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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 페미니즘
억압을 부수고 나올 용감한 남학생을 위한 페미니즘 공부
권재원 지음 | 발행일 2023년 1월 2일 | 138*210mm | 264쪽 | 값 15,000원
대상 독자 일반인, 성평등 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 어른들의 잔소리에 답답함을 느끼는 청소년
ISBN 9791192665146 (03300) | 주제 분류 교양 > 여성학 > 페미니즘, 교양 > 사회학 > 인권
키워드 페미니즘, 맨박스, 페미니즘교육, 맨스플레인, 백래시, 미러링
* 맨박스(Man Box)란?
가부장제에서 남성에게 씌워지는 억압으로, 남자다움을 강요한다는 뜻.
남학생의 감정과 행동을 억압하는 ‘맨박스’에서 지금 벗어나자!
사춘기 이전 남자 어린이는 놀랄 만큼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며, 특히 친밀감과 두려움 같은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면서 분노 이외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면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받고, 또래 집단에서는 놀림거리가 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커서 직업을 선택할 때도 ‘남자다운’ 직업을 선택하라고 강요받으면서 상처를 얻기도 하는데, 이는 어른이 된 뒤에도 아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교육은 남자들에게 “좀 들어라” 하고 외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남학생이 장차 젠더 불평등 사회를 극복할 균형 잡힌 사고를 획득하려면 가부장제하에서 가해지는 억압 즉, 맨박스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시작은 바로 페미니즘 공부다.
이 책은 2020년 겨울부터 2022년 여름까지 교육 전문 계간지 《우리교육》에 8회에 걸쳐 연재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엮었다. 페미니즘이란 개념이 왜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급진적인 사상으로 알려져 있는지, 남성은 왜 여성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운지,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그리고 미소지니가 어떤 뜻을 지닌 단어인지 등 그동안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우리나라나 주변 국가에서 벌어진 사건 등을 예시하면서 오해했던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고, 페미니즘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 현직 30년 차 교사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친절히 안내했다. 남성의 반 페미니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성별이 다른 자녀를 키우면서 어떻게 교육할지 고민이 많은 보호자,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궁리하는 교사 등이 읽고 나면, 다양한 세상을 자유롭게 만끽할 방법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전달할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 요즘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주의조차 너그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에는 즉각적으로 쌍심지를 돋우는 상태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페미니즘 교육을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여교사 한 명을 용납하지 못하는 잔혹한 억압이 도사리고 있는가 하면, 인기 많은 웹툰 작가가 소위 ‘꼴페미’로 찍히자 한동안 계정을 닫아야 할 정도로 악플에 시달려야 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이 엄청 위험하고 전복적인 사상인 것도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동등한 능력, 가치, 생각을 가진 주체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일 뿐이다. 이 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이토록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게 된 이유는 뭘까?
기울어진 운동장, 남성이 여성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
남성 대부분은 자신과 여성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특별히 무심하거나 완고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질서는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상황이 거의 드러나지 않게 만들어 놓았으며 이런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찬가지로 같은 수준이거나 더 낮은 수준의 말을 해도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여성보다 자기 말이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역시 특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니 특별히 진보적이지 않은 일반적인 남성들은 평등으로 가는 과정을 도리어 역차별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는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은 여성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불평등한 조건들을 평등하게 바꾸는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고 평등한 상태를 여성 쪽으로 치우치게 바꾸는 것으로 여긴다.
비유하자면 여성은 다만 “이제 내 말 좀 들어라.”라고 요구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자기네가 특별히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남성은 이 주장을 “남자들은 입 다물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성에게도 강한 억압을 행사하는 ‘맨박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남성은 어릴 때부터 두려움을 느끼면 “남자답지 못하다.”라고 배웠다. 이렇게 소년은 “남자다움의 굴레”, 즉 “맨박스”에 감금당한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걱정과 두려움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에게 연민과 배려를 표현하는 남성은 이러한 남성의 독점적 지배체제를 안에서 무너뜨리는 대역죄인이나 다름없으므로 그런 태도를 버리라는 강한 집단적 압력을 받게 된다. 많은 남성은 분노 이외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면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받고, 또래 집단에서는 놀림거리가 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수많은 마음의 상처는 어른이 된 뒤에도 아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아픔은 주로 분노라는 감정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되는데, 그 표출 대상은 으레 여성이 되기 마련이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 앞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엉뚱하게 전가된 분노를 걷어낼 수 있고, 분노로 일그러진 시야가 맑아질 것이다. 여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가부장제를 인식하고 그 억압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페미니즘은 남성혐오일까?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듯 대한민국 여성 중 남성혐오 정서를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혐오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들의 그런 말 때문에 한국 남성들이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고 외출을 두려워하고 여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걱정하는 따위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동안 아무리 여성의 권리가 과거보다 많이 신장되었다 해도, 한국 남성이 정말 그럴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혐 표현’ 때문에 남자들이 길에서 낯선 여자 마주치는 게 두려워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일베 등의 여혐 커뮤니티에서 한때 성폭력을 시사하는 표현이 난무했다. 이런 표현을 본 여성은 이후 낯선 남자들과 마주치면 공포감을 느끼고 행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법이 엄하게 개입하지 않는 한 남자들이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폭력적인 언어나 성폭력을 시사하는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실제 폭력이나 성폭력을 행사할 때 여성의 보복을 전혀 걱정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여혐과 남혐을 수평선상에서 거론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불공정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가 숨어서 우리 욕하는 짓 안 하면, 우리도 너희 앞에서 대놓고 욕하는 거 안 할게.” 나아가 “우리는 너희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을 테니, 너희는 우리를 마음속으로 싫어하거나 혐오하는지 고백하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라.”까지. 이 교환이 정당해 보이는가?
이건 마치 “남성은 욕을 하지 않을 테니 여성은 말을 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성혐오가 아니라 미소지니
여성혐오는 미소지니(Misogyny)의 번역어다. 이 단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이며, 이 안에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어떤 관형어도 붙어 있지 않다. 즉 혐오라는 단어가 따로 있고, 거기에 여성, 남성이라는 관형어가 붙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 자체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라는 단일한 개념이다. 이 개념어를 ‘여성혐오’라고 번역하면 마치 그 대응되는 개념으로서 ‘남성혐오’라는 말이 성립할 것 같은 오해가 생긴다. 그리하여 여성혐오에 맞서는 페미니즘과 남성을 혐오하는 페미니즘을 구별하게 하여 ‘건전한 페미니즘’ 따위의 말까지 나오게 된다. 이 건전함과 나쁨을 누가 판단하는가? 남성혐오인지 아닌지가 기준이 된다면 남성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전한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남성이 페미니즘의 가치를 판단하는 판관이 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페미니즘 덕분에 자유로워진 남성
미소지니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상당한 억압으로 작용한다.
미소지니가 강한 사회에서 남성은 강한 집단 압력에 시달린다. 해부학적으로 남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기질과 성향을 보이거나 특정한 기질과 성향을 감추도록, 즉 남자다워지고 여자답지 않아지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남성이 남성적 기질과 거리가 먼 성향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심미적인 가치를 추구하거나 경쟁이나 싸움보다는 정서적인 공감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부드러운 성향이나 취향을 가진 남성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미소지니가 강한 사회는 남성의 직업 선택 자유마저 제한한다. 우리나라는 20년 전만 해도 남성이 보살핌, 예술 쪽 진로를 선택하려면 가족, 특히 아버지와 거의 전쟁과 같은 갈등을 경험해야 했다. 최근에야 이른바 ‘셰프’라는 말, ‘헤어 디자이너’라는 말로 미화하면서 남성 조리사나 미용사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이 분야로 진출하려는 아들을 기꺼이 응원하는 부모, 특히 아버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1990년대에는 젊은 남성이 ‘초등 교사’라는 진로를 선택하는 것조차 주변의 눈총을 받는 일이었다. 그중 가장 많이 듣던 말이 “남자가 쩨쩨하게 선생이 뭐냐?”였다. 쩨쩨하다는 것은 공격적이고 거칠고 성취 지향적인 이른바 남성적 기질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남성이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여지가 커진 시기와 여성의 권리가 신장한 시기가 대체로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학생 중 적지 않은 수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동조한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설치되고 여성의 권리가 비약적으로 신장한 시기가 남성의 진로 경직성이 완화되고 다양한 기질을 가진 남성이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기라는 것 역시 팩트임을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한다.
페미니즘, 제대로 알고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자!
페미니즘이 없었다면 과연 남자는 자유와 권리를 만끽하고 살았을까? 아마 오늘날 이대남이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하는 말과 행동 중 절반 이상이 “사내자식이 어디서?”라는 한마디로 무시당하거나 금지되는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것들만 질문으로 만들어 응답하게 하면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행동이나 가치에 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통계가 많다.
20대 남자를 자유롭게 만들 힘은 여자를 윽박지르거나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 힘은 그들을 가부장과 남자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이대남을 해방시키는 동력은 ‘남성 해방’이 아니라 미소지니로부터의 ‘여성 해방’과 함께한다. 그들은 여성에게 남성혐오를 멈추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혐오하는 진짜 주범을 찾아 여성과 함께 그들에 맞서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미소지니와 가부장제이며, 그 수혜자인 가부장 세대 남성이다.
차례
시작하면서_ 마침내 페미니스트가 될 여러분에게
공산주의보다 더한 유령 – 페미니즘
공산주의에서 페미니즘으로
입에 담기 어려운 말 ‘페미니즘’
페미니즘이라니! - 진영을 가리지 않고 분노하는 남자들
진보 성향의 남성이 빠지는 함정, 맨스플레인
미러링을 곡해하는 남성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인식하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채 출발한 여성 - 남성은 왜 여성에게 공감하지 못할까?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기 어려운 까닭
불평등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남성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상실로 받아들이는 남성 - 남성에게 더욱 절실한 페미니즘 교육
누구에겐 양보, 누구에겐 균형
일상적 변화가 주는 불편함
쩍벌남과 다꼬녀, 그 엉뚱한 균형에 대하여
남성에게 절실한 페미니즘 교육
남자라면 분노? - 미국의 중산층은 어쩌다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을까?
성 대결이 되어 버린 2020년 미국 선거
분노한 남성들
상처받은 “싸나이”
오래 된 원한 - 가부장제 몰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흔들리는 가장의 지위
○○ 때문이라는 파시즘의 시작
공동 책무로 바뀐 임신, 출산, 육아
분노하기 전에 감정을 배워야 하는 남성 - 어린 시절부터 맨박스에 갇히는 남자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
신보수주의자들의 적폐 찾기:복지제도와 페미니즘
교육적 함의:분노하기 전에 감정을 배워야 하는 남성
여성, 선거를 탈취당하다 - 거기에 백래시까지……
‘이대남’만 남은 선거
선거에서 철저히 무시당한 ‘이대녀’
‘페미 사냥’ 광풍이 불다
남성혐오는 실재하는가?
남성혐오를 말하는 남학생에게 - 여성혐오가 아니라 미소지니
페미니즘에 대해 사상 검증을 받는 민주사회라니?
페미니즘은 남성혐오인가?
여성혐오가 아니라 미소지니
남성성을 내세워 성인의 자격을 독차지하는 남성우월주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미소지니
남자다운 것? - 미소지니와 가부장제가 제한하는 남성의 자유
페미니즘 덕분에 자유로워진 남성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지만, 가장 실천적 페미니스트인 이대남
연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 친밀감 노동 착취로부터 여성 해방
남자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 여자
친밀감의 결핍으로 화가 난 이대남
여성이 재생산 노동을 떠맡게 되기까지
‘애교’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
재생산 무상 노동을 거부하는 여성, 연애가 버거워진 남성
모든 것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근대, 그 속의 페미니즘
젠더 평등은 완료된 과제일까? - 다채로운 세상을 만끽하려면 페미니즘과 함께
페미니즘 없는 반쪽짜리 인권의 발전사
여성, 삶을 선택할 자유를 요구하다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성 예찬
원더우먼의 역설:더 괴로워진 여성
가장 기본적인 권리 요구로 돌아간 페미니즘 운동
능력주의를 외치기 전에 고려할 것
참고 문헌
작가 소개
지은이 _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회교육과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상명대학교 등에서 사회 선생님이 되려는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의 고문으로 후배 교사들을 돕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전이 있는 유럽사 1》, 《반전이 있는 베트남사》, 《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사》, 《클래식과 함께하는 사회 탐구》,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통계학》, 《교육 그 자체》, 《명진이의 수학여행》, 《별난 사회 선생님의 수상한 미래 수업》, 공저로 《학교에서 연극하자》, 《수업 중에 연극하자》,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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