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라는 이름으로 휴가를 한지 몇 년이 되었다. 바다를 낀 항구도시에 살지만 바다구경은 거의 못하고 살아서 그런지 나는 바다가 좋다. 올해는 코로나에다 긴장마 까지 겹쳐 늦으막히 일정을 잡고보니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맞았다. 이번에는 몇 년 전 욕지도를 가면서 봐두었던 비진도를 택했다. 휴가는 관광이나 여행과 달리 피곤한 심신을 내려놓고 푹쉬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 적합한 곳이 비진도 였다. 번잡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은 작은 섬이다. 두 섬이 사구로 연결되어 있어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고, 한쪽은 몽돌, 한쪽은 모래사장이라 해수욕하기에도 좋았다.
나는 통영앞바다 남해 섬으로 가면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고아로 통영시장이 된 수필작가 고동주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를 내던지고 남해 절해고도로 떠난 장휘옥 교수다.
내가 수필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글을 읽어가던 중 우연히 고동주를 알게 되었다. 고동주의 수필집 “달빛닮은 흔적”에는 “동백의 씨”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다. 조실부모하고 삼촌집에 얹혀살다가 군에 가서 휴가를 나와 귀대하면서, 차비가 없어 낭패를 당할 처지를 열세살 먹은 같은 고아처지인 사촌여동생이 동백씨가 떨어지면 팔아서 갚겠다며 돈울 빌려 떠나가는 선착장으로 뛰어오는 스토리이다 (수필방 8.3일 : “인공눈물”의 소재)
그 수필집에 소개된 내용에는 삼촌이 조카가 자취하는 통영읍내로 다섯시간이나 걸리는 나룻배에 장작을 실어다 준 눈물겨운 내용이 있다.
섬 주민에게 통영시장을 한 고동주가 태어난 곳이 어느 섬이냐고 물어 보았다. 아, 글세 비진도와 마주하고 있는 섬을 가르키며 오곡도란다. 민선시장을 두 번하고 재임 중 가장 먼저 고향섬에 전기를 개통해 줬단다.
다음날 아침, 오곡도가 정면으로 조망되는 비진도 용머리전망대에 올라 오곡도를 보니, 자연부락이 두 개가 있고, 수련원 비슷해 보이는 한 곳이 있었다. 섬전체가 특이하게 사방이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마을이 해안에 있지 않고 높은 곳에 있었다. 영화장면 같았으면 사촌동생이 급히 돈을 꾸어 오빠가 떠나가는 뱃전으로 뛰어내려오는 광경이 연출 되는 듯 했다.
그 것 보다는 통영시가지가 아스라히 멀리 보이는 곳인데, 엄동설한 겨울밤에 5시간이나 걸려 노를 저어 땔감을 싣고 갔을 그 삼촌의 결기가 우러러 보였다. 친자식도 아닌 조카를 위해서 말이다. 조카는 훗날 통영시장 취임식장에서 식순에 없던, 삼촌에게 자기 꽃다발을 걸어주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아버지라며 “아버지”라고 큰절을 했다고 한다. 충과 효만 강조하는 세태에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또 한사람 장휘옥 교수는 내가 금강불교대학에 다닐 때 화엄학인가 하는 과목을 배운 젊고 유망한 여자교수였다. 다음해 교수직을 내던지고, 남해의 절해고도에 들어갔다 해서 그 분의 결기도 대단하다 싶었다. 4년전 욕지도에 휴가갈 때 연화도를 거치면서 보니 경치가 뛰어난 해안절벽에 삐까번쩍한 몇층짜리 거찰이 있기에, 장교수가 화주보살의 꼬임에 거기에서 스님질을 할 거라 속단했더랬다. 동국대 교수보다 기도암자 스님의 길을 택한 것이 잘한 일인가 자문하며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휴대폰지도로 오곡도를 검색하니 오곡명상수련원이라는 곳이 있어 어떤 대단한 위인이 정기연락선도 없다는 저 섬에서 수련원을 할까 호기섬이 발동하여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아, 글세 거기 원장이 장휘옥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아직은 나에게 조금 남은 불심에 실망을 끼얺지 않는 청량제를 만난 듯 했다. 섬에 들어간지 25년 만에 분교자리에 번듯한 명상수련원을 세우고 겨울 여름 두 철 간화선을 수련하는데. 하루 9시간을 정진하고, 독참과 제창이라는 독특한 수행법을 방편으로 삼는다 한다. 아직 한 명도 낙오자가 없다하니 나는 이미 포기했지만 부럽기 한량 없다.
인생도처에 유상수라 했다. 나는 이생에 와서 70성상을 쌓고도 하수 노릇만 하고 있으되, 상수라 할만한 사람들과 인연됨도 무상수랄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것에라도 위안을 삼으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여름 휴가는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첫댓글 언급하신 두 분중 오곡도 명상 수련원 ,장교수님은 메스컴을 통해
들은바 있으나 불교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분이면 모를까
저같은 문외한에게는 경이원지. 세상은 넓으니 참 다양한 분들이
다양하게 사시는 구나,그 정도 느낌이요 잊고있던 함자이지요.
말미에 언급하신 것 처럼 각자 자기 나름대로 한 평생 사는것.
다만 도처에 유상수이니 그 분들의 삶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읽어봐주셔서 감사힙니다
세상사는 모습이 각자 다르겠지요
남은 여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장고님, 비진도를 다녀오셨네요.
통영을 가까이 한 작은 섬들이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하지요.
예향으로 불리는 통영은
음악가, 많은 문인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고동주, 장휘옥, 두분에 대하여
올려주신 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지금이 휴가철 피크인지
세상이 조용하네요.
해운대 에서 손주들과
휴가를 보내고
이제사 짐을 풀었습니다.
자주 오셔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