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밝게 웃으며 한 입 베어 문다
어제 마음의 준비를 하라잖아, 온통 헐은 대장 어디선가 피가 터져
발만 동동 구르는데 급사할 수도 있다고
과육이 으깨지는 소리가 나며 입 주위로 과즙이 번진다
응급실이든 중환자실이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게 일상이야, 어제
도 의사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창백한 입술이 촉촉이 젖어들며 혀와 말의 길이 부드럽다
바로 옆 침대가 비어 있어서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갔다고 그래,
집에 갔느냐고 했더니 돌아갔다고, 처음 온 곳으로 갔다고
입 안 가득 베어 문다, 대학병원에서 혈액암으로 이 년째 투병 중인
아이를 둔 엄마가 희망을 베어 물듯 사각사각 맛나게 사과를
사과는 줄어들고 입 안의 물기는 많아지고 사과향이 점차 주변에 퍼
지면서 으깨지는 사과는 말이 되고, 활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스며들
고
어제도 같은 중환자실에서 둘이나 갔지만, 그래도 우리 애는 살아
있어
멍든 것처럼 시퍼런 사과를 마지막 베어 물고 으적으적 씹다가
꿀꺽 삼키고 자리를 털며 일어난다,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며
[가슴을 재다], 푸른사상, 2021.
첫댓글 옛 생각 만 - 먹음직한 것은 너무 비싸서 눈 요기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