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76년 전 그들의
'미군 철수=남북 평화' 주장, 신
념이었나 지령이었나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사상 첫 공안 사건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
< 일러스트=한상엽 >
보통학교 교사 출신 이문원은 42세 때
제헌국회 전북 익산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노일환은 34세 때
전북 순창 지역구에서 한민당 공천으로
당선됐다.
제헌국회 출범 이후 이문원과 노일환은
30‧40대 ‘소장파 의원’ 50여 명과
함께 민감한 정치적 현안마다 이승만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자주권 확보’를 명분으로
‘외군(外軍) 철퇴’를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1948년 10월 소장파 의원 45인은
‘외군 철퇴 동의안’을 상정해 반대
의원들과 서로의 멱살을 움켜잡고
“죽일 놈”
“공산당의 모략” 등 막말을 주고받았다.
최초의 국회의장 ‘경호권 발동’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표결은 보류됐다.
그 대신 11월 20일
“대한민국 방어 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 남한 주둔이 필요하다”
는 ‘미군 주둔 결의안’이 찬성 88표,
반대 3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됐다.
이문원과 노일환 등 소장파 의원 13인은
표결을 앞두고 퇴장해
“자손만대에 미치는 죄과를 범할 수 없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1949년 2월에도 이문원과 노일환은
국회의원 71인의 서명을 받아
“외군 철퇴와 남북 협상을 통한 통일”
을 주장하는 ‘남북 화평(和平) 통일에
관한 긴급 결의안’을 제출했다.
격분한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로 달려가
“남한에서 미군을 다 내보낸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다만 얼마라도 미군이 있어야 소련군이
내려올 수 없을 것이요”
라고 호소했다.
노일환이
“외군이 철수하면 조국이 번영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과업인
통일이 된다”
고 찬성 토론했지만, 결의안은 가 37표,
부 95표, 기권 27표로 부결됐다.
한 달 후 이문원과 노일환은 국회부의장
김약수와 함께 유엔한국위원단(유엔한위)
덕수궁 사무국을 방문해
“미군 철수를 위해 노력해 줄 것”
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62명이 서명한
‘3월 진언서’를 전달했다.
1949년 5월 민주국민당(한민당 후신)
김준연 의원은 동아일보에 ‘의정 1년’을
회고하면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소장파 의원들을
‘남로당 추종 세력’
이라 직격했다.
공안 당국은 소장파 의원들이
유엔한위에 ‘3월 진언서’를 전달한
직후부터 이들과 남로당의 연계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이문원·노일환 등을 미행해 남로당
공작원과 접촉 사실을 포착했다.
임시국회 개원을 사흘 앞둔 5월 18일
서울시경은 이문원·최태규·이구수 등
의원 3인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임시국회 개원 이후 상정된 석방
동의안은 재석 의원 184인 중
가 88인, 부 95인, 기권 1인으로
부결됐다.
반대 토론자로 나선 김준연 의원은
“석방을 요구하는 자, 석방 운동에 찬성하는
자는 모두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자”
라고 기염을 토했다.
----영화 '국회푸락치'(1974) 포스터. 배우
박근형이 전설적 공안검사 오제도 검사
역할을 맡았다.
제1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우수반공영화상'
을 받았다----
< /KMDb >
의원 3명이 구속됐음에도 6월 17일
김약수·노일환 등 의원 6인은
유엔한위를 다시 방문해 ‘3월 진언서’에
서명한 62인의 명의로 미군 철수 이후
500명 군사고문단의 잔류마저 반대하는
‘6월 진정서’를 전달했다.
이름이 도용된 의원들이 그런 진정서에
서명한 일이 없다고 항의했고,
김약수 부의장은 ‘6월 진언서’는
“6인 의원의 견해일 뿐 다른 의원들과
무관하다”
고 해명했다.
경찰은 개성에서 남로당 비밀문서를
지니고 38선을 넘어 월북하려던 여성
연락원 정재한을 체포했다.
“정재한이 생리대로 가장해 음부에
숨긴 공작 문서를 입수함으로써
국회에 침투한 프락치를 일망타진할 수
있게 됐다”
며 성과를 선정적으로 과장해서 홍보했다.
경찰·검찰·헌병대 합동수사본부가 조직돼
수사가 확대됐다.
6월 20일, 국회 폐회 이후 ‘2차 검거’가
시작돼 김약수·노일환 등 의원 7인이
체포됐다.
7월 임시국회가 폐회된 8월 1일 이후
‘3차 검거’에서 서용길·신성균 등 의원
5인이 추가로 구속됐다.
구속된 의원 15인 중 13인이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사실은 경악스러웠다.
1948년 9월 남로당은 ‘국회 공작부’를
설치하고, 이삼혁·하사복 등 가명을
쓰는 김사복을 통해 노일환과 이문원을
포섭하고, 남로당 비밀 당원으로
가입시켰다.
두 의원은 매달 300만원 상당의
공작금을 제공받았고, 다른 의원들을
포섭했다.
‘3월 진정서’ ‘6월 진정서’ 모두 남로당에서
작성했고,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유엔한위에
전달했다.
1949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 공판에서 기소된 의원 13인은
모두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5인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들이 음부에 비밀문서를 숨겼다는
정재한의 증인 채택을 거듭
요구했지만, 끝내 증인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박원순 변호사는 1989년
논문에서
“존재하지 않는 날조된 인물 정재한을
내세운 유령 재판”
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98년 정재한에 대한 재판 및
사형 집행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정재한은
실존 인물이었음이 확인됐다.
검찰은 이문원과 노일환이
“남로당에 가입했다”
는 물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문원과 노일환은
김사복과 만남, 정치자금 수수,
‘진정서’ 초안을 건네받은 사실 등은
인정했다.
다만,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적 신념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했을 뿐, 남로당의 지시를
받고 의정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공소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이문원과 노일환에게는
징역 10년, 나머지 11인에게는 3년에서
8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 재판이 계류된 동안 6·25전쟁이
발발했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모두 석방됐다.
남한에 남은 서용길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2인은 모두 월북했거나 납북됐다.
김병회·황윤호 등 4명은 납북된 후
행방불명됐지만, 이문원·노일환·김약수 등
월북한 8명은 ‘남로당 프락치 경력’을
훈장인 양 자랑했고, 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남로당 숙청
과정에서 덩달아 숙청됐다.
김영삼 정부 때 러시아가 한국
정부에 넘겨준 외교 문서의 하나인
북한 주재 소련 대사 시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보고서(1949. 9. 15)
에는
“노동당이 남조선 국회의원들 중
일부를 포섭했다”
는 기록이 등장한다.
‘공화국 1호 영웅’ 성시백의 ‘업적’을
찬양하는 ‘노동신문’ 기사(1997.5.26)에는
“성시백 동지는 괴뢰 국회 안에 민족적
감정과 반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로 진지를 구축하고 여기에
다른 국회의원들까지 포섭하여
반미·반괴뢰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공작을
대담하게 벌여 나갔다.
그리하여 국회부의장과 수십 명의
국회의원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고 보도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조작·날조된 사건이라 주장하는 일부
학자는 이러한 소련과 북한의 기록조차
북한 당국이 공적을 부풀리려고
‘과장한 것’이라 반박한다.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薔薇園
<미군철수=남북평화 주장, 신념이었나 지령이었나>,
벌건 공산당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백색을
흑색이라, 아니 더한 것도 후려칠수 있는 種子들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나?
2025년 현재의 좌파 더불어당의 일사불란함을 봐라.
좌파 인종들은 옳고 그름이 필요없다.
李氏 수령 지시에, 앞잡이 지시에 나란히 나란히
쫙 한줄로 늘어서지 않았나 말이다.
오소리 담비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똑 같다는 생각이다 !!!
아니, 오히려 더하다는 생각이다 ~~
그 게 다, 민노총과 전교조 등의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
사실과자유
박원순...남로당의 잔재..제주4.3사건, 위안부 문제
등등에 있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냄.
자살한 것도 북지령 아닌가???진실을 밝혀야
대장군
이런 전철을 밟고 그 비참한 6.25를 겪고도
정신못차리고 좌파니 진보니하는 공산당 푸락치들을
뽑는 무식한 국민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다!
先進韓國
전봉관 교수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물랐던 역사를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공산 좌파들이 왜 이리 많습니까?
나라를 북한에 팔아먹으려는 매국노들이지요.
이들이 6.25 북한의 남침을 불러왔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지요.
그러고도 그 뒤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주한 미군
철수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대한민국 멸망하고 사라집니다.
산따라 물따라
이 기사와 거리는 좀 있지만 5.18 유공자 명단을
밝혀라.
법으로 그 명단을 밝힐 수 없다고 했는데 악법은
고쳐야 될 것 아닌가?
하기야 지금은 따불백당이 점거하고 있으니 법 개정
또는 폐기는 불가능 하네
돌바람
현재 국회내의 반국가 세력과 간첩들의 활약을
심층 수사해서 척결해야 대한민국 건재한다.
문재인이 대공수사권을 무력화시켰는지
반추해 보라.
??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고 진화본이다.
현명한 미래를 살려면 이 반복과정을 다각도로
들여다 봐야한다.
과거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는건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의 의무다.
그런 과정을 생략한채 논리와 상식과 증거를
말하는 자체를 처벌하는건 너무 괴이한 현상이다.
저마다의 자유의지를 숨죽인다고 호흡을
멈출수 없는 이치다.
산울
원순이가 그런 논문도 썼어요?
바빴겠네.
미래현자
조선일보는 현재 중국 돈먹고 중국 왕후닝이
지휘하는 부정선거 덮는 반역은자발적인가부터
밝혀라
LONE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나? 주한미군 철수 직후
북한의 남침... 뭔 말이 더 필요하나?
게다가 저들이 했다는 말에 답이 이마 다 나와있지
않나?
"외군이 철수하면 ~~ 민족 과업인 통일이 된다" 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 아닌가?
북한식 표현? ...
게다가 저 "통일"은 적화통일이겠지...
지금 한국사회에서 좌익들이 부르짖는 "민주화"의
'민주'는 "인민민주주의"의 그 '민주'인 것처럼.
요그르트
북한 입장에선 포섭이고 당사자들은 신념이라고
할 수도 있지.. 꽉 막혔어..
byungmooni
지금 민노총에 간첩이 있어도 간첩을 체포할수
없다고 국민 모두가 알고있고 국정원마저
간첩수사는 못하고 경찰에서 하도록 되어있는 법을
개정하지 않는한 대한민국은 결국 사회주의나
공산국가가 될것 임이 자명한 사실이다 참으로
후세대가 걱정된다
solpi
푸락치들이 진보로 둔갑을 해서 국회를 장악했고 ,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능을 폐지했고 지금은
검찰개혁을 열시미 하고 있습니다 !
bu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내에 공산주의자들이
수두룩하다.
독일이 통일전까지 동독 간첩들이 5만명이
있었다 한다.
지금 국내에 간첩 세상일 거다.
안 잡는다 잡을 수사 능력도 없다 그냥 방치한다.
회원61928585
그때나 지금이나 간첩만 철저히 단속했으면 지금
일본을 능가하는 선진국이 됐을 것이다.
이어리석은 인간들아
회원98941727
현재. 여의도에도 프락치가 없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심연식
76년전 지금은 한국이 아니다 미군 필요 없다 .
우리힘으로 스스로 우리의 안보를 지킬수 있다.
우리의 국토를 노리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중국이다.
북한은 평화를 가저다 준 피를 나눈 동족이요
역사와 말과 글이 같은 동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북 평화 주장하고 나서기에 미군이
필요 없다 당장 철수 하기 바란다 우리땅은
우리 지키갰다
swl
북은 그래왔다. 끝없이 포섭하고 공작하고
그리고 6.25.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번창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김정은은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접수할까 ,
협의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