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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게임=서형욱] 바이에른 뮌헨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서도 씁쓸한 5월을 맞이하는 중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다음 시즌 새롭게 지휘봉을 잡게 될 맨체스터 시티는 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그래도 그가 지휘하는 맨시티에 대한 관심은 시들지 않을 것이다.
비록 세계 최고 명장이라는 호칭은 이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부유하겠지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가 등장하기 직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팀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촘촘했고 강력했다.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해냈고, 팀은 이기는 법을 알았다.
우리에겐 박지성의 팀으로 기억되기 시작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기야말로 맨유가 가장 강한 전력을 과시하던 때다.
그래서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팬 다수는 당시 맨유 선수들의 이름과 사연을 꽤 속속들이 알고 있다. 오셰이나 마케다 같은 선수들마저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K리거들보다 유명한 기현상은,
그 시기의 맨유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알려주는 흔적이다.
지난 주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서울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iloveunited 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맨유가 전 세계 팬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의미로 진행된 것이다.
같은 시기, 맨체스터 시티가 '글로벌 시티 팬'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 각지의 축구팬들을
맨체스터로 불러모은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두 팀의 행보가 흥미롭다.
(대한민국 대표로는 힙합 가수 주석이 초대받아 맨체스터로 날아갔다.)
아무튼 이를 위해 맨유가 서울로 소집한 레전드는 '앰배서더' 박지성과 그의 동료였던 루이 사하다.
2004년 1월, 맨유에 입단한 사하는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4.5 시즌을 뛴 뒤 에버턴으로 옮겼다.
사하가 뛰는 동안, 맨유는 두 번의 EPL 우승과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3년 전, 이탈리아 라치오에서 시즌을 마친 뒤 선수 은퇴를 선언했던
사하를 서울에서 만났다.
Q. 오랜만의 방한으로 알고 있다. 몇 번째인가?
루이 사하(이하 LS) : 두 번째다. 예전에 맨유 소속으로 팀과 함께 투어를 왔던 뒤 처음이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한다. 물론 내 동료였던 박지성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고.
박지성이 '대한민국의 호날두'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웃음)
올 때마다 축구에 대한 한국 팬들의 열정에 놀란다.
요즘엔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매우 뛰어난 선수들도 있었고. 국가대표팀의 좋은 실력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대한민국은 스포츠의 나라다. 늘 반겨줘서 고맙다.
Q.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그리고 팬들을 만나러 이렇게 멀리 날아오는 기분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LS :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 맨유가 전세계 흩어져 있는 맨유팬들을 현지로 찾아가 만나는 행사를 기획해서 오게 됐다.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아닌가 싶다.
현역 시절에는 맨유 팬의 규모가 이 정도일줄 몰랐다.
은퇴 후 이런 기회를 통해 팬들의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좋다.
Q. 아마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축구팬들은 특히나 당신을 맨유 선수로 인식하고 있다. 여러 팀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게 각인이 되어있다. 맨유 선수였던게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LS : 맨유 선수로 뛴 적이 있다는걸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빅 클럽이고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였으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것이 모두 좋았다. 맨유 선수로 뛰는 내내 즐거웠다.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늘 더 나은 축구를 추구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전 세계의 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까지
모두 기쁘게 생각한다.
Q. 2004년 맨유에 입단할 당시, 당신은 풀럼에서 엄청난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연말까지 시즌 절반을 뛰면서 22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넣지 않았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풀럼이 당신을 이적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던게 기억난다. 당시 퍼거슨 감독이 맨유로 오라면서 뭐라고 하던가? 맨유로 이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LS :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맨유 같은 최고의 클럽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는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당시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는데 퍼거슨 감독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나를 얼마나 원하는지, 또 존중하는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결심이 어렵진 않았다.
당시 맨유가 보여주는 공격 축구는 매력적이었고 함께 뛰게 될 선수들의 면면도 엄청났다.
공격수들은 물론이고 미드필더들도 두루 골을 넣는 팀이었으니까.
맨유로 이적하는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Q. 2012년에 루니가 영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공격 파트너로 사하를 꼽은 적이 있다. 알고 있나? 왜 루니가 당신을 꼽았을까? 그리고 당신에게도 루니가 최고의 파트너였나? (웃음)
LS : 물론 알고 있다. (웃음)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루니와 함께 뛰는 것은 나에게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루니는 본능적인 감각과 지능적인 움직임을 겸비한 공격수다.
루니와 호흡을 맞추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내가 측면에서 공을 잡고 있으면 루니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적시에 수비 뒤로 침투한다.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선수여서 함께 뛰면 축구가 쉽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게다가 득점력까지 갖췄으니 호날두나 앙리처럼 나에겐 최고의 공격 파트너였다.
Q. 당신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는 전방 공격수를 두 명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톱의 시대, 나아가 제로톱의 시대라고까지 불린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만일 '루이 사하'가 지금 시대에 뛰었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였을까?
LS :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다.
축구가 점점 더 스피디해지고 압박은 강해지고 있다.
공격수도 가끔은 모든 걸 다 할 줄 아는 선수처럼 보이길 주문받고 있지 않나.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선수들은 윙어 위치에서 중앙까지 넘나든다.
더 이상 전형적인 '9번' 공격수가 설 곳은 없어졌다.
각 팀의 수비 전술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전통적인 4-4-2 전술은 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나 같은 선수에겐 쉽지 않은 변화였을거다.
나는 투톱 체제에서 동료 스트라이커와 호흡을 맞춰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걸 즐기는 선수다.
몸싸움을 즐기고 수비를 압박하는게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축구는 점점 더 패스 회수가 늘어나고 백패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 내 스타일의 축구가 아니다. 별로 맘에 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나는 경기가 앞에서 이뤄지고 수비수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니까.
요즘 뛰었다면 변화가 필요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공격수가 늘 수비에도 신경써야 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
결승전이나 리그 우승이 걸린 시합처럼 몇몇 경기에선 그럴 수 있지만 늘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Q. 한국에 온 스타 선수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여긴 박지성의 나라니까. (웃음) 박지성은 어떤 선수였나. 둘 간의 사연이 있었나?
LS : 박지성을 처음 봤을때 무척 놀랬다.
PSV에인트호벤에서 뛸 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봤을땐 박지성이 과연 강력한 피지컬이 요구되는 EPL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 함께 훈련할 때 프레스업과 푸쉬업을 엄청나게 해대는걸 보고 정말 놀랐다.
물론, 그의 장점은 체력적인 면이 아니다.
박지성은 지능적인 선수이며, 뛰어난 무브먼트를 가진,
그리고 자기 역할에 헌신할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모든 팀들이 늘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럴때 박지성 같은 선수가 팀 스피릿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리고 박지성하면 가끔 가족들과 밖에 나와 배드민턴을 치던게 기억난다. (웃음)
Q. 당신이 뛸 당시 맨유는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였다. 최고의 팀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LS : 커넥션이다. 즉 선수들간의 연대감, 그리고 서로를 위한 희생정신. 당시 맨유에는 호날두나 판 니스텔로이 같은 선수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기여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개리 네빌, 존 오셰이, 대런 플레처, 필 네빌.....
그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들이 팀에 밸런스를 잡아준다.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연대감 위에 희생정신이 쌓인다면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다.
끝으로 사하에게 자신과 함께 뛰었던 동료들 중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꾸려달라고 했다.
주로 맨유 선수들 중심으로 구성된 '사하의 XI'에는
대표팀 동료인 지단과 앙리가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사하는 2박 3일간의 맨유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축구에서 희생과 밸런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그의 말처럼, 강한 팀에 꼭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던
그의 존재는 앞으로도 많은 팀들이 그리워할 요소가 될 것이다."
기사제공 서형욱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