 다행이지. 얼마나 멍청한 세상인가, 우리는 노예가 되려고 학교에 가고 있는데."
그들은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는 걸 그만두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태동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카르발류는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저항을 조직하는 이들이 그에게 연락을 취해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무정부주의자와 우익 활동가, 트로츠키주의자와 가톨릭 신자들이 유리창 하나 깨트리지 않고 거리 시위를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
최근 몇 달간 세계는 거리와 광장을 메운 청년들의 모습에 익숙해져왔다. 이러한 광경은 튀니지의 하비브 부르기바(Avenue Habib Bourguiba) 거리,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바레인의 진주 광장이 다 비슷하다. 이는 아랍 혁명의 모습이며 이제는 유럽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 뭘까? 아랍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속한다. 인구 절반이 25세 미만의 청년들이다. 반대로 유럽은 잘 살지만, 고령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소수에 머물러 있다. 아랍 국가에서 청년들은 민주적 권리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유럽의 청년들은 정치적 힘이 줄어가기 때문에 저항하고 있다.
아랍 세계의 이미지
아랍과 유럽 젊은이들은 모두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일자리가 없다. 그들이 모든 혁명의 원동력이다. 시위에 동원되는 도구도 유사하다. 젊은이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지만, 지도부는 없다. 유럽의 청년들에게는 아랍 세계의 그런 모습들이 필요한 것 같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에는 3주 동안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광장은 분노한 이들의 차지였다. 시위대는 지방선거를 1주일 앞둔 5월 15일부터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100여 명만이 밤을 보냈다. 하지만 선거위원회가 이들을 불법이라고 규정하자 오히려 빠르게 늘어났다. 선거가 치러진 일요일에는 3만 명의 인파가 광장과 인근 거리를 채우고 경제위기와 무능력한 정치인, 부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또 직접 민주주의를 시도했다. 시민들이 광장에 놓인 종이상자에 그들의 제안을 던져 넣도록 했다. 매일 저녁 위원회는 단기적인 정치 분야의 아이디어에서 좀 더 미래지향적인 주제까지 토론하기 위해 모였다. 2주 전 시위대는 도시의 120개 거리에서 모임을 열였다.
순응이 최선의 전략이라며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이 밤새 정치적으로 변했다. 이 운동을 관찰한 결과 도달한 가장 놀라운 결론이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위대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요구했고 청년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지지 표명을 모아갔다.
▲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중심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를 치고 회의 중인 청년들. ⓒ로이터=뉴시스
"난 외국으로 가야만 한다"
18세의 파트리(Patri)는 거의 처음부터 마드리드의 시위대에 있었다. 지난 1일 그는 회색 후드 스웨터를 입고 발언대에 앉아있었다. 그는 기침을 했고 피로한 눈 아래 다크 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남아있고 싶어 했다. 그는 "우린 역사를 만들고 있다"며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와 독일어를 전공하는 대학 1학년생이다.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아마 외국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25세 미만 경제활동 인구의 44%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대학 졸업자 3분의 1이 무직 상태다. 일자리가 있는 이들의 절반 이상이 소위 '쓰레기 계약'을 맺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선 고용 기간이 몇 주 단위로 제약되기도 한다. 경기 활황기에도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려 왔다. 3년 전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시작된 위기의 최대 피해자도 청년들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청년들의 처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고, 다른 유럽 도시에 시위의 여파가 차례차례 미치고 있다. 저소득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청년들이 독일 함부르크,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로마에서 거리로 향하고 있다.
바스티유 습격
아이러니하게도 젊은이들들을 이끈 이는 94세의 프랑스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스테판 에셀(Stéphane Hessel)은 지난해 <분노하라!>(Indignez-vous!)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스페인의 '분노한 이들'(indignados)과 프랑스의 '분노한 이들'(indignées)이라는 말은 모두 에셀의 책 제목에서 따 왔다.
전 유럽에 걸친 이러한 저항 운동을 에셀이 만든 건 아니지만, 그는 무관심의 시절 이후 다시 유행이 될 무엇, 곧 시민 참여를 요구했다. 그의 호소는 많은 유럽 시위대들이 찬성하기엔 막연하고도 충분히 심각하다. 그는 양극화된 세계에서 비폭력 운동을 지지했다.
비록 프랑스의 '분노한 이들'은 리스본과 마드리드, 그리스 아테네의 시위대처럼 많지는 않지만 잘 조직돼 있다. 파리에서 그들은 대로의 중앙분리대에 앉아 연락 방법과 공격 계획을 궁리하지만 세련된 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학 강의실에 있는 것처럼 그들 중 한명이 발언하면 다른 이들은 손을 들어 찬반을 결정한다.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파리 교외에서 온 아랍 청년들이 앉아 있다. 도시 외곽은 고용난이 가장 심하고 차들이 아직도 (폭동으로) 불붙은 채 남아있다. 아랍 청년들은 이 낯선 모임을 보며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 일부는 때로 분노에 찬 모욕적인 말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온화하고 단정하며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그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할' 때 평화로움을 유지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