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버팀목으로 남길..
지난 월삭에 톡이 울렸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금도 오치동 교회 그대로 하는가요?’
‘반갑네요. 이렇게 안부 주시고.. 오치동에서 마르고 닳도록 사네요.’
‘그래요. 저 광주 이사 온 지 3년 되었어요.
사모님도 잘 계시지요. 조만간 식사 대접할게요.’
‘헐? 무심하네요. 3년 만에 소식..
식사보다 낼 11시 예배 오세요.
다 환영하며 영접할 거예요. ㅋㅋ’
‘여기 방림동이라서.. 문희랑 나오나요. 다들 보고 싶네요.’
‘바다 끝이라도 모시러 갈게요. 문희는 오래되었어요.’
‘진짜요.’
‘매주 중흥동으로 운행 나가는데 나오세요.’
‘방림동 삼일 아파트 11동이어요. 전화번호는..’
‘낼 10시 10분 아파트 정문에서 만나지요.’
‘너무 먼데 괜찮으세요.’
‘주일은 막힘없어 금방 가지요. 그보다 더한 거리도요.
얼마나 귀한 분인데..’
‘신광교회 가려고 안 움직였어요.
옷 가게에 쉰천지까지 하루 열 명은 왔지만 진짜 나가게 되네요.
기다릴게요.’
‘중흥동 임 권사님 모시고 전화할게요. 승용차 1774 네요.’
‘넹’
24년 전, 만난 위기의 가정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잠을 설쳤다.
어느 날, 골목에서 노는 네 아이를 봤다.
큰딸이 6학년,
군산에서 사업 실패 후 단칸방을 로뎀나무로 삼은 가정이었다.
화장실은 동사무소로 다녔다.
해거름에 나온 임산부가 그들 엄마였다.
다섯째 출산에 꽃잎이 어둠으로 묻힐까 봐 아내가 도왔다.
가족이 교회에 나왔다.
고픈 게 더 아픈 법이라 떡과 물을 까마귀처럼 날랐다.
북구청 생활 수기에 당선되어 상금을 보탰다.
분주한 주말, 남편이 급전을 요구해 겁 없이 비자 카드로 한도액을 빼줬다.
이자 갚을 능력 없어 간이 오그라들었다.
돌려 막기가 심장을 쪼아 버틸 힘을 잃었다.
똥줄이 타서 정기구독 한 좋은 생각 ‘그러나 수기’에 사연을 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실려 원고료와 전국 답지 후원금으로 길을 열었다.
소중한 인연에 야채, 피자 가게, 통닭집 꾸려 아이들 골프를 시켰다.
자녀들이 교회 울타리에서 자라며 사랑이 고프지 않게 나눴다.
간판 일한 남편이 벽화를 기막히게 그렸다.
손재주가 탁월하여 교회 2층 부엌 방 칸막이 공사를 맡겼다.
간식을 들고 갔는데 여유작작 앉아 담배를 피웠다.
‘여기가 어딘데 담배..’ 면전에서 낯 박살을 줬다.
그때는 젊어 원칙이 앞섰다.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숙였다.
사업 부도 여파로 담 안에서 짠맛을 욱여가며 삼켰다.
교회에서 10분 거리, 가련하여 돌봤다.
길지 않은 기간에 출소의 기쁨을 맛봤다.
삶의 자갈길 능선 넘으며 근육이 야물어졌다.
익산 이사 후 한 번 내려왔다.
그날 미선 할머니가 밥값을 냈다.
아름답게 섬긴 권사님 떠난 지 3년, 자녀 손이 추모하며 예배드렸다.
장로님 거래처인 완도바다에서 저녁을 먹었다.
미선이가 0롱이 엄마 소식에 놀라며 거들었다.
‘목사님! 0롱이 0석이, 골프 세계에서 잘 나간 것 봤어요.’
보람된 일이었다.
약속 날 아파트 앞에서 서성이다 20년 만에 뵌 0롱이 엄마!
수줍게 웃는 그대로였다.
망설임 없이 말하는 성품도 변함없었다.
값비싼 목도리 여러 개를 내밀었다.
‘목사님! 전화가 바뀌어 연락을 못했는데 젊어지셨네요.
먹을 것 없을 때 쌀과 부식 갖다 준 것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 언니가 교회 권해도 맘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오가며 막다른 추억을 밝혔다.
‘목사님! 다섯 다 골프를 시켰어요.
존심 강하게 악착같이 키웠네요.
스테이크 먹이려고 화장품도 안 썼어요.
애들에게 들어간 돈 모았으면 빌딩 샀을 거예요.
설거지 한번 안 시키고 욕설 한번 안 했어요.
결국 잘 풀려 프로 골퍼와 모델로 자리 잡았어요.
지금은 강남에서 밥벌이하고 살아요.
좋은 자 타고 괜찮은 여친, 남친 사귀고요.
형제 우애가 좋아 자주 여행 가네요.
어릴 때 사업하다 망한 체험에 카드보다 현찰만 쓰더라고요.
큰아들은 용산에서 군 생활 편하게 마쳤어요.
막내는 강원도에서 제대하여 벌써 24살이어요.
전자공학 전공하다 큰애 설득으로 골프 대학 졸업반 되었어요.
차 타고 전국으로 나가면 돈 번다고 일렀데요.
형과 누나가 학비와 용돈은 입금시키고요.
엄마는 그만하라고 보내나 봐요.
그래도 햄버거 집, 쿠팡, 가래떡 나르는 곳에서 성실히 알바했어요.
큰애는 몸매 관리도 잘해요.
동생들에게 헬스와 줄넘기 권하고요.
넷째가 대인 기피증으로 어려웠는데 달라졌어요.
눈치가 빨라 지금은 이쁨을 받는데요.
다 잘 사는데 남편이 바람 탔어요.
그래 언니 옆으로 왔어요.
혼자라 오히려 편했어요.
옷 가게 2년 하다 멀쩡한 상태에서 뇌졸중으로 떨어졌어요.
다행히 언니가 발견하여 죽었다 살아났네요.
두 달간 기어다녔지만 반신불수는 면했어요.
하나님이 도우셨지요.
시티병원 내과 원장님도 애 많이 쓰셨어요.
퇴원해 약을 복용하고 날마다 운동으로 건강 챙기네요.
무등산과 천변 걸으며 마음을 비웠어요.
죽는 것 두렵지 않고 푸른 나무 보는 것 감사하네요.
다시 옷 가게 열고 싶은데 주치의가 못하게 해요.
애들도 뭐가 안 맞은 지 전화 안 하네요.
아픈 뒤라 서운했어요.
다들 엄마에게 잘할 것이라 했지만 그렇지 않네요.
자식에게 손 안 벌려도 먹고사는 것 힘들지 않네요.
이제 결혼할 때 알아서 하라 했어요.
지들 열심히 사는 것 만족하게 여겨 섭섭할 일도 없네요.
살려준 거 감사하여 다 새로울 뿐이어요.
목사님! 오랜만에 먹은 교회 밥, 묵은지 볶은 거 정말 맛났어요.
사모님 음식 솜씨는 그대로였어요.
같이 식사하게 언제 날 잡으세요.’
난 밥보다 믿음으로 분연히 일어선 버팀목 되길 바랐다.
5남매가 최경주 선수처럼 주님 귀히 쓰는 그릇 되도록..
2025. 3. 2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