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길조(吉兆)
昨夜裙帶解(작야군대해),
어젯밤 치마끈이 저절로 풀어지더니,
今朝蟢子飛(금조희자비)。
오늘 아침엔 거미가 날아들었네.
鉛華不可棄(연화불가기),
연지분(脂粉)을 이젠 못 버리겠네.
莫是藁砧歸(막시고침귀)。
분명 낭군이 돌아올 징조이려니.
―‘옥대체(玉臺體)’·권덕여(權德輿·759∼818)
○玉臺體(옥대체) : 중국 남북조 시대에 진(陳)나라의 서릉(徐陵)이 편집한 《옥대신영(玉臺新詠)》의 시문을 모방하여 만든 시체(詩體). 송나라 엄우(嚴羽)가 《滄浪詩話(창랑시화)》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을 옥대체(玉臺體)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或者但謂纖艶者玉臺體 其實則不然]”라고 하였는데, 엄우의 이견(異見)에도 불구하고 이 진술은 옥대체(玉臺體)에 대해 당시 일반화된 인상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보통 한위육조시대(漢魏六朝時代)의 시 가운데 ‘섬세하고 정교하며 가볍고 아름다운[纖巧而輕艶]’ 경향의 시를 일컫는바, 여기서는 시인 권덕여(權德輿)가 이러한 ‘玉臺體(옥대체)’를 모방해 지었음을 말한다.
○裙帶解(군대해) : 부인의 허리띠가 저절로 풀리는 일은 부부가 만날 조짐을 예고하는 것으로 흔히 풀이한다. ‘裙’ : 치마 ‘군’
○蟢子飛(희자비) : ‘蟢子(희자)’는 喜子(희자), 또는 蠨蛸(소소)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갈거미라고 한다. 긴 다리의 작은 거미 종류이다. 육기(陸璣)의 《毛詩草木鳥獸蟲魚疏(모시초목조수충어류)》에 “희자(喜子)는 장각(長脚)이라고도 하며 형주(荊州) 하내(河內) 사람들은 희모(喜母)라고 부른다. 이 벌레가 와서 사람 옷에 붙으면 당연히 친한 손님이 올 거라 해서 기뻐하였다.[喜子 一名長脚 荊州河內人謂之喜母 此蟲來著人衣 當有親客至 有喜也]”라고 하였다. 명(明)나라 호진형(胡震亨)의 《唐音癸簽(당음계첨)》에 “속설에, 치마끈 풀어지면 술과 음식이 생기고, 희자(蟢子)가 옷에 붙으면 기쁜 일이 있다.[俗說 裙帶解 有酒食 蟢子緣人衣 有喜事]”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蟢子飛(희자비)’는 기쁜[喜] 일이 있을 것임을 상징한다.
○鉛華(연화) : 鉛花(연화)라고도 쓴다. 화장할 때 쓰는 지분(脂粉)을 말한다.
○藁砧(고침) : 지아비[夫]에 대한 隱語이다. 《名義考(명의고)》에 “옛날 죄가 있는 사람은 자리를 깔고 모탕 위에 엎드리게 하고 도끼로 베어버리므로 고심(稾椹)을 말하면 도끼[鈇(부)]를 함께 말하는 것이다. 부(鈇)와 夫는 同音이다. 그러므로 은어(隱語)로 고침(稾椹)을 지아비[夫]라 한다. 고(稾(藁))는 볏짚을 말하며, 침(椹)은 俗字로 砧으로 쓴다.[古有罪者 席稾伏於椹上 以鈇斬之 言稾椹則兼言鈇矣 鈇與夫同音 故隱語稾椹爲夫也 稾 禾稈 椹 俗作砧]”라고 하였다.
✵權德輿(권덕여: 758~818) : 자(字)는 재지(載之)로, 진주(秦州:지금의 甘肅省 天水縣) 사람이다. 좌보궐(左補闕), 태자빈객(太子賓客)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악부시에 능했다. 《權文公集(권문공집)》이 전한다.
※《옥대신영(玉臺新詠)》 : 중국 육조 시대의 시선집이다. 진(陳)나라 서릉(徐陵) 편으로 10권. 이 책은 처음 양(梁)의 간문제가 태자 때에 당시 유행하고 있던 염시(艶詩, 궁체라고 함)를 수집(蒐集)하고, 만년에는 양 이전 한위(漢魏) 이후의 작품까지 넓혀서 편찬했다고 한다. '옥대(玉臺)'란 말이 미인의 집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수록된 시의 내용은 남녀의 애정(愛情)에 관한 것뿐이며 시풍도 염려(艶麗)하다. 《문선》이 각 문학의 정수를 뽑아 전아(典雅)한 것을 모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권1에서 권6까지는 한(漢)에서 위(魏)까지의 5언시, 권7은 양의 황족, 권8은 양의 여러 시인의 5언시, 권9는 잡언체(雜言體), 권10은 5언4구(후의 절구체)로 되어 있다. <위키백과>
치마끈이 저절로 풀리고 아침부터 거미가 날아드는 걸 보자 여자는 마음이 달뜨기 시작한다. 이게 학수고대하던 낭군의 귀환을 알리는 길조(吉兆)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간 남편이 부재했기에 자신의 용모를 가꾸는 데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연지분을 내다 버릴 생각까지 했나 보다. 하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대단한 결기를 내보이기라도 하듯 여자는 화장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남성 우월 의식이 심했던 시절, 아낙이 제 마음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민가풍을 답습했거나 낭군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시인이 ‘치마끈이 풀어지면 술과 음식이 생기고, 거미가 사람 옷에 타고 오르면 기쁜 일이 생긴다’는 풍속기(風俗記)의 기록을 장난삼아 한번 활용해 보았든지.
수사나 품격으로 보아 재상까지 오른 시인의 작품이라기엔 왠지 생뚱맞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게 바로 옥대체의 특징. 미려하고 정교하다. ‘옥대체’는 여자를 주요 제재로 한 시를 통칭하는 말로, 옥대(옥으로 장식한 화장대)가 부녀자와 관련이 있는 사물을 가리킨 데서 유래한다. 연시(戀詩) 혹은 애정시라고도 하는데 시제라기보다는 시의 한 갈래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6월 14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