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규모
- 안희연
주인을 기다리는 잔들이 있었다
손님이 잔을 골라 오면 그 잔에 주문한 음료를 담아주는
카페였다
손잡이는 손을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낼 테지
그런 하루는 참 영원 같겠다, 생각하며
잔을 고른다
우릴수록 붉어지는 차가 무늬 없는 투명한 잔에 담겨 나온다
내가 고른 잔이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
두렵지만
선택했기 때문에 양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잔이 생긴 것이다
손이 기억할 수 있는 크기가 생긴 것이다
다른 잔을 골랐더라면 어땠을까
안이 하나도 비치지 않는 사기그릇이었다면
비밀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
발맘발맘*이란 그럴 때 필요한 말이겠지
헥타르와 아르의 차이는 알지만
불에 탄 코알라의 얼굴은 들여다보지 못할 때
삼각형의 수심은 알아도
마음의 수심은 구할 줄 모를 때
카나리아는 우는 소리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 새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무엇을 담는 사람인가요? 물어오는 풍경 앞에서
나의 규모를 생각한다
* 한걸음씩 거리를 가늠하며 걷는 모양.
ㅡ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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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내면을 그릇에 견주어 비교하는 경우를 봅니다
체구는 작아도 엄청 큰 그릇이라는 말로 칭송하거나
허우대는 멀끔하나 속이 밴댕이라는 폄훼도 서슴치 않습니다
'희망의 언어'만 내뱉어야 할 정치판에서 '절망의 언어'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수십만 낱말 중에서 찾아내서
일반인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런 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 등장합니다
한 입 두 입을 거치면서 점점 거세지고 난폭해지며 입과 귀를 더럽힙니다
그들의 규모를 어림짐작하게 되어 속이 편해지지 않네요
사람의 속내를 밖에서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신의 한 수'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