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며
- 김명은
정해진 대로 정지선에서 동쪽으로
달리는 버스 유리창이 번쩍인다
열린 창문에서 밥 냄새가 난다 끼니는 건너뛰고
횡단보도도 건너뛰고 버스 번호를 확인한다
타일 벗겨진 골목은 딱딱한 이빨을 머금고
좁고 어두운 창문들에게 손을 내민다
일상은 버스를 오르고 내리는
사소한 과정일 뿐
일이요 그냥 하는 거죠 대충 사는 거죠
원자폭탄이 이로운가 해로운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든 말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쏘든 말든 버스는 출발한다
경계도 숨을 곳도 없다 흰 손은 더욱 희고
전문가들은 마음을 읽는다 피의 양이 달라
이미 마음의 혈관에서 감정을 찾아냈다
어린것들 죽이지 말고 너 혼자 죽어
댓글 창에서 악플과 생각을 쓸어 담는다
정면은 홑겹
낮은 콧날이거나
선만 남은 귓바퀴이거나
아직 돌아가지 못한 달의 속옷은 얇고 엷은 푸른빛
사는 게 전쟁터죠 글쎄 태어난 게 무슨 잘못
서쪽으로 서쪽으로
꽃 필 자리로 돌아오는 두 눈이 눈부실 것이다
ㅡ계간 《시산맥》(2023, 겨울호)
*******************************************************************************************************
목적지로 향하는 대중교통 기관 중에서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버스입니다
노선마다 운행되는 버스번호가 있어서 바깥에서 구분하기 쉽습니다
일단 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외부 환경의 변화 쯤은 슬쩍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창뭉에 비치는 일그러진 표정에 깜짝 놀라 무표정을 일굽니다
창밖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높은 건물 전광판에 세계 뉴스가 번쩍입니다
나의 목적지는 아직도 한참 더 달려야 하니 창밖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봤자 극단적선택이라고 한줄짜리 가십에 불과할 터,
무사하게 무탈하게 귀가하기만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웬만한 일에는 눈감고 귀닫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