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윗몸일으키기
글쓴이 : 서 정홍
사잇그림 : 안 태성
펴낸곳 : 현암사 (1995.4.15)
반장 영철이는
높은 대통령이 되고 싶단다.
부반장 덕배는
힘센 장군이 되고 싶단다.
지도 위원 민수는
장군보다 힘세고
대통령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단다.
철거 마을 수영이는
크고 멋진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달동네 정현이는
넓은 서울에 가서
잘 먹고 잘 입고 살 수 있는
돈 많은 사장이 되고 싶단다.
내 짝지 수진이는
의사가 될까, 교수가 될까 망설이다
이름 날리는 박사가 되고 싶단다.
선생님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다는데
나는 커서 무엇일 될까?
우리 반 아이들
대통령, 장군 되고
사장, 의사, 박사 되고 나면
외할머니댁 산밭에
감자는 누가 심나
아버지 다니시는 공장에
일은 누가 하나.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 할까
농부가 되고 싶다 할까
노동자가 되고 싶다 할까
모두들 어물쩍거리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커서
아버지 닮은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반 아이들
노동자가 뭔지도 모르고
깔깔 웃어 대지만
오늘도 땀 흘리며 일하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하고 싶은 말을 뱉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나는 무엇이 될까>
서 정홍님. 서 정홍님은 요즘 시대에 `글쓰는 노동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노동자라
하여 글 못 쓸 까닭이 어이 있겠냐며, 창원에서 공장을 다니는 틈틈이 동료 노동자와
어울려 글패를 만들고 글쓰기 모임과 우리 말 바로쓰기 운동까지 합니다. 노동자 처지는 글쟁이들이 머릿속으로 얼추 노동 현실을 생각해 보거나 잠깐 노동현장에서 일한
것쯤으로 글을 쓰기 일쑤인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서 자기 밥벌이와 식구 먹여살리며
살림하고 살아가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기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 드물죠.
물론 글 잘쓰는 글쟁이는 노동자 삶과 모습과 앞날도 맵차게 담아냅니다. 그러나 글쟁이는 노동자로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 쓸 때를 빼곤 노동자 처지가 어떠한지 생각하지 못하고요. "달력 빨간 날은 쉬는 날이 아니라 `특근'하는 날"인 노동자 삶을, 그런
노동자 아버지를 둔 아이들 눈높이나, 아내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는 글쟁이가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서 정홍님은 자기 스스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기 이야기와 자기 식구들, 동료들,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윗몸 일으키기>는
그 가운데 자기가 키우는 아이들 눈높이로 `노동자인 아버지를 둔 자식' 처지로 쓴 글입니다.
소말리아 아이들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지만
우리 반 친구들
핫도그, 만두, 떡볶이 보이는 대로
다 사 먹고는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군것질 꾹 참고 돌아온 나도
덩달아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많이 먹고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내 친구 닮을까봐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윗몸일으키기>
서 정홍님은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배운다'고 늘 느낀답니다. 어느 날 아들 `인교'가 텔레비전 보다가 "아빠, 제 이름 바꾸면 안 되나요? 제 이름하고 똑같은 사람이
경찰에 잡혀 갔어요. 남을 속이고 달아나다가 잡혔대요" 하더랍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에이 참, 아빠! 친구들이 막 놀린단 말이에요" 하며 꽤 괴롭더랍니다. 그때 대강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따지고 보니 서 정홍님 당신도 자기와 이름이 똑같을 다른 사람이
가슴아프게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돌아보았답니다.
"어른들이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 가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시를 쓰기에는 모자람이 많지만,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아버지를 친구들에게 말하기 부끄럽다
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 시집을 안겨 주고 싶습니다.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는 헛된 꿈을 가진 어른들의 머리맡에도 놓아
두고 싶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땀 흘려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 말
하고 싶습니다...<머리말>"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은 아버지 직업을 `노동자'로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버지 직업을 `직장인' `회사원' 이렇게 밝히고 얘기할 뿐입니다. 저부터 초중고등학교 거치며 아버지 직업이 `노동자라'고 떳떳하게 밝힌 동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 해도 아이들은 사회 환경 탓에 아버지
직업이 `노동자라'고 말하기 쉽지 않죠. 그 아이들에게 <윗몸일으키기>가 힘이 되고
노동자란 직업을 돈 많이 못 벌고 힘만 무지 드는 꺼려할 일이라 여기는 어른에게는 <윗몸일으키기>가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간다 함은 나이만 더 먹거나 어릴 적 가진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잃는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우린 어른으로 자라가며 깨끗함과 아름다움도 잃어가며 탐욕과 이기에 눈을 뜹니다. 나이먹은 걸로 아랫사람을 부리려 합니다. 그런 못난이 어른에게는
"어버이날에 쓴 편지 2"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청진기를 들고 동생 감기 증세를 진찰하는 의사 선생
님 고운 손을 보니 문득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거
친 손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깍듯이 절을 하고 우러러보지만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
버지는 함부로 대합니다. 참 이상하게도 힘들게 일하
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천대받고,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넉넉하게 살면서 존경을 받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거친 손이 나를 키우셨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쳤으나 일할 자리가 없어서 풀죽은 사람들에게는 "길"이란 시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과
공부를 잘 못 해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정직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두 가지 다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운을 냅시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 가난하게 살지라도 부지런히 땀 흘리면서도 즐겁게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많이 있습니다. 공장과 논밭은 공부를 못한 사람만이
가서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연봉이 수천만 원이어야 하거나 자동차를 굴리고 몇 억대
아파트를 가져야 하나요? 우리 삶에서 행복이란 돈이나 잘 나간다는 명함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족, 조촐한 가정을 꾸려 배우자와 아이들과 웃으며 즐겁게 살고 이웃과
피붙이들과도 늘 반갑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외할머니 입고 계신
때 묻고 떨어진 옷보다
연탄 배달하시는 순영이 아버지
석탄 가루 묻은 새까만 옷보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부려서
자기만 잘 살아 가는
못된 사람들의 뻔드레한 옷이
가장 더러운 옷이라는
아버지 말씀을
1994년 8월 15일
일기장에 적습니다.
내가 커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연필로 꼭꼭 눌러 적습니다. <가장 더러운 옷>
우리도 이렇게 어릴 적 `연필로 꼭꼭 눌러 적은'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이런 어른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적은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어떠한가요. `동시모음'이란 꼬리말이 달고 나온 <윗몸일으키기>지만
아이들 보다 어른인 우리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입니다.
4333(2000).12.4.달.ㅎㄲㅅㄱ / 최종규
출처 : 최종규 <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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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줄줄이사탕으로 글을 올리는
'어린 님'들을 보게 된다
할말이 많은 만큼 먹고싶은 것도 많겠지요
한참 사랑에 눈이 멀 때니까 그 마음 헤아릴 수 있겠으나^^;
글 한 줄 올리기 전에 ,
다른 님들 글 열줄 먼저 보았으면 ... -_-
여기는 혼자만 쓰는 데가 아닙니다 ^_^
김산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