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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의 단상
저는 종병에 근무하는 외과 봉직의입니다. 저희는 평일 5시에 퇴근을 합니다. 따라서 4시 30분에 외래 접수를 닫습니다. 퇴근을 기다리던 어느날 4시 25분에 접수를 하신 70대 환자 우하복부 통증을 주소로 오셨습니다. 이럴 때 참 난감합니다. 당직이 아니라서 약속을 잡았거나 집에 일이 있는 경우는 더욱 난감해집니다. 그날은 와이프가 늦게 집에 온다고 하여 제가 아이를 봐야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분에게 응급실로 가실 것을 권유하였으나 싫다고 하셔서 결국 진료를 하였습니다. 5일전부터의 하복부 통증(그러나 병실에 올라가서는 2주전부터였다고 하심) P/Ex상 우하복부의 rigid, tenderness, rebound tenderness가 저명합니다. 바로 CT를 찍었습니다. CT상 약 5cm 이상의 periappendiceal abscess가 보였습니다. 일단 입원수속을 하게하고 보호자를 오라고 하였습니다. 보호자가 타 지역에 있는 관계로 오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8시에 보호자가 도착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수술을 하는 방법과 interval appendectomy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각각의 장점, 단점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보호자는 결정을 못하고 의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최근의 의료에 관한 판결들을 이야기하고, 환자단체들이 요구하는 환자, 보호자의 선택권을 말하며 보호자에게 선택권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interval appendectomy에 관한 논문을 찾아서 보호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논문이 2010년 전북대에서 나온 대장항문학회지로 2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결과는 보존적 치료에 실패한 3명에서 응급수술을, 4명에서 interval appendectomy를, 재발한 1명을 제외한 18명은 수술하지 않고 추적관찰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호자는 interval appendectomy를 선택하였고 다음날 영상의학과에 의뢰하여 percutaneous drainage를 시행하였습니다.
이 환자를 생각하며 몇 가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1. 퇴근 시간이 가까울 때 오는 수술환자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의 경우 대부분은 수술을 합니다. 아주 불가피하게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경우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환자를 응급실로 보내거나 타 병원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최근 드는 생각은 이런 초저수가에서 위의 모습이 옳은 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일종의 의사의 사명감으로 수술을 하고 있는데 과연 맞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아마 제가 봉직의의 입장이라서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2. 응급 상황에 보호자가 늦게 오는 경우 의사는 하염없이 보호자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런 시간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응당법에서도 의사들이 여러번 이야기하였지만 해결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3. 3-4년 전만 해도 저는 periappendiceal abscess환자가 오면 무조건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리고 주위의 다른 과장들이 interval appendectomy를 하고 그 결과가 괜찮은 것을 보며,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항생제의 발달과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의 우수한 실력으로 항생제와 경피적 배액술등의 보존적 치료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7월부터 시작되는 DRG에서 과연 interval appendectomy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4. 논문을 보면 항생제는 3세대 세파, 아미노글리코시드, 메트로니다졸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병원 심사과에서 매달 나오는 삭감을 보면 3세대 세파를 사용할 때 메트로니다졸을 쓰면 전액 삭감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2세대 세파와 메트로니다졸은 3일만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논문대로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심사기준의 모호성과 부당함에 대해 생각을 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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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관련이 있는 분야라 뭐라 한 마디 쓰게 되네요^^ 첫째로 이것은 인간적인 문제입니다.
4시 25분에 오신 환자분은 자기가 오너인 상황이라면 당연 그 시간 근무하고 있는 병원으로 보내 드려야지요.
약속이 있는 상황이고,그건 히포크라테스 사명감 얘기와는 무관하다 보는 것이고요.
그러나 봉직의라면 상황이 다르지요.현실적으로 소신 만으로 될 일이 아니므로요.
수술 방법도 'interval appendectomy' 라는 텀은 우리 세대가 훈련 받을 때부터 있던 것인데,
아직까지도 의료 보험에서 정식으로 인정이 안되고 있는 모양이군요.
아마 대학에서 선별적으로 시행했다면 지금도 옛날에도 인정 받을 것입니다.
준종합 정도의 병원이라면 현재 정식으로 인정 받는 방법으로 해도 별 문제 없는 것이고, 또 의사의 사명감으로도 지장 없는 일일 것입니다.
원칙 대로 할 수 없는 일종의 모호,부당함에 대해 쓰신 글자의 열의,사명감은 큰 박수를 보내는 바이면서도,
거기에 합당하지 못한 댓글을 달게 되어 조금은 죄송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