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십여 년 전, 송은이와 한 여름 밤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케이블 TV 어린이 채널에 소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아이의 사연이 뽑혀 우리 가족이 출연하게 됐고, 그날 MC가 바로 송은이였다.
PD 말로는 당시 ‘틴틴파이브’로 한창 인기 있던 표인봉이 원래 MC를 맡을 예정이었다는데, 표인봉의 스케줄이 꼬여 송은이가 대신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송은이가 우리 가족에게 했던 첫마디가 “인기 없는 제가 대신 와서 실망하셨지요?”였다.
본인이 뭘 잘못하지도 않았고, 그 때 우리 딸아이의 소원이 “은하수를 보고 싶어요”인지라 아이들과 하룻밤을 시골에서 보내야할 처지였건만, 짜증은커녕 도맡아 사과를 하고 나서다니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촬영 내내 재치 있는 진행으로 좌중을 압도하면서도 어찌나 예의 바르고 정중하던지, 그 하룻밤의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러니 내가 그 후 송은이의 ‘편’이 된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그런데 무엇보다 아쉬운 건 이 처자의 뜨는 속도가 너무나도 더디다는 것.
송은이를 응원합니다
오랜 무명이었던 친구 유재석도 KBS <서세원쇼>에 출연하면서부터 서서히 뜨기 시작했는데, 왜 함께 출연한 송은이는 자주 큰 웃음을 주었음에도 그리 뜨질 못하던지.
그 뒤로도 송은이는 오랫동안 이른바 ‘1인자’라는 메인 MC에 오르지 못해 우리 가족을 못내 서운케 했다.
그런데 재치 있고 사람 좋은 송은이가 크게 뜨지 못했던 건 그 착한 성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에게 상처를 주길 하나, 꽃미남 연예인에게 들이대기를 잘하나, 특히 윗 연배에게 무례하게 구는 일 따위는 결코 할 리 없으니 누구처럼 단 번에 뜨기는 어려운 일.
또 비슷한 스타일의 유재석은 남자 진행자로서 운신의 폭이 넓은 편이었지만 송은이에게는 그럴 기회도 그리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송은이의 코미디는 마치 간이 슴슴한 찬에 젓가락이 덜 가는 것처럼 처음에는 눈길을 끌기 어려워도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방송 경험이 전혀 없었던 우리가족마저 반하게 만드는 친화력이니 일반인이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진가가 발휘되는 건 당연한 일.
이미 종영된 MBC <느낌표!>나 현재 진행 중인 SBS <진실게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일반인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는 메인 MC는 교체되어도 송은이는 그대로 남았다.
또 여성들만 출연하는 버라이어티쇼 MBC에브리원 <무한걸스> 역시 버라이어티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다섯 명의 출연자들을 ‘송선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 다독이며 끌어 오지 않았나.
시간은 남들보다 더 걸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만큼 탄탄하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다.
지상렬을 응원합니다
송은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여온 또 다른 인물로 지상렬을 빼놓을 수 없다.
염경환과 ‘클놈’으로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설정 탓인지 지저분하고 무식한 이로만 여겼는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몰래 카메라’ 때 보여준 뜻밖의 모습에 그때까지 가져온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MBC 라디오 <지상렬, 노사연의 2시 만세>의 라디오 부스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에 신속 대처하며 파트너 노사연을 보호하는 모습은 누구보다 속 깊은 남자 중의 남자였으니까.
또 MBC에브리원 채널 개국 때부터 진행 중인 <장미의 전쟁>에서 보면 도리에 어긋나는 의견을 내놓는 적이 없다.
차라리 “어느 봉사단체에서 나오셨기에 저 같은 걸 좋다하세요?”라는 식의 자학 개그를 하면 했지, 허구한 날 개그맨들이 자행하는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 비하에 동참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직 지상렬에게 톱스타라는 호칭을 붙이긴 어렵겠지만, 그렇게 사람들을 배려하며 잔잔한 웃음을 주다 보니 이젠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착한 개그맨으로 송은이나 지상렬과 같은 길을 걸어온 유재석은 ‘배려하는 MC’로 당당히 정상에 오르지 않았는가.
‘독한 개그’가 대세인 요즘, 사람 좋으면 꼴찌 소릴 듣기 십상이긴 하다.
하지만 배려와 웃음을 함께 주는 이들 뒤엔 분명 송은이에게 우리 가족이 그렇듯 ‘평생이용권’으로 성원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
나도 이젠 독해져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이들이여, 모두 힘내시길.
첫댓글 ㅋㅋ 송은이..난 이뿌고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