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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 난 참 못노는 애였다. 내가 공부를 선택한 것은, 내게 다분히 끼있고 노는 기질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난 일대일로는 장난을 잘 치지만, 어디 앞에 나가서는 그렇게 못했다. 어디 앞에 나가있는 경우는 보통 얼어있었다.
고등학교때인가, 발표를 한적이 있었다. 무슨 교육이란 과목같았는데, 자기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이름을 갖고 싶은지,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거였다. 그건 즉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하란말과 비슷했다. 이제 보니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 저 노는 무리와 같은 반이 였는데, 난 그 일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외국 영화를 좋아했고, 외국영화에 나오는 이쁜 여자 아이 이름을 대며, 그 외국 이름을 갖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그 여자애가 이뻣는데, 그 여자애를 닮고 싶어서라고 말햇었다. 그냥 단지 그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이름이 이뻤기 때문이다. 난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고등학교 여자애가 할만한 이름치곤 너무나 생각없고 유치한 선택이었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그때 그랬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뭐 이딴 애가 다 있나, 라고 그 교육선생님이랑 같은 반애들이 생각했을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랑 애들도, 쟤 머 저래. 이러면서 벙쪗을 것이다. 난 왜그랬을까, 아씨. 난 왜 그랬나, 대체 쪽팔리게 왜그랬을까... 어쩌면 난 그때 못생긴 내가 너무 싫고, 그 영화속 이쁜 여자애가 그렇게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당시 최근에 본 그 영화에서 난 그 여자애가 인상이 깊었었나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수업시간에 그렇게 허무한 이야기를 했을까. 정말 고등학생이 할만한 이야기였나, 정말 난 아무 깊은 생각없이 그런 말을 내 뱉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너무 싫다. 생각이 거기까지 밖에 안됐던 내가 정말 싫다. 뭐 이런게 다있나. 난 그정도 밖에 안됐었나. 그래.. 그땐 난 그정도 밖에 안됐었다. 정말 철이 없었다. 생각의 깊이도 없고, 그래 무조건 난 외모,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남들을 질투하기만 바빳다. 인생이 먼지, 내가 누구인지, 사람의 가치는 먼지, 이런 깊은 성찰 같은건 전혀 없었다. 누가 이쁘고 안이쁘고, 남자한테 관심있고, 사랑얘기에 온통 관심이 있었다. 사춘기였나? 그럼 내게 사춘기는 저렇게 가벼운 주제만 있었던 걸까? 내 자신이나 삶, 인생이나 고통 이런거에 대한 깊은 고뇌는 없었나? 그랬던 내가 너무 싫다. 그렇게 생각없고, 어리석고, 가벼웠던 내가 정말 부끄럽다. 우습게 느껴진다.
근데 그 시간에 다른 애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 여자애의 발표가 기억이 난다. 그 여자애는 그 무리중 한명이었는데, 얼굴이 무지 크고, 눈이 작고, 성격이 털털한 애였다. 그애는 자신의 눈이 작은걸 오히려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이름을 지었었다. 어떻게 저럴수 있는지 난 싶었다. 그게 내게 충격이었다. 그애의 솔직한 모습에 친구들은 그애를 더 좋아했다. 이쁘게 말하고 싶었던 나보다 오히려 이 애의 발표가 분위기가 더 좋았다. 그애의 그런 선택, 남들앞에서 자신을 웃음꺼리로 만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일. 그런건 나에겐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난 오히려 날 감추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예쁘게만 보이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날 더 비웃음꺼리고 만들었다.
난 그때 발표도 넘 엉성했고, 어설펐고, 분위기도 안좋았다. 내가 하고도 얼굴이 빨개졌다. 내 스스로 분위기가 안좋을걸, 썰렁한걸 느꼈다. 오히려 잘하려고, 잘 보이고 싶었는데, 난 찬물을 뒤짚어쓴것 같았다. 그게 너무나 싫었다. 차라리 시키지를 말지, 내가 오히려 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이상하게 수업시간에 책을 읽으라면 그렇게 떨렸다. 책읽는 공포가 될수도 있는데, 난 그게 병인지도 모르고, 그냥 내가 그런애인가 싶었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을 때, 내 차례가 되면, 난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완전 긴장했다. 책읽을때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대화체를 읽을때, 역할을 나누어서 연극하는게 있었는데, 난 이게 곤욕이었다. 난 이걸 하면, 꼭 소리를 들었다. 책읽듯이 하지 말고, 감정을 넣어서 하라고.. 근데 나는 그게 안되었다.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한다고는 하는데 자꾸 책읽듯이 한다고 소리를 들었다. 그게 나중엔 아예 공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분량이 많은 주인공보다는 그냥 지나가는 역할 하길 좋아했다. 그게 훨 부담이 적었으니까, 나에게 이런 연극같은 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남들이 왜 연극하기를 좋아하는지 그런게 이해가 안되었다.
그랬다. 난 남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즐기지 못했다. 그런 시선이 부담되서 긴장됐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표현하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은 내게 곤욕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해서 머좀 시키려고 하면, 난 저런 부분에선 영 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테 더 실망하고 머라고 더 비판을 한것 같았다. 더 잘해보라고. 왜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그래. 난 엎드려서 고개숙이고 공부밖에 못하는 애였다. 나가서 멀 하라고 하면, 난 그걸 잘하지 못했다. 항상 긴장하고 떨리고, 남 시선에 주눅이 들어, 화려하고 활발하게 그런걸 해내지 못했다. 난 그런 애였다.
이런 나의 성질때문에, 난 어디 나서는 걸 싫어했다. 그런걸 해야 하는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안보이고 안드러내는 걸 택했었다. 고딩때 저 노는 무리와 같은 반일때, 퍼포먼스를 하는게 있었는데, 그때 자기가 하고 싶은걸 고르는게 있었는데, 내 차례가 거의 처음이었음에도 난 주인공 분량많은 부분보단, 안꾸미고 잘 안보이는 역을 택했다. 그건 바람의 역할로 검은옷을 입고 날 최대한 가리고 파란 비닐봉지만 연신 휘날리는 역이었다. 주인공은 자기를 화려하게 꾸미고 나서서 인사하고 무슨 표현이나 동작을 해야 했는데, 누구나 그런걸 하고 싶어했는데, 난 그걸 하려니 긴장이 되서, 내가 머리를 굴려서, 가장 표현력이 없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난 나를 위해서 어쩔수 없이 그걸 선택했는데, 그런식으로 선택하는 내가 진짜 병신같이 느껴졌다. 난 너무나 보여지는게 없어서, 남들이 꺼려하는, 그런 역을 혼자 맡으려는 거였다. 이런 병신이 어딨냐, 이런 병신이 어딨냐고.. 니가 여자냐? 그렇게 움츠리는걸 좋아하면 어쩌냐, 화려하게 등장해도 아쉬울판에 말이다. 난 이렇게 일부로 날 표현하지 않는것, 날 드러내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걸 잘 못했으니까..
그래.. 난 이렇게 학창시절에, 기회가 있어도 나서지 못했다. 난 그런 류의 성격이 아니였다. 발표나, 연극, 반 퍼포먼스에서 난 항상 기가죽었고 주눅이 들었다. 공부잘하는 내게 선생이 기회를 줘도 난 못했다. 난 애초에 그런애가 아니였던 것이다.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이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 난 읽어본적이 있다. 난 수줍음 많은 아이. 난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아이였다. 자동적으로.. 난 나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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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보니, 난 정말 수줍음 많은 아이, 기어들어가는 아이였던 것 같다.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튀는 애니까, 그런걸 시킬때 당연 주인공을 하고, 중앙에 서리라 생각했겠지만, 난 선생님이 그런걸 시키면 앞에 나가서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실망하고 선생도 나에게 종종 실망했다. 난 내성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난 앞에 나가서 나를 드러내는 것, 나를 표현하는 걸 잘 하지 못했다. 어색해했다. 그 이유로는 남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에 너무 긴장이 되서였다. 그건 왜 그랬을까? 이건 잘 모르겠다. 애초부터 나는 아무이유없이 남들에게 주목받는 걸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것 같다. 난 수줍음 많은 아이, 부끄러워 하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그 이유를 내가 스스로 못생겨서 사람들이 날 보는 거에 신경썼던 건 그 이후의 일인것 같다. 그건 내 머리가 아주 자라서 일때고, 나는 그런 자의식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남이 날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남이 날 칭찬하면서 다 쳐다볼때도 난 그 순간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순간에 당당하기보단, 더 겸손했던 것 같다.. 그래.. 엄마 친구들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니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며?" 이렇게 아줌마들이 다들 웃으면서 날 칭찬할때도, 난 부끄러워서 엄마 뒤로 숨었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어서 날 칭찬하고 날 우러러 보더라도, 난 사람들이 날 그리 주목하고 쳐다보는게 부끄러워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래서 난 더 겸손했던 것 같다. 그래 겸손병. 이게 여기서 나왔을수도 있다. 부끄러워하는 것, 수줍음 많은 것,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것, 자랑하기보다 겸손하며 수그러드는 것이, 내 원래 성격인 것이였다.. 그래.. 나 이런애라구.. 근데 너는 왜 나에게 당당하라고 하는거니? 이런 주제를 자탐으로 쓰고 있는 것 자체가, 나의 이런 성격을 내가 문제시하고 싫어하고 있는 것 아니겠니.. 그래.. 난 나의 이런 성격을 문제 있는 성격으로 보고 자탐의 주제로 정하였다. 만약 이런 성격이라도, 이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이런것을 말할꺼리로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말할꺼리가 안되었을것이다. 근데 나는 이 성격에 왈가부가 하고 있다. 그건 내가 이 성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거라 보고 있는거다. 내 이런 성격이 이러면 좀 안되니? 그래. 살아가면서 좀 불편하기도 하겠지. 스스로도 긴장되고 땀흘리고, 또 남한테도 소리듣고 말이야.. 근데 어쩌겠어. 내 성격이 이런걸. 이게 내가 스스로 변화되지 않으면, 난 이러할텐데.. 스스로 변화되지 않는 한, 이게 어떻게 변하겠니? 근데 넌 이런 날 싫어하는구나.. 그래 워낙 불편하고 사람들한테 소리 들었으니까.. 남들이 아무래 그래도, 너만은 이런 내 성격을 좀 이해해주면 안되겠니? 내가 왜 부끄러워하는지, 왜 긴장하는지, 니가 누구보다 잘알잖아. 그게 아무 이유가 없단걸. 자동적으로 내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는걸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하겠니.. 나도 답답해. 하지만 어떻게 해.. 내가 자동적으로, 선천적으로 이러는 걸.. 이런 날 어떻게 하냐구..
그래.. 나는 그런 아이였다. 내가 이런 나를 알아준다면, 안아준다면, 이런 성격자체를 왈가부가할 꺼리도 안될꺼다. 그렇게 신경쓰며 고통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성격을 문제시하고 신경쓰는 자체가 내게 고통을 주고 있다. 내가 이런 내 성격을 그냥 무던히 받아들인다면, 이건 말할 소재도, 고통의 소재도 되지 않을것이다. 내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스믈스믈 넘어갈 것이다. 근데 그걸 문제라고 딱 잡아끈것은 바로 내 부정적인 생각이다. 그걸 나쁘고 그러면 안될것, 고쳐야 할것으로 보는 내 부정적 시각이다.
그래.. 내가 그걸 나쁜것이라고 보고 있는 부정적 시각이 날 괴롭혔었다. 내가 이런 내 성격 안받아주면, 누가 받아줄까. 오빠는 받아주겠지. 오빠는 날 사랑하니까.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바꿀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냥 받아들이겠지. 그래.. 나도 이런 내 성격 내가 받아주자.. 난 어쩔수 없다. 몸이 그리 먼저 반응하는걸. 태어날때부터 그랬는 걸.. 난 그렇게 수줍음 많은 아이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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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의 이런 소극적 성격이, 부끄러움 많은 성격이, 남 앞에서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 약간의 문제를 일으켰던건 분명해. 발표할때나, 연극할때나, 퍼포먼스 할때나, 날 숨게 하고, 가슴철렁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들었지. 날 수그러들게 만들었지. 스스로 날 이런부분에서 약간 실망하고 작아지게 만든 건 있어.. 그래.. 그랬었어. 난 이쪽에선 밍숭맹숭해.. 잘못해.. 그거 인정해..
물론 잘하면 좋겠지. 하지만, 니가 모든걸 잘할수 잇는건 아니야. 넌 니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밝은 애라서, 이런것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랬음 좋겠지만, 넌 의외로 그런걸 못한다는 걸 알았어. 니가 못그런다는 걸 어떻게 하니.. 괜찮아.. 반의 아이들도 선생도 너테 그런걸 기대한건 사실이야. 니가 저런걸 잘 하니까, 그런것도 잘하겠지 싶었을꺼야. 근데 널 직접 보니, 기대보다 실망한 부분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널 싫어하게 되었을까? 아니.. 그런쪽으로 너가 재주가 없는 걸 알고, 담부터 널 시키지 않았더라도,. 단지 그거야. 너라는 사람에 대해 완전 실망한것도, 널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것도 아니야. 널 그대로 좋아할꺼야. 근데 쟤가 그런 부분이 있구나. 그런 약점이 있구나.. 라고 너를 좀더 알게 되었겠지. 그들이 널 싫어하거나 무시한건 아닐꺼야. 너의 가치는 그대로일꺼야. 물론 니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구나,,를 알게 되었겠지만, 너의 가치는 그대로일꺼야. 내가 봐도 그래. 니가 그런걸 잘 못한다고 해서, 니가 무너지고 너의 가치가 내려가고 하는건 아닐꺼야. 너의 약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 니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구나를 알았겠지, 하지만, 그건 절대로 너가 가치가 내려간 사람이란걸 뜻하진 않아.
그러니까, 그렇게 부족한 너라도, 그쪽으로 잘 못하는 너라도, 그런 너를 미워하거나 실망하지 말으렴.. 누구나 그런 부분이 있단다. 왜냐면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도 네 자신도 너테 기대를 했지만, 니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란걸 알게 된것 뿐이야. 넌 그대로의 너야. 다른 많은 모습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너라구..
니가 만약 좋아하는 어떤 애가 있는데, 그애의 예상치 못한 약점을 알게 되었어. 넌 그애가 당장에 싫어지니? 그애가 약점이 있는 걸 알아서 그애를 앞으로 무시할꺼니? 아니.. 그애는 똑같아. 그애는 비록 약점을 가졌지만, 그애가 괜찮은 애란걸 알아서 무시하진 않을꺼야. 단지 그애도 완벽한 애는 아니구나.. 라고 그애를 더 이해하게 되겠지. 그런 그애가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보일지도 모르겠어. 더 다가가기도 쉬워질지 모르겠어. 그건 그애를 무시한다의 의미가 아니라, 더 친근해진다의 의미일꺼야. 더 알게 되었으니깐..
것봐.. 너도 다른 사람의 약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잖아? 다른 사람도 너테 이렇게 느낄꺼야. 너도 너 자신에게 그렇게 대해주렴..
그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내가 무시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날 더 알게 되고, 날 더 이해하게 되어서 친숙해졌다고 말야. 그렇게 받아들이렴. 나를 더 알아주었잖니. 나를 더 이해해줄수 있지 않니.
(그래..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날 때론 실망하게 하고 망연자실하게 했지만, 그건 나의 한 일부분이야.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해서 나의 모든것처럼 얘기하지마. 저런 나의 약점을 크게 만들어서, 날 완전 못난 사람으로 만들지 마. 그건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 날 그리 만들꺼야. 저런 나의 약점, 잘 못하는 점,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내가 저걸로 인생을 못살았니? 내가 뭘 잘 못했니? 아니.. 다 해왔어.. 나 왠만한거 다 잘할수 있어.. 물론 완벽하게 잘하진 못했지만, 저것때문에 완전 인생을 망치고 못살게 되는건 아니라구. 그런 나의 약점이 날 완전히 완성시켜줄순 없다해도, 나의 그런 약점을 미워하면 안돼.. 인정해야돼.. 왜냐면 사람은 저마다 저런게 하나씩은 있으니까.. 나의 약점도 이해해주고 귀여워해줘야지. 저게 무슨 그리 큰 문제니? 귀엽기만 하다. 저렇게 잘할것 같은데, 의외로 못하는, 수줍음 많은 내 모습이 엉뚱하게 귀엽기만 하다.. 머.. 저런게 오히려 더 귀여운 날 만들어주는거야. 지켜주고 싶은, 도와주고 싶은, 인간적인 내 모습을 완성시켜주는 거야. 나에게 플러스가 될수 있다구. 겉으론 부족해보이지만, 안쪽으론 나에게 좋은 약이 될수도 있어.. 그러니까, 저런 나의 약점을 귀여워해주자. 이뻐해주자. 괜찮다구. 살포시 웃어주자. 너그럽게.)
그리고, 너가 좀 조연이나, 부주인공을 하면 어때. 넌 꼭 무슨 주인공이나 좋은 역할만을 맡아야 하니? 넌 너니까 니가 꼭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남보기 좋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여기지. 하지만 모두들 너같이 생각한다면, 배역의 주인공이 의미가 어디 있겠니. 모두다 분량많은 중인공만 있따면, 그게 연극이 되겠니? 퍼포먼스가 되겠니? 왜 꼭 주인공의 역할만 고집하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떤 배역이든 니가 잘 소화하고 그 배역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거야. 지나가는 행인1 이라도, 니가 한번할때, 최선을 다해서 하면, 넌 주인공만큼 잘한거야. 그걸 왜 모르니. 현실에선 그래 니가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저런 배역에선, 니가 굳이 조연을 맡더라도, 지나가는 행인역을 맡더라도, 거기에 최선을 다해 즐긴다면, 그게 바로 그 순간의 주인공 아니겠니.. 무엇을 하느냐보단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단다. 발표도 그래. 꼭 남보다 잘할 필요는 없어. 최고가 되면 좋겠지만, 니 스스로 그 순간에 솔직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거야. 그애를 봐봐. 그 이름이 얼마나 촌스럽고 웃기니. 발표의 주제꺼리도 안될, 그런 이야기였는데, 자신한테 솔직한 이야기였잖아. 자신한테 최선을 다한 이야기였잖아. 그게 그애를 빛나게 해준거야. 그 발표 주제에 딱 맞아서가 아니라, 그 애가 그 순간 자기딴에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그애의 발표가 빛난거란다. 너도 그러면 돼. 발표를 완전 화려하게 잘하려고 하지말고, 그 순간에 어물쩡넘어가려 대충하는게 아니라, 니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최선을 다한것이라면, 그게 어떤 모습이든, 그것이 널 빛나게 해줄꺼야. 결과야 어떻든 니 스스로 만족할꺼야. 그거면 된거야. 니가 이런 모습이라면, 잘못해도 내가 칭찬해줄게. 그렇게 발표에 임햇으면 좋겠다. 발표든 연극이든 퍼포먼스든, 그것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 그냥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진솔하게 임한다는 맘으로 그렇게 하길 바란다. 니가 잘못한다는 걸 알기에, 어차피 잘하길 기대하지도 않아. 그냥 그거면 된거야.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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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
나는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내 모습을 인정해주고 있다.
나는 수줍음 많고, 부끄럼 잘타는 나를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받아들이기에, 그것은 조용히 내 삶에서 잘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받아들이기에, 그것을 가지고 왈가부가 말할꺼리도 안되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에, 그것은 고통의 꺼리도 안되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나는 이런 나의 내성적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다.
나는 나의 이런 수줍은 내성적 모습을 귀엽게 봐주고 있다.
나는 나의 이런 수줍음 많은 내성적 모습을 이뻐해주고 있다.
나는 이런 나의 수줍음 많은 내성적 모습을 너무 이뻐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내 수줍음 많은 내성적 성격이, 내 인생을 모두 망친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여기고 있다.
나는 나의 약점을 알게 되고, 내가 완전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나를 더 알게 되고 이해하고 있따.
나는 나의 약점을 알게 되면서, 나를 좀더 이해하고 , 나와 더 친숙해짐을 느끼고 있다.
나는 나의 이런 약점을 귀여워해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다.
나의 이런 성질은 더이상 나의 약점이 아니다. 나를 채워주는 나의 성질인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내성적 성격을 알아주어, 나를 더 이해하게되었고, 나와 더 친숙해졌다.
나는 앞으로 발표를 해야 할때, 내가 잘못하는 걸 알기에, 잘하려고 하기보다, 진솔하게 임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나는 발표를 할때, 내가 잘못하는걸 알기에, 잘하려고 하기보다, 진솔하게 최선을 다하며 임하고 있다.
나는 발표를 할때, 내가 잘 못하는 걸 알기에, 잘하려고 기대하기보다, 그냥 최선을 다하길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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