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네가 꾸릴 수 있는 가장 깊은 주머니,
네 손끝을 언제까지나 안타깝게 만들
떨어뜨려라, 떨어뜨려.
네가 놓은 손과 놓친 손과 꽉 잡은 손 모두.
네 가장 훌륭한 주머니 가득.
오래전 문 닫은,
아이들이 전부 사라진 학교처럼
폭염 속 그늘에서 잠든 노인의
벌린 입처럼.
주머니는 네가 채운 손들을 살랑살랑
흔들지. 서로 꼬집지 않도록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이쯤 되면 주머니보다 자루가 더 어울리려나
싶겠지만. 주머니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루와 다르지.
손들이 나타내는 말을 한번 살펴봐.
주머니만 보고 손들이 하는 말을 고민해봐.
큰 나무 뿌리의 들뜸을
악의로 읽지 않기.
갑자기 오는 비를
징조나 선언으로 여기지 않기.
비가 흐르는 도로를
물개들이 헤엄치는 해안이라고 말하지 않기.
모두가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모두라는
개념에서 빠져나오기.
밤이 온다
잠이 온다
비가 온다
는 표현이
표현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기.
네가 주머니에 새로운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달라지는 말들
주머니를 달랠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시인들],세미콜론,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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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시인에게 / 김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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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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