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생일 축하해. 나는 잘 못 지내. 갇혀서 책도 못 읽
고 있어. 그런데 가끔 편지는 쓰게 해 주거든. 다른 사람
들 등 굽어 가며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를 쓸 때 난 그냥
창밖을 봤어. 내 생각엔 그곳에 훨씬 더 아름다운 게 있
는 것 같았거든.
사실 네 생일인 줄 몰랐어. 여기서 같이 지내는 사람들
이 있는데, 맞은편 침대에서 지내는 언니가 오늘 아침 사
람들한테 작년 가을에 주워 말린 낙엽을 하나씩 주는 거
야. 진짜 소중한 거라면서. 작고 푸르고 붉고 노랗고 저마
다 제멋대로 색이 바래고 그러면서도 금방 부서질 것처럼
건조해서 막 들여다보지도 못해. 두 손 모아 받은 그 나뭇
잎을 어찌하지도 못하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어. 아직 생생
하게 발작하는 창 너머의 나무들을 보면서 어쩌지, 어쩌
지, 속으로 백번 되뇌었어.
세상에서 제일 약한, 모양도 색도 제멋대로인, 내가 줍
지도 않은,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한 이 낙엽 하나 동봉
한다. 아마 너에게 가는 도중에 다 부서지겠지. 엉망이 될
거야. 거칠고 맹렬한 입자가 될 거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
다. 너는 뭐든지 빋으면 그걸 벌처럼 여겼잖아. 그래서 받
기만 하지 못하고 꼭 되갚아 주곤 했지. 받는 순간의 당혹
스러움을 돌려주려고 복수하는 것만 같았어.
자, 이건 뭣도 아니야. 진창이 된 이 나뭇잎 하나가 너
를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 풀어
헤쳐진 마음으로 더 크고 미쳐 있는 귀한 것들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내 맞은편 침대 언니는 내가 너무 좋대. 그래서 그중에
서도 제일로 예쁘고 특이한 낙엽을 골라서 준 거래. 나는
그 이유 모를 사랑이 사실 좀 부담스러워. 너한테 줘 버린
걸 알면 아마 정말 화낼지도 몰라. 그때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겠지. 이유도 있고. 그게 나을지도.
나는 차도가 없어서 당분간은 여기서 계속 지낼 예정이
야. 근데 나 여기가 정말 좋아. 너네 다 안 봐도 되고, 다
안 읽어도 되고, 다 안 들어도 되고, 안 돌봐도 되잖아. 그
러니까 내가 불쌍해지려거든 이 부서진 낙엽 보며 다 밟
아라. 날 보며 쉽게 우그러뜨리던 니 그 마음도 아직 내게
못 돌려준 그 마음도 전부 다. 멈춰서 뒤돌아보는 그런 거,
이제는 그만하라고.
나뭇잎은 나무의 것일까? 그렇다면 나무는 왜 이렇게
무책임한 거야? 끝까지 끝까지 붙잡고 있지도 못하면서.
매년 매번 그렇게 많은 너무 많은 이파리들을. 그게 아니
라면 나뭇잎은 나무의 것도 잎의 것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도대체
말이라도 할 줄 알았으면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
너는 여기 있고 나는 거기 있다는 거
믿는 구석 하나쯤은
아마 너랑은 영영 친구 못 하겠지. 창밖의 풍경이 지겨
워지면 말할게. 나 드디어 다 본 것 같다고. 빠개져도 다시
올라오는 현상 같은 게 있었다고. 그게 내 몸을 가득 채우
고 있었다고.
근데 나 왜 낙엽을 보고 네 생일인 걸 알았을까? 혹시
아니?
알게 되면 알려 줘
알게 되면
[정신머리], 민음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